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일본 교토에 있는 고려미술관 (高麗美術館)에서는 조선시대 방안을 장식했던 가구와 소품들을 7월 5일부터 9월 28일까지 전시한다. 조선시대에는 남녀의 공간이 서로 달랐으며 그 공간을 꾸미는 가구도 달랐는데 주로 목가구였다. 조선시대 가구의 특징은 유교정신을 바탕으로 한 소박하고 검소한 것이 남성의 공간이었다면 부유층 여성들의 공간은 화각(華角) 기법으로 장식된 물건들이 여성스러움과 화려함을 연출해왔다.특히 화각공예(華角工芸)의 조선 독자적인 제작 기법은 조선만이 가진 아름다움일 뿐만 아니라 나전(螺鈿)이나 대나무 등 풍부한 재료를 이용한 가구를 비롯하여 나무의 재질을 최대한 살린 소박한 반다지, 소반 등도 이번에 전시된다. ▲ 2014년 화각공예 전시 포스터 내가 바라는 것은 모든 나라 사람들이 나의 조국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올바르게 이해하여 진정한 국제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것은 고려미술관을 설립한 정조문(鄭詔文 1918-1989)선생이 1988년 10월 25일 고려미술관 개관식을 기념하여 만든 《고려미술개관기념도서록》에서 밝힌 글이다. 고려미술관을 세운 정조문 선생은 40여 년 동안 일본 구석구석을 찾아
[그린경제/ 얼레빗 = 이윤옥 기자] 1895년 일제에 의해 자행된 을미사변과 단발령은 우리 민족의 공분을 불러 일으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해 항일투쟁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구연영 (1864-1907) 선생이 참여한 남한산성의진(이천수창의소)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편성되어 군사적 요충지인 남한산성을 한달 이상 점거하여 서울 진공을 눈앞에 두었을 정도로 세력을 크게 떨쳤다. 선생은 의진의 중군장이 되어 1896년 1월 18일 백현(이천 널고개)전투를 압승으로로 이끌었다. 을미의병의 쾌거였다. ▲ 을미의병 출신 구연영 순국지사 이후 원주 방면으로 이동하여 수백 명의 군사를 모은 선생은 같은해 2월 25일 광주 이현에서 다시 모여 포군과 민병을 규합하고 광주의병과 연합하여 남한산성을 점거하였다. 선생은 이 수성전에서 중군장으로 의진의 본부가 있는 중앙을 맡아 지켰으며 관군의 공격으로 해산되기까지 한 달 동안 관군과 대치하여 여러 차례 전투를 치루었다. 선생은 남한산성에서 해산한 후 김하락을 의병장으로 추대하여 영남지방을 향해 내려갔다. 여주, 제천, 단양, 풍기, 순흥을 거쳐 안동에 이르러 영남의병과의 연합항전 방략을 논의하기도 하였다. 189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20세기의 한 시기에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했다. 이에 앞선 태평양전쟁 중에는 노무동원 계획에 따라 수많은 조선인이 전국의 광산이나 군수 공장 등에 동원되었으며 여기 군마(群馬) 땅에서도 사고와 과로 등으로 소중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적지 않다. 21세기를 앞둔 우리들은 일찍이 일본이 조선인에 대하여 지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긴 역사적 사실을 깊이 기억하며 마음으로부터 반성하고 두 번 다시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결의를 표명한다. 과거를 잊지 않고 미래를 응시하는 새로운 상호 이해와 우호를 추진해나가고자 여기에 노무동원에 의한 조선인 희생자를 마음으로부터 추도하기 위해 이 비를 세운다. 이 비를 세운 우리들의 마음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길 바라며 아울러 아시아 평화와 우호 발전을 원한다.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 추도비를 세우는 모임 2004년 4월 24일 ▲ '추도비를 세우는 모임과 군마현의회가 합의 하에 채택된 추도비문 이것은 일본 군마현에 있는 군마현립공원(群馬県立公園) 내의 군마의 숲(群馬の森)에 있는 조선인강제연행희생자 추도비에 새겨진 추도비 건립에 즈음하여의 글귀다. 