314. 에밀레종의 장엄한 소리를 들어보셨나요?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의 소리를 들으신 적이 있나요? 신나라에서 나온 ‘한국의 범종’이라는 녹음테이프에 성덕대왕신종 소리가 있습니다. 이 종은 그야말로 신종입니다. 전 경주박물관장이었던 정양모 선생은 이 종소리를 “엄청나게 큰 소리로 이슬처럼 영롱하고 맑다”고 표현합니다. 가슴 속 깊은 곳을 오랫동안 은은하게 적셔주는 장엄한 소리입니다. 그 까닭은 종이 아주 일정하게 고른 두께를 가지고 있었으며, 속에 기포가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1970년대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이 박정희신종을 만들어 바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불국사에 걸려있는 이 종은 소리가 고르지 못하고 항상 웅웅거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경주박물관 전문가들이 실측을 해보니 종 두께가 고르지 못했으며, 기포도 많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무려 1200년도 넘은 옛날에 만든 종을 현대과학이 흉내도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313. 감동의 4 손가락 피아니스트 ‘희아’ 문화방송(MBC) 텔레비전에서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가 방영되었습니다. 희아는 태어날 때부터 4개의 손가락만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게다가 한 쪽 손가락은 관절까지 없습니다. 또 다리마저 잘린 채로 무릎으로 걸어 다닙니다. 그런 희아가 태어나자 주변에서는 기를 수 없으니 캐나다로 입양보내야 한다고 강권했지만 엄마는 희아의 4 손가락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 뒤 엄마는 희아가 당당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피나는 훈련을 피아노로 합니다. 이제 희아를 손가락 4개라고 흉보는 사람은 없으며, 누구나 희아가 연주하는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들으며 감동의 눈물을 흘립니다. 사람에겐 마음의 장애가 문제이지 몸의 장애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또 세상엔 나보다 더 불행하지만 당당하게 더불어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312. “노랫소리 판정” 이야기 한국구전설화(임석재, 평민사)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꾀꼬리허고 악새허고 서로 소리럴 니가 잘허냐, 내가 잘허지 험서 다투었던지 저그덜찌리 암만 다투어도 승판이 안 났다. 그렁게 황새헌티 가서 승판히 들라고 허넌 수밖이 없다고 정힜다. 그런데 왁새가 곰곰이 생각히 봐도 지 소리가 암만히도 꾀꼬리 소리만 못 히서 질 것 같은께 물괴기럴 한 마리 구히각고 황새헌티 가서 꾀꼬리 허고 이러이러헌 일이 있잉께 나럴 이기게만 히주시오 허고 청질했다. 승판얼 허넌 날이 돼서 둘언 황새헌티 가서 노래럴 불렀다. 먼저 꾀꼬리가 먹청얼 놔서 잘 불렀다. 황새가 탄복험서 칭찬힜다. 다음에 왁새가 부르넌디 왝! 왝! 소리만 질렀다. 황새넌 이 소리럴 듣고서 왁새헌티서 얻어먹은 물괴기럴 도로 토히각고 줌서 ‘이놈아 아무리 노래럴 헐 줄 몰라도 왝왝 소리밲에 못 허냐!’ 험서 핀잔얼 주었다고 헌다.(1940년 1월 전북 고창군 서치영)
