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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그동안 잊고 지내던 내 안의 소년 돌아볼 것

《눈물꽃 소년》, 박노해, 느린걸음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60]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박노해 시인이 수필집 《눈물꽃 소년》을 펴냈습니다. 한동안 시집과 빛으로 쓴 시, 곧 사진에 짤막한 감상을 단 사진에세이집만 내던 박 시인이 정말 오래간만에 수필집을 냈네요. 책의 부제는 ‘내 어린 날의 이야기’입니다. 부제 그대로 책에는 박 시인이 어린 날의 추억을 되살리며 쓴 주옥같은 수필이 모두 33편 실려있습니다.

 

 

책에는 간간이 삽화도 들어가 있는데, 박 시인이 직접 그린 삽화입니다. 책 표지에도 그림이 있는데, 그림에서는 한 여인이 멀리 떠나가는 남정네를 바라보고 있고, 그 옆에 작은 아이도 떠나가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그림도 박 시인이 그린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 그림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을까 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짐작하겠습니다. 박 시인의 아버님은 박 시인이 7살 때 돌아가셨는데, 박 시인은 어머니와 함께 떠나가는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보이네요.

 

이번에도 책이 나오자마자 나눔문화에서 책을 보내왔는데, 책갈피에 끼인 임소희 이사장의 드리는 글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남도의 작은 마을에서 ‘평이’라고 불리던 박노해 시인의 가슴 시린 소년 시절 이야기. 한 인간을 나아가게 하는 근원의 힘이 무엇인지, 가난 속에서도 기품 있던 부모, 스승, 이웃들의 말씀과 삶이 오늘의 사회를 돌아보게 해줍니다.”

 

‘평이’라고 불렸다는데, 박 시인의 본명이 ‘기평’입니다. ‘노해’는 박 시인의 필명으로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에서 따와서 ‘노해’를 필명으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임 이사장이 ‘가슴 시린 소년 시절 이야기’라고 하였지요? 그렇습니다. 박 시인과 동갑인 저는 박 시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읽으며 내 어린 시절도 떠올리며 공감하면서, 잠시 먹먹하여 읽던 책을 멈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임 이사장은 글 마지막에는 이렇게 말하네요. “시인의 간절한 전언(傳言)이 변호사님 가슴에서 눈물꽃으로 환히 피어나길 바랍니다.” 예! 바람대로 눈물꽃으로 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보내주는 책을 받기만 하다가, 이번에는 필요한 분들에게도 눈물꽃 소년을 보여주고 싶어, 10권을 주문했네요.

 

남도의 작은 마을이라고 하였는데, 박 시인이 어린 시절 자라난 곳은 전남 고흥군 동강면 노동리입니다. 동강면은 고흥반도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는 면으로서 여자만에 접하고 있는 곳입니다. 책에는 박 시인이 여자만 개펄에서 여름방학 때 친구들과 고기 잡고 놀다가 죽을 뻔한 이야기 ‘비밀한 그해 여름’도 있습니다. 박 시인은 자기 허벅지보다 큰 은빛 물고기와 씨름하다가 그만 물때를 놓쳐 밀려 들어오는 물에 허우적거렸습니다. 죽음의 공포에서 박 시인은 해성이 아재 말을 떠올립니다. ​

 

 

“평아, 몸에 힘을 빼그라. 글고 바다 위에 누워. 두 팔과 다리를 펴고 기냥 누워. 온몸에 힘을 빼고 텅 비우면 절대로 안 가라앉는다잉. 바다를 탁 믿어부러.” 아재 말을 믿고 바다에 기냥 누운 박 시인은 물살의 흐름을 타고 부드럽게 팔을 저으며 가까스로 살아나왔지요. 저도 글을 읽으며 초등학교 저학년 때 목포 앞바다 개펄에서 게 잡고 놀던 때가 생각나 더욱 내 일처럼 실감나더군요. 박 시인은 이 글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여름날 이후 나는 솔찬히 변한 것만 같았다. 내가 무언가에 집착할 때, 악착같이 이기려 할 때, 빛나고 좋은 건 내가 한다고 욕심이 들 때, 그럴 때면 어김없이 그 여름의 비밀한 일이, 소스라치게 바닷물 속으로 나를 끌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순간 퍼뜩, “힘 빼! 온몸에 힘을 빼! 얼른 놓아버려!”하는 소리와 함께 제정신을 차리곤 하는 것이었다. 비밀한 그해 여름, 시퍼런 바다의 가르침이었다.“

 

그리고 임 이사장은 가난 속에서도 기품 있던 부모, 스승, 이웃이라고 하였는데, 책을 읽으며 이 말에 120% 공감하였습니다. 박 시인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는 비록 시골 촌로이지만 참 훌륭한 분이시더군요. 그런 할머니의 어록 두 가지만 소개할까 합니다. 장날 꼬마 박 시인을 데리고 장터로 간 할머니는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는 사람마다 참 살갑게 인사하시는데, 그런 할머니께서 눈도 마주치지 않고 꼿꼿이 지나쳐 버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개한(참되지 아니한) 사람이다. 저이가 일제 때도 이승만 때도 완장 차고 설친 자이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말이시 또 지금 시국에도... 아가! 너는 개한 자들 멀리하고 참한 이들 만나서 참말만 하고 참사람으로 살야 쓴다이.”

