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 - 이 달 균 사명대사 이름을 딴 절이면 되었지 석탑 하나 선 자리가 뭐 그리 중할까 이 몸은 요사체 지키는 문지기면 족하다네 낙엽 지는 날 표충사 간다. 기실은 억새 보러 재약산 간 김에 절에 들른 것이다. 산에서 내려와 표충사 약샘에서 목을 축인 후 경내를 돌아본다. 이 절 삼층석탑은 좀 특이한 곳에 서 있다. 대웅전 앞마당이 아니고 출입문 안쪽 요사채가 있는 공간에 석등과 함께 자리 잡고 있다. 조선후기 사명대사 모신 사당인 표충사(表忠祠)를 이곳으로 옮기면서 가람배치가 크게 바뀔 때 같이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특별한 생각 없이 대충 세워 둔 것이라 짐작되지만 정작 탑은 의연히 서 있다. 통일신라 후기에 건립된 것치곤 상태가 양호하고 조각미도 좋은 편이다. (시인 이달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은 모든 국가적 행사를 기록으로 남겼기에 기록의 나라라고 불립니다. 이러한 기록에는 물론 궁궐을 지을 때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궁궐 영건(營建) 곧, 나라가 궁궐 등을 짓는 것은 국가의 운영을 계획하여 짓는 일로 궁궐, 종묘, 사직단, 성곽 등에 유교 통치 이념을 담아 건축하였습니다. 궁궐 영건에는 처음 짓는 것은 물론 보수하거나 고쳐 짓는 중건(重建)과 수리(修理), 그리고 옮겨 짓는 이건(移建) 등 크고 작은 공사가 포함되며 별도의 영건도감을 설치하여 체계적으로 완수하였지요. 지난 2016년 12월 6일부터 2017년 2월 19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영건(營建), 조선 궁궐을 짓다」 특별전이 열렸는데 이 특별전에 전시된 유물 가운데는 《창덕궁영건도감의궤(昌德宮營建都監儀軌)》(보물 제1901-2호 《조선왕조의궤》의 1책)를 비롯한 《영건의궤》, 경희궁을 그린 ‘서궐도안(西闕圖案)’(보물 제1534호), 고종년간 경복궁 중건에 관해 기록한 《영건일감(營建日鑒)》, 덕수궁 중건공사에 대한 문서 묶음인 ‘장역기철(匠役記綴)’ 등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눈길을 끌었던 것은 1865년(고종 2) 2월부터 1867년(고종 4) 12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내가 더 젊으니까 시인 김 태 영 말 많기로 소문난 동네 여편네 반가우면 반갑다고 말을 할 것이지 어머, 왜 그리 늙어버렸냐고 한다 그래도 그렇지 늙긴 지가 더 늙어가지고 진짜 미워 죽을 뻔했지만 참았다 내가 지보다 더 젊었으니까. * 지가: 자기가라는 말의 짧은 사투리 어떤 재벌가 여성은 병원에서 프로포폴을 주사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프로포폴을 맞는 것이야 젊어 보이려 함이 아니던가. 그래서 나이 먹어도 젊게 보였는지 모르지만 대신 사람들에게 곱지 않은 눈총을 받았다. 대리출석에 몸서리를 앓던 대학에서는 급기야 출석부에 사진을 붙였다. 그런데 사진을 붙인 뒤 출석을 부르던 교수는 한 학생을 빤히 쳐다보며 "이 사진이 네가 맞아?"라고 물었다. 교수는 의심으로 찜찜했고 학생은 억울함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런 현상은 물론 디지털 기기가 발달한 나머지 사진편집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은 곧 젊은이들 용어로 ‘뽀샵’이란 걸 한 결과다. 여기서 우리는 이탈리아 영화배우 안나 마니냐 얘기를 들출 필요가 있다. 그녀가 만년에 사진을 찍었는데 그녀는 찍기 전에 사진사에게 조용히 부탁했다. "사진사 양반, 절대 내 주름살을 수정하지 마세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등푸른 햇살이 튀는 전나무 숲길 지나 내소사 안뜰에 닿는다 세 살배기가 되었을 법한 사내아이가 대웅보전 디딤돌에 팔을 괴고 절을 하고 있다. 일배 이배 삼배 한 번 더 사진기를 들고 있는 아빠의 요구에 사내아이는 몇 번이고 절을 올린다 저 어린것이 무엇을 안다고 대웅보전의 꽃창살무늬 문(門)이 환히 웃는다. 박성우 시인의 ‘내소사 꽃창살’ 시입니다. 부안군 내소사 대웅보전의 문은 꽃살문으로 깨우침의 단계를 표현하기 위해 꽃봉오리와 활짝 핀 꽃을 함께 새긴 걸작으로 손꼽히지요. 오랜 세월이 지나 비록 단청은 빛이 바랬지만, 꽃살 무늬가 가진 조화와 화려함은 오늘도 여전합니다. 여기 내소사 말고도 논산 쌍계사 대웅전, 영광 불갑사 대웅전, 대구 팔공산 대웅전과 강화 정수사 대웅보전에 가도 꽃살문은 대웅전을 한층 품격있게 만들어 줍니다. 