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박노해 사진 에세이집 《올리브 나무 아래》가 나왔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박 시인은 그동안 분쟁지역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 팔레스타인, 쿠르드족, 아프카니스탄, 라틴아메리카 등 지구촌 구석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와 사진 에세이집을 냈고, 또한 전시회도 열었습니다. 이번 올리브 나무 아래》는 6번째 사진 에세이집입니다. 제목에서 짐작하듯이 이번 사진 에세이집은 올리브 나무와 연관된 것들입니다. 그런데 왜 올리브 나무일까요? 서문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분쟁 현장을 다니다, 나도 많이 다쳤다. 전쟁의 세상에서 내 안에 전쟁이 들어서려 할 때, 나는 절룩이며 천 년의 올리브나무 숲으로 간다. 푸른 올리브나무에 기대앉아 막막한 광야를 바라보며 책을 읽고 시를 쓰다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아이들과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라 눈물짓다가, 올리브나무 사이를 걸으며 다윗처럼 돌팔매를 던지기도 하고, 저 아래 올리브를 수확하는 농부들을 거들다가 돌샘에서 목을 축이고, 양떼를 몰던 소녀가 따다 주는 한 움큼의 무화과를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매일 아침 <날마다 쓰는 우리문화편지>라는 이름으로 따끈따끈한 한국문화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번개글(이메일)로 전달해 주는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김영조 소장이 《한국인이 알아야 할 한국문화 이야기》 책을 냈습니다. 2023년 5월 15일 쓴 머리말을 보니 우리문화편지는 올해로 4,800회가 넘었다고 하네요. 그 뒤로도 우리문화편지는 계속 쌓여가고 있을 테니, 정말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그런데도 김 소장은 아직도 ‘목이 마르다.’라고 합니다. 크으~ 그런데 이렇게 어마어마한 양이면 그동안에도 이를 엮은 책이 있지 않았을까? 예! 그렇습니다. 《하루하루가 잔치로세》와 《키질하던 어머니는 어디 계실까?》 그리고 《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이란 책이 있었습니다. 이번이 4번째 펴낸 책입니다. 김 소장은 이번에는 164편의 한국문화편지를 8장의 주제로 나누어 책에 실었습니다. 곧 1. 명절과 세시풍속, 2. 세시풍속과 철학, 3. 입을거리(한복과 꾸미개), 4. 먹거리(한식과 전통주), 5. 살림살이, 6. 굿거리(국악과 춤), 7. 배달말과 한글, 8. 문화재, 이렇게 8개의 장입니다. 그리고 글마다 삽화를 넣었는데, 대부분의 삽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섬 활동가 강제윤 시인이 《날마다 섬 밥상》 책을 펴냈습니다. 사람이 사는 우리나라 모든 섬에 발을 디딘 강 시인은 그동안에도 섬을 순례하며 섬과 섬사람들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었지요. 그리고 4년 전에 《전라도 섬 맛 기행》이라고 사라져가는 전라도 섬의 맛을 글로 살려내더니만, 이번에는 전국 섬의 밥상을 우리 앞에 차려주네요. 저는 강 시인이 교장으로 있는 <섬학교>에 몇 번 나가보면서 강 시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섬학교’라고 하니까 글자 그대로 무슨 학교인가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 같네요. 강 시인이 우리 섬의 숨겨진 비경,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매달 희망하는 사람들을 모아 섬을 순례하는데, 이를 섬학교라고 하지요. 제가 소개하여 섬학교에 등록하였던 사람도 여럿 있는데, 그 가운데 박재일 회장은 강 시인이 사단법인 섬연구소를 설립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지금도 이사장으로 있습니다. 요즈음 강 시인은 전국 섬에 흩어져 있는 걷기 길을 하나로 모으는 ‘백섬 백길’ 프로젝트를 총괄하여 누리집(https://100seom.com/)도 만들고, 모든 국민이 섬 길에 대한 정보를 무료로 제공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고교동기 조윤신으로부터 《레이의 사부곡(思夫曲)》 책을 선물 받았습니다. 책 표지에는 빨간색 큰 글씨로 《레이의 사부곡(思夫曲)》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 앞의 작은 글씨의 제목까지 다 하면 <정치음모에 걸린 옥중의 용을 그리는 레이의 사부곡(思夫曲)>입니다. ‘사부곡’이란 지아비를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라는 것이겠지요. 그러면 대충, 정치음모에 걸려 옥에 갇힌 ‘용’이라는 지아비를 그리워하며 쓴 책임을 짐작하게 됩니다. 자유당 때 조봉암 진보당 사건 아시지요? 《레이의 사부곡(思夫曲)》은 진보당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윤신의 장인 전세룡 선생이 옥중에 있을 때 장모 정일례 여사가 장인에게 쓴 편지를 주로 담은 책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레이’는 정일례의 ‘례’를 약간 변형시켜 부르는 애칭이겠고, ‘용’은 ‘전세룡’의 ‘룡’일 것 같네요. 조봉암 진보당 사건은 잘 아시다시피 이승만 대통령이 정적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킨 사건인데, 인혁당 사건과 함께 우리나라 대표적인 사법살인 사건입니다. 대한민국 사법부 치욕스러운 역사지요. 저는 법조인으로서 조봉암 사법살인을 마음 아파하는 사람인데, 뜻밖에도 윤신이 장인이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한해 전 우린 아픈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습니다. 10월 29일 이태원 할로윈 축제로 수많은 인파가 몰린 와중에 발생한 압사 사고. 이 사고로 인해 196명이 부상을 당하고 159명이 사망했습니다. 그때 나는 추모 현장을 지나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셔터를 누를 수 밖에 없었지요. 다시 한번 당시를 떠올려 보고 자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질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진을 올려봅니다.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안재성 작가가 쓴 《박열,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왜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일까요? 박열은 동경 유학 중 기존의 독립운동에서 더 나아가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로서 일왕 체제를 부정하는 활동을 벌이다가 1923년 9월 5일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1945년 10월까지 22년 동안 긴긴 옥중 생활을 하였습니다. 