 

또 할머니는 박 시인이 처음 맛본 빨간 알사탕에 혹하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평아, 알사탕이 달고 맛나지야? 그란디 말이다. 산과 들과 바다와 꽃과 나무가 길러준 것들도 다 제맛이 있지야. 알사탕이 아무리 달고 맛나다 해도 말이다. 그것은 독한 것이제. 유순하고 담박하고 부드러운 맛을 무감하게 가려버리제. 다른 맛들과 나름의 단맛을 가리고 밀어내 부는 건 좋은 것이 아니제. 알사탕같이 최고로 달고 맛난 것만 입에 달고 살면은 세상의 소소하고 귀한 것들이 다 멀어져 불고, 네 몸이 상하고 무디어져 분단다. 그러하믄 사는 맛과 얼이 흐려져 사람 베리게 되는 것이제.”

 

어머니 또한 37살에 혼자 되어 5남매를 홀로 키워내시면서도 아이들을 바르게 키워냈습니다. 어머니 말씀도 하나 인용하지요. 어느 날 박 시인은 마당 멍석에 깔아놓은 녹두, 팥, 수수를 새들이 훔쳐먹지 않도록 장대 들고 열심히 쫓아냅니다. 그런데 이런 공을 몰라주는 어머니에게 부아가 난 박 시인한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평아, 오늘 애썼는데 서운했냐아. 근디 말이다... 열심히 지나치면 욕심이 되지야. 새들도 묵어야 사니께 곡식은 좀 남겨두는 거란다. 갯벌에 꼬막도 저수지에 새뱅이도 씨 마를까 남겨두는 거제이. 머루도 개암도 산짐승들 먹게 남겨두는 거고, 동네잔치 음식도 길손들 먹고 동냥치도 먹게 남겨두는 것이제. 아깝고 좋은 것일수록 남겨두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평아, 사람이 말이다. 할 말 다 하고 사는 거 아니란다. 억울함도 분함도 좀 남겨두는 거제. 잘한 일도 선한 일도 다 인정받길 바라믄 안 되제. 하늘이 하실 일도 남겨두는 것이제. 하늘은 말없이 다 지켜보고 계시니께.”

 

요즈음 어떻게 해서든지 난사람이 되기만을 바라는 부모들이 많기에, 된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박 시인의 할머니, 어머니를 다시 보게 되네요. 박 시인은 이런 할머니를 생각하며 ‘눈을 씻고 가자’라는 시를, 이런 어머니를 생각하며 ‘넌 아주 특별한 아이란다’, ‘그래도 미움으로 살지 말거라’는 시도 썼습니다.

 

그리고 5학년 때 박 시인 반 임시 담임으로 오신 수그리 선생님도 존경할 만한 선생님이십니다. 늘 학생들 말을 몸을 기울여 들어주어 ‘수그리 선생’이라고 불렀는데, 수그리 선생님은 한 학기 파견 근무를 마치고 전근을 가면서 자신의 귀한 단벌 목도리를 풀어 박 시인 목에 감아주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가 별명이 ‘수그리 선생’이라메. 다들 잘 나고 똑똑헌 세상에서 우리 같은 수그리 종자 몇 명쯤은 안 있어야 쓰겄능가. 하하하. 그래도 나가 힘 있는 놈들 앞에선 안 그라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제. 나 먼저 가네. 잘 커 불소잉. 하하하.”

 

아이라고 함부로 대하지 않고 몸을 수그려 경청하는 선생님! 그리고 어린 제자에게도 존중하는 말투를 쓰시는 선생님! 이런 선생님이라면 5학년 때 잠시 담임을 한 선생님이지만, 박 시인의 기억에 영원히 남아있을 만한 선생님이겠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초등학교 때면 좋아하던 아이 하나 얼굴 떠오르지 않습니까? 박 시인은 전학을 온 민지라는 아이가 지금도 떠오르는 모양입니다.

