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제 어머니라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아닙니다. 어머니는 정말 여장부셨습니다. 중국에서 아기를 업은 채 말을 타고 다니며 독립문서를 전달하셨다고 하니 지금 생각해도 여자의 몸으로 어찌 그러한 일을 하셨을까 싶습니다.” 오항선(吳恒善, 1910.10.3.~ 2006.8.5.) 애국지사의 아드님이신 권혁우(74살) 지회장 (광복회 부산 남부 연합지회)은 기자를 만나자 마자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실타래 풀 듯 풀어 놓았다. 기자는 지난 10일(금) 오후, 오항선 지사의 아드님을 뵙고 이야기를 듣고자 부산 남구 못골로(대연동)에 있는 광복회 연합지회 사무실을 찾았다. “어머님(오항선)은 98살(실제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만,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속옷을 빨아 입을 정도로 정정하셨습니다. 몸도 건강하셨지만 정신은 더욱 또렷하셨지요. 저희들에게 자주 당신이 독립운동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 주셨기에 마치 제가 독립운동을 한 것처럼 그 당시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이는 권혁우 지회장 곁에서 부인 이용순(68살) 씨가 시어머님(오항선)에 대해 들려준 이야기다. 사이좋은 고부간의 지난 시간들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오항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선배님 안녕하세요? 저는 선배님의 모교 숭실대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후배 송영빈입니다. 2017년 올해 숭실대학교가 120주년을 맞이한 것을 알고계신지요? 숭실대학교가 1897년 개교한 이래 선배님과 같은 수많은 독립 운동가를 배출하였고 훌륭한 선배님들이 우리나라, 우리민족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워주셨기에 올해 우리학교가 120주년을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배님이 아니셨다면 저는 우리학교에 다닐 수 없었겠지요.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시도 아직 독립이 안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올해 숭실대학교가 120주년을 맞이하는 것처럼 2년 뒤에는 선배님께서 피땀 흘려 일구셨던 임시정부가 100주년을 맞이한다고 합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사실 얼마 전까진 저는 선배님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120주년을 맞이하는 모교와 관련하여 친구들과 숭실대학교의 역사프로젝트를 준비하며 선배님을 비롯한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선배님들에 대해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선배님도 아시다시피 저희 학교에는 매산 김양선 선생님이 평생 동안 수집하신 유물이 전시된 한국 기독교 박물관이 있습니다. 저는 박물관 한편에 전시되어있는 숭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추운 겨울에는 온천이 그만이다. 화산활동이 많은 일본은 그 만큼 온천도 많다. 겨울로 접어들면서부터 부쩍 여행사라든가 호텔 업계를 중심으로 각 지역의 선호도 높은 인기 온천을 앞 다투어 소개하는 코너가 많다. 특히 2016년부터는 일본 온천의 활성화를 위하여 일본정부의 환경성(環境省)이 직접 나섰다. 환경성에서는 전국 지자체의 협력을 얻어 ‘온천과 자연을 살리는 지역의 매력 향상’이라는 주제로 ‘2016 온천 총선거’를 실시했다. 전국 단위의 행사로 열린 이번 행사는 전국적으로 1,434개소의 온천이 참여하여 환경대신상(우리로 치면 환경부장관상), 부문별상, 미디어상 분야로 나눠 인기 온천을 뽑았다. 말 그대로 ‘우리지역에서는 우리 온천이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진 쟁쟁한 온천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2016년 일본 최고의 온천으로 뽑혀 환경대신상을 수상한 온천은 시마네현 마츠에시(島根県 松江市)의 다마즈쿠리온천(玉造溫泉)이다. 다마즈쿠리온천의 역사는 나라시대(710~794)까지 거슬러 올라가며。《이즈모국풍토기(出雲国風土記, 733년 완성)》,에도 나올 만큼 역사가 깊다. 다마즈쿠리온천은 숙박과 식사 2끼를 합쳐 1박당 1인요금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왜적에게 빼앗긴 나라 되찾기 위하여 왼팔과 오른쪽 눈도 잃었노라. 