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처음으로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이쯤 되면 <아멘>하고 싶어진다. 이 시는 한국 최고의 시인이라는 미당 서정주(1915~2000) 의 ‘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처음으로의>'의 일부다. 이 시를 쓴 이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훌륭한(?) 미당 시인의 시가 아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정말 미당의 시가 맞나?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맞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미당 서정주의 시가 맞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어떤 일을 한 사람인지 198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잘 모른다. 37살 이후 세대라고나 할까? 그런 사람들을 위해 미당은 ‘전두환 대통령을 위한 찬양시’를 썼는가? 요즘 천만관객을 동원한 광주항쟁을 그린 영화 <택시운전사>의 주인공이 가가 막힐 일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유사이래 최고로 극찬한 대한민국 최고(?)의 시
[우리문화신문=아오모리 이윤옥기자] 일본의 지역밀착형 수퍼로 미치노에키(道の駅)라는 곳이 있다. 미치노에키는 단순한 지역밀착형이라기 보다 생산자들이 중간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와 직접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주로 국도변에 자리한 미치노에키는 승용차 고객을 위한 휴식공간이자 산지 직송의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으로 주민들에게 인기가 높다. 지난 8월 11일 아오모리 쓰가루(青森県南津軽郡田舎館村大字高樋字八幡10)에 있는 미치노에키에 들렸다. 마침 이 날은 넓은 주차장 마당에 벼룩시장(프리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지역주민들이 쓰지 않는 물건을 가지고 나와 판매하는 이곳 벼룩시장은 여름철 기간 내내 열린다고한다. 자신을 올해 82살이라고 밝힌 나카무라 할머니는 손수 안입는 기모노천으로 만든 손가방 등을 만들어 가지고 나와 팔고 있었다. 만든 물건들이 정교하고 디자인도 꽤 괜찮아 물건을 요모조모 뜯어보고 있자니 기자에게 물건 하나를 사달라고 하여 1천엔을 주고 손가방 하나를 샀다. 할머니의 정성이 느껴지는 이 손가방은 일본 여행내내 요긴하게 썼다. 벼룩시장도 열려 볼거리가 풍부한 지역밀착형 수퍼 미치노에키(道の駅)는 2017년 4월 현재 일
[우리문화신문= 아오모리 이윤옥 기자] “한잔 마시면 3년, 2잔 마시면 6년, 3잔 마시면 영원히 죽지 않고 산다(1杯飲むと3年長生きし、2杯飲むと6年、3杯飲むと死ぬまで生きる)”는 온천수가 있다. 믿거나 말거나 재미삼아(?) 관광객을 부르기 위해서이겠지만 그다지 불쾌하지는 않다. 불쾌는커녕 3잔 아니라 더 마시고 싶어지는 이 온천수는 아오모리현 핫코다산(八甲田山) 중턱에 있다. 핫코다산(八甲田山)의 가야고원(萱野高原)에 있는 이 온천수는 우리네 휴게소 같은 곳에 있는 설치되어 있는 마시는 물로 관광객을 불러 모으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8월의 신록이 아름다운 이곳에는 가야노찻집(萱野茶屋), 가야노찻집(カヤ野茶屋), 장수찻집(長生きの茶屋), 이렇게 세 곳이 기념품을 겸한 차와 우동 등을 팔고 있었다. 지난 8월 6일부터 9일까지 아오모리 네부타마츠리에 참석하기 위해아오모리를 방문한 한국의 인천관동갤러리 (관장 도다이쿠코)를 중심으로 회원 20여명은 네부타마츠리 참관 이후 8일, 쓰가루(津軽)에 있는전통공예관을 가기 위해 핫코다산을 넘다가 이 휴게소에 잠시 들렸다. 이날 한 사람도 거르지 않고 3잔 씩 이 유명한 장수 물을 마셨으니 분명 불로장수할 것
