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무더위에 안부를 여쭙니다. 날마다 무더위가 계속됩니다만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보내시는지요? 저는 삿포로에 와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여름입니다. 상상과는 달리 홋카이도의 여름도 무척 덥습니다. 올 여름은 예년에 없는 더위라고 합니다. ***선생님께서도 잘 지내시길 빕니다. 2016. 8. 6 아무개 올림” 이는 무더운 여름철 지인의 안부를 묻는 편지인 ‘쇼추미마이(暑中見舞い)’의 예문이다. 무더운 여름철에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알리는 내용으로 ‘쇼추미마이(暑中見舞い)’를 쓰라고 알려주는 인터넷 사이트가 많다. 쇼추미마이는 편지를 보내기도 하지만 직접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 집에 찾아가기도 한다. 편지는 대개 엽서를 보내는데 안부를 묻는 뒷면에는 시원한 그림이 새겨져 있다. 그렇다면 대관절 언제 쇼추미마이를 보내면 좋을까? 쇼추미마이는 보통 장마가 갠 뒤 소서(小暑)부터 대서(大暑) 사이에 많이 보내는데 올해의 경우에는 7월 7일부터 8월 7일 사이가 적기(適期)다. 그러나 이 날짜가 지나도 걱정은 없다. 이 기간을 놓친 사람들을 위한 “잔쇼미마이(殘暑見舞い)”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꼭 ‘잔쇼(殘暑)’라는 말을 안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선생님 안녕하세요? 살아계셔서 편히 말씀드릴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이 편지를 드립니다. 그리고 지금 사용하는 말법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의 《백범일지(白凡逸志)》 원문을 보니 한자를 읽을 수 있는데도 도무지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100년도 안 된 시간에 우리말 법이 이렇게 달라져 있는 것은 그만큼 소용돌이치는 역사 시기를 지나왔다는 증거라고 생각됩니다. 선생님. 이렇게 선생님을 부르는 자체도 송구스럽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 대한민국의 최고의 어르신이요 제일의 독립지사를 소시민에 불과한 제가 감히 이렇게 부르는 것이 무례한 짓 같아서요. 지금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가장 존경하는 애국지사로 선생님을 으뜸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을 생각하면 먼저 가슴이 아려오는 일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로, 역사에는 ‘만일’을 대입해서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너무도 아쉬움이 크고 한탄스러워서요. 만일 선생님의 주장대로 당시 해방 공간에서 남북 지도자들이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여 한 발씩 양보하고 조금만 더 깊이 숙고하고 의견을 모아 남북으로 하나의 정부를 만들어 내었더라면, 그 후 오늘
[우리문화신문= 이윤옥기자] 만세불러 그대를 보내는 이날 임금님의 군사로 떠나가는 길 우리나라 일본을 지키랍시는 황송합신 뜻 받들어 가는 지원병 .... 총후 봉공 뒷일은 우리 차지니 갈데마다 충성과 용기 있어라 갈지어다 개선날 다시 만나서 둘러둘러 일장기 불러라 만세 - 이광수 ‘지원병 장행가’ 삼천리- 위는 변절자 춘원 이광수가 일본을 ‘우리나라’라고 추켜세운 시의 일부다. 그런가 하면, 최남선은 “대동아 전쟁의 세기적 성업에 이바지하게 됨은 실로 남자로서 태어난 보람이 있는 감격이며 청년 학도들은 두 어깨에 짊어진 특별한 의무와 책임을 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대동아 전장에 특별지원병으로서 용맹한 출전을 하여 일본국민으로서 충성과 조선 남아의 의기를 바로하여 부여된 영광의 이 기회에 분발 용약하여 한 사람도 빠짐없이 출전해야 할 것이다. 라고 했다. - 1943년 11월 20일 매일신보 ‘학도여 성전에 나서라’ 가운데 일부 - 최근 이 두 사람의 문학성이 위대하다고 하여 한국문인협회가 문학상을 제정한다고 발표 한바 있다. 바로 지난달 26일 열린 이사회에서 육당문학상과 춘원문학상 제정안을 가결하고 내년부터 우수 작품활동을 한 문인에게 시상하기로 했던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어깨에 내려앉은 작은 새 청산 가자 조르는데 어찌하여 입을 꼭 다물고 두 손 쥐고 있니 쥐어뜯긴 머리 갈갈이 찢긴 꿈 네 상처를 아는 이 한겨레 뿐 -이한꽃 ‘평화의 소녀상’ 가운데 - 일본군 피해자 위안부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이들을 우리는 일 년 365일 기억해야겠지만 유독 8월이면 일본 정치인들의 ‘침략전쟁’ 부정과 ‘야스구니 참배’ 같은 가증스런 뉴스를 맞닥트려야 하기에 더욱 가슴 아프다. 