일본은 망하고 해방되었으나 남북·좌우익으로 갈려 인민군의 총에 간다마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여 영원하라” 이는 순국열사 윤형숙(이명 윤안정엽, 윤혈녀, 1900.9.13.~1950.9.28.)의 무덤 묘비석에 새겨진 글귀다. 지난 17일(금) 낮 2시에 찾은 전남 여수시 화양면 창무리 마을 입구에 있는 윤형숙 열사의 무덤은 2차선 도로 옆 자신이 태어난 고향 마을을 내려다보는 양지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내려간 기자에게 이날 윤형숙 열사의 무덤을 안내한 이는 윤 열사의 조카 윤치홍 (77살) 씨 내외였다. 윤치홍 씨는 윤형숙 열사의 작은 아버지 윤자환(尹滋換,1896 ~ 1949, 2003년 대통령표창 서훈)의 손자로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탓에 감기 몸살 중이라 부인(72살)이 운전하는 차로 KTX 여천역까지 마중 나와 함께 윤형숙 열사의 유적지를 안내해주었다. “고모님(윤형숙 열사)의 무덤은 원래 이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1950년 9월 28일, 인민군에 의해 학살당한 채 저기 보이는 고향(창무리) 마을 뒷산에 가매장되어 있었지요. 그러다가 10년 뒤
[우리문화신문=전남 순천 이윤옥기자] “어머니는 16살 때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고)에 입학한 이듬해 소녀회를 결성하여 독립운동에 뛰어든 일을 평생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지요.” 어제(16일) 김귀선 애국지사(1913.12.19.~ 2005.1.16.)의 큰아드님이 사는 전남 순천의 한 아파트를 찾았을 때 김윤수(77살) 씨가 한 말이다. 그는 이어서 “어머니는 92살로 돌아가시기 전 2개월 정도 치매를 앓으셨는데, 그때 날마다 독립만세를 부르셨으며, 일본 순사가 잡으러 온다고 하시면서 마루 밑으로 들어가시곤 했습니다.”라는 말을 하며 울컥 눈물을 흘렸다. 순간 기자도 가슴이 뭉클했다. 얼마나 가슴 속의 응어리가 컸으면 치매 상태에서 독립만세를 외쳤으며, 얼마나 일제 순사가 무서웠으면 마루 밑으로 숨는 행동을 했을까? 시대의 아픔을 겪지 않은 기자로서는 그저 가슴이 멍멍할 뿐이다. 큰아드님 김윤수 씨는 김귀선 지사의 판결문과 공판에 회부된 소녀회 조직원 11명의 사진이 실린 동아일보 기사(1930.9.30.), 전남여자고등학교의 명예졸업장(1972.5.25.), 건국포장증서(1993.4.13.)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거리는 온통 은세계다. 들에도 산에도 나뭇가지에도 온통 흰 눈 세상인 나가노에 시마자키 도송(島崎藤村, 1872~ 1943)은 지인의 초대로 여행을 한다. 때는 크리마스 무렵이다. 나가노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일본의 지붕 나가노 지방은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다. 시카자키 도송은 그곳의 측후소에서 기사로 일하는 지인의 초대로 그곳에 머물면서 눈 덮인 마을과 그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스케치하듯 그려나간다. 물론 펜으로 말이다. 하루에 두 번이나 눈을 치워도 쌓이는 눈은 어쩔 수가 없다. 마을사람들의 일과는 마을 안팎에 쌓인 눈을 치우는 일이다. 여기저기서 눈을 쓸 때 휘날리는 눈보라가 마치 자욱한 안개 같다. 마을이 온통 흰 안개로 뒤덮이는 저녁 무렵, 작가는 방안에서 밖의 움직임에 귀를 종긋한다. 다각다각다각...일본의 나막신인 게다 발자국 소리가 나서 자신의 집에 찾아오는 손님인가 하고 예의 주시해보면 한갓 스쳐지나가는 행인들의 발자국 소리다. 작품에 나오는 짚신, 게다(일본 나막신), 마부, 마차, 호롱불, 측후소, 기차... 같은 낱말들이 정겹다. ‘치쿠만강의 스케치’를 읽고 있자면 메이지시대(1868~1912)부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국운이 다하였으며 성인의 도가 끊어져 살아갈 마음이 없다. 일본한테 나라를 빼앗긴 것은 너무나 분통하고 부끄럽고 또 싫어서 죽을 수 밖에 없다.” 이는 국치일을 당하자 순국 자결한 이근주 지사가 자결에 앞서 한 말이다.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이근주(1860~1910)지사는 나라를 잃은 통분을 순국 자결로 일제에 항의했다. 충남 홍성이 고향인 이근주 지사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에 항거하여 일어난 홍주의병에 참여하였으며, 1910년 경술국치의 비보를 접하자 자결로 항거했다. 이근주 지사는 김복한, 안병찬 등과 함께 홍주의병에 참가하였는데 김복한 등 주도자들이 체포된 뒤, 조의현 등과 재기를 시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때 울분에 쌓인 선생은 천식과 다리가 마비되는 병을 얻고 말았다. 이근주 지사는 여러 항일 사적을 편찬하였는데 홍주의병 과정을 기록한 『을미록』, 나라가 매군매국(賣君賣國)의 무리에 의해 더럽혀짐을 한탄한 『절의가』, 민영환 선생의 순국을 기린 <혈죽시> 등 여러 항일 기록들을 남겼다. 