311. 독도는 대나무섬(죽도)이 아니라 돌섬입니다. 울릉 주민들은 독도를 ‘독섬’이라 부르는데 ‘독섬’은 돌의 사투리 ‘독’과 ‘섬’이 합친 말이며, 한자어 ‘독도’는 ‘독섬’을 한자화하는 과정에서 음이 같은 ‘독’(獨)을 따서 만든 이름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독도’는 ‘홀로 떨어진 섬’이 아닌 ‘돌로 된 섬’이란 뜻이지요. “일본인들이 일컫는 ‘다케시마’(竹島)도 ‘다케’는 ‘독’이 도꾸→더께→다께로 변한 것일 가능성이 높고, ‘시마’는 ‘섬’의 변이형이어서 역시 ‘독섬’을 가리킨다. 일본은 17세기 이후 ‘울릉도’를 ‘죽도’로, ‘독섬’을 ‘송도’(松島, 마쓰시마)로 부르던 것을 1905년 이후에 ‘독도’를 ‘죽도’로, ‘울릉도’를 그대로 부르게 된 것이 지금까지 전한다.”라고 최용기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은 말합니다. 또 최연구관은 ‘독도’에는 ‘대’가 자랄 수 없고 ‘소나무’가 자랐던 그루터기만 발견되었기에 땅이름에서도 일본인들이 얼마나 억지주장을 하는지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310. 여름에 드는 입하(立夏)와 전통차 오늘은 24절기 일곱 번째로 여름철로 들어간다는 입하입니다. 옛사람들은 초후(初候)에는 청개구리가 울고, 중후(中候)에는 지렁이가 땅에서 나오며, 말후(末候)에는 왕과(王瓜: 쥐참외)가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이맘때면 곡우 때 마련한 못자리도 자리를 잡아 농삿일이 좀 더 바빠집니다. 푸르름이 온통 산과 강을 뒤덮어 여름이 다가온 것을 알리는 절기인데 서울 송파지역에서는 세시풍습의 하나로 쑥무리를 절식(節食)으로 만들어 먹습니다. 보통 녹차의 경우는 곡우 전에 딴 우전차를 최상품으로 치지만, 한국의 다성(茶聖:차의 달인) 초의(艸衣)선사는 '우리의 차(茶)는 곡우 전후보다는 입하(立夏) 전후가 가장 좋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전통차는 쪄서 만드는 녹차와는 다른 덖음차여서 된장찌개와 숭늉의 깊고, 구수하며, 담백한 맛을 닮은 차를 만드는데 여름차가 더욱 좋다는 뜻입니다.
309. 가짜일지도 모를 중국의 명차 ‘보이차’ 몇 년 전부터 중국의 명차인 ‘보이차’를 즐겨 마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이차는 중국 윈난성(雲南省), 시쐉빤나(西雙版納), 시마오(思茅) 등지에서 생산되는 중국의 명차(名茶)인데 이 이름은 보이현에서 모아 출하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보이차는 만들 때 오래 묵히면 묵힐수록 비싼 차가 되며, 보통 20년 이상이면 최고품으로 칩니다. 또 보이차는 가공한 다음 미생물에 의한 발효를 거치기 때문에 후발효차(後醱酵茶)로 홍차와 비슷한 색을 띱니다. 그런데 문제는 국내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보이차가 만든 때를 위조한 것이거나 원래의 가공방법(건창발효;乾倉醱酵)이 아닌 3~7일간 강제로 발효시키는 ‘습창발효濕倉醱酵)’로 만든 가짜일 가능성이 많다고 합니다. 우리 전통차는 비싸봐야 15만원인데도 외면하면서 가짜일지도 모를 비싼 보이차(100만 원 짜리도 있음)를 즐기는 것은 문화사대주의가 아닐까요?
308. 화(靴, 鞾)와 이(履)로 나뉘는 전통신발 전통신발은 ‘화’와 ‘이’로 나뉩니다. 이중 ‘화’는 북방계의 신으로 신목이 붙어있는 지금의 장화와 비슷한 신입니다. 추위를 막거나 물이 젖지 않도록 하는데 좋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흑피화, 목화, 협금화, 수자화, 백피화, 초록화, 기자화, 오피화 따위가 있었습니다. 또 ‘이’는 혜(鞋), 비(扉), 구(屨), 극(屐:나막신), 석(舃), 갹답(蹻踏) 등 신목이 짧은 신을 두루 말하는 것으로 남방계의 신입니다. 형태는 목이 없는 요즘의 고무신과 비슷한데 재료로는 가죽, 옷감, 실, 풀, 종이, 나무, 금속 따위가 쓰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흑피혜, 분투혜, 투혜, 사피혜, 피초혜, 태사혜, 당혜, 운혜, 마혜, 진신 등이 있었습니다. 요즘 한복을 입을 때 태사혜(太史鞋)에 굽을 붙여 만든 갖신을 신기도 합니다. 한 학자는 자신의 책에 “한복에는 고무신이 원칙이다.”라고 말했는데 고무신은 일제강점기 때 들어온 신으로 ‘원칙’은 아닙니다.
