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2021년 올해는 신축년 소띠해입니다. 그것도 우리 겨레가 좋아하는 빛깔 흰소입니다. 소는 십이지의 두 번째 동물로, 축시(丑時) 곧 새벽 1시에서 3시를 가리킵니다. 소는 느린 걸음과 큰 몸짓을 하고, 힘든 일도 묵묵히 해내는 모습에서 우리는 우직함과 편안함, 근면, 자기희생을 떠올립니다. 또 목동이 소를 타고 가는 그림에서는 세속을 벗어난 여유로움이 느껴지고, 문학작품에서는 소가 고향의 향수를 떠올리게 합니다. 농경사회에서 소는 식구로 여길 만큼 소중하였지요. 필요한 노동력이자 운송 수단이었고, 목돈을 마련하는 비상 금고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특히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소를 팔아 대학 등록금을 낸다는 말이 있었는데 농촌진흥청이 밝힌 바에 따르면 1978년 한우 1마리 가격은 약 58만 원이었으며, 국립대학교 연간 등록금은 5만 ~ 11만 원 정도로 소 한 마리를 팔면 자녀 한 명의 4년간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요즈음은 한우 산지가격이 약 542만 원이라고 하니 소값으로 약 670만 원 하는 1년 대학 등록금도 감당하기는 어려워졌지요. 그리고 우리는 한우고기가 수입 쇠고기에 비교해 맛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새 아침 - 정정근 옴츠리고 듣는 바다 숨소리 묵직한 어둠 뒤집어 보시려나 한 줄기 진홍 띠 하늘에 걸렸네 불끈 솟는 빛의 위력 갈매기 목쉬도록 새날을 환호한다. 2021년 신축년(辛丑年) 새해가 밝았다. 신축년은 흰소의 해, 예로부터 흰빛은 상서로움을 얘기했으며, 우리 겨레는 흰빛을 숭상한다고 알려졌다. 그래서 흰옷을 즐겨 입었다고 하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왜놈들이 흰옷을 입지 못하게 하려고 장터 들머리에서 먹물을 뿌려댔지만, 그들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 우리 겨레에게 흰소의 해 신축년은 또다시 도약하는 해가 될 것이다. 지난했던 2020년 경자년! 코로나19라는 녀석이 느닷없이 출현하여 온 인류를 괴롭혔다. 그 코로나 바이러스 입자 크기는 0.1~0.2㎛라고 한다. 적혈구, 백혈구보다도 작아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다. 그렇게 작은 바이러스가 인간을 꿈쩍 못하게 하는 것이다. 21세기 과학을 발전시킨 위대한 인류지만, 그 작은 바이러스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결국은 그 바이러스를 완전히 퇴치할 수는 없을는지 모르며, 그렇다면 함께 사는 것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지 않을까? 어쨌든 코로나란 녀석 탓에 온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양력으로 2020년 경자년(庚子年)의 마지막 날 섣달그믐 곧 ‘설밑’입니다. 전통적인 섣달그믐이야 음력으로 따져야 하겠지만, 일단 섣달그믐을 달리 이르는 말로 ‘눈썹세는날’이란 별명도 있습니다. 조선후기 권용정(權用正)이 쓴 《한양세시기(漢陽歲時記)》에 보면 “어린아이들에게 겁주기를 ‘섣달그믐날 밤에 잠을 자지 말아야 한다.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라고 했는데, 아이들 가운데는 이 말을 그대로 믿어서 새벽이 될 때까지 잠을 자지 않는 일도 있다.”라고 했지요. 또 19세기 중엽 김형수(金逈洙)가 쓴 《소당풍속시(嘯堂風俗詩)》에도 “나이 더한 늙은이는 술로써 위안 삼고 눈썹 셀까? 어린아이 밤새도록 잠 못 자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섣달그믐날은 “눈썹세는날”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전 우리 겨레는 음력 섣달그믐날 밤에는 방이나 마루, 부엌, 다락, 뒷간, 외양간에 불을 밝게 밝히고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그 유래는 도교(道敎)의 경신수세(庚申守歲)에서 왔는데 도교에서는 60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경신일이 되면 사람 몸에 기생하던 삼시충(三尸蟲)이 사람이 잠든 