이근주 지사는 50살이 되던 해인 1910년 9월, 큰형의 환갑이 지난 뒤 부모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제(9일) 항일여성독립운동가 김반수 지사가 다니던 부산 좌천동에 있는 옛 부산진일신여학교(현, 동래여고 전신)를 찾았다. 지금은 기념관으로 쓰고 있는 이 학교는 경사진 높은 언덕에 있었는데 밑에서 걸어 올라가기가 힘에 부칠 정도로 가파른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126년의 역사를 지닌 부산진교회와 마주보고 있는 아담한 건물의 옛 부산진일신여학교(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5호) 마당에 서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했다. 경사진 언덕 밑에서 바라다볼 때 우뚝 솟아 보이는 2층짜리 건물은 막상 올라가보니 외로운 섬처럼 달랑 건물 하나만 남아 있었다. 예전에 학생들이 뛰어 놀았을 운동장도 있었을 법한데 모두 주택과 교회 부지로 바뀌어 버렸고 지금은 쓸쓸한 건물 한 채 앞에 ‘부산진일신여학교 3.1운동 만세시위지’라는 팻말 하나만이 세워져 있다. 마당에 느티나무 고목 한그루는 당시 소녀들의 함성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낙엽을 떨군 채 서있었다. 마당이 하도 적어 옛 일신학교전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기념관을 찾은 시각이 낮 12시였는데 아뿔사, 점심시간이라 1시까지 문을 닫아버리는 바람에 근처에서 무료한 시간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지금이라도 배우고 싶은 사람을 위해 야간중학교가 있습니다.” 이는 일본 문부과학성이 만든 광고 문구다. 이 광고 문안을 좀 더 들여다보면, “수업은 무상입니다. 주 5일간 수업이 있습니다. 교원 자격증을 갖고 있는 공립중학교 선생님이 가르쳐 줍니다. 모든 과정을 수료하면 중학교 졸업장을 줍니다.“라는 친절한 안내문이 적혀 있다. 지지통신(時事通信)은 7일자로 문부과학성의 공립야간중학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17년 7월 1일 현재, 일본 전국에 31곳의 야간중학이 있으며 앞으로 야간중학을 설치하려고 하는 지자체는 80곳에 이른다고 한다. 일본의 야간중학은 국가가 운영하는 공립학교로 전후(1945) 혼란기에 의무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비롯하여 외국인이나 또는 학교에 다니다 도중하차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의 기회를 주고자 만든 학교이다. 비록 야간중학이라고는 하지만 주 5일 등교하여 국어, 수학, 사회, 이과, 영어 등 정규 학생들 못지않은 교육을 받게 되는 학생들의 입학 나이는 따로 정하지 않고 있다. 나이가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못 다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국가가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한때 한국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오늘을 사는 많은 일본의 젊은이들은 식민지시대의 갈등을 표현한 윤동주 시인의 작품을 모른다. 이 심포지엄을 통해 일본의 젊은이들이 윤동주 시인이 살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 사람들이 안고 있던 고뇌와 고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길 바란다. 동시에 윤동주 시인을 아는 세대가 그들의 기억을 다음 세대의 젊은이들에게 전승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는 오는 11월 23일 낮 12시부터 일본 도쿄 릿쿄대학 이케부쿠로 캠퍼스에서 열리는 시인 윤동주 탄생 100주년기념(詩人尹東柱の生誕100周年記念) 행사로 마련한 “새로운 과거로의 여행: 다큐멘타리와 무대에서 만나는 윤동주(新しい過去」への旅: ドキュメンタリーと舞台で出会う尹東柱)” 에 주최측이 기대하고 있는 야심찬 목표다. 릿쿄대학의 조선인 유학생이었던 윤동주는 일본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한국 시인이다. 이번에 릿쿄대학 이문화커뮤니케이션학부에서는 한국의 연세대학윤동주기념사업회, 서울예술단과 공동 주최로 시인 윤동주탄생100주년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을 갖는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시인 윤동주의 삶을 그린 영화, 뮤지컬 등다양한 쟝르의 예술작품을 통해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그의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