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규봉 교수] 10시 반쯤 숙소를 떠나 중간에 한국 마트에 들려 장을 조금 봤다. 오늘 연어 회를 먹으려면 초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3시간 걸려 테카포 호수에 도착했다. 맑은 옥색의 호수 물빛과 교회 그리고 개 동상은 그대로인데 뭔가 번잡하다. 관광객이 많고 특히 중국인들이 많다. 설 명절 연휴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가 보다. 예전과 다른 점은 많은 중국인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소유주가 중국인이지 키위인지는 알 수 없으나 모텔이고 상가고 손님을 상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시아 사람들이다. 호수 주변은 왜 그리 많이 파헤쳐놨는지 볼썽사납다. 예전에 사진 찍었던 한 그루의 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예전의 감격은 사라지고 다시 찾아올 이유가 없는 곳이 되었다. 이래서 아름다운 추억은 간직하고 있을 뿐 다시 찾으면 안 된다고 하는 가 보다. 교회에는 실내에서 사진 촬영을 금한다는 표시가 있다. 예전에는 없었는데 성스러운 곳이기 때문이란다. 왜 사진을 찍는 것이 성스러움에 반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 교회는 교파를 초월해 미사와 예배를 드리고 있다. 내부에서 보는 호수의 모습은 절경 중의 절경이다. 교회 옆에는 개 동상이 있다. 양을 키우기 위해서
[우리문화신문=이규봉 교수] 2월 20일이다. 9시에 공항에 가는 첫 버스가 있는 줄 알고 일찌감치 갔더니 이미 버스는 와 있었다. 요금은 1인당 우리 돈으로 만 원 정도인 12달러로 채 20분도 안 걸리는 곳에 가는 정기운항 버스 치고는 너무 비싸다. 공항 수속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출발까지는 한 시간이나 남았다. 오랜만에 와이파이 통신을 했다. 공항인지라 속도가 빨랐다. 비행기는 정시에 이륙했고 한 시간 만에 크라이스트쳐어치에 도착했다. 12년 만에 다시 온 것이다. 나오는데 한국사람 같아 아내가 말을 건네니 안양대 교수라고 한다. 말을 나누다 보니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신학과 교수와도 아주 잘 아는 사이라고 한다. 참 좁은 세상이지! 슬기전화(스마트폰)에 저장한 면허증 덕을 보다 렌터카 수속 밟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국제운전면허증만 가져오고 내 운전면허증을 가져오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차를 빌리지 못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러던 차 슬기전화에 저장해 놓은 것이 생각났다. 그것을 보여주었더니 메일로 보내라 하는데 잘 사용해 보지 않아 메일이 가질 않는다. 옆에 있던 젊은이가 보자 하더니 화면을 복사기로 복사해 잘 나
[우리문화신문=이규봉 교수] 비가 정말 많이 온다. 생전 이렇게 많은 비가 이처럼 세차게 온 것은 처음 본다. 오늘은 산발적으로 비가 내린다고 했으니 정말 예보대로 해주면 좋겠다. 이제는 비가 안 오는 것을 바라지 않고 좀 약해주기만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출발하려는 이 시간까지 기상예보대로 비는 쏟아진다. 8시 되어서 산장 직원이 가도 좋다고 한다. 단 물이 깊은 곳이 있으니 조심히 건너라라며. 조금 시간이 지나니 기상예보대로 비가 좀 한산해졌다. 가는 길은 매우 평탄했다. 고도 125미터에서 바다까지 가니 평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비록 높진 않으나 지금까지 겪지 못한 오르내리는 곳이 자주 나타났다. 보이는 경치는 늘 보던 거라 식상하기까지 하다. 비는 심하지 않으나 계속 내린다. 어느 곳이 위험한 구간인가 보았더니 큰 웅덩이가 나온다. 앞서 가던 키 큰 유럽인이 건너는데 그의 무릎 위까지 물에 잠긴다. 나도 무릎 위까지 잠겼으나 키가 작은 아내는 허벅지까지 잠긴다. 허지만 짧은 구간이라 별 어려움 없이 나왔다. 참 이 사람들도 중국인 못지않게 과장이 심한 것 같다. 하긴 늘 안전을 우선 꾀하는 것이야 좋지만. 식량이 줄어들어 분명 배낭의 무게가 줄
