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대구 영남공업고등학교(교장 김봉준)는 대구시교육청 학생 저자 책 쓰기 프로젝트 100-100-1 프로그램의 하나로 《우리는 학생 기자다(부제: 사람 책으로 만든 사람 책)》를 펴냈다. 이 책은 사람 사이 만남을 통해 편견을 없애자는 덴마크 출신의 사회운동가 로니 에버겔의 '휴먼 라이브러리 프로젝트'에서 동기를 얻었으며 한국언론진흥재단으로부터 대담 기사 작성법을 공부하고 대담 요령을 익혀 지역 사회의 숨은 보석들을 찾아 대담을 진행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최정애 강사는 "고등학생들이 낯선 사람에게 연락하고 만나고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매체 이해력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성인으로 크게 성장하는 것을 느꼈다"라며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들을 대견해 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승준(2학년 전자과) 학생은 "단순히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기억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한 내용을 실제 상황에 적용해 보니 진짜 공부를 한 것 같다"라며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친구들과 협력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얻은 것이 많다"라고 말했다. 김봉준 교장은 "대구 교육의 자랑인 '학생 저자 책 쓰기'가 프로젝트 수업과 만나 학생들의 미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텔레비전 사극에 보면 정갈한 사랑방에서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글을 읽는 선비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때 선비가 책을 올려놓고 보는 앉은뱅이 작은 책상을 서안(書案)이라 하고 그 옆에 벼루와 먹 그리고 붓을 넣어두는 상자가 있는데 이를 ‘연상(硯床)’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서안과 연상은 옛 선비들 사랑방에 꼭 놓여있었던 가구였습니다. 높이 16∼30㎝의 작달막한 연상은 윗부분에 뚜껑을 덮고 그 안에 벼루를 넣어 둡니다. 어떤 연상은 뚜껑이 없이 벼루를 바로 쓸 수 있게 해놓은 것도 있는데 이 이름은 따로 ‘연대(硯臺)’라 합니다. 그리고 아래로는 서랍을 두어 붓이나 먹, 연적을 넣어두기도 합니다. 또 문갑이나 서안과 겸한 것들도 눈에 띕니다. 그밖에 벼루와 먹을 보관하는 작은 함이 있는데 이는 벼룻집[연갑(硯匣)]이라고 하지요. 연상을 만드는 재료로는 은행나무ㆍ소나무ㆍ먹감나무가 가장 많이 쓰였으며, 모과나무로 만든 투각장식의 연상과 나전칠기 연상은 매우 화려한 고급품입니다. 또한, 대쪽 같은 선비의 품격을 나타내는 대나무 연상도 많습니다. 벼루 10개와 붓 천 자루를 갈아치웠다는 추사 김정희와 명필 왕희지(王羲之)ㆍ안진경(顔眞卿)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의 위대한 반찬 김치는 그 종류가 자그마치 500여 가지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우리 겨레는 김치와 함께 살아온 거죠. 그런데 김치는 세계 5대 건강식으로 뽑히고, 미국과 유럽 일대, 중국, 일본에서도 김치의 인기가 커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 김치는 형태별로 통김치, 숙김치(삶은 무와 절인 배추에 굴, 배, 고춧가루, 새우젓, 대파 등을 넣어 담그는 김치), 깍두기, 소박이, 물김치, 보김치(한 보시기 분의 김치를 덩어리지게 담아 백항아리에 익히는 것) 따위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무로 만드는 깍두기의 유래는 무엇일까요? 1940년 홍선표가 펴낸 《조선요리학》을 보면 200년 전 정조임금 사위인 홍현주(洪顯周)의 부인(숙선공주)이 임금에게 처음으로 깍두기를 담가 올려 칭찬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각독기(刻毒氣)라 불렀으며, 그 뒤 여염집에도 퍼졌는데 고춧가루 대신 붉은 날고추를 갈아서 쓰면 빛깔이 곱고 맛도 더욱 좋다고 하지요. 깍두기에는 감동젓무, 걸무깍두기, 명태서더리깍두기, 무송송이, 숙깍두기, 비늘깍두기 따위가 있는데 이 가운데 ‘감동젓무’는 무와 배추에 잔 새우로 담근 감동젓(곤쟁이젓), 생굴, 낙지, 북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고윤환 문경시장은 제13회 문경새재아리랑제 홍보물에 쓴 인사말 ‘아리랑고개, 함께 넘다’에서 “단산 일대에 아리랑의 모든 것을 담아낼 아리랑기념관을 금년 내 착공항 것”이라고 밝혔다. 