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발리는 완전 다른 나라였다. 히잡 쓴 여성도 거의 볼 수 없다. 다만 여기저기 힌두신께 정성껏 제물 공양드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발리는 힌두의 나라였다. 코끼리 형상을 한 가네사 신, 비쉬누 신, 두르가 신, 시바 신 등 수없이 많은 신들이 있다. 출입문 처마 밑 에도 예쁜 부적 같은 게 달려있고,하루에 두 번 꽃 장식에 밥, 과자, 사탕 그리고 향을 피워 제물을 바치는 게 여인들의 일상이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려는 데도 제물 봉헌 중이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기도 했다. 사실 그 제물은 대체로 새나 달팽이 심지어 닭이 날아올라가 파헤치고 쪼아 먹기도 하는걸 보았다. 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주위 모든 삼라만상과 조화롭게 나누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느껴졌다. 고양이들도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특별히 애완동물을 기르진 않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개들도 각자 알아서 살아가는지 좀 측은해 보이기도 했다. 발리 섬은 화산활동이 활발하지만 땅이 비옥하고 계단식 논밭이 많다. 세모난 볏짚모자를 쓰고 허리 굽혀 논일 하는 모습이 힘들어 보이기도 하지만, 딸각딸각 바람개비 도는 소리에다가 한쪽에선 벼가 누렇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비갠 후 산책길 아침풍경 간밤에 창밖 빗소리 요란하더니 어느덧 맑게 갠 하늘이 아름답다. 지난 봄 극심했던 가뭄에 모내기 포기했던 논에 물이 차 물오리 한가히 노닐고 습한 기운에 버섯들 좋아라 피어나고 물기 머금은 거미줄 모습 드러내고 누리장나무의 누릿한듯 구수한 향기 더해지고 어린 밤송이와 산도토리 간간히 떨어져 뒹군다.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바닷가 마을에서 사흘 머무른 뒤 족자카르타 북쪽 근교 ‘머라삐’ 화산 지대 ‘칼리우랑(Kaliurang)’이란 휴양지로 향했다. ‘머라삐‘ 화산은 2010년에 대폭발이 있었던 산이다. 많은 인명피해와 가축의 손실이 있었다. 또한 많은 집이 화산재로 뒤덮히고 녹아버린 형상으로 남아있다. 지금도 분화구에서 하얀 연기를 분출하는 활화산이다. 트레킹 출발점까지 연신 지프차가 오가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머라삐‘ .화산 트레킹을 하기위해 ’칼리우랑‘에서 사흘 동안 머물렀다. ‘에어비엔비(Airbnb)’란 사이트를 통해 예약한 숙소였다. 현지에서 한가하게 살아보는 귀한 체험이었다. 일 년 내 더운 나라라 낮 동안은 나다니기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새벽이나 해질녁에 동네를 돌거나 좀 더 먼 곳까지 산책하며 낯선 환경과 문화를 접해보는 경험은 여행의 묘미이다. 몇 번 배낭여행에 늘 잘 적응 했는데 이번엔 배탈이 났다. 어지러우며 배가 아프고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꼬박 하루를 굶고 가게에서 인니 쌀을 구해 미음을 끓여 먹었더니 속이 편했다. 여행안내서에 보면 'Bali Belly'라 하여 여행객들이 흔히 걸리는 복통이며 특별한 항생제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여행 나흘째 해질 무렵, 자바 남쪽 인도양에 면한 작은 어촌이지만 파도가 높고 해안선이 끝없이 펼쳐진 ‘바투카라스’(BATUKARAS)에 도착했다. 딸이 파도타기(surfing)를 배울 겸 선택한 곳이다.바다가 바로 보이고 시원한 파도소리에 나무들 사이에 쳐놓은 해먹들. 온갖 남국의 야자수들 사이에 자리 잡은 방갈로 2층에 짐을 풀며 보이는 전경이 천국에 온 기분이었다. 밤늦도록 동네 젊은이들이 잡은 물고기를 구워 먹으며 노래 부르는 소리 들리고, 밤새도록 “스륵 쓰륵, 찍찍, 끽끽, 뾰로록” 듀엣으로 솔로로 온갖 다양한 풀벌레 소리도 정겨웟다. 번갯불에 뒤이어 먼 바다에서 가까이 다가오는 천둥소리와 빗소리에 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남국의 낭만을 온전히 맛보았다. 일 년 내내 더운 나라라 무엇이든 무럭무럭 잘 자라는 것 같다. 바나나. 파파야, 코코넛,,, 나로선 이름도 알 수 없는 열대우림의 다양한 야자수와 형형색색의 꽃들이 많았다., 대도시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집집마다 크든 작든 정원이 있는 것이 보통이며 부러웠다. 