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경상남도에 가면 한국가면무극(韓國假面舞劇)의 영남형이라 할 수 있는 무형문화재 ‘오광대(五廣大)’와 ‘야유(野遊)’가 있습니다. 합천군 초계 밤마리에서 시작된 오광대는 수영ㆍ동래ㆍ부산진 같은 곳에서는 들놀음을 뜻하는 야유(野遊)라 부르고, 기타 지방에서는 모두 오광대라 부릅니다. 오광대란 이름은 오행설(五行說)의 '5(五)'를 가리키는데 진주와 마산 오광대에서는 다섯 양반을 만들어 연출하기도 하고, 진주에서는 오방각색 가면의 문둥이광대가 다섯이 등장하며, 통영과 고성의 오광대는 다섯 과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고성 지방에 전승된 <고성오광대(固城五廣大)>는 국가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된 것으로 19세기 후반에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연희하기 7~8일 전에 고성 몰디 뒷산의 산기슭 잔디밭에서 연습하여 정월 대보름 저녁 장터에서 장작불을 피워놓고 놀았다고 하지요. 연희자들이 일심계를 조직하고 한가한 봄철에 자갈밭에 모여 밤새 오광대를 놀고 물고기를 잡아 천렵하면서 즐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본래 악사들이 피리ㆍ젓대(대금)ㆍ해금ㆍ가야금ㆍ거문고ㆍ장구ㆍ북ㆍ꽹과리 등을 연주하는 <고성오광대> 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는 보물 제1319호 <경진년대통력(庚辰年大統曆)>이 있습니다. <경진년대통력(庚辰年大統曆)>은 ‘대통력법(大統曆法)에 따라 만든 경진년(庚辰年)의 역서’라는 것으로 조선 선조 12년인 기묘년(己卯年, 1579년)에 활자본으로 펴내 이듬해인 경진년(庚辰年, 1580년)에 쓰인 역서(曆書)이며, 조선의 역서들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지금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등의 여러 국학기관과 박물관, 도서관들에는 조선의 역서들이 수백 책이 넘게 소장되어 있는데, 이들 가운데서 1580년 이전에 펴낸 역서는 이 경진년대통력이 유일하지요. 이 대통력의 크기는 길이 39.8㎝, 너비 21.7㎝로 앞뒤의 표지를 빼고 모두 15장 30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조선은 원래 중국의 제후국이어서 명나라의 대통력(大統曆)을 받아서 써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조선은 세종 이후 명나라의 대통력과 원나라의 수시력(授時曆)을 바탕으로 한 역산서(曆算書)인 《칠정산(七政算)》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역서를 따로 펴내 독자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따라서 <경진년대통력(庚辰年大統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廁鼠數驚社鼠疑(측서수경사서의) 측간 쥐는 자주 놀라고 사당 쥐는 의심이 많아 安身未若官倉嬉(안신미약관창희) 관아의 창고에서 편안하고 즐겁게 노는 게 으뜸이네 志須滿腹更無事(지수만복갱무사) 하지만, 배불리 먹고 또 무사하길 바라는데 地塌天傾身始危(지탑천경신시위) 땅 꺼지고 하늘 기울면 제 몸도 위태로워짐을 모르네 이는 백사 이항복(李恒福)의 한시 「삼물음(三物吟)」 곧 올빼미ㆍ쥐ㆍ매미를 노래한 것 가운데 쥐(鼠-서)에 관한 한시입니다. 백사는 뒷간에 사는 쥐는 사람 때문에 자주 놀라고, 깨끗한 사당에 사는 쥐는 의심이 많아서 역시 불안하지만, 이와 달리 관아 창고에 사는 쥐는 편하고 즐겁게 논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관아의 창고가 무너진다면 제 몸도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모른다며, 백사는 따끔한 충고를 합니다. 뒷간 곧 시골에 묻혀 사는 사람이나, 사당 곧 임금 곁에서 아첨하면서 사는 사람보다는 그저 단순한 벼슬아치로 사는 것이 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벼슬아치 삶도 늘 조심하며 살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곳이 무너져 함께 죽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시에서는 백사 이항복의 철학이 물씬 묻어납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강원도 전역 강추위..향로봉 아침 최저기온 영하 29.1도”, “북극발 한파에 전국 '꽁꽁'…내일도 강추위”, “이기기 힘든 강추위에..생업도 일상도 피해”, “전국 꽁꽁 얼어붙는다…강추위에 찬바람까지” 등 요즘 뉴스는 온통 강추위로 도배되고 있습니다. 