 

박 시인은 민지가 웃어주면 아침이슬처럼 빛나는 함박꽃 웃음에 자기 가슴이 떨려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민지가 깎아준 연필로 시를 씁니다. 그리고 박 시인이 쓴 시를 들려달라는 민지에게 쭈뼛쭈뼛하며 시를 읽어줍니다. 박 시인이 처음으로 세상 누군가에게 자신의 시를 보이는 순간이었지요. 두 편의 시만 인용해 볼까요?

 

「손바닥에 불났다

월사금이 늦어서

산에 길에 단풍 든 날

붉은 손바닥을 본다

엄니가 볼 것만 같아

얼른 주먹을 쥔다」

 

「아가가 방그레 웃을 때는

말랑하고 뽀얀 볼에

살구꽃이 피어나고

울 엄니가 기도하며 울 때는

동백꽃이 또옥 똑

내 이마에 떨어지고」

 

요즘 아이들은 월사금 때문에 손바닥에 불이 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 안 될 수도 있겠지만, 제 또래 분들은 그 당시 월사금 안 가져왔다고 손바닥에 불나던 친구들 생각이 날 것입니다. 저도 저희 반 급우 한 친구가 월사금을 못 내어 수업시간에 집에 쫓겨 돌아가던 생각이 납니다. 선생님 처지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 담임선생님은 꼭 그 친구를 그렇게 부모님께 월사금 받아오라고 수업시간 도중에 쫓아낼 필요가 있었을까?

 

이렇게 시를 낭송해 주는 박 시인에게 민지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난 평이 니가 시를 쓰고 읽어줄 때가 너무 좋아. 그럴 때면 너한테서 막 빛이 난다. 반딧불 천 마리가 모인 것처럼. 네 시를 읽으면 눈물이 나고 마음이 맑아지고 힘이 나. 난 알아. 넌... 강한 아이야. 평아, 넌 꼬옥 훌륭한 시인이 될 거야.”

 

 

민지의 예언대로 평아는 훌륭한 시인이 되었네요. 이렇게 시인을 알아본 민지는 어머니가 재혼하여 다시금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갑니다. 민지가 가버린 어느 깊은 밤 박 시인은 홀로 시를 쓰다가 자꾸만 부러지는 연필을 깎으면서 민지가 사박사박 걸어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고개 들어보니 아무도 없는 정적뿐입니다. 그 순간 또 하나의 시가 피어납니다.

 

「자운영 핀 꽃길에서 네가 걸어왔지

홀로 가는 등 뒤에서 네가 걸어왔지

모두가 등 돌려 떠나간 길에서

나랑 같이 놀래?

눈물꽃 소년에게 빛으로 걸어왔지

텅 빈 내 가슴에 시처럼 네가 걸어왔지」

 

그때 박 시인은 또래보다 나이가 많은 영호가 반의 대장 노릇을 하면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는데, 그런 박 시인에게 민지가 걸어왔더군요. 박 시인은 민지에 대한 글 마지막을 이렇게 마감합니다. “내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한 편의 시와 함께 내게로 걸어온 너. 나의 첫 독자, 나의 첫사랑” 하하! 《눈물꽃 소년》에서 박 시인의 첫사랑 고백까지 들을 줄은 몰랐습니다그려.

 

책에 실린 33편의 박 시인의 어린 날 추억 이야기는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이 참 소중한 이야기입니다. 《눈물꽃 소년》에는 이 밖에도 박 시인이 방과 후에도 도서실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에 빠져있자, 귀한 초를 사다가 박 시인 앞에 켜주고 퇴근도 안 하고 기다려 주던 선생님 이야기, 박 시인이 미사 때 복사로 있던 동강공소의 멕시코인 신부님 이야기 등 말씀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이 말씀드리면 직접 책을 사서 보고 싶은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지요?

 

박 시인은 책머리에서 작가의 말을 하지 않고, 책의 마지막에서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책을 닫는 말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삶은 바람처럼 흘러가고,

나는 지금 지나온 시간의 굽이를

아득히 돌아보고 있다.”

 

역시 시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다릅니다. 박 시인과 동갑인 나 또한 이런 취지의 말을 하고 싶은데, 정작 내 입에서는 지극히 무미건조한 말이 흘러나오겠지요? 박 시인이 아득히 돌아보고 있는 어린 시절은 1960년대입니다. 그 시대를 박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커 나온 시대는 어두웠고 가난했고 슬픔이 많았다. 다행히 자연과 인정(人情)과 시간은 충분했다. 그때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다. 가난과 결여는 서로를 부르고 서로가 있어야 하게 했다. 쓸모없는 존재는 한 명도 없었다. 노인들도 아이들도 제 몫의 일들이 있었고, 대지에 뿌리박은 공동체 속에서 우리 각자는 한 인간으로 강인했다.”