내용상으로 보면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전 자민당간사장인 노나카히로무 (野中広務, 88)씨가 6일 나고야시내에서 강연하면서 아베내각의 집단적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해 헌법해석을 바꾸는 각의결정(閣議決定)은 폭거라고 통렬히 비판했다고 6일자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이날 강연은 한국과 북조선의 융화를 목표로 활동하 재일코리언들의 NPO법인인 삼천리철도(三千里鉄道, 愛知県豊橋市)가 주최한 집회였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노나카 씨는 우리들이 그 전쟁(태평양정쟁)에서 69년 지난 오늘까지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헌법 덕택이며 헌법 9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해석을 변경하는 것만으로 다시 전쟁의 길을 걸으려는 것은 폭거다고 말하고 헌법 9조 사수를 호소했다. ▲ 아사히신문 6일자 기사, 아베정권의 집단자위권이 '폭거'라고 강연하는 노나카 씨 또한 노나카 씨는 종군위안부와 센카쿠제도 문제 등으로 악화된 일한, 일중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정치가는 식민지화가 조선반도에 할퀴고 간 자국, 그리고 전쟁이 중국에 남긴 상흔을 겸허히 반성해 나가야 한다. 이웃나라들과 대립한 채로 아무리 평화를 외쳐봤자 그것은 공염불이다. 동아시아의 우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일본은 또다시 태평양전쟁과 같은 참혹하고 끔찍한 전쟁을 일으켜 인류를 공포와 고통 속으로 빠트릴 것인가? 미친 광대가 칼을 들고 날뛰다가 특공대의 기습에 한방에 나가떨어진 꼴이 바로 68년 전인 1945년 8월 9일 일이다. 일본은 기억하는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얻어맞은 원자폭탄 세례를 말이다. 이러한 끔찍한 전쟁의 기억은 천 년 전 일도 아니요, 백 년 전 일도 아니다. 바로 68년 전 일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그 참혹한 전쟁의 역사를 잊고 아니 이에 눈을 감고 또 다시 전쟁의 역사를 다시 쓰려하고 있다. 누가 이 광분한 미치광이를 말릴 것인가? ▲ 5일 신주쿠에서 아베정권에 항의 시위하는 시민들 (마이니치 신문 제공) 아베 내각의 집단적자위권을 사용 가능 결정 사실을 놓고 일본의 헌법학자들도 우려의 성명을 발표했다. 입헌데모크라시회 (立憲デモクラシーの会)의 야마구치(山口二郎) 법정대학 교수 등은 아베정권의 이번 집단적자위권 행사는 입헌주의를 근본부터 부정하고 국민주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다. 따라서 집단적자위권 행사는 문제해결의 수단이 아니라 애초부터 전쟁을 하기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자부동이 일본말이 아니고 경상도 사투리인가요? 알려주세요.이와 같은 인터넷의 질문에답이 황당하다. 자부동은 경상도 사투리입니다. ▲ 일본 자부동, 우리말 '방석'을 일본사람들은 자부동이라한다 더 황당한 것은 지금도 《다음 오픈국어사전》에는 자부동: 방석을 가리키는 경상도 사투리로 나와 있다. 어째서 이런 엉터리 정보가 나돌아 다니는 것일까? 자부동을 일본어국어대사전 ≪大辞泉≫에서는 ざぶとん,【座布団/座蒲団】: 座るときに敷く布団으로 설명하고 있다. 번역하면 자부동 : 앉을 때 까는 방석이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이 만든《표준국어대사전》에 자부동은 없다. 사시미 : 생선회, 미싱: 재봉틀 몸뻬; 일 바지 같은 일본말은 실려 있는데 말이다. 국가가 만든 사전에는 없고 민간 사전에서는 자부동을 경상도 사투리라고 해놓았다.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일본의 자부동 역사는 가마쿠라시대 (鎌倉時代, 1192-1333)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에도시대 (江戸時代, 1603-1868)쯤에 와야 서민들이 겨우 자부동을 깐다. 그도 그럴 것이 갈대 같은 풀로 만든 자부동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왕인박사는 4세기 백제로부터 공자의 논어와 천자문을 전하고 왜국의 아스카문화(飛鳥文化)를 꽃피웠다. 이로서 일본에서 처음으로 한중일 3개국이 조우하게 된 것이다. 왕인박사를 심볼로 동아시아의 선린우호, 민간교류을 계속해나가야 할 것이다. ▲ 왕인무덤을 보살펴 주는 요시토메가즈오 씨(사진 민단신문 제공) 이것은 오사카에 있는 왕인박사 무덤을 관리하는 왕인무덤의 환경을 지키는 모임(王仁塚の環境を守る会)의 대표인 요시토메가즈오 씨(吉留一夫)의 말이다. 그는 왕인박사 무덤이 있는 오사카 히라가타시(枚方市藤阪東町)에 살면서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왕인박사 무덤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면서 왕인박사의 높은 뜻을 지난 30여 년간 지켜오고 있다. 이들은 1985년 3월에 모임을 결성한 이래 한국에서 직접 가져온 무궁화를 왕인박사 무덤 둘레에 심고 이곳을 찾는 이들을 위해 왕인박사 무덤 휴게소인 선린우호관을 지었다. 