역사에서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과 아픔은 고스란히 그들의 몫이다. 그들이 기억하고 추모하지 않는다면 가해자들은 그들의 뻔뻔함을 언제든지 되풀이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침략자들의 만행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일제국주의의 악랄한 만행 가운데 대표적인 만행의 하나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 일 것이다. 성남시는 지난 8월 1일부터 8월 7일까지 성남시청 2층 공감전시실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닥종이 인형전 ‘기억- 치유되지 않은 아픔’을 열고 있다. 기억하기 위해서다. 이번 전시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상처를 위로하고 가슴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잊지 말자는 취지로 마련되었다. 이번 전시는 한지문화연대(대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인천개항박물관 광복 71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만주 아리랑-조선족 디아스포라의 삶과 기억]은 그동안 사진작가 류은규가 모은 중국 조선족의 역사와 생활사 자료 중, 만주 지역의 민족해방운동과 함께 그 기반이 되어준 우리 이주민들의 삶을 살펴보고자 기획되었다. 1층은 이주와 항일운동에 관한 사진 자료를 정리하고, 조선족의 생활유물도 선보인다. 그간의 사진수집에 관해 류은규는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념사진은 그 한 장으로는 별로 큰 의미를 가지지 않지만, 모아놓고 보면 시대를 비추는 역사자료가 된다. 지금 남은 사진도 언제 어떻게 소멸할지 모른다. 나는 사진가로서 본능으로 사진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모은 사진이 5만 여장이 되었다.” 고 말한다. 2층은 류은규 작가가 중국 동북 일대를 돌면서 항일지사 후손들을 찍은 인물사진전이다. 이에 대해 작가 류은규는 “역사의 증언자를 촬영하는 포트레이트 작업은 사진이 가지고 있는 기록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구현하는 작업이다. 특히 만주 지역의 항일운동가 유가족의 촬영은 90년대에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더는 찾지 못할 뻔 했다.”고 했다. 인천관동갤러리와 인천개항박물관 기획전시실에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어머니 품이여 드리워 베푼 사랑의 손길에 내 어엿이 자라 멍멍개 마루에서 낑낑 꿈꾸는 자정까지 일해도 고된줄 모르는 힘 그 따사로움 가슴에서 흘러나오다 - 조선족 시인 설인의 고향사람들 가운데 ‘나를 낳은 산천이여’ 일부- 그렇다. 조선족 시인은 입을 열면 고향이라는 말이 튀어나오고 붓을 들면 그 고향산천이 먼저 종이에 내려앉는 정서를 태생적으로 지녔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조선족은 중국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이자 좀 특별한 존재이다. 대부분의 소수민족은 그 지역의 토착민인데 견주어 조선족은 주로 19세기 말부터 고향을 떠나 국경을 넘어 정착한 사람들로 광복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에서 인정을 받은 신참 소수민족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의 이주가 주로 일제강점기에 이뤄졌고, 조국의 분단으로 인해 돌아갈 곳을 잃었다는 점에서 볼 때 조선족의 이주와 정착의 과정엔 수많은 고통과 비애, 눈물과 땀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인천관동갤러리(관장 도다 이쿠코)에서 열리는 조선족을 주제로 하는 사진전은 사진가 류은규가 한중수교 후 얼마 되지 않은 1993년부터 중국에 머물면서 중국 조선족을 촬영하고, 그들의 역사를 증명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아베 다케시(阿部建) 씨는 올해 나이 84살이다. 그는 지난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4박 5일간 한국을 방문했다. 다리도 약간 불편한 그가 한국을 찾은 까닭은 그의 가족사 때문이다. 그의 가족은 자그마치 40명이 한국에서 나고 자랐고 그 가운데 34명이 한국에서 삶을 마감했다. 아베 씨 자신도 함경북도 청진 출신으로 그는 지금 한국에서 살다 한국에서 죽은 자신의 가족을 주제로 하는 소설을 구상 중에 있다. 아베 씨는 외가를 소재로 하는 소설을 쓸 예정인데 한국에 오기 전 필자에게 자료 요청을 한 바 있다. 그가 요구한 자료란 다름 아닌 일본인과 가정을 꾸린 외할머니에 관한 것들이다. 그의 외할머니는 부모님이 105인 사건(1911년 일제가 무단통치의 일환으로 민족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사건을 확대 조작, 최후로 105명의 애국지사를 투옥한 사건)에 연루되어 10살의 나이로 고아가 된 인물이다. 부모를 잃은 어린 소녀는 외삼촌 집에 맡겨지는데 외삼촌이 살고 있는 마을은 평안북도 박천군 맹중리로 읍내에는 우편취급소가 있었다. 어린 소녀는 외삼촌의 보살핌으로 자라나는 데 이 마을의 우편취급소장이 외삼촌네 집에 자주 드나들었고 그 인연