[우리문화신문=이규봉 교수] 밤새 비가 퍼부었다. 내일도 이렇게 내리면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밤을 지새웠다. 계곡 건널 일이 있다면 그건 불가할 것이다. 다음 날 아침 7시 20분까지 아침을 먹고 떠날 준비를 모두 마쳤다. 그러나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7시 50분쯤 폭우에 대한 잠깐의 설명이 있었고 8시에 대부분 함께 출발했다. 비는 조금씩 오고 있다. 양쪽 높은 산 위에서 내려오는 폭포들이 절경이다. 이런 모습은 비가 오기 때문에 더 잘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세상일에 모두 나쁘기만 하거나 모두 좋기만 하는 일은 없지 않은가? 2미터 폭의 급류를 넘지 못 하다 12시 무렵 넓은 평지에 지붕이 있는 대피소 같은 것이 보였다. 프레이리(Prairie) 쉼터이다. 잠시 쉬던 중 장대비가 쏟아진다. 멈출 것 같지 않아 그 비를 맞으며 계속 걸었다. 조금 걸으니 버스 스톱(Bus Stop)이라고 적힌 쉼터가 또 나온다. 아니! 왜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또 쉼터를 지었지? 하는 의문이 곧 풀렸다. 버스 스톱을 지나고 5분 후 산에서 흘러내린 물로 형성된 폭 2미터 정도의 급류가 나왔다. 그 물길이 하도 세어 건너가지 못하고 다들 서 있다. 조금 전 폭
[우리문화신문=이규봉 교수] 지난 12년간 기다려왔던 오늘이다. 9시 45분 센터 앞에서 버스를 타고 테 아나우를 떠날 때는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차 두 대에 나누어 타고 30분도 채 안 걸려 25킬로미터 떨어진 선착장인 테 아나우 다운스에 도착했다. 배에 타고나니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10시 반에 떠난 배는 1시간 남짓 걸려 밀포드 트랙 입구에 도착했다. 오직 자연광과 태양전기 그리고 빗물 가는 도중 완벽한 색깔의 무지개가 우리를 반기듯 반짝 웃어주는 것 같았다. 전체 거리 53.5킬로미터의 밀포드 트랙의 시작을 알리는 표시판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발걸음을 뗐다. 출발부터 비를 맞은 것이 끝날 때까지 비를 맞으며 끝냈다. 길은 잘 나 있고 이정표도 잘 되어있다. 1킬로미터쯤 가니 글레이드 하우스(Glade House)가 나온다. 퀸스타운에서 출발하는 관광상품으로 온 사람들은 여기서 첫 밤을 보낸다고 한다. 클린턴 강을 따라 원시림 속에 잘 나 있는 폭 1미터 정도의 길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 내린 비로 물이 가운데 고여 있어 가장자리로 피해 다녔다. 1시간 반 정도 약 5킬로미터를 걸으니 클린턴 산장(Clinton Hut)이 나온다. 해발
[우리문화신문=이규봉 교수] 마음껏 잤다. 일어나 보니 해는 중천에 떠 있고 창 너머로 패러글라이더가 보인다. 베란다에 나가 보니 어제 케이블카 타고 오른 산 정상에서 출발한 패러글라이더가 여러 대 날라 다니고 있었다. 땅에서 사는 우리는 땅 위에서도 할 것이 많은 데 굳이 하늘과 물속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나는 무섭기도 하지만 하늘을 날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활동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는 것은 좋아한다. 멋진 경치를 보여주는 퀸스타운 고갯길 오늘 할 일은 퀸스타운 고개 산책길(Queenstown Hill Walkway)를 걷는 것이다. 돈 드는 활동은 나도 아내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걷는 것 외엔 별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지도를 보니 그 언덕은 숙소에서 아주 가까웠다. 체크아웃이 11시라 짐을 숙소 로비에 맡기고 길을 떠났다. 길을 따라 30분 남짓 걸으니 입구가 나온다. 길은 계속 올라가기만 한다. 오르면서 호수의 경치를 보니 어제 케이블 카 타고 올라가서 본 경치보다 훨씬 근사하다. 그러나 이것도 정상에서 보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된다. 날씨는 매우 맑아 산 아래 모든 전경이 매우 잘 보인다. 높디높으면서 경사도 매우 급한 산 아래에 짙은 청
[우리문화신문=이규봉 교수] 뉴질랜드를 떠난 지 12년 만에 아내와 함께 다시 찾았다. 2003년에서 2004년까지 남섬에 있는 크라이스트쳐어치(Christchurch)에서 1년 동안 살면서 주말과 방학을 이용해 거의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가고는 싶었지만 정보 부재로 못 가본 곳이 있었는데 뉴질랜드의 환경보존청(Department of Conservation)에서 관리하는 여섯 개의 탐방로(great walks) 가운데 가장 유명한 밀포드 트랙(Milford Track)이다. 이곳은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오고 하루 40명까지 입산을 허용하므로 적어도 6달 전에 예약을 해야 원하는 날에 맞추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3월이 아내 회갑이라 제2의 신혼여행을 겸하여 이르다고 생각했던 지난해 6월, 그것도 환경보존청 누리집(booking.doc.govt.nz)에서 예약했는데 이것도 좀 늦어 설 지난 지금에야 출발이 가능해 이제 떠난 것이다. 세 번째 예약 만에 성사되었는데 과거 두 번에 걸친 예약은 그때마다 집에 일이 생겨 취소해 취소수수료만 물었다. ‘땅콩회항’ 덕에 대한항공을 타다 버스를 타고 대전을 11시에 출발해 2시간 반 만에 인천공항에