특히 강추위 속에 수도가 동파되어 큰 고통을 겪는 사람이 많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한강은 2년 만에 꽁꽁 얼어붙었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했지요. 그런데 1933년 1월 14일 동아일보에는 “중강진 혹한기록을 돌파, 금일 영하 44도”란 기사가 눈에 띕니다. “경성의 금13일 최저기온은 어제보다 좀 더 떨어져 영하 18도 2분을 보이고 있으며, 조선에 제일 추운 국경 중강진은 어제는 43도 여를 보이더니 금13일 아침에 이르러 44도로 뚝 떨어져 조선 최저기록인 중강진의 영하 41도 6부(1922년 1월 18일)를 돌파하기 2도 41분으로 기온 최저신기록을 지었다.” 이제 우리의 강추위는 1933년 중강진의 강추위에는 견줄 바가 아닙니다. 물론 어려운 이들에겐 코로나19의 고통 속에서 이런 강추위를 견뎌내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지만 그런 강추위에 속에서도 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책가도(冊架圖)’란 책꽂이를 통째로 옮겨 그린 듯한 그림을 말하는데 책을 비롯하여 꽃병과 자명종 시계 등 당시의 여러 귀중품을 함께 그렸으며, 우리말로는 책거리라고도 합니다. 책가도는 당시로써는 서양화에서나 볼 수 있던 ‘투시도법’과 ‘명암법’을 응용해서 그려 조선 전통적 화법으로 그린 그림에 견줘 공간감과 입체감이 훨씬 살아 있습니다. 서민들의 풍속을 즐겨 그린 김홍도(金弘道)가 책가도를 잘 그렸다고 하며, 이윤민(李潤民)ㆍ이형록(李亨祿) 부자(父子) 같은 화원도 책가도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조선시대 때는 책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책에 관한 관심도 높았는데, 이 책가도는 당시의 선비들이 책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책 읽기를 즐겼던 정조임금은 어좌 뒤에 꼭 있는 일월오봉도 대신 책가도를 배치하였다고 하며 “책을 즐겨 읽지만 일이 많아 책을 볼 시간이 없을 때는 책가도를 보며 마음을 푼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이형록의 <책가도>에는 재미난 것이 있지요. 대부분 궁중회화와 민화에는 화가의 낙관이 없어 누가 그린 것인지 알 수 없는데 이 그림에는 도장함과 여러 개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소 싸 움 - 황 인 동 자 봐라 ! 수놈이면 뭐니 뭐니 해도 힘인기라 돈이니 명예니 해도 힘이 제일인기라 허벅지에 불끈거리는 힘 좀 봐라 뿔따구에 확 치솟는 수놈의 힘좀 봐라 소싸움은 잔머리 대결이 아니라 오래 되새김질한 질긴 힘인기라 봐라, 저 싸움 어디에 비겁함이 묻었느냐 어디에 학연지연이 있느냐 뿔따구가 확 치솟을 땐 나도 불의와 한 판 붙고 싶다 2021년 신축년(辛丑年)은 소띠해다. 농경사회에서 소는 식구로 여길 만큼 소중했다. 필요한 노동력이자 운송 수단이었고, 목돈을 마련하는 비상 금고의 역할도 했다. 더구나 고기는 음식 재료였고, 뿔과 가죽은 공예품과 일상용품의 재료였다. 현대사회에서 소는 농경사회의 역할에 그치지 않고 소고기와 우유, 약품과 비누 등의 재료, 가죽 신발 등으로 인간과 함께한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소는 하품밖에 버릴 게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물러나지 않는 우직한 소싸움의 정신! 코로나19 탓으로 가뜩이나 무릎이 꺾이는 힘든 요즘, 불굴의 의지로 힘차게 전진하는 소싸움에서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정신을 배운다. 천년의 역사를 이어 내려온 소싸움은 경북 청도를 비롯하여 창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나는 적성(赤誠, 참된 정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적국의 괴수(傀首, 우두머리)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이는 이봉창 의사가 의거를 하러 떠나기 전 한 맹세입니다. 오늘은 이봉창 의사가 신년 관병식(觀兵式)을 마치고 돌아가던 일와 히로히토를 겨냥하여 황거 앞 사쿠라다문(櫻田門)에서 수류탄을 던진 날이지요. 이날 거사는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선생의 장거는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신격화해 놓은 일왕의 행차에, 그것도 일왕이 사는 황거 앞에서 폭탄을 던져 처단하려 했던 일은 한국 독립운동의 강인성과 한국민의 지속적인 저항성을 세계에 과시한 것입니다. 또 이 일로 인해 일본 핵심 내각은 사퇴하였으며, 경시청장부터 고위직은 다 옷을 벗었습니다. 또한, 일왕 테러에 대한 소식으로 중국 내 항일운동이 불붙기 시작했지요. 