일왕을 암살하려고 폭탄을 구입하려는 등 일제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온한 투사였기에 작가는 박열에게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라는 이름을 붙인 것일까요? 알고 봤더니 박열 혁명가는 제 고등학교 대선배님이시네요. 고교 시절 박열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일본 군대를 환송하는 정류장에서 ‘일본 만세(萬歲)!’라고 외쳐야 할 것을, ‘일본 망세(亡歲)’라고 외치며 스스로 위로했다고 하네요. 1919년 10월 무렵 동경으로 유학을 온 박열은 흑도회를 창립합니다. 아나키즘을 상징하는 검정색을 넣어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하네요. 흑도회의 강령 가운데 하나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어떤 고정된 주의가 없다. 인간은 일정한 틀에 박혀버리면 타락하고 멸망하기 마련이다. 마르크스나 레닌이 무엇이라 하던 크로포트킨이 무엇이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미라보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들 사랑도 흘러간다 내 마음속 깊이 기억하리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오는 것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보자 우리의 팔 아래 다리 밑으로 영원한 눈길의 나른한 물결이 흘러가는 동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사랑은 지나간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가버린다 이처럼 인생은 느린 것이며 이처럼 희망은 난폭한 것인가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나날이 지나가고 주일이 지나가고 흘러간 시간도 옛사랑도 돌아오지 않는데 미라보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8)의 <미라보다리>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시를 왜 새삼스럽게 얘기하냐고요? 시에 얽힌 이야기에 흥미가 있어서입니다. 물론 이 시를 좋아하는 이들은 시에 얽힌 이야기도 잘 아시겠지만, 시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새로 알게 되어 입이 근질근질한 한 실없는 남자의 이야기도 너그럽게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미라보의 다리>는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지난번 고양시 대자동 건자산 자락에 있는 경혜공주와 정종의 무덤을 답사하였었다. 답사 뒤 글을 쓰면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건자산 건너편의 대자산 자락에는 소현세자의 아들 경안군과 손자 임창군, 증손자 밀풍군의 무덤이 모여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밀풍군 무덤과 같은 산등성이 상에서 불과 4~50m 정도 떨어진 곳에 명나라 출신 굴씨 여인의 무덤이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명나라 여인이 조선 땅에 묻혔다는 것만으로 나의 흥미를 끈 것은 아니다. 굴씨 여인은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던 소현세자를 모시다가, 소현세자를 따라서 조선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현세자가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의문의 죽음을 – 나는 소현세자의 돌연한 죽음에 아버지 인종이 관련되어 있다는 강한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 당했을 때도 돌아가지 않고 일생을 마치고 조선 땅에 묻혔다. 오직 소현세자만을 바라보고 낯선 조선까지 따라온 명나라 여인이 이곳에 묻혀있다니, 어찌 나의 흥미를 끌지 않을 수 있으랴. 더군다나 근처에 묻혀있는 소현세자의 아들, 손자, 증손자 모두 순탄치 못한 삶을 살지 않았는가? 지난번처럼 차를 관산2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동고동락 부부독립운동가 104쌍 이야기》에는 항일무장투쟁을 한 홍범도 장군과 그의 아내 단양이씨 이야기도 있습니다. 홍범도(1868~1943) 장군은 한동안 언론에 자주 오르내려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홍장군의 아내가 단양 이씨(1874~1908)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단지 ‘단양 이씨’로만 알려졌다는 것은 그만큼 홍장군의 아내에 대해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는 얘기가 되겠네요. 이들 부부는 서로 만나기 전에 비구와 비구니였습니다. 비구와 비구니였다고 하니, ‘으잉?’하며 갑자기 눈동자가 커지는 분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요즘 홍장군의 활동에 대해 많이 알려졌지만 그래도 홍장군이 한때 승려였다는 것까지는 그만큼 알려지지는 않았지요? 그러면 홍장군이 어떻게 하여 스님이 된 것일까요? 홍장군은 출가 전 1883년 평양 감영의 나팔수로 입대하였는데, 군교들의 부정부패와 사병에 대한 학대를 보다못해 그중 한 군교를 때려눕히고 병영에서 탈출하였습니다. 그리고 황해도 수안군 총령 아래에 있는 제지소에서 3년 동안 일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때도 공장주가 노동자들을 부당하게 대하고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열정과 집념의 여인, 이윤옥 교수님이 《동고동락 부부독립운동가 104쌍 이야기》를 펴냈습니다. 제가 열정과 집념의 여인이라고 하니까, 아부성 발언을 한다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교수는 벌써 십수 년 동안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작업을 시작하여 첫 작품으로 낸 것이 《서간도에 들꽃 피다》입니다. 그리고 꾸준히 작업을 계속하여 <서간도에 들꽃 피다>는 10권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 《여성독립운동가 300인 인물사전》, 《46인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찾아서》, 《경기의 얼, 여성독립운동가 40인의 삶》, 《여성독립운동가 100분을 위한 헌시》를 냈고, 시화집 《나는 여성독립운동가다》도 냈습니다. 이 정도면 제가 ‘열정과 집념의 여인’이라고 하여도 전혀 과장된 말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사실 전에는 ‘독립운동’하면 남성들을 먼저 떠올렸고, 실제 독립운동사도 남성들 위주도 되어있던 것은 부인할 수 없지요. 이교수는 이에 여성독립운동가를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역사학자도 아니면서 이 일에 뛰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