궁궐이나 민가의 아(亞) 자 무늬, 띠살무늬 등이 단아하고 정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면, 이 대웅전의 꽃살무늬는 꽃을 새긴 덕에 화려하고 정교하지요. 문살에 새겨진 꽃의 종류는 윤회와 정화를 뜻하는 연꽃을 비롯하여 모란, 국화, 해바라기 등이 있으며 또한, 무슨 꽃인지 잘 알 수 없는 관념적인 모양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세조는 평생 피부병으로 고생했는데 피부병을 낫기 위하여 전국의 이름난 약수터와 온천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래서 오대산 상원사 계곡에서도 목욕하게 되었지요. 그때 세조는 지나가는 동자승을 불러 자신의 등을 밀어달라고 했습니다. 동자승이 세조의 등을 밀어주자 세조의 몸에 있던 종기가 말끔히 나았습니다. 그래서 동자승에게 고맙다고 하며, "다른 사람에게 임금의 몸에 손댔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에 동자승은 "대왕께서도 문수보살을 만났다는 말씀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문수동자상을 새겨 상원사에 모셨고, 현재 국보 제22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런 전설이 전해올 정도로 조선시대 여러 임금은 종기로 고생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세조 외에도 문종, 성종, 중종, 효종, 현종, 숙종, 정조 등이 종기로 고생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종기 치료를 전담하는 ‘치종청治腫廳)’이라는 관청을 두었을 정도지요. 전통적으로 종기를 치료하는 방법으로는 한약재를 다려 만든 고약을 환부에 붙이는 방법이 고작이었는데 근세에 와서 이 ‘고약(膏藥)’이 치료제로 주목을 받았고, 1906년 이명래(1890~1952)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양우, 이하 문체부)와 국립국어원(원장 소강춘, 이하 국어원)은 ‘다크 넛지(다크 너지)’와 ‘월 패드’를 대체할 쉬운 우리말로 ‘함정 상술’과 ‘통합 주택 제어판’을 뽑았다. ‘다크 넛지(다크 너지)’는 기업이 이익을 얻기 위해, 소비자를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유도하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월 패드’는 주로 가정의 주방이나 거실 벽면에 부착하여 사용하는 주택 관리용 단말기를 가리키는 말로 출입 통제, 조명 및 가전제품 제어, 화재 감지 등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 문체부와 국어원은 지난 4월 13일부터 15일까지 열린 새말모임*을 통해 제안된 의견을 바탕으로 의미의 적절성과 활용성 등을 다각도로 검토해 ▲ ‘다크 넛지(다크 너지)’의 대체어로 ‘함정 상술’을, ▲ ‘월 패드’의 대체어로 ‘통합 주택 제어판’을 최종 뽑았다. * 새말모임: 어려운 외국어 신어가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들이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 대체어를 제공하기 위해 국어 전문가 외에 외국어, 교육, 홍보‧출판, 정보통신, 언론 등 다양한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로서, 누리소통망(SNS)을 통해 진행됨. 문체부와 국어원은 ‘다크 넛지(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양우, 이하 문체부)와 국립국어원(원장 소강춘)은 ‘질병관리본부’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표현하는 여러 수어 표현 중에서 정부 발표(브리핑) 수어통역에서 사용하는 권장안을 뽑았다. ‘질병관리본부’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새수어모임에서 앞서 권고한 ‘코로나19’, ‘확진(자)’, ‘자가격리’와 함께 자주 쓰는 말이지만 여러 수어가 섞여서 사용되고 있어 그 뜻을 바로 알기가 쉽지 않았다. * 새수어모임: 시사성이 높은 분야를 중심으로 농인에게 수용도가 높은 수어를 마련해 보급하고자 (사)한국농아인협회 관계자, 수어 통역사(공공수어 통역사, 청각장애인 통역사), 수어 교원, 언어학 전공자 등 수어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로, 