이봉창 의사는 1932년 9월 30일 아침 9시 350명의 경찰이 겹겹이 둘러싼 가운데 일본 도쿄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0월 10일 이치가야(市谷) 형무소에서 순국의 길을 걸었지요. 이렇게 조국의 독립을 위해 바친 이봉창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여기 아름다운 빛깔의 유리그릇이 있습니다. 바로 황남대총 등 신라 능묘에서 출토된 것들이지요. 이들은 세계 다른 지역의 유리그릇과 견줘봐도 보기 드물게 아름다우며 다채로운 빛깔과 모양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최근 조사에서는 이 유리그릇들이 이집트,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 코카서스 산맥 이남 지역, 중앙아시아 등 다양한 곳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육로와 바닷길을 통해 신라로 전해진 유리그릇은 신라인의 국제적 감각, 높은 심미안, 특별한 취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는 평가입니다.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에서는 지난해 12월 8일부터 오는 3월 1일까지 「오색영롱, 한국 고대 유리와 신라」 특별전을 열고 있습니다. 이 특별전은 철기시대에서 남북국시대(통일신라)에 이르는 유리 제품 18,000여 점을 선보입니다. 전시품에는 경주 황남대총 남분 출토 봉황 모양 유리병(국보 제193호)을 비롯한 국보 3건과 보물 8건이 포함되어 있지요. 더불어 이번 전시는 고대 유리의 유형 가운데서 주류를 이루는 구슬의 무궁무진한 변주를 선보입니다. 각양각색의 단색 유리구슬 말고도 상감이나 금으로 장식하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여기 바위를 뚫고 곧게 뻗은 굵직한 소나무와 오른쪽으로 급하게 휘어진 아무런 꾸밈없는 두 그루의 소나무가 하얗게 눈을 맞고 서 있습니다.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조선후기 문인서화가 이인상(1710~1760)의 “눈내린 소나무 그림” 곧 <설송도(雪松圖)>입니다. 이 그림의 소나무들은 사람의 감정이라곤 눈곱만큼도 끼어들 여지가 없는 그 자체로 온전한 모습입니다. 더구나 이 소나무들은 예리하게 각이 진 바위들만 있고 흙 한 줌 보이지 않는 비참하리만큼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강인한 의지로 뿌리를 땅에 굳게 박고 있지요. 조선소나무는 물론 이렇게 곧게 뻗은 금강송이 있는가 하면 구부정하지만, 운치가 있는 소나무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 더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곧은 것도 굽은 것도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이인상은 원리원칙을 강조해서 꽉 막혀 보인 사람이었지만 그의 절친한 벗 황경원은 이인상의 무덤 비석에 쓴 글에서 “세상 이치를 말할 때 순리에 어긋나지 않았는데, 그림에는 깊고 그윽함이 있고 곧음을 예술로 승화했다.”라고 말했지요. 이인상은 증조부가 영의정을 지낸 당대 명문가 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스물셋째인 소한(小寒)입니다. 원래 절기상으로 보면 대한(大寒)이 가장 추울 때지만 실제는 소한이 한해 가운데 가장 추운데 절기의 기준이 중국 화북지방에 맞춰졌기 때문에 다르지요. 그래서 이때 전해지는 속담을 보면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도 한다.”, “소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있어도 대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없다.”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때쯤이면 추위가 절정에 달했지요. 아침에 세수하고 방에 들어가려고 문고리를 당기면 손에 문고리가 짝 달라붙어 손이 찢어지는 듯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저녁에 구들장이 설설 끓을 정도로 아궁이에 불을 때 두었지만 새벽이면 구들장이 싸늘하게 식었고, 문틈으로 들어오는 황소바람에 몸을 새우처럼 웅크리고 자게 됩니다. 이때 일어나 보면 자리끼로 떠다 놓은 물사발이 꽁꽁 얼어있고 윗목에 있던 걸레는 돌덩이처럼 굳어있었습니다. 이렇게 추운 겨울나기에 도움이 되는 것에는 한방차와 신맛이 나는 과일이 있지요. 한방에서 ‘총백’이라고 부르는 ‘파뿌리’를 물에 넣고 끓여 마시면 땀을 내주고 기침, 가래를 삭여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