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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담론, 이 풍진(風塵) 세상을 살아갈 이유

《담론》, 신영복, 돌베개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59]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지난 1월 15일은 신영복 선생 8주기였습니다. 세월 참 빠르네요. 장례식에 참석한 것이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8주기라니... 8주기에 참석하였을 때 선생의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신영복 선생의 책은 거의 다 읽어보았는데, 참석자들이 선생님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오래간만에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읽을까 생각하다가 신영복 선생의 마지막 강의를 담은 《담론》을 다시 읽기로 하였습니다. 예전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아 이 책에 줄을 쳐가며 읽었지요. 그러나 한 번만 읽고 그칠 수 없어 다시 한번 읽고, 그리고 특히 마음에 들어오는 부분은 일일이 타자를 쳐서 따로 저장해 두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오래간만에 다시 읽었는데, 《담론》은 여전히 나에게는 울림이 있는 책이네요.

 

 

마지막 강의라고 하였는데, 선생은 2006년 성공회대를 정년퇴임한 뒤에도 석좌교수로 <인문학 특강> 한 강좌는 계속하였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 희귀 피부암 진단을 받아 그해 겨울학기에 마지막 강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강의 녹취록을 바탕으로 한 《담론》이란 책이 2015년 4월 20일 세상에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는 2016년 1월 15일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가시고...

 

《담론》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는 선생의 동양 고전강의 11강좌가 수록되어 있고, 2부에는 선생이 감옥에서 깨달은 것과 중앙일보 초청으로 세계 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것 모두 하여 14강좌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1부를 여는 강의에서 선생은 ‘가장 먼 여행’을 말합니다. 어디를 가는데 가장 먼 여행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입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우리의 머리에는 살아오면서 습득한 지식이 들어있고, 이를 자기 것으로 만들면서 생긴 고정관념, 편견이 있습니다. 이걸 깨뜨리고 가슴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를 깨뜨리고 가슴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기에 가장 먼 여행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겹겹이 겹쳐 입은 자아(自我, 에고)의 갑옷을 깨뜨리고, 이웃에게 따뜻한 시선을 돌리면서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존재론’에서 ‘관계론’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선생은 여행이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가슴에서 다시 발까지 여행해야 한다고 합니다. 발은 우리가 딛고 있는 삶의 현장을 뜻합니다. 그러면 짐작이 되겠지요? 단순히 따뜻한 가슴에서 멈춰서는 안 되고, 삶의 현장에서 실천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선생은 강좌를 열고 공부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공부는 세계 인식과 인간에 대한 성찰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이 공부이고 공부가 삶이라고 하는 까닭은 그것이 실천이고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세계를 변화시키고 자기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선생은 이렇게 세계를 변화시키고 자기를 변화시키는 공부를 위해 1부에서 시경(詩經), 초사(楚辭),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한비자로 강좌를 이어 나갑니다. 이 가운데서 상대적으로 일반인들에게는 덜 알려진 묵자에 대해서 보면, 묵자 강의 제목은 ‘이웃을 내 몸같이’입니다. 묵자는 패권 논리가 지배하는 전국시대에 전쟁을 반대하고 차별 없는 사랑((兼愛)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래서 절대군주제가 확립되는 진ㆍ한나라 이후로 묵자 사상(묵가)는 자취를 감춥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게 된 것이군요.

 

그러다가 청나라 말에 와서야 처음 정리되었고, 1919년 5·4 운동이 일어나고 중국에 마르크스 사상이 소개되면서 신청년운동이 묵자를 주목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우리에게도 이런 좌파 사상이 있었구나’ 하면서 주목했었는데 금방 폐기되었다네요. 천지(天志) 사상과 비폭력 사상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겠네요. ‘천지(天志)’라면 하느님의 뜻이니 공산주의에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폭력혁명으로 체제를 뒤엎어야 하는데 비폭력 사상에는 거리낌이 있었겠군요.