[우리문화신문=이윤옥기자]70평생을 토박이말만 부여잡고 사는 시조시인이 있다. 바로 일본 교토의 한밝 김리박 시인으로 최근 토박이말 시조시집 《울 핏줄은 진달래》를 도서출판 얼레빗을 통해서 펴냈다. 시조집을 손에 쥐자마나 나는단숨에 읽어내려 갔고, 시조집 곳곳에 울컥하는 심정은 어쩔 수가 없었다. 빛되찾은 그나날에 네 살의 아들놈은 미친 듯 울고계신 아버지를 쳐다보며 겨레의 참빛되찾은 그기쁨을 새겼도다. -첫째매 넷째가름 둘째쪼각 ‘아버님생각’- 시인 나이 네 살, 그 천진난만한 어린 가슴에 ‘겨레의 참빛 되찾은 아버님의 그 기쁨’을 알 수 있었을까? 알 수 없다. 아니 알 길이 없는 노릇이다. 아버지가 두 손에 쥐어주던 알사탕도 기억 못할 그 어린 나이에 시인의 조국은 광복을 맞았다. 얼마나 기뻤으면 아버지는 미친 듯 울고 계셨을까? 어린 마음이지만 그날의 아버지 모습은 일흔이 된 시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누에고치가 실을 뽑듯 풀려나온다. 만일 그해 시인이 열네 살만 되었어도 아니 스물넷만 되었어도 아버지의 그 미칠 듯이 기쁜 모습은 그렇게 오래 뇌리에 새겨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버지 나이와 멀어질수록 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라고 일컫는 나라현 비조사(飛鳥寺, 아스카데라)의 원형은 부여의 왕흥사(王興寺)일 가능성이 높다고 아사히신문이 16일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은 와세다대학의 오오하시(大橋一章, 불교미술사)교수 등 일본 연구 팀이 이번 달 초 부여 왕흥사 유적지를 조사한 결과 여기서 출토된 기와 문양과 탑 구조 들이 비조사의 유물과 거의 일치한다고 밝혔다.” 이는 2008년 4월 17일 중앙일보가 일본 아사히신문 보도를 인용해 쓴 기사다. 부여의 왕흥사는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리에 있었던 15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절이지만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2007년 이곳에서 발굴된 「창왕 청동사리함 명문」에 따르면 왕흥사는 서기 577년 위덕왕 24년에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렇듯 고대 부여와 아스카(飛鳥)는 서로 닮은 구석이 있다. 실제로 아스카에 가면 그런 느낌을 더 실감하게 된다. 필자도 아스카는 곧 부여라는 생각을 여러 번 몸과 마음으로 느껴본 적이 있는데 그것은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한국의 시골 같은 분위기 말고도 아스카에 남아있는 여러 불교 관련 유적이 그런 생각을 들게 하는 것 같다. 그걸 입증이라도 하듯이 국립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늦은 밤까지도 열대야가 계속되다 보니 불쾌지수가 좀처럼 내려가질 않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무더위가 계속되다 보니 시원한 물이나 계곡을 찾아 떠나는 차들로 도로란 도로는 이미 포화상태다. 이럴 때 기발한 발상으로 시민들을 도서관으로 불러 모은 곳이 있어 기자가 다녀왔다. 이름하여 도서관에서의 아주 특별한 하룻밤(부제: 책을 이야기하는 가족, 책으로 소통하는 우리동네 이란 주제로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밤새 도서관에서 읽게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고양시 덕양구의 신원도서관(팀장 장은옥)이다. 3호선 삼송역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신원도서관은 주변이 온통 고층 아파트 숲으로 둘러 싸여있다. 이 말은 곧 도서관을 이용하는 층이 젊다는 것을 뜻한다. 그걸 증명하듯 어제(23일, 토) 밤 도서관에서 밤을 새려고 온 138명은 모두 가족 구성원들로 단 1명도 홀로 참가한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138명의 구성을 살펴보면 모두 45가족으로 초등학생 50명, 중학생 40명으로 전체적으로는 초, 중학생 자녀를 둔 가족 단위 참여가 주종을 이루었다. 밤 11시에 시작하여 아침 7시까지 도서관에서 보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