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오키나와전(沖縄戦) 전몰자 유골의 DNA 감정에 대해서 후생성은 빠르면 7월부터 민간인 유족도 적용하여 신청을 받는다. 지금까지 사실상 전몰자 DNA는 군인, 군속 유족만 해당되었다. 민간인 유족 감정 참가에 대해서는 오키나와전 유골수습 봉사단인 '가마후야'가 7월에 후생성에 집단 신청할 예정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후생성은 신청방법 등을 각 현(県)과 조정을 추진 중에 있다." 이는 오키나와에 있는 류큐신보(琉球新報)가 6월 20일 보도한 기사다. 지금 한국에서는 저가항공사의 오키나와 취항으로 여행상품이 많이 생겨 손쉽게 찾아가는 관광지가 되었지만 이곳은 태평양전쟁 때 군국주의 광풍의 회오리바람이 거셌던 곳이다. 특히 한국인 강제 징용자들이 이곳 오키나와 전투에서 1만여 명 희생되었지만 정확한 조사는 아직도 이뤄지고 있지 않다. 1945년 4월부터 3달 동안 이어진 오키나와전투에서 미군 약 1만 5천명, 일본군 6만 5000여명을 비롯하여 일본쪽 민간인 사망자 20만여 명이 나왔는데 이렇게 민간인 희생자가 컸던 것은 일본제국주의의 이른바 죽더라도 결코 항복하지 않는다는 ‘옥쇄작전’으로 희생된 이들이 더욱 많았던 것이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경교장이 어디에 있는 여관입니까? ” 대한민국임시정부(이하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인 경교장을 1996년에 '철거 예정'이라는 충격적 소식을 들은 김인수 대표 (경교장복원범민족추진위원회,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대표)는 이를 저지하기 위한 시민들의 서명을 받기 위해 길거리로 나섰을 때 시민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했다. 기자는 지난 14일 (수) 오후 4시, 백범이 서거한 집무실 옆, 국무회의가 열리던 방에서 김인수 대표를 만났다. 종로구 새문안로 29 (평동)에 자리하고 있는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자, 최초의 남북협상 산실이며, 백범 암살의 현장이기도 한 역사적인 공간 ‘경교장(京橋莊)’은 김 대표가 처음 이 일에 매달리기 시작한 22년전 보다는 시민들에게 많이 알려졌지만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숨을 짓는다. 국정 농단 사건의 중심에 있는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는 선뜻 ‘말값’으로 뭉칫돈을 건넨 삼성이 운영하는 강북삼성병원은 1996년, 생각하기에도 소름이 끼치는 한 계획서를 만들었다. 다름 아닌 지금의 경교장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17층 규모의 병원을 신축하려는 계획서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산 호수공원을 산책하다가 월파정 정자 주변에 심어놓은 '수호초'라는 꽃과 마주쳤다. 아직 꽃은 피지 않고 잎새만 무성한 수호초는 관상용으로 즐겨 심어 어딜 가나 흔히 눈에 띄는 풀꽃이다. 친절한 표지판에는 “나무 그늘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높이 30센티 내외로 자란다. 관상용으로 심으며 4~5월에 줄기 끝에 흰색 꽃 이삭이 달린다.”라고 적혀있다. 그런데 요즘 오랫동안 가문 탓인지 며칠전 만난 이 꽃은 꽃은 커녕 잎만 무성했다.그런데 왜 하필 이름이 수호초일까? “회양목과의 상록 여러해살이풀. 줄기가 옆으로 뻗다가 곧게 서며, 잎은 어긋나고 층으로 모여 나며, 사각형의 도란형이다. 4~5월에 꽃잎이 없는 흰 꽃이 줄기 끝에 수상(穗狀)화서로 피고 열매는 달걀꼴의 핵과(核果)이다. 일본이 원산지로 나무 그늘에서 자란다. (Pachysandra terminalis)” 꽃 풀이만 보고는 그 모양이 상상이 안 간다. 우리나라 국어사전의 꽃 풀이는 설명만으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풀이를 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특히 도란형, 수상화서, 핵과...와 같은 어려운 풀이는 ‘식물용어’ 상당수를 일본 사전에서 베껴쓰기 때문에 그렇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님은 1919년 통진교회 전도사로 월곶지역 3.1만세 사건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루셨습니다. 민족해방을 몸으로 실천한 님의 민족혼을 기리기 위해 이 비를 만듭니다. 2003년 8.15 광복절 푸른언덕모임” 이는 김포시 월곶면 고막리, 푸른언덕교회 입구에 있는 이살눔(이살눔은 국가보훈처의 서훈 이름이고 다른 이름은 이경덕이다, 1886. 8. 7 ~ 1948. 8.13) 애국지사를 추모하는 기념비에 적힌 글이다. 이살눔 지사를 기리는 기념비를 보기 위해 기자는 어제(13일) 고막리 푸른언덕교회를 찾아갔다. 작은 규모의 시골 교회당은 신자가 많아 보이지 않았는데 마당에 차를 세우고 나니 조화자 전도사 (59살)가 찾아온 용건을 묻는다. 