 

‘겸애’를 나타내는 구절에 이런 게 있습니다. ‘애인약애기신(愛人若愛其身)’ - 다른 사람 사랑하기를 내 몸같이 사랑하라. 어떻습니까? 생각나는 구절이 있지 않습니까? 예! 성경에 나오는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탄생 때 나타난 세 사람의 동방박사가 묵가가 아닐지 하는 의견도 있다네요. 묵가는 기원전 100년 무렵 중국에서 자취를 감추었거든요. 하여튼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고 하고, 실제 이를 실천에 옮겼던 묵가는 동양 사상에서는 약간은 겉돌이(아웃사이더) 위치에 있었다고 하겠는데, 오늘날 묵가의 사상이 좀 더 사랑을 받아야겠습니다.

 

2부의 제목은 인간 이해와 성찰입니다. 신영복 선생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만 20년 20일을 복역하다가 가석방으로 사회에 나왔습니다. 보통 사람이 평생을 감옥에서 썩어야 한다면 앞이 캄캄하고, 절망하며 삶의 의욕을 잃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은 감옥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성찰을 쌓았습니다. 그래서 선생은 감옥은 자신에게는 또 하나의 대학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2부에서는 이렇게 감옥에서 깨달은 인간 이해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여기서도 처음에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을 말씀하시는데,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에 5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 5년 동안 먹물을 싹 비우니 비로소 재소자들이 자신을 동료로서 대하였다는군요. 그러면서 선생은 사회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동료 재소자들에게 배웁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보통 집을 그리라고 하면 지붕부터 그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왕년의 목수는 주춧돌부터 그리더랍니다. 그래서 선생은 ‘아! 책을 통해서 생각을 키워온 나는 지붕부터 그리고 있구나.’ 하였답니다.

 

여러분은 감옥에서의 여름살이와 겨우살이, 특히 난방이 전혀 없는 겨우살이 중 그래도 어느 것이 견딜만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겨우살이라면 그래도 여름살이가 더 견딜만하지 않겠냐고 생각할 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신영복 선생은 겨우살이가 더 낫다고 합니다.

 

포개서 자야 하는 감방의 여름살이는 난로를 안고 자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옆 사람 잘못이 아닌데도 괜히 옆 사람을 증오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죄 없는 사람을 증오하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 더욱 괴롭답니다. 그러나 겨울에는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기면서 잔잔한 인정을 느끼게 된답니다. 백범일기에서 김구 선생도 서대문형무소 생활을 얘기하며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데, 신영복 선생도 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그리고 선생의 경우에는 이 밖에도 겨울은 정신을 한없이 맑게 해주기 때문에 좋았다고 합니다.

 

2부 후반부에는 중앙일보 초청으로 세계여행하면서 깨달은 것을 말씀하십니다. 중앙일보는 20년 만에 사회에 나온 신영복 선생이라면 뭔가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거로 생각한 것이지요. 선생은 물론 일반인들이 자주 가는 관광지를 간 것은 아닙니다. 선생은 여행의 첫 방문지로 콜럼버스가 출항한 우엘바 항구를 찾았습니다.

 

콜럼버스가 이 항구를 출발하여 신대륙을 정복함으로서 근대화가 출발하고 세계화가 출발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좋게 말하면 오늘의 자본주의가 꽃을 피운 것인데, 그 반대로는 신대륙 원주민들에게는 비극이 시작된 것이지요. 그나마 남미는 많이 죽기도 죽었지만, 인종 교배가 이루어지는데, 북미는 아예 인종이 청소되었습니다. 최소한 4천만에서 6천만의 인종 청소가 행해졌다고 합니다.

 

당시 멕시코의 테오티우아칸은 인구 30만의 도시였다는데, 이를 겨우 500명의 침략자가 점령합니다. 물론 정복자는 우수한 총과 대포로 무장하였다지만, 30만이 죽고 살기로 덤벼들었다면 당연히 이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남미인들에게는 수염이 하얗고 피부가 하얀 사람이 언젠가 자기들을 도와주러 나타나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유럽에서 온 백인들을 바로 그 전설의 백인으로 생각하여 더욱 속절없이 무너진 것이지요. 이 전설의 백인을 페루에서는 ‘비라코차’라고 하고, 아즈텍에서는 ‘켓살코아틀’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이들은 백인을 구원자로 생각한 것일까요? 라틴아메리카 연구자들은 언젠가 과거에 난파당한 백인이 표류해서 왔다가 간 적이 있기에 이런 믿음이 생기지 않았냐고 추측한답니다.