사이에 몸을 빠져나와서 옥황상제에게 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간간이 들리던 연탄가스 중독사고 소식이 기온이 내려가는 겨울철에 접어들면서부터 일가족이 밤새 참변을 당하는가 하면 하루아침에 고아를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보건사회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한 사람이 107명, 그중 여자와 어린아이가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망자 수는 해마다 불어가는 현상이라고 한다.” 이는 동아일보 1962년 12월 15일 자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는 많은 국민이 연탄을 난방과 밥 짓는 땔감으로 쓰던 때인데 연탄가스 중독 사고 기사가 많으면 한 달에 5~6차례도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기사 제목들을 보면 “세 조손(祖孫, 할아버지와 손자)이 질식사, 연탄가스에”, “가족 거의 몰사, 연탄가스 중독”, “신혼부부 사인 연탄가스 중독” 등 안타까운 소식들이 많았지요. 그러면서 신문은 연탄가스 중독사고를 예방하려면 “창문은 될수록 낮게, 통풍 잘 되고 스며들 틈 없애자”라고 귀띔합니다. 하지만 그때 도시의 서민들 집은 낡은 쪽방들이 많아 방바닥 같은 곳에 연탄가스가 새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비교적 높게 작은 창문이 나 있어서 통풍은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그렇다고 새로 집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백결 선생은 신라 때 남산 아랫마을에 살았던 사람이다. ‘백결’이란 이름은 가난하여 언제나 누덕누덕 기운 누더기를 걸치고 다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지어 부른 이름이다. 백결 선생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거문고로 마음을 달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해 섣달그믐께 이웃에서는 절구에 떡을 찧는 소리가 한창인데 백결 선생 집에서는 떡쌀이 없어 떡을 찧을 수가 없었다. 부인이 슬퍼하며 정월 초하루를 무엇으로 맞을 것인가 하고 한탄했다. 그러자 백결 선생은 거문고로 떡방아 소리를 내어 부인의 슬픔을 달래었다." 《삼국사기》 열전에 나오는 글입니다. “쿵덕 쿵덕” 수확이 끝난 뒤거나 명절을 앞둔 때 가정에서는 곡식을 빻는 공이질 소리가 구성집니다. 이때 쓰는 절구는 사람 힘으로 곡식을 찧거나, 양념을 빻을 때, 또는 메주를 찧거나 떡을 찧을 때 쓰는 것입니다. 지방에 따라 도구ㆍ도구통ㆍ절기방아ㆍ방애(제주도)라고도 합니다. 절구는 재료에 따라 나무절구ㆍ돌절구ㆍ무쇠절구가 있지요. 절구는 보통 두 사람이 맞공이질을 할 수 있도록 두 개의 절굿공이가 딸려 있습니다. 절굿공이는 대개 긴 나무를 깎아 매끄럽게 만드는데, 손잡이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926년 12월 28일 나석주 의사는 조선 수탈의 앞잡이였던 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왜놈 직원들과 일경 등에게 총을 쏘아 죽인 뒤 일제 경찰 4~5명이 쫓아오자 발걸음을 멈춥니다. 그리고는 “우리 2천만 민중아. 나는 조국의 자유를 위하여 투쟁하였다. 2천만 민중아. 분투하여 쉬지 말아라.” 그리고 가지고 있던 권총으로 자신의 가슴에 세 방을 쏘았습니다. 병원에 실려 간 나석주 의사는 4시간 만에 순국합니다. 앞장서서 조선의 경제적 침략에 큰 역할을 했던 동양척식회사와 식산은행이었습니다. 상해에서 김구 선생의 주선으로 의열단에 가입한 나석주 의사는 동척회사의 침탈과 일본인 이주민들이 농토를 계속 잠식 강점하고 있으며, 이를 견디다 못한 농민들의 항의가 계속 이어지면서 유혈 집단시위가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동척회사와 식산은행을 폭파 파괴할 것을 결심합니다. 의사는 귀국하는 배를 타기 전 동지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되는 것 같소. 