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양양 낙산사 7층 석탑 시인 이 달 균 미친 듯 불기둥이 천지를 덮쳐왔다 훌훌 잿더미를 홀로 걸어 나오며 죽음이 영생(永生)의 문(門)임을 깨우쳐 주었다 설악의 끝자락이 동해에 이를 때 만나는 절이 바로 낙산사다. 수평선이 시작되는 이곳 단애에 관음보살이 계셨던가. 그 물음을 안고 의상대사는 여기까지 찾아왔으리라. 법력 깊은 기도가 통했던지 용에게 여의주와 염주를 받게 되고, “대나무가 솟아나는 꼭대기에 불전을 지어라.”라는 말씀에 따라 낙산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 유서 깊은 절도 화마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2005년 4월 5일, 하필이면 식목일에 일어난 불은 홍련암 하나만을 남기고 죄다 태워버렸다. 누구도 제어 못 할 불기둥 속에서 탑은 저 홀로 걸어 나와 바다를 향해 섰다. 영생의 문은 이곳에서 비롯되는가. 이 죽음의 순간이 아니었으면 생명의 소중함을 어찌 알았으랴. 그래서인지 유난히 탑 앞에서 손을 모으는 이의 기원은 간절해 보인다. 이 7층 석탑도 조선 세조 때 낙산사 중창 당시 함께 세워진 것이다. 제아무리 석탑이라고 하나 그 화마를 온전히 피해갈 수는 없었고, 표면이 균열되는 등 상당한 훼손을 입었다. 이 탑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해방된 조국에서 평등과 원칙이 바로 세워져 모두가 잘 살기를 바랄 뿐 피땀 흘려 이룬 광복이 어느 한 사람의 공적이던가 우리는 고생한 만큼 가질 권한이 있다. 이념과 실천이 다르고, 탄압과 폭정으로 얼룩진 무리라는 걸 눈 감은 뒤에야 알았지만, 조국의 품에 안겨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것, 내가 그게 바라는 소원이었다.” 이는 광복 뒤에 재빨리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전국에 걸쳐 145개의 치안대 지부를 만들면서 혼란스럽던 나라를 안정시키려고 몸부림쳤던 독립운동가 여운형 선생을 <이게 나라냐>라는 시에서 이오장 시인이 그린 것입니다. 134년 전 오늘은 그 여운형 선생이 태어난 날입니다. 여운형 선생의 건국준비위원회는 이승만을 두둔하는 미군정의 피점령국 정책으로 무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선생은 중도좌파를 대표해 김규식으로 대표되는 중도우파와 좌우합작위원회를 구성하여 조국분단과 민족분열을 저지하고 통일정부 실현에 앞장섰지요. 하지만, 이도 미군정 당국의 교묘한 방해공작으로 좌절되었으며, 선생은 1947년 5월, 좌우합작을 위해 미소공동위원회의 성사를 지원하던 중 극우청년 암살자의 총탄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죽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1950년대를 풍미하던 시인 김춘수는 꽃을 이렇게 얘기했다. 그 어떤 삶이든 내가 불러 주면 모두가 내게 와서 꽃이 된단다. 그런데 여기 이상현 시인은 그 어떤 이의 삶도 꽃이라고 노래한다. 내가 불러 주지 않아도 말이다. 그저 목련은 수줍음만으로도, 장미는 기쁨만으로도 꽃이란다. 작은 꽃 한 송이에 지나지 않지만, 그 한 송이에 사람들이 위로를 느끼기 때문일까? 아니 그냥 꽃 한 송이로도 아름답지만, 빨간꽃, 하얀꽃, 노란꽃 등 여럿이 함께하면 그 자체로도 이 세상은 더없이 아름다운 꽃천지가 되고 사람들이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꽃은 보상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거기 있을 뿐이다. “코스모스의 해맑음으로 울다 / 홀가분한 갈대로 다시 태어나 / 봄날 아지랑이 기다리며 / 눈꽃으로 새로 움튼다”라며, 그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꽃은 봄날을 기다리며, 눈꽃으로 새로 움튼다고“ 나지막이 속삭인다. <우리문화평론가 김영조> 이상현(시인) 한국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국어원(원장 소강춘)은 《국립국어원 한국어-중국어 학습사전》(이하 《한-중 학습사전》)을 5월 15일에 개통하였다. 《한-중 학습사전》이 개통되면서 모두 11개 언어(러시아어, 몽골어, 베트남어, 스페인어, 아랍어, 영어, 인도네시아어, 일본어, 중국어, 타이어, 프랑스어)의 《국립국어원 한국어-외국어 학습사전》이 완성되었다. 《한-중 학습사전》은 한국어 학습에 기본이 되는 5만여 낱말이 실린 《한국어기초사전》을 중국어로 번역한 최초의 한국어 학습용 이중 언어화 사전이다. 《한-중 학습사전》은 다양한 낱말을 한국어와 중국어로 검색할 수 있으며, 검색 결과 역시 한국어와 중국어로 살펴볼 수 있다. 