고윤환 시장은 3연임 기간 동안 문경새재아리랑에 대한 많은 관심으로 보여왔는데 특히 ‘서예로 담아낸 아리랑 가사 일만수’ 편찬, ‘아리랑도시 선포’, 문경새재아리랑제 야외형 전환을 위한 야외공연장 확장 기공 등 관련 사업을 펼쳐왔기 때문에 이 계획은 실현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 시장은 문경새재악보집 발간, 아리랑로고 기념품 제작, 문경새재아리랑제 주제 확장성 실천 등 내실을 다져오기도 했다. 특히 사할린아리랑제 등 외부의 주제공연 참관 등으로 외연을 넓혀왔다. 이 같은 지속적인 사업과 관심으로 단산지역 아리랑기념과 건립은 기대를 갖게 한다. 문제는 외부에서의 문경아리랑에 관한 관심보다 오히려 시민들의 관심이 미온적이라는 점이다. 이는 내부 문화계 인물들의 지적인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진도, 밀양, 정선 보다 여러 면에서 후발이지만, 후발의 장점을 살린다면, 국가적이고 세계적인 아리랑 주제 공간이 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 민족아! 우리의 철천지원수는 자본제국주의 일본이다. 2,000만 동포야 죽음을 결단코 싸우자 만세! 만세! 조선독립만세!” 이는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인산일(因山日, 장례일)을 기해 만세시위로 일어난 <6·10만세운동>의 한 격문입니다. <6·10만세운동>은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주의 계열이 연합하여 만세시위를 계획하였지만, 사전에 일제 경찰에 들켜 무산되었습니다. 하지만, 확산해온 학생운동 조직은 준비과정에서 일경에 들키지 않았지요, 먼저 조선학생과학연구회 중심의 사직동계가 주도했는데 화요회계와 통동계가 연합하여 태극기 300장과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깃발 30장을 만들었으며, 명함인쇄기 한 대를 구해 초안한 격문 1만여 매를 인쇄했습니다. 6월 10일 순종의 장례 행렬은 창덕궁에서 발인을 마친 뒤 종로ㆍ동대문을 거쳐 금곡 유릉(裕陵)으로 가는 장례 행렬의 연도에는 30만 명의 군중이 몰려들었지요. 이때 학생들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격문 1,000장과 태극기 30여 장을 뿌렸습니다. 일제는 군대 1만 명을 서울에 긴급 투입했으며, 인도에 총검으로 무장한 군인과 기마 경찰, 헌병을 집중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양우, 아래 문체부)와 국립국어원(원장 소강춘, 아래 국어원)은 ‘풀링 검사’를 대신할 쉬운 우리말로 ‘취합 선별 검사’를 꼽았다. ‘풀링 검사’는 여러 사람에게서 검사 대상물을 채취한 뒤 모두 섞어 한꺼번에 감염 여부를 검사하고, 그 결과가 양성이 나오면 검사 대상자들을 개별적으로 검사하는 방법을 가리키는 말로써 대규모 인원의 감염 여부를 이른 시일 안에 확인하기 위해 마련됐다. 문체부와 국어원은 지난 6월 1일부터 3일까지 열린 새말모임*을 통해 제안된 의견을 바탕으로 의미의 적절성과 활용성 등을 다각도로 검토해 ‘풀링 검사’의 바꿈말로 ‘취합 선별 검사’를 꼽았다. * 새말모임: 어려운 외국어 새말이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 바꿈말을 제공하기 위해 국어 전문가 외에 외국어, 교육, 홍보‧출판, 정보통신, 언론 등 다양한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로서, 누리소통망(SNS)을 통해 진행됨. 문체부와 국어원은 ‘풀링 검사’처럼 어려운 용어 때문에 국민이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이러한 말을 ‘취합 선별 검사’처럼 쉬운 말로 발 빠르게 다듬고 있다. 앞으로도 문체부와 국어원은 정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서울 동대문경찰서에서 지난 2월 16일부터 검거 취조에 착수한 백백교(百百敎) 사건은 이름만으로 종교단체 같으나 취조에 따라 전개되는 그 내용을 보면 사기, 부녀자 능욕, 강도뿐만이 아니라 우매한 지방 농민들을 허무맹랑한 조건으로 재산을 몰수하고, 부녀자의 정조를 함부로 유린한 후에 그 비밀을 막기위하야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닥치는대로 살육해버린 살육교이다.“ 이 내용은 동아일보 1937년 6월 9일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전용해가 교주인 백백교는 1940년 전용해 등이 모두 체포되어 12명이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들은 신도들의 재물을 빼앗고 수많은 여신도들을 속여 성폭행을 저질렀지요. 