[우리문화신문=이규봉 교수] 공항에 자전거 짐을 맡기고 숙소로 가다 이곳서 공항까지는 약 20킬로미터도 채 안 되었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등에 지고 공항에 도착하니 5시이다. 오늘의 주행은 130킬로미터나 되었다. 맡겼던 짐을 찾아 자전거를 포장한 후 다시 네 대의 자전거를 싼 짐을 보관소에 맡겼다. 공항에서 바로 모노레일을 타고 숙소가 있는 역까지 가는데 약 20분 걸렸다. 내일 다시 모노레일을 타고 와야 하므로 24시간 내 여러 번 탈 수 있는 승차권을 구입했다. 다음 날 8시에 숙소를 나와 모노레일을 타고 슈리성 공원에 갔다. 오키나와 전투로 모두 부서진 궁궐을 1992년에 복원하여 슈리성터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류큐왕국의 문화유산은 1609년 사쓰마군에 의해 약탈되었고 또 푼돈에 팔려 본토로 반출되었다. 그러한 문서는 관동대지진으로 소실되었다. 전투 후에는 미군들에 의해 대량으로 반출되기도 했다. 마치 일본에 합병된 조선의 모습이 생각나게 한다. 야만인이라며 오키나와인 한 쌍 전시, 1903년 오사카 박람회 인류관 오키나와 사람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치욕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1903년 오사카 박람회 인류관에 야만인이라며 오
[우리문화신문=이규봉 교수] 헤노꼬를 지나 329번을 타고 난조시로 들어와 다시 331번을 타고 해안을 따라 이토만시로 향했다. 아침나절 간헐적으로 계속 내리던 비는 오후가 돼서 그쳤다. 길가 아주 조그만 식당에서 점심을 했는데 평범한 음식이 우리 돈으로 만 원이 넘고 맥주도 5천 원이 넘는다. 확실히 오키나와의 물가는 우리나라보다는 비싸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우연히 들린 한 카페에서 또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카페는 고즈넉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조그만 나무집이었다. 치즈케이크와 커피를 주문했는데 커피는 자신이 알아서 몇 번이고 가져다 마실 수 있었다. 가까운 곳 탁자 위에 뜨거운 커피, 냉커피, 얼음, 그리고 몇 개의 차가 준비되어 있어 알아서 가져가면 되었다. 잠시 후 치즈케이크가 하얀 접시에 아주 예쁘게 담겨 나왔다. 값은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적절했다. 목마르던 차에 몇 잔이나 냉커피를 마셨는지 모르겠다. 일본은 왜 미국에 종속되기를 자처할까? 우리나라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고 기득권 세력이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파의 후손이니 기득권 유지를 위해 미국에 스스로 종속적인 나라가 되려고 한다고 억지로나마 이해할 수 있는데, 왜 일본은 스스로 굴
[우리문화신문=이규봉 교수]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같은 연합국인 소련의 남하에 대항해 일본을 친미국가로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 일본의 천황제는 이용가치가 매우 크다고 봤다. 그래서 히틀러 못지않은 A급 전범인 히로히또에게 면죄부를 주었고 상징적인 천황의 지위를 유지시켰다. 히로히또는 맥아더에게 미군의 일본 장기 주둔 보장을 약속했다. 또한 그때만 해도 국민당 정부인 중국이 친미국가이기에 미국의 세계전략으로 볼 때 일본을 비무장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미국은 일본에 상징적인 천황제와 전쟁포기를 규정한 평화헌법을 만들게 했다. 일본은 헌법상 평화국가였지만 오키나와는 예외였다. 한국전쟁으로 미국은 전략상 공격기지와 후방지원기지로 일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오키나와를 세계전략에 있어 중요한 군사요충지로 생각했다. 그래서 1952년 4월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일본은 독립시켰지만 오키나와는 1972년 5월 15일 일본에 반환할 때까지 군사식민지로 삼았고 이후에도 미군은 항구적으로 일본에 주둔을 하고 있다. 마치 쿠바를 반식민지로 삼고 강제로 관타나모를 빼앗아 미군기지를 설치해 지금까지 주둔하고 있는 것과 같다. 미군, 헤이그협약을 위반하며 토지 강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