또한 어딜 가나 쉽게 볼 수 있는 놓아 가르는 닭들, 멋진 깃털을 뽐내는 수탁, 엄마 닭을 좆아 다니며 모이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기념으로 사온 인도네시아 커피 ‘카팔 아피‘를 마시며 지난 3주간의 인도네시아 배낭여행을 다시 떠올려본다.5분정도 기다려 커피가루를 가라앉혀 마시는 블랙커피 "kapal api special"진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고 매사 급할 게 없고 세련되지 않은 인도네시아다운 맛이라고나 할까? 이번 여행 전반 열흘은 자바, 후반 열흘은 발리, 마지막 이틀은 자카르타에서 보냈다.때마침 이슬람의 40일간 엄격한 단식제 ‘라마단’ 끝남을 축하하며 시작되는 연중 최대의 명절 "이둘 피트리(idul fitri)"기간과 겹쳤다. 큰 명절이며 열흘정도 이어지는 휴가기간이라 교통체증이 염려되었다. 자카르타에서 바로 기차를 타고 반둥을 거쳐 남쪽으로 곧장 내려가 바닷가마을 ‘바투카라스’에서 3일 족자카르타에서 5일 머물렀다가 발리로 가는 코스를 택했다. 이런 자유여행은 마음이 잘 맞으며 또한 생활영어가 가능한 딸과 함께여서 가능했다. 자바여행까지는 남편도 같이 했다. 남자는 나이 들수록 집에 머물기를 좋아하고 여자는 밖으로 나다니길 좋아한다더니 퇴직한 남편과 나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족자카르타’까지 12일 동안 여행을 함께하고 남편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어제(17일), 화성시 광복회(지회장 안소헌)회원들과 함께 경기도 양평 서종면 벽계에 있는 화서 이항로(李恒老, 1792~1868)는 생가 기념관을 찾았다. 경춘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까지 만해도 이곳은 경기도의 오지 가운데 오지였다. 구한말 정통 보수주의 이념이었던 위정척사의 발원지였고 불퇴전의 중부지방 항일의병의 산실이었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당시 선비들은 조선이 지켜온 성리학적 질서를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생명을 바치는 것이야말로 선비의 최고 덕목으로 여겼다. “목숨을 바쳐 정의를 이루라”는 의리론과 사생관이 그것이다. 독학으로 주자학을 깨친 화서는 나이 서른에 이르러 그의 명성이 경향각지에 퍼졌고, 눈 밝고 뜻 굳센 이들이 벽계로 모여 들었다. 중암 김평묵, 면암 최익현, 성재 류중교, 의암 류인석, 운암 박문일 그리고 하거 양헌수 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제자만 450여명, 제자의 제자까지 합치면 수천 명에 이르며 이들은 화서학파를 이뤘다. 비타협적으로 일제와 맞선 이들이 화서학파 사람들이다. 역사학자 박은식은 이렇게 단언했다. “의병정신은 반만년 역사에서 저절로 우러나온 민족정신이요, 선생은 그것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백여 년 전 한국이 일제 식민치하에서 신음할 때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이주해 와있던 한국인들은 조국광복을 위해 노동으로 번 돈을 모아 독립자금으로 상해 임시정부에 송금했다.그리고 전명운, 장인환 같은 분들은 직접 독립투사로 활동한 분들이다. 이분들의 발자취를 찾아 지난 4월 중순 샌프란시스코한인회를 방문했다. 샌프란시스코 한인회는 꽤 넓은 건물에 다양한 자료와 사무실을 갖추고 있었다. 무엇보다 회의실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장인환, 전명운의사의동상을 마주하게 되니 가슴이 뭉클했다. 1908년 3월 23일 오전 9시 30분, 샌프란시스코 페리 부두 정거장 앞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려 한국민족운동사상 첫 의열투쟁이 만천하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장인환(張仁煥,1876~1930)과 전명운(田明雲, 1884~1947) 두 의사는 한국정부의 외교고문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일제 한국침략의 앞잡이로 광분하던 미국인 스티븐스(durham w. steve ns)를 총살 응징한 것이다. 한편, 이곳 한인회 벽면에는 21세기를 맞이하며 선열들이 후손들에게 당부하는 애절한 글이 실려있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 아! 카리포니아 마즈막으로 우리에게 남아있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딸이 살고 있는 미국서부의 태평양 연안에 자리잡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달간 머물다 귀국해서 사진 정리를 하고 있다. 