이살눔 지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고 하니까 반가운 얼굴로 차 한 잔을 내오며 거의 찾지 않는 추모비를 어떻게 알고 찾아 왔느냐며 반긴다. “이 교회는 이살눔 지사님의 며느리인 강동재 여사께서 다니시던 교회입니다만 5년 전 80살로 돌아가셔서 지금은 그 집안에 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 이살눔 지사님은 이곳 월곶의 3·1만세운동의 주동자이셨습니다. 그러한 활동에 대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예순 살에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하여 82살에 게임 앱을 개발한 할머니, 이른바 컴퓨터 할머니로 알려진 일본인 와카미야 마사코(若宮正子, 82살) 씨는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일약 스타가 되어가고 있다. 일본에는 아흔 살에 마라톤 현역이 있는가하면 아흔 살 시인이 있고 여든 살에 컴퓨터 게임 앱을 만드는 등 고령의 파워가 만만치 않다. 히나단이라는 인형놀이를 게임 앱으로 개발한 와카미야 마사코 씨는 평생 다니던 은행을 퇴직하고 늙은 노모 간병을 위해 집안에 들어앉았다. 어느 날 집에 있으면서도 컴퓨터가 있으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컴퓨터 한 대를 산 것이 컴퓨터와의 인연이다. 와카야미야 씨가 예순 살 먹던 해로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일이다. 그는 난생 처음 접한 컴퓨터를 거의 독학으로 익혀나갔다. 한 걸음 한 걸음 타자치는 법부터 익혀 나간 그는 컴퓨터로 그림 그리는 법도 익혔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 정도 컴퓨터에 익숙해지자 노인층을 대상으로 하는 ‘멜로우 클럽’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인터넷과 IT 세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컴퓨터의 매력에 빠져든 와카미야 씨는 독자적인 아이디어로 컴퓨터 활용법에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용지 크기의 흑백 사진 한 장에 눈이 사로잡혔다. 형무소 담장에 전시되어 있는 순국선열들의 사진 중에 하나. 처음 들어본 낯선 이름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한 참을 서 있었다. 교과서에서 배우지도 어떤 책에서 읽어본 적도 없는 이름, 강우규 의사. 의사(義士)라고 하면 의로운 일을 한 선비라는 뜻이 아닌가?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처럼 그의 이름 뒤에도 의사라는 존칭이 붙어있었다. “65세의 나이로 서울역(당시 남대문역)에서 일본 총독 사이토에게 폭탄을 투척했다가 서대문형무소 단두대에서 처형당함.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됨”이라는 간단한 설명을 읽고 가슴이 멍해졌다. 힘없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역력한 사진 앞에서 뭔가에 사로잡힌 듯 한참을 생각에 파묻혔던 것이 5년 전의 일이다.‘어째서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만큼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총총히 독립공원을 산책했던 기억. 그리고, 그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고 도서관과 인터넷을 검색해보아도 그리 많은 자료를 모을 수가 없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 구절,“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장덕준(秋松 張德俊)은 한국 최초의 순직기자였다. 한국신문편집인협회는 1964년 4월 30일 유공언론인 기념사업의 하나로 언론 발전에 공이 많은 언론인 다섯 분을 선정하여 신문회관에 초상화를 봉안하여 언론인들의 귀감이 되도록 하였다. 편집인협회는 앞서 ‘유공언론인 기념사업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한국 언론사에서 뚜렷한 공적을 남긴 언론인을 선정한다는 원칙을 정했다. 선정위원은 강영수, 곽복산, 김종규, 최석채, 천관우였다. 위원들은 심의 끝에 서재필(1864~1950, 독립신문 창간), 장지연(1864~1921, 황성신문 사장, 시일야방성대곡 집필), 양기탁(1871~1938, 대한매일신보 총무), 장덕준(1892~1920, 훈춘에서 독립군 취재 도중 일본군에 피살), 최병우(1924~1958, 대만 해협에서 취재도중 순직) 다섯 분을 선정하였다. 선정된 유공 언론인은 화가들에게 의뢰하여 제작한 초상화를 신문회관 강당에 봉안하였다. 장덕준의 초상화는 김인승(金仁承) 화백이 그렸다. 다섯 유공 언론인의 초상화는 한국신문회관 강당에 봉안되었다가 신문회관이 프레스센터로 개축된 뒤 현재는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클럽에 걸려 있다. 