온라인 화상회의와 누리소통망(SNS)을 통해 진행됨. ‘질병관리본부’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대한 권장 수어는 현장에서 많이 쓰는 표현으로 뽑혔으며, 국어원 누리집(http://www.korean.go.kr)의 ‘수어/점자 > 수어 > 새수어’에서 수어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문체부와 국립국어원은 앞으로도 공공 수어통역과 관련해 어떤 수어가 새로 생기고 있는지 수시로 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의령에 사는 죽유생(儒生) 곽재우(郭再祐)는 젊어서 활쏘기와 말타기를 연습하였고 집안이 본래 부유하였는데, 변란을 들은 뒤에는 그 재산을 다 흩어 병사를 모집하니 수하에 장사(壯士)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중간 줄임) 재우는 그 아비가 명나라 황제에게서 받은 붉은 비단 철릭을 입고, 장사들을 거느려 의령현의 경내와 낙동강가를 마구 누비면서 왜적을 보면 그 수를 불문하고 반드시 말을 달려 돌격하니, 화살에 맞는 적이 많아서 그를 보면 바로 퇴각하여 달아나 감히 대항하지 못합니다. 왜적에게 사로잡혔던 사람이 돌아와 ‘왜적들이 「이 지방에는 홍의 장군(紅衣將軍)이 있으니 조심하여 피해야 한다.」라고 했다.’ 합니다.” 이는 《선조실록》 선조 25년(1592) 6월 28일 기록입니다. 곽재우는 홀로 적진에 돌진하거나 위장 전술을 펴서 적을 직접 공격하고 또 왜적을 유인해서 매복병으로 하여금 급습을 가한다든가, 유격전을 펴서 적을 섬멸하는 전법을 구사했습니다. 곽재우의 의병은 수십 명으로 출발하여 2,000명에 이르는 큰 병력을 거느렸으며, 많은 전공을 세웠습니다. 1592년 5월 하순 무렵 왜병을 맞아 대승을 거둠으로써, 경상우도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창경궁의 현판을 창경원으로 바꿔 달고 나서 2년이 지난 1911년에, 일본 놈들이 자기나라의 정신을 조선에 심는다며 창경원에 대대적으로 벚나무를 심었어요. 자그마치 1,800그루를 심은 겁니다. 그 나무들이 10년 남짓 자라니까 화사하게 꽃이 필 것 아닙니까. 그러자 일제는 그 벚꽃을 이용해서 정례적인 축제를 열어볼까 기획을 하고는, 1924년 봄에 연습 삼아서 조심스럽게 밤 벚꽃놀이 행사를 열었지요.” 이 말은 예전 창경원 수의사였던 김정만 씨가 들려주는 “창경원 벚꽃놀이”가 시작된 연유입니다. 일제는 우리의 궁궐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바꾸고 동물원을 만들었으며 벚나무를 심어 아예 조선의 궁궐이 아닌 일본 혼으로 즐기는 난장판을 만든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일제는 조선의 절 경내에도 벚나무를 심으라고 강요했는데 1937년 조선일보에는 경기도 시흥군 내 20여 개 절 경내에 벚나무를 중심으로 나무심기를 하라고 강요했다는 기사가 보입니다. 요즈음 우리가 즐기는 ‘벚꽃놀이’는 원래 우리의 풍습이 아니지요. 일본인들은 4월이 되면 하나미(花見、はなみ)라고 해서 전 국민이 벚꽃 아래에 모여 도시락도 먹고 술도 마시면서 놀고 즐기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산청 내원사 삼층석탑 - 이달균 뒷짐 진 채 탑은 걷고 절은 그저 못 본 척 때 이른 산천재 남명매 진다고 그래도 비로자나불 아는 듯 모르는 듯 부처는 산을 보는데 보살은 안개를 본다 물은 갇혀 있어도 연꽃을 피워내고 흘러서 닿을 수 없는 독경소리만 외롭다 벗들의 전화음도 저 홀로 길을 잃을 때, 머뭇거리지 말고 지리산 내원사 가자. 그곳에 닿기 전, 남명 조식이 기거하던 산천재에 남명매(南冥梅) 진다 하여 잠시 들렀다. 그 여정에 있어 남명매가 덤인지 내원사 석탑 구경이 덤인지 굳이 선후를 잴 필요는 없을 듯하다. 내원사는 산청군 삼장면 장당골과 내원골이 합류하는 곳에 다소곳이 앉아 있다. 되도록 여름은 피하고 봄가을 혹은 초겨울쯤이면 더 좋다. 장당골 계곡을 건너는 작은 다리가 반야교다. 비 온 뒤라면 이 다리 위에서 물안개가 피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탑은 대웅전 앞에 서 있다. 원래 흰빛이었을 화강석은 불에 타 황갈색을 띠고 있으며 도굴꾼에 의해 훼손 상태가 심하여 원래의 미려한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디 번듯한 탑만 탑이랴. 오면서 본, 지고 있는 매화도 꽃은 꽃이었다. 지리산 산안개에 상륜부가 감춰진 얼룩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