초ㆍ중급 단계 한국어 학습자는 아직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모국어 뜻풀이가 함께 제공되는 이중 언어화 사전이 한국어 학습에 더 효과적이다. * 이중 언어화 사전: ‘한국어 단어(올림말)-한국어 뜻풀이-번역 뜻풀이’를 제공하는 사전으로 기존의 단일어 사전이나 이중 언어 사전(한국어 단어-한국어 단어를 번역한 대응어)의 장점을 모두 갖는 사전임. 《한-중 학습사전》이 중국 한국어 학습자들의 한국어 학습사전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지난달 6일 국립공원공단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거문도ㆍ백도지구에서 야생생물 분포조사 중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착생깃산호의 나라 안 가장 큰 보금자리를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국립공원공단은 2016년부터 해상ㆍ해안국립공원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분포조사를 하고 있는데 ‘해상ㆍ해안국립공원’에는 한려해상국립공원, 다도해해상국립공원, 변산반도국립공원, 태안해안국립공원이 있지요. 멸종위기 야생생물 분포조사 중 지난해 8월 거문도ㆍ백도지구에서 착생깃산호의 일부 개체가 살고 있음을 확인한 데 이어 올해 3월 추가 조사를 통해 거문도ㆍ백도지구 해역 수심 50m에서 약 30군체의 착생깃산호가 사는 것을 알아낸 것입니다. 착생깃산호는 들러붙어 사는 해양동물인데 보통 부채 또는 새의 깃털처럼 보이며, 윗부분은 밝은 노란색, 아랫부분은 갈색이지요. 우리나라 멸종위기 야생동물 산호충류는 착생깃산호를 비롯하여 검붉은수지맨드라미, 유착나무돌산호, 금빛나팔돌산호, 해송 등 15종으로 모두 ∥급이며, 한려해상국립공원, 다도해해상국립공원과 제주도에만 있고, 서해안에는 없습니다. 국립공원공단은 이번에 발견한 착생깃산호 보금자리 보전을 위해 서식환경과 생태특성을 파악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2020년 펴낸 강재훈의 사진집 《들꽃 피는 학교, 분교》는 이 두 문장으로 시작한다. 통폐합되거나 폐교돼 반공소년 이승복 어린이 동상 혼자만 남은 전국 수천여 개의 작은 학교, 분교(分校)들의 모습이다. 쓸쓸한 전문(前文)과는 달리, 책 속에는 90년대 초부터 30년 동안 기록한 이 땅 분교들의 ‘아름다운 시절’이 가득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밀양 사자평의 작은 학교 ‘고사리학교’부터 국토 최남단의 마라도 ‘마라분교’까지, 줄배를 타고 강을 건너거나 개울 징검다리를 건너 학교에 가는 등굣길 아이들부터 어린 동생을 옆에 두고 ‘형학년’ ‘동생학년’으로 나뉘어 공부하는 교실, 사방이 산과 뼝대(바위로 이루어진 높고 큰 낭떠러지)로 둘러싸인 운동장, 그리고 마을잔치처럼 흥성하던 가을운동회까지 이제는 모두 사라져버린 아릿한 풍경들이다. 한겨레신문 사진부장을 지내고 한겨레신문 사진부문 선임기자로 2020년 4월 30일 정년퇴임한 사진가 강재훈이 분교를 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한 해는 1991년. 1982년부터 ‘소규모학교 통폐합 정책’이 시행되면서 전국의 작은 학교들이 폐교되기 시작했지만, 누구도 마음을 쓰지 못했다. 작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보 240호, 윤두서 자화상은 수염 한 올 한 올 세밀하게 일일이 그린 필치가 인상적이며, 감상자를 강렬하게 바라보는 모습의 초상화로 조선의 초상화 가운데서 획기적인 명작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있어야 할 두 귀, 목과 윗몸이 없는 괴기한 모습이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냈습니다. 이 자화상을 보고 어떤 이는 처음부터 윤두서가 두 귀, 목과 윗몸이 없이 그렸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수수께끼를 고 오주석 교수는 조선총독부가 펴낸 《조선사료집진속》을 보고 "윤두서가 버드나무 숯인 유탄으로 밑그림을 그린 뒤 미처 먹으로 윗몸의 선을 그리지 않아 작품이 미완성 상태로 전해오다 관리 소홀로 지워진 것이며, 언제인지 모르지만 아마도 미숙한 표구상이 구겨진 작품을 펴고 때를 빼는 과정에서 표면을 심하게 문질러 유탄 자국을 지워 버리는 사고를 저질렀을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결국, 오 교수는 윤두서의 자화상이 미완성이었다는 재미있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보존과학실 연구팀은 지난 2006년 적외선 투시 분석 결과 윤두서의 자화상은 두 귀와 목과 상체의 윤곽이 뚜렷하게 남은, 윤곽선만 그린 것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여름은 차츰 녹음이 우거지고 철 맞춰 내린 비로 보리와 밀 등 밭곡식은 기름지게 자라나고 못자리도 날마다 푸르러지고 있으나 남의 쌀을 꿔다 먹고사는 우리 고향에 풍년이나 들어주어야 할 것 아닌가? 