세월이 흐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수학여행은 학창시절을 가진 사람에게는 누구나 설레는 말일 것이다. 수도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기자의 경우 60년대 초등학교 시절에는 서울로, 70년대 초 중학교 시절에는 천년 고도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처럼 단체 버스를 생각할 수 없던 시절이라 수학여행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철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느려터진 완행열차였지만 급우들과 함께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차창 밖에 펼쳐진 낯선 풍경들에 가슴 떨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러한 수학여행의 추억을 살펴볼 수 있는 뜻 깊은 엽서전이 인천관동갤러리(관장 도다 이쿠코)에서 열리고 있다. 그것도 80년 전인 1938년 간도성 용정(현 중국 길림성 연변자치주 용정시)의 동흥중학교 졸업 앨범에 나와 있는 수학여행 코스를 따라가는 풍경과 학생들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전시인 만큼 호기심을 가득 안고 지난 4일 일요일 오전 전시장을 찾았다. 아직 관람객이 오지 않는 한가한 시간에 기자는 “80년 전 수학여행 -경성에서 하얼빈까지-” 전시에 소개된 120여장의 엽서를 한 장 한 장 꼼꼼히 살펴보았다. 간도 용정이라면 윤동주 시인이 태어난 곳이요, 동흥중학이라면 몇 해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어제는 제 62회 현충일이었다. ‘현충(顯忠)’을《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충렬을 높이 드러냄. 또는 그 충렬”이라는 다소 어려운 내용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어린아이 눈높이로 말한다면 ‘나라를 지키다 숨진 분들을 추모하는 일’ 을 말한다. 이곳에는 6.25 참전 용사들도 잠들어 있지만 일제강점기에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들도 잠들어 있다. 여성독립운동가 조충성(曺忠誠, 1896. 5.29 ~ 1981.10.25) 애국지사도 이곳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영면 중이시다. 그런데 무덤이 아니라 납골 형태로 모셔져 있다. 국립묘지라고 하면 돌비석이 있는 무덤을 연상하겠지만 국립묘지라고 해서 매장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한없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국립서울현충원은 1985년 묘역이 만장(더 이상 공간이 없음)됨에 따라 서울에 고인을 모시기를 희망하나 장소가 없어 대전현충원에 안장하는 유족들의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2003년 말부터 공사에 착수하여 1년 8개월간의 공사 끝에 "충혼당"(3층 건물, 연건평 4,791.6㎡, 157억 원 투입)을 세워, 2006년 3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조충성 지사는 1981년 타계하셨지만 2015년 1월 15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 기상청은 6일, 큐슈 북부와 남부가 장마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이는 평년보다 약 6일 늦은 것으로 일본의 장마는 우리나라 보다 대개 1달 이상 빨리 찾아온다. 츠유(梅雨)라고 부르는 일본의 장마 소식과 함께 실린 사진은 보랏빛 ‘수국꽃’이다. ‘아지사이’라고 부르는 수국꽃은 장마=수국으로 인식될 만큼 장마철 일본의 정원을 수놓는 꽃 가운데 하나다. 서일본신문(西日本新聞) 6월 6일치에는 수국꽃으로 아름다운 후쿠오카 하코자키신사(筥崎宮, 福岡県 福岡市 東区箱崎 소재)의 활짝 핀 수국꽃을 소개하고 있다. 1991년 신사 안에 정원(신의 정원이라는 뜻으로 ‘신원(神苑)’이라 한다)을 조성할 당시에 심어둔 수국꽃은 이제 하코자키신사의 명물이 될 만큼 자라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하코자키신사는 서기 921년에 세운 신사로 천여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지난해 8월 26일부터 9월4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한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이라는 특별전에 이 신사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코자키신사의 이름이 나오는 신안해저선은 1323년 원나라 저장성 경원(慶元, 현 닝보 '寧波')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