[우리문화신문=아오모리 이윤옥 기자] 그 찻집은 아오모리의 한적한 절 경내에 소박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찻집이라고는 했지만 언뜻보아 두어평이 채 안되는 판자집이 찻집 쇼우후테이(松楓亭)의 전부다. 지인 요우코(陽子) 씨는 도와다코(十和田湖)로 가는 길목에 있는 이 찻집을 나를 위해 일부러 이곳에 들렸다. 정말 지도에도 나오지 않을 법한 한적한 산골 숲속에는 작고 아담한 절 죠우센지(浄仙寺)가 있었고 찻집은 이 절 경내 한쪽에 오두막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요우코 씨는 찻집 문을 빠끔히 열고 들어갔다. 낡은 테이블 두어 개만이 정물화 속의 그림처럼 놓여있었다. 그는 나를 낡은 의자에 앉혀놓고는 “주지스님을 불러야겠다.”며 다시 밖으로 나가더니 이내 경내에서 풀을 뽑고 있던 작업복 차림의 할아버지 한 분을 모시고 들어온다. 이 절의 주지스님이라고 소개하면서 한국에서 찾아온 귀한 손님이라고 기자를 소개하자 주지스님은 두 손을 모으고 합장을 한다. 그리고는 이내 찻집 테이블 안쪽으로 들어간다. 주방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작은 부엌에서 딸가닥거리며 주지스님은 우리를 위해 커피를 만들고 있다. “스님 잘 계셨지요?” “아무렴요, 잘 있었지요.” “요새 손님은 좀 있
[우리문화신문= 시즈오카 시모다 이윤옥기자] 시로(志朗, 뜻을 가지고 밝게 살아가라고 주인이 붙인 이름)라는 이름의 백구(흰개)는 이즈반도(伊豆半島)에서는 조금 유명세를 타고 있는 개다. 백구가 유명하게 된 것은 백구를 5번째 식구로 받아들인 맘씨고운 이토 노리코(62살) 씨 덕분이다. 어제(17일) 노리코 씨는 마츠자케에서 시모다 집으로 돌아오는 산모퉁이 길에 승용차를 세우고 1년 반 전 백구가 버려진 개로 살고 있던 자리를 기자에게 설명해주었다. “여기서 백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두커니 앉아 있었지요. 사람들 말로는 5년 전부터 백구가 이곳 요코가와 국도변의 작은 주차장에 나타났다고 하더라구요.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날마다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주민들이 보고 불쌍하여 먹이를 갖다주기 시작했다고 해요. 추운 겨울에도 오로지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개가 불쌍하여 누군가 보건소에 연락해서 백구를 보호해달라는 민원도 냈지만 잡으려고 하면 도망치고 나타나지 않아 백구는 5년 정도 들개 생활을 한 거에요.” 노리코 씨가 이 백구를 처음 본 것은 2015년 4월이었다. 이미 노리코 씨는 버려진 개(유기견)를4마리나 키우고 있는 터라 더 이상 유기견을 받아
[우리문화신문= 시즈오카 아라리 이윤옥 기자] 아라리항(安良里港)으로 가는 길은 마치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듯 굽이굽이 굽은 산길을 달려야했다. 이즈반도(伊豆半島)의 시모다(下田)에서 아라리항까지는 승용차로 1시간 남짓한 거리였지만 2차선의 좁은 길인데다가 산길이라 속력을 내지 못했다. 동행한 지인 이토 노리코(伊東典子, 62살)씨는 아라리항과 고대한국이 관련된 곳이라고 하자 한국의 ‘아리랑 노래’와 비슷한 땅이름이라고 하면서 아리랑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리코 씨는 과거 한국어를 배운적이 있는데 그때 아리랑 노래를 배웠다며 제법 가사를 외우고 있었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이즈에서 30년을 살고 있는 노리코 씨는 아라리항구 쪽에는 여러번 와봤지만 이곳의 유래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이날 안내는 아라리항 가까이에 사는 야마모토 구미코(山本 久美子, 68살)씨가 해 주기로했다. 하필이면 날씨가 궂어 약간 굵은 빗줄기 속을 달려 구미코 씨와의 약속장소인 아라리항이 건너다 보이는 니시이즈쵸 중앙공민관(西伊豆町 中央公民館)에 도착한 시간은 8월 16일 오전 11시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구미코 씨는 이곳 공민관 2층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로 활동하는
[우리문화신문= 일본 고가네자키이윤옥 기자] 어쩌면 그렇게 말머리를 쏙 빼닮았을까?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위의 모습이 말모양을 속 빼닮았다고해서 우마록크(馬ロック‘rock’)라고 이름 붙은 이 말바위는 일본 이즈반도(伊豆半島)에 있는 일본기암백경(日本奇巖百景)의 한 곳이다. 이 말바위의 정확한 위치는 스루가만(駿河湾)에 면한 니시이즈(西伊豆町)의 고가네자키공원(黄金崎公園)아래 절벽에 자리하고 있다. 이 말바위는 2014년 이 지역 상공회청년부가 ‘도시부흥운동’의 한 고리로 이름을 공모하여 붙인 이름이다. 말바위가 있는 고가네자키공원에서는 날씨가 좋은 날에는 후지산이 보일정도로 전망이 좋은 곳이다. 어제 (15일) 오후 이곳을 찾았을 때는 약간 날이 흐려서 후지산은 보이지 않았지만 탁트인 스루가만(駿河湾)의 푸른 바다와 말바위의 경치가 일본기암백경(日本奇巖百景)에 뽑히고도 남을 만큼 경이로웠다. 