교과서 말 문장이 말의 기본 단위임은 앞에서 이미 말하였다. 한 문장 안에 두드러지게 어려운 낱말이 들어 있으면 글을 읽는 사람은 그 낱말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다. 외국어 문장을 읽다보면 자주 겪는 일이다. 한 문장이나 단락에 어려운 낱말이 한꺼번에 여럿 나타나면 자기도 모르게 전체 뜻을 놓아두고 낱말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데 그 바람에 전체의 맥락을 놓치는 것이다.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자연과 사회 교과서가 이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 쪽은 본디 낱말을 새로 배우거나 가르치는 과목이 아니다. 사회나 자연 교과서에서 말은 그야말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차츰 어려워지는 내용을 이해해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내용을 설명하는 문장은 정확하고 쉬워야 한다. 내용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교과서는 흔히 그 내용보다 먼저 말이 더 어려워진다. 간결하다는 이유로 한자말을 많이 사용하는 탓이다. 새로운 내용을 이해해야 하는 과목에서 어려운 한자말이 많이 나타나면 아이들은 눈앞이 캄캄해진다. 우리 모두 학교 다닐 때 이런 것을 경험한 일이 있다. 한자말은 아무리 오래 써도 우리의 말느낌에 직접 와서 닿지 않는다. 한자를 잘 아는
307. 일제가 헐어버린 원구단(圜丘壇) ‘원구단’은 천자(天子)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천단을 말하는데 1897년 고종의 황제 즉위식과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 뒤 단지 내에 3층의 ‘황궁우’(皇穹宇:하늘과 땅 모든 신의 위패(位牌)를 모신 곳)를 짓고,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돌북(석고:石鼓)을 황궁우 옆에 세웠습니다. 이 돌로 만든 ‘돌북’은 몸통 둘레에 용무늬를 돋을새김(부조)해 놓았으며, 조선말기 조각물 중 최고 걸작품의 하나로 꼽힙니다. 그런데 일제는 1913년 이 원구단을 헐고, 그 자리에 조선호텔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조선호텔 경내에 황궁우와 석고, 그리고 석조 대문만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이 황궁우를 보면서 쓰러져 가는 나라를 붙들어보려는 의지와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정성을 다한 흔적을 봅니다. 그리고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일제가 하늘에 제사지내는 원구단을 없앤 까닭을 생각해봅니다.
60년을 담아낸 대나무소리는 무엇일까? 대금명인 이생강의 60년 결산음반 '죽향' 나와 ▲ 대금 부는 이생강 명인 ⓒ2005 신붕민예 "나이 지긋한 연주자는 돗자리 위에 좌정하고, 취공에 혼을 불어넣었다. 주위에 산재해 있던 빛은 한 곳으로 모이고, 고요가 꿈틀대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애끓는 소리가 남의 애간장을 다 녹이다 여운을 남기며 사라진다. 객석에는 사람이 없는 듯 여겨졌다."수필가 강운정씨는 '그래 우리가 진정 사랑한다면'이란 책에서 이생강 선생의 연주를 이렇게 그려낸다.우리말로 '젓대'인 대금의 한국 최고 명인으로 꼽히는 죽향(竹鄕) 이생강(68·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보유자) 선생이 대나무소리 60돌을 맞았다. 그 60돌을 맞아 신나라(회장 김기순)에서 '이생강의 음악인생 60주년 기념앨범 - 죽향(竹香)'이란 기념음반이 나왔다.그는 '퓨전국악'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의 원조로 불린다. 보수적인 국악의 풍토 속에서 눈총을 받아가며, 60년대 말부터 대금과 서양악기와의 협연은 물론 대금을 이용한 가요, 팝, 재즈 연주를 시도했고, 이렇게 만든 크로스오버 음반도 수십여 종이나 된다.국악기에 조예가 깊었던 아버지를 따라 5살 때부터 피리,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