 

신영복 선생은 마지막 강의를 ‘석과불식(碩果不食)’으로 마무리합니다. 석과불식은 주역 산지박(山地剝) 괘의 효사에 나오는 말로 ’씨과실은 먹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선생이 가장 아끼는 희망의 언어입니다. 산지박 괘는 아래에서부터 5개의 효는 모두 음효(--)이고, 맨 위의 효만 양효(―)입니다. 그런데 양효도 언제 음효로 바뀔지 위태위태합니다. ‘석과불식‘은 마지막 양효에 나오는 효사(爻辭)입니다. 책에는 선생이 ’석과불식‘을 그림으로도 표현해 놓았는데, 벌거벗은 나무에 달랑 과일 하나만 달려있고, 밑에는 낙엽이 쌓여있습니다.

 

’체로금풍(體露金風)‘이란 말이 있지요? 가을의 스산한 바람에 뼈대가 훤히 드러난다는 것이지요. 나무로 하면 벌거벗은 몸체가 그대로 다 드러난다는 것이고, 인간사회로 말하면 환상과 거품으로 가려져 있던 우리의 삶과 우리 사회의 근본적 구조가 다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선생은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바로 이 구조와 뼈대를 직시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분본(糞本)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떨어진 낙엽이 뿌리를 덮어 거름이 되어주는 것인데, 선생은 뿌리가 바로 사람이며 사람을 키우는 것이 분본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사람에게 거름을 주어야 하는데, 요즘 우리 사회는 사람을 거름하기는커녕 도리어 사람으로 거름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선생은 그 예로 해고와 구조 조정 그리고 비정규직이 바로 사람으로 사람을 거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석과(碩果)는 미래를 위한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것마저 먹어버리면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산지박 괘의 다음 괘가 지뢰복(地雷復) 괘입니다. 산지박 괘에서 맨 위에 있던 양효가 맨 밑으로 내려와 있습니다. 산지박 괘에서 위태위태하던 절망의 괘는 이제 석과가 땅속에서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집니다. 먹지 않고 남긴 석과에서 이제 새싹이 트고 나무가 되고 숲이 됩니다. 우린 이 희망을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합니다. 선생이 희망이 없는 무기수의 삶에서 자살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햇볕‘ 덕분이라고 합니다. 선생의 말을 직접 들어보지요.

 

겨울 독방에서 만나는 햇볕은 비스듬히 벽을 타고 내려와 마룻바닥에서 최대의 크기가 되었다가 맞은편 벽을 타고 창밖으로 나갑니다. 길어야 두 시간이었고 가장 클 때가 신문지 크기였습니다. 신문지만 한 햇볕을 무릎 위에 받고 있을 때의 따스함은 살아 있음의 어떤 절정이었습니다.

 

이어서 선생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가 햇볕이라고 한다면,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하루하루의 깨달음과 공부였습니다. 햇볕이 ’죽지 않은‘ 이유였다면, 깨달음과 공부는 ’살아가는‘ 이유였습니다. 여러분의 여정에 햇볕과 함께 끊임없는 성찰이 함께하기를 빕니다.

 

선생은 우리에게 깨달음과 공부를 주기 위하여 그리하여 우리에게 살아가는 이유를 주기 위하여 ’담론‘을 여셨군요. 이렇게 《담론》을 본 소감을 써놓고 보니, 오히려 선생의 뜻은 제대로 전달하지도 못하고 혼란만 부추긴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내 능력으로는 더 이상 제대로 전달하기 힘든데, 직접 읽어볼 것을 권해드립니다. 신영복 선생의 마지막 강의 ’담론‘ - 그건 우리가 이 풍진(風塵)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삶의 이유요 깨달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