성공하던 실패를 하던 나는 결코 살아서 돌아올 사람이 아니니, 이것이 나석주의 유언이라 생각하고 매사에 매진하길 부탁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겨울 들녘에 - 이 광 원 겨울에 씨앗을 뿌렸어요 외로움과 그리움의 씨앗 아쉬움과 희망의 씨앗 다시 새봄이 오면 꽃 피울 꿈을 꾸었어요 코로나가 우릴 힘들게 하고 거리를 두고 살게 하여도 따뜻한 마음으로 위로하고 서로 응원하며 살다 보면 반드시 꽃 피는 봄이 다시 올 것이라 믿습니다 눈보라 몰아치는 겨울에도 희망의 씨앗 품고 살다 보면 어려움도 쉬 이길 수 있겠지요. 지금 사람들은 ‘코로나19’라는 돌림병으로 몹시 추운 겨울을 살고 있다. 그런데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조선시대 백성들은 지금보다도 더한 고통이었다. 돌림병이 퍼지면 치료는커녕 그저 돌림병 걸린 사람이 사는 집 문을 걸어 잠근 채 격리했고 그 집의 환자는 괴로워하다가 목을 매 자살하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검색어로 살펴보니 전염병 702건, 여역(癘疫) 418건, 염병(染病, 장티푸스) 154건, 천연두 74건, 여기(癘氣) 47건, 역병(疫病) 27건, 홍역 17건 등이 나올 정도였으니 그때 백성들의 고통과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굳이 돌림병까지 얘기할 것도 없다. 추운 겨울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겐 치명적인 고통이었다. 윗목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개와 비슷하지만, 몸집이 크고, 털이 뻣뻣하며, 검푸른색과 황백색의 점으로 이루어진 무늬가 있다. 눈은 고양이를 닮았고, 꼬리는 당나귀, 발은 개와 비슷하다. 물에서 나오면 제대로 걷지 못해 항상 물속에서 헤엄쳐 다니지만 잠잘 때는 물 밖으로 나와 잔다.” 이는 조선 초기 유학자 정약전(1758~1816)이 1814년 전남 흑산도 바다 생물들을 조사하고 쓴 《자산어보(玆山魚譜)》 해수편 올눌수(獸)에 나오는 ‘점박이물범’ 이야기입니다. 점박이물범은 물범과에 속하며 물범 가운데서 가장 작은 동물로, 북태평양에서는 캘리포니아 알류산 해역과 캄차카반도, 지시마, 북해도ㆍ혼슈 등지에 널리 분포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백령도 근해에서 300여 마리까지 발견되고 있는데 물범은 멸종위기에 처해있을 뿐만 아니라, 포유류로서 물속에서 생활하는 진귀한 동물이므로 우리나라는 천연기념물 제331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습니다. 점박이물범은 몸길이 1.4m, 몸무게 90㎏까지 자라며, 앞머리 부위가 둥글면서 높지요. 귓바퀴는 아주 작고, 주둥이는 끝이 협소하면서 가운데에 골이 있고 목은 짧습니다. 앞다리는 앞으로, 뒷다리는 뒤로 향해 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해마다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라」하여 耶蘇(야소, 예수 음역어) 탄일로 지키지마는 이것이 진정한 생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고대 교회에서는 혹 정월, 4월, 5월에 탄일을 지킨 기록이 잇고 성경의 기록대로 말하면 야소가 날 때에 목자들이 들에서 양을 지키엇다 하나 12월은 「팔레스타인」의 가장 비 만흔 시절로 목자가 들에 양을 먹일 리가 업는 것이다. 동지일이 천문학상으로 중요한 날로 인정된 것을 중고 독일민족에 발견할 수 잇스니 이 동지일의 제사가 기독교에 들어와서 탄일놀이가 된 것인가 한다.” 이것은 1926년 12월 1일에 펴낸 일제강점기 월간 종합잡지 《동광》 제8호에 실린 ‘크리스마스 잡화(雜話)’란 글 일부입니다. 당시는 조선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지만, 글을 쓴 사람은 크리스마스에 관한 분명한 인식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또 이 글 뒷부분에 가면 크리스마스에 관한 또 다른 재미난 이야기도 있습니다. “「산타클로스」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굴둑으로 들어와 잠자는 어린애들에게 선물 주는 기특한 노인. 북극의 순록을 타고 하로 밤 사이에 전세계 각색 인종을 다 차례로 찾아간다. 아동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