딸네 집에서 공짜로 숙식을 해결하며 배낭 하나 메고 샌프란시스코 곳곳을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원 없이 다녔다. 혼자 보고 간직하기엔 아까워 화보 중심으로 간단한 설명을 곁들여 올린다. 다양한 전철 노선 중 한가지인 한 량짜리 열차 J선을 타고 ‘돌로레스파크’공원에 내렸다. 공원 바로 옆 육교 밑을 지나는 기차가 동화 속 그림 같다. 멀리 샌프란시스코 중심가가 보이는 공원 정경, 외관이 독특한 한 공립 고등학교 건물도 공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돌로레스파크‘근처 ‘미션’거리를 걷다가 마주친 건물은 여성의 인권을 벽화로 표현하고 있는 여성회관(women's bulding)이다.성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한다는 뜻의 무지개깃발을 내걸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수많은 공원 중 가장 큰 ‘골든게이트파크’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 내의 거대한 수족관에는 보호본능으로 무장한 것이 마치 일부러 치장한 듯 한 해마가 인상 깊었다. 300m정도의 높이로 두 개의 봉우리가 쌍둥이처럼 서있는‘트윈픽스‘, 한쪽 봉우리에서 다른 봉우리를 바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 주말을 이용해 금문교를 넘어 북쪽으로 차로 달려가 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들! 캘리포니아 포도주의 명성을 알만하다. 나파계곡(Napa Valley), 소노마계곡(Sonoma Valley)을따라 즐비한 포도농장과 갖가지 와인 시음장을 볼 수 있었다. 시음해보고 선물용으로 핑크빛 와인 한 병을 샀다. 스위스 알프스계곡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유럽식 주택이 많았다. 다시 시간을 내어 이번에는 베이브릿지(Baybridge, 동쪽 샌프란시스코만을 건너는 다리)를 넘어 차로 두 시간 정도 달려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가는 중간 지점 정도 까지 가서 일박을 하며 귀한 경험을 했다. 무엇보다 너무나 풍요롭고 여유가 있어 보이는 캘리포니아 평야가 아름다웠다. 시선이 따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펼쳐진 풀밭에서 한가히 풀을 뜯고 있는 소들, 언덕 꼭대기엔 풍력 발전기들이 즐비하고, 끝없이 펼쳐진 논밭들, 줄 맞춰 심어져있는 과일 나무들, 어린 모종들. 씨 뿌릴 준비를 하고 있는 듯 비워진 밭은 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숙소 근처 도시에서 시크(sikh)교 성전을 방문했다. 운 좋게도 일 년에 한 번 있다는 최대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머리에
[우리문화신문= 샌프란시스코 양인선 기자]딸이 살고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달 가까이 살고 한국으로 되돌아 갈 때가 다가오고 있다. 처음 이곳에 와서 낯선 환경을 탐험하는 기분으로 영어도 배울 겸 어학원에 등록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학원 복도에 온통 한국민의 샌프란시스코 이민사를 엿볼 수 있는 사진들로 가득했다. 아울러 한글과 더불어 한국문화 관련 사진도 많았다. 바로 말로만 듣던 '세종학당'이었다. 샌프란시스코는 한국인이 100여 년 전 부터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를 거치거나 바로 미국 서부로 이주해와 힘든 노동으로 삶을 영위했던 곳이다. 힘든 가운데도 조국광복을 위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에 송금하고 광복 후엔 조국의 발전을 위해 애쓰며 한국전쟁 복구를 위해 자금을 모아 지원했다. 낯선 땅에 이주해와 굳건히 뿌리내린 경험을 세계 각국에서 꿈을 안고 밀려드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나아가 한국문화와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며 동시에 영어 어학원도 겸하고 있는 것이다 '세종학당'에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적지 않은 경험을 공유하고자 이 글을 쓴다. 샌프란시스코를 표현하는 단어는 '자유 ' '저항 ' '동성애' '히피'등등 많지만 '다양성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