농촌에서는 명년 식량을 장만하고자 논갈이에 사람과 소가 더 한층 분주하고 더위도 이제부터 한고비로 치달을 것이다." 《동아일보》 1947년 5월 22일 기사에 보이는 이즈음 풍경입니다. 오늘은 ‘소만(小滿)’ 24절기 가운데 여덟째 절기로 '소만'에는 만물이 점차 자라 가득 찬다는 뜻이 있습니다. 소만 때는 모든 들과 뫼가 푸르른데 대나무는 푸른빛을 잃고 누렇게 변합니다. 이는 새롭게 태어나는 죽순에 영양분을 모두 주었기 때문이지요. 마치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어린 자식을 정성 들여 키우는 어미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그래서 봄철의 누런 대나무를 가리켜 죽추(竹秋) 곧 ‘대나무가을’이라고 합니다. 또 이 무렵을 '보릿고개'라고 하는데 양식이 떨어져 힘겹게 목숨을 지탱하던 때입니다. 입하와 소만 무렵에 있었던 풍속으로는 봉숭아 물들이기가 있는데 《동국세시기》에 보면 "계집애들과 어린애들이 봉숭아를 따다가 백반에 섞어 짓찧어서 손톱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불기 2564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제25회 한국불교사진협회 전국회원전과 제14회 청소년불교사진공모전을 연다. 뜻하지 않던 전세계에 불어닥친 ‘코로나19’ 전염병으로 한국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에서 전염병과의 전쟁을 치르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혼란의 고비를 슬기롭게 넘기고 있다. 제25회 한국불교사진협회 전국회원전은 오는 5월 18일, 대구문화예술원(제5전시실)에서 대구전시회를 시작으로 26일에는 서울 조계사 안 나무갤러리에서 서울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올해 회원전의 주제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수행자들인 아라한의 모습과 부처님의 법을 따르는 수행자로 귀한 삶을 살고 가신 고승들의 삶을 돌아보는 스님들의 승탑을 대상으로 삼았다. 한편, 제14회 청소년불교사진공모전의 주제는 청소년들의 사찰수행과 뜻깊은 불교봉사활동을 표현한 사진을 공모했다. 한국불교사진협회 최우성 회장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고자 지난 1년 동안 회원들은 전국의 크고 작은 절을 찾아서 다양한 모습의 아라한과, 역사적으로 큰 자취를 남기신 고승들의 사리탑을 카메라에 담고자 뛰었다. 부처님 제자 아라한과, 고귀한 스님들의 업적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거룩한 분노는 / 종교보다도 깊고 / 불붙는 정열은 / 사랑보다도 강하다 /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 그 물결 위에 /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 그 마음 흘러라 /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 높게 흔들리우며 /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 '죽음'을 입맞추었네! /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 그 물결 위에 /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 그 마음 흘러라 / 흐르는 강물은 / 길이길이 푸르리니 / 그대의 꽃다운 혼 / 어이 아니 붉으랴 / 아! 강낭콩꽃보다 더 푸른 / 그 물결 위에 /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 그 마음 흘러라" ‘일제강점기의 지식인 가운데 지조를 지킨 몇 안 되는 문인’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일제의 탄압에도 굽히지 않고 민족의 저항정신을 노래한 시인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 선생의 시 ‘논개’입니다. 권웅 시인은 “논개가 간 지 3백여 년이 지난 뒤에 한 시인이 문득 남강의 푸른 물결 위에 떠서 흐르는 그녀의 빨간 마음을 본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선생의 시풍은 민족애와 서정성이 짙고, 섬세한 시어를 구사했으며, 상징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많은 평론가가 앞다투어 얘기했지요. 선생은 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