전용해는 변태성욕자로서 심지어는 많은 여신도가 보는 가운데서 정사를 벌이고, 이를 신(神)의 행사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또 그 같은 범죄행위를 숨기기 위하여 비밀을 누설할 만한 사람들을 깊은 산속으로 끌고 가서 죽였는데, 밝혀진 바에 따르면 314명이나 되었습니다. 백백교의 중심 교리는 "교주의 흰 것으로 천하를 희게 하자"라는 것으로, 이는 유불선 3교가 모두 성쇠를 거듭하며 3천 년을 흐르는 동안 그 본질이 쇠퇴하고 거죽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함양 벽송사 삼층석탑 - 이 달 균 기실 나무는 탑이 되고 싶었고 탑은 한 그루 나무이고 싶었다 널 보며 또 다른 나로 돌아가고 싶었다 선 채로 천년을 살면 무엇이 보일까 키 세워 더 멀리 보면 무엇이 보일까 차라리 눈을 감아라 심안(心眼)마저 꺼버려라 벽송사(경남 함양군 마천면 광점길 27-177)는 혼자 가도 좋고 일행과 함께여도 좋다. 요즘은 제법 알려진 탓으로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기지 않아 고즈넉함은 덜 하다. 하지만 함양이야 어느 곳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곳이 아닌가. 개평마을이 그렇고 상림숲이 또한 그렇다. 오도재 지리산 제일관문을 지나면 마천면이다. 그렇게 벽송사에 닿는다. 벽송사는 조선 중종 때(1520년) 벽송 지엄선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도를 깨달은 유서 깊은 사찰이라 한다. 경내를 걷다가 “정진 중, 출입금지”라고 기와에 쓴 분필글씨를 보았다. 이 글을 보니 진정 “절 답다!”는 생각이 든다. 절은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정진하고 수행하는 도량임을 새삼 깨닫는다. 삼층석탑에 키를 맞추는 소나무는 굽어져 굄목이 고개를 받히고 있다. 나무의 끝가지는 탑을 향하고 있는데 탑은 짐짓 못 본 척 시침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조상의 무덤을 명당에다 쓰면, 조상이 왕성한 지기를 받고, 그 영향으로 자손들이 복록을 받는다는 음택풍수(陰宅風水)를 굳게 믿어왔습니다. 그러기에 대대로 으뜸 통치자였던 임금의 무덤은 통치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확고히 하는 수단으로 삼아 조선 땅 으뜸 명당에 모시려 했지요. 그런 뜻으로 특히 임금의 무덤 자리는 물이 나는 곳에는 자리 잡지 않는 것이 철칙이었는데 바다에 무덤이 있는 임금이 있습니다. 바로 신라 제30대 문무왕의 무덤이 그러한데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감포 앞바다에 자리 잡고 있지요. 이는 사적 제158호 “문무대왕릉(文武大王陵)”으로 바닷가에서 200m 떨어진 수중릉입니다. 《삼국사기》 권7 신라본기7 문무왕 21년(681)조에 보면 “신하들이 유언에 따라 동해 어구의 큰 바위 위에 장사지냈다.”라고 기록이 있는데 그의 유언은 불교법식에 따라 화장한 뒤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문무대왕릉”은 ‘대왕암’이라고도 하는데 마치 동서남북 사방으로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수로(水路)를 마련한 것처럼 돼 있습니다. 안쪽의 공간에는 남북으로 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자 화 상 이 승 룡 지리산 법계사 부처님께 참배하고 보시함 앞에서 지갑을 열어보니 오만 원 한 장에다 천 원짜리 두 장 고민하다가 슬그머니 이천 원을 넣었다. 하산길 해우소에 볼일 보고 일어서다가 아차, 이걸 어쩌나요? 지갑을 똥통에 빠뜨린 속인(俗人) 한 명 저기 터덜터덜 걸어가네요. ------------------------------------------------------------------------------------------------------------------------ 우리나라 문화재 가운데는 여러 사람의 자화상이 있는데 그 가운데 국보 240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은 정말 특별한 자화상이다. 그 까닭은 자화상에 있어야 할 두 귀, 목과 윗몸이 없는 괴기한 모습이어서 그렇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보존과학실 연구팀이 적외선 투시 분석을 한 결과 윤두서의 자화상은 두 귀와 목과 상체의 윤곽이 뚜렷하게 남은 것은 물론 현미경으로 자화상 얼굴을 확대해 본 결과 화가가 생략한 것으로 알려졌던 양쪽 귀 또한 작지만 붉은 선으로 그린 사실도 밝혀졌다. 결국, 윤두서 자화상은 두 귀, 목과 윗몸이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