 

어떻습니까? 동의하십니까? 아마 박 시인과 같은 시대의 어린 시절을 지냈던 이들은 모두 공감할 것입니다. 특히 박 시인처럼 시골에 살았던 분들은 더욱 공감할 것입니다. 《눈물꽃 소년》을 보면서 시인이 살던 동강면 사람들의 따스한 인정미에 제 마음이 푸근해졌습니다. 특히 동강공소 교우들의 따스한 인정미를 읽으면서는 가슴에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더군요.

 

무엇인고 하니, 박 시인의 어머니는 급히 저녁을 먹고 다시 논으로 나가 낮에 베어놓은 볏단을 묶어 세웁니다. 그런데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며 소나기가 쏟아집니다. 일손을 구하지 못한 어머니는 벼를 묶어 세우느라 안간힘이고, 옆에서 박 시인은 작고 약한 자신이 원망스럽고 아부지 없는 서러움이 차갑게 파고들고 있었습니다. 그때 쏟아지는 빗발을 뚫고 등불과 낫을 든 흰옷의 행렬이 보입니다. 동강공소 교인들입니다. 이들은 남편을 잃고 홀로 된 젊은 엄니가 작은 논 세 마지기에 다섯 아이 생계를 걸고 사는 걸 알기에, 자기들 수확을 뒤로 한 채 십리 밤길을 달려온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어렵지만 서로 정을 나누던 시절에 견줘 넘치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 인공지능까지 나오는 발달한 문명 속에 살고 있는 지금은 어떤가요? 박 시인은 이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전능한 기계 인간이 도래하고 인간은 기계가 되어가는 시대. 그러나 문명의 급진보다 더 빠르고 무섭게 인간 그 자신이 급변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정리하고 성찰할 틈도 없이, 갈수록 시간은 더 빠르게 나를 휩쓸고 지나쳐 간다. (가운데 줄임) 너무 과열되고 너무 소란하고 너무 눈부신 이 진보한 세계 가운데서 우리 몸은 평안하지 못하다. 우리 마음은 늘 초조하고 불안하여 안식하지 못한다. 아이들조차 성공을 재촉당하고 과잉된 보호와 기대 속에 스스로 부딪히고 해내면서 제 속도로 자라지 못한다. 세상이 하루하루 독해지고 사나워지고, 노골적인 저속화와 천박성이 우리 영혼을 병들게 하는 지금. 우리는 우울과 혐오와 무망(無望)의 감정에 휩싸여 있다.“

 

맞습니다. 저도 요즘 너무나 급속도로 발달하는 인공지능을 보며 미래에 인간은 인공지능의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고 또 전 세계적인 심각한 기후변화를 보면서 저도 무망(無望)의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은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그냥 휩쓸려 가고 있는 것 같으니...

 

그런데 책 제목이 왜 《눈물꽃 소년》일까요? 박 시인은 여기서 《눈물꽃 소년》에 대해 얘기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소년 소녀가 살아있다. 어느덧 70성상을 바라보는 내 안에도 소년이 살아있다. 내 안의 소년은 《눈물꽃 소년》이다. 해맑고 명랑한 얼굴로 달려와 젖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곤 한다.

 

‘눈물꽃 소년’이라... 박 시인 안에는 ‘눈물꽃 소년’이 살아있군요. 내 안에는? 내 안에도 그 어린 시절로 달려가고픈 소년이 있습니다. 내 안의 소년에게는 어떤 이름을 지어줄까? 박 시인은 무망의 감정에 휩싸일 때 자기 안의 소년을 만난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간절한 마음과 강인한 의지가 살아있던 ‘눈물꽃 소년’으로 돌아가 다시 힘을 길어 올린다고 합니다.

 

《눈물꽃 소년》 - 그동안 나눔문화에서 보내주던 책을 받아 보기만 하던 나에게 책을 사서 주위에 돌리게끔 하는 충동을 불러일으키게 한 《눈물꽃 소년》! 박 시인! 귀한 눈물꽃 잘 받았습니다. 나도 이제는 그동안 잊고 지내던 내 안의 소년을 돌아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박 시인의 시 ‘눈물꽃 소년’을 읊조리며, 박 시인의 자전적 수필 《눈물꽃 소년》을 본 저의 소감을 마칩니다.

 

길 잃은 날엔 자기 안의

소년 소녀로 돌아가기를

 

아직 피지 않은 모든 것을

이미 품고 있던 그날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앞을 향해 달려나가는

 

영원한 소년 소녀가

우리 안에 살아있으니

 

그 눈물이 꽃이 되고

그 눈빛이 길이 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