또한 백제를 상징하는 백제문도 만들었다. 요시토메 대표의 왕인무덤의 환경을 지키는 모임은 지난 5월 11일로 창립 제30회를 맞았다. ▲ 왕인박사 무덤, 앞에는 참배자들이 놓고 간 꽃 ▲ 왕인박사 무덤은무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아베정권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30일, 도쿄 시부야역 주변에서 칠석 장식물을 세우고 행인들에게 평화의 소원을 적은 메시지를 단사쿠(短冊, 소원종이)에 써달라는 이벤트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북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손뼉을 치면서 집단적 자위권 인정은 미국의 전쟁에 참가하는 것, 그 누구도 전쟁으로 죽임을 당하고 싶지 않다 와 같은 말을 확성기를 통해 행인들에게 호소했다. 소원종이에 마음으로부터 미소를 이라고 쓴 시부야쿠에 사는 회사원 요나코 씨(古林沙子, 33살)는 미소는 평화에 이르는 길이다. 전쟁이 아닌 대화로 해결 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라고 했다 이는 6월 30일치 마이니찌신문(每日新聞)이 보도한 기사다. 곧 다가올 칠석행사로 일본거리는 지금 형형색색 장식물로 물들어 가고 있다. 백화점이나 상점가는 물론이고 역전이나 동네 골목길까지 사사(笹)라고 부르는 가는 대나무 가지를 세우고 거기에 알록달록한 소원종이를 적어 매단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로 숨진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노란 리본에 위로의 말을 적어 주렁주렁 내걸듯 일본은 해마다 칠석날이면 소원종이를 쓰고 칠석행사를 다채롭게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나라를 빼앗기자 우리 선열들은 가만히 좌시하지 않고 독립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무관학교를 세워 군사력을 양성하는 사람, 임시정부를 세워 나라의 뼈대를 만드는 사람, 자라나는 2세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 독립자금을 모으는 사람 등 각자의 위치에서 단 한치의 흐트럼 없이 우리 동포들은 뛰고 뛰었다. 친일파 매국노들을 빼고 우리 겨레는 합심으로 조국광복을 위해목숨을 바쳤다. 거기에는 남여가 따로 없고 늙은이나 어린이도 따로 없었다. 최중호 애국지사는 1911년 조선침략의 우두머리격인 조선총독 데라우치 암살 계획에 앞장서다 투옥되는 등 독립운동의 맨 앞에서 뛰신 분이다.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최중호(崔重鎬, 1891. 1. 20.~ 1934. 3. 28) 애국지사를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 최중호 애국지사 선생은 1891년 황해도 신천(信川) 출신으로 양산학교(황해도 안악 소재)를 다니면서 교장으로 재직하던 김구 선생의 가르침을 받아 민족의식을 키워갔다. 1911년 선생은 일제가 항일운동인사를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소위 테라우치(寺內)총독 암살음모사건(소위 105인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
[그린경제/ 얼레빗 = 이윤옥 기자] 여름은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계절이다. 그러한 꽃이 피는 모습을 국어사전에서는 말로 풀이 하고 있는데 이 풀이란 것이도통 일본한자말 투성이라그 뜻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예컨대 미나리아재비 꽃은 취산(聚繖) 화서, 콩꽃은 총상(總狀) 화서 담배는 원추(圓錐) 화서, 토란꽃은 육수(肉穗) 화서로 핀다고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설명해놓고 있다.어떤 아이는 육수화서라고 하니까 육수를 부어키우는 꽃인가요?라고 묻기까지 한다. 딱한 노릇이다. ▲ 토란꽃으로 이러한 모습을 일본말에서는 '육수화서'라고 한다. ▲ 콩꽃으로 일본말에서는 '총상화서'라고 한다. ▲ 익모초꽃으로 이러한 모습을 일본말로는 '윤산화서'라고 한다 윤산화서, 육수화서, 수상화서, 총상화서, 취산화서, 원추화서. 우리 국어사전은 왜 이렇게 어려운 일본식 한자로 식물을 설명하는 것일까? 그것도 일본말이라고 밝히지도 않고 말이다. 이는 식물을 포함한 사물의 인식을 알기쉬운 우리 말로 표현하려는 의식이없어 생긴웃지 못할 딱한 노릇이다.이러한 식물 설명을 해놓은 예를 아래에 몇가지 소개하겠다. 누가 이러한 일본사전 베끼기를 새롭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