이곳에는 말바위 말고도 해안선을 따라 고릴라, 코끼리, 사자 등 진기한 모습의 바위가 많이 있어 앞으로 이 바위에 이름을 붙이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올 듯하다. 조금 오래된 자료지만 2014년도에는 말바위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9만 8000명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양력이 일상생활의 기준이 되고 있는 일본에서는 명절도 양력으로 쇤다. 8월 15일은 일본의 한가위인 오봉(お盆)으로 지난 8월 13일부터 16일까지 일본은 고향을 찾는 이들로 전국이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북적거렸다. 고향을 찾지 않는 사람들은 오봉기간을 이용해 산과 바다로 놀러가는 바람에 붐비는 도로는 더욱 붐빈다. 시즈오카현의 시모다(下田)는 인구 2만 5천 명 정도의 작은 도시다. 도쿄에서 승용차로 4시간 거리에 있는 시모다는 귀성객으로 붐비는 게 아니라 해수욕장이 있어 오봉 연휴를 이용해서 놀러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지난 12일부터 지인인 노리코 씨 집에 묵고 있는 글쓴이는 일본의 오봉 기간의 교통 정체를 몸으로 실감하고 있다. 집 근처에 해수욕장이 있는 관계로 도쿄로 향하는 길이라는 길은 모두 막혀버려 생활필수품을 파는 슈퍼까지 차로 10분 거리 정도 걸리던 도로가 1시간 씩 걸릴 정도로 정체가 심하다. 지인인 노리코 씨는 올해 62살로 89살의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데 오봉이라고해서 특별히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고 오봉과 관련된 음식 같은 것도 만들어 먹지 않았다. 하지만 설날(양력 1월 1일, 오쇼가츠)에는 오세치
[우리문화신문= 시즈오카 이윤옥 기자] 현재 시즈오카현 이토시(伊東市)에 살고있는 이나바 스스무 (稻葉進, 88살)씨는 1945년 8월 6일 원폭지인 히로시마의 구레항공대(吳航空隊)소속 대원이었다. 원자폭탄이 떨어진 그날, 이나바 씨는 구레항공대로부터 30미터 떨어진 하늘에서 새빨갛게 솟아오르는 불기둥을 보았다. 16살 소년의 눈에 비친 원폭 현장은 평생 “비참한 전쟁을 두 번 다시 일으켜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이토신문(伊東新聞) 8월 14일치 1면 “종전(終戰) 72년” 특집에서 밝혔다. 그런가하면 어제 (13일) 오전 9시 시즈오카텔레비젼(SBS)에서는 “종전(終戰) 72년”을 맞아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전문가들을 초대해서 종전 72년이 갖는 의미를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제2차세계대전에서 참패한 일본은 패전 72년을 맞아 텔레비전과 방송에서 그날의 기억을 더듬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지난 8월 12일부터 이즈반도의 시모다(下田)에 와 있는 기자는 한국의 8.15 광복절을 앞두고 이곳 방송과 신문 등에 눈과 귀를 기울이고 있다. 한국은 광복을 맞이했지만 이곳은 패전(敗戰, 지금은 전쟁이 끝났다는 뜻으로
[우리문화신문= 아오모리 이윤옥기자] 일본 도호쿠지방(東北地方)인 아오모리현의 네부타마츠리(8월1일~7일)를 참가하고 찾은 곳은 신라신사(新羅神社)였다. 엇? 도호쿠지방에 웬 신라신사? 라고 할지 모르나 이곳에는 4곳의 신라신사가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3개의 신라신사와 1개의 합사(여러 신사를 하나로 모은 곳)가 있다. 규모가 가장 큰 곳은 하치노헤시 쵸우자산(八戸市 長者山)언덕에 자리한 신라신사요,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곳은 미노헤 난부지역(三戸郡南部町)의 신라신사와, 아름다운 호수 도와다코(十和田湖) 주변에 있는 신라신사로 창건 1,100여년에 이른다. 가장 규모가 큰 쵸우자산 신라신사는 《하치노헤번일기(八戸藩日記)》에 따르면 1678년 이 지역의 2대 번주인 난부나오사마(南部直政, 1661~1699 )가 이 지역사람들의 오곡풍요와 무병장수를 위해 5천평의 대지에 신라신사를 세웠다고 한다. 난부씨(南部氏)가 세운 이 신라신사는 야마나시현(山梨県)의 신라신사와 시가현(滋賀県)의 미이데라 신라선신당(三井寺 新羅善神堂)과 연관이 있는 신사라고 전한다. 아오모리(青森)라는 곳은 땅이름이 말해주듯 ‘푸른 숲, 푸른 산’으로 이뤄진 도시답게 관동지방과 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