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얼레빗 = 이윤옥 기자] 조선 여성을 무지 속에서 해방한 차미리사 이윤옥 시집살이에 쪼들리는 여자 무식하다고 남편에게 구박받는 여자 집안에만 들어앉아 세상 물정 모르는 여자들 야학에 불러 모아 글 깨우치고 나라의 위기를 가르치길 수십 성상 배우지 않는 게으름으로 조국 광복 논할 수 없어 불철주야 조선 여자 일깨우려 삼천리 방방곡곡 밟지 않은 곳 그 어디랴 무궁화 꽃 심듯 일군 근화학교 왜놈들 이름 바꾸라 총 들이대 바꾼 이름 덕성은 조선 여자교육의 요람 매국의 더러운 돈 한 푼 섞지 않고 깨끗한 조선의 돈으로만 일구어 더욱 값진 학문의 전당 청각장애 딛고 일어나 조선 독립의 밑거름을 키워낸 영원한 겨레의 스승 그 이름 차미리사여! ▲ 미국 스캐리트 신학교 재학시절의 차미리사(1910~1912) 차미리사(車美理士, 金미리사, 1880.8.21-1955.6.1) 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 생각하되 네 생각으로 하여라! 알되 네가 깨달아 알아라 조선 여자에게는 지금 무엇보다도 직업적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인해방이니 가정개량이니 하지만은 다 제 손으로 제 밥을 찾기 전에는 해결이 아니 될 것입니다. 그것이 영구적이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지금 일본은 장마철이다. 한국보다 한 달 정도 빠른 일본의 장마는 남북으로 긴 일본열도의 특성상 가장 아래 지방인 오키나와가 5월 5일부터 시작되고 동북 지방은 6월 6일 정도에 장마가 시작되어 무려 1달이나 장마 시작이 차이가 난다. 그에 견주면 일본의 중부지방이 장마가 끝날 무렵 한국의 남부지방이 장마가 시작된다. 장마 기간 동안에는 밖의 활동이 적어지고 집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데 이렇게 비가 지루하게 내릴 때 일본에서는 데루데루보우즈, てるてる坊主라는 인형을 처마 밑에 매달아 두는 풍습이 있다. 흰 천을 펴서 솜을 넣고 실로 묶으면 꼭 사람 머리통 모양인데 여기에 눈코입을 그려 넣고 처마 끝에 대롱대롱 매달아 두면 비가 그친다고 믿는 풍습인 것이다. ▲ 비가 그치길 바라는 인형을 데루데루보우즈, てるてる坊主라고 하며, 처마 밑에 매단다.(왼쪽), 비가 내리길 바라는 인형은 거꾸로 매달며 아메아메보우즈, あめあめ坊主라고 한다. 일본의 데루데루보우즈 풍습은 헤이안시대(794-1192)의 《카게로우닛키》라는 작품에 나올 정도로 오래되었지만 오늘날과 같이 일반적으로 널리 확산된 것은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8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한국의 잔다르크 지청천 장군의 딸 '지복영'이윤옥 밤보다 더 어두운 중경의 땅방공호 드나들며 일본군 공습 피하던 그날퍼붓는 포탄에 창자 터져 죽은 중국인 여자핏덩이 아기만 살아 어미의 젖가슴을 파고든다눈앞에 펼쳐진 포화 속 비극을 보며석박사 보장된 길 내 던지고마구간 새우잠자며 따라나선 광복군의 길서안의 최전선으로 떠나는 딸 어깨 다독이며한국의 잔다르크 되라고 용기 주시던 아버지나라 사랑하는 사람 많은 듯해도포탄이 비처럼 퍼붓는 전선으로 갈자 많지 않아낯선 풍토 견뎌내다 병든 몸후송된 후방에서 쉴 수만 없어눈물을 가다듬고 곧 다가올 새벽을 기다리며총대 메던 손 다시 펜을 고쳐 잡고오천 년 사직을 노래하며잠든 겨레 혼 일깨운 이여! ▲ 그림 한국화가 이무성 지복영 애국지사 (池復榮, 李復榮 1920.4.11~2007.4.18)중경에서 일이었어요. 비행기가 밤새도록 폭격을 해대는데 몇 번이고 방공호를 드나들었지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하도 지겨워서 죽어도 그냥 여기서 죽는다고 방공호에 안 가고 누워있는데 청사를 지키던 분이 빨리 피하라고 해서 얼결에 피하자마자 임시정부 숙소 가까이에 폭격을 가해 화약냄새가 진동하 거예요.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일본의 아스카(飛鳥)지방은 서기 538년 백제에서 처음으로 불교가 전래된 곳으로 오사카, 나라, 교토와 함께 고대 한반도와 깊은 관련의 땅이다. 그럼에도 이곳은 오사카, 나라, 교토보다는 찾는 이들이 적다. 이 아스카를 대표하는 절을 꼽으라면 단연 강사(岡寺, 오카데라)를 꼽을 수 있다. 강사(岡寺, 오카데라)는 나라현 다카이치군 아스카무라 奈良県高市郡明日香村岡 806)에 있는 진언종파 절로 예전에는 용개사(龍蓋寺, 류가이지)로 불렸다. 본존불은 여의륜관음(如意輪観音)이며 서국 33사 중 제7번 기도도량(西国三十三箇所第7番札所)으로 이름난 절이다. 절 이름이 오카데라(岡寺)로 불리듯 ‘오카’라는 말은 언덕을 뜻하는데 실제로 용개사를 찾아 가는 길은 상당한 경사의 비탈길을 올라야만 한다.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용개사로 오르는 비탈길을 비지땀을 흘리며 한참을 걸어야 용개사 일주문이 나온다. 시간상으로는 10여분 거리지만 구불구불한 비탈길이라 그런지 반시간은 올라간 느낌의 거리에 용개사 일주문이 우뚝 서 있다. 문득 천 여년전의 백제 의연스님을 금방 만날 수 있기라도 한 듯 마음이 설렌다. ▲ 백제 출신 의연스님 용개사(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의 지진과 해일(츠나미)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앗아갔다. 당시의 참상은 일본뿐 아니라 세계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러한 재난 앞에 사람들은 하나둘 모여들어 슬픔에 빠져있는 사람들 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임시 천막촌에는 각지에서 보내오는 구호품이 넘쳐나고 자원 봉사자들 또한 전국 각지에서 앞 다투어 달려와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있다. 일본재단(日本財團)의 사사카와요헤이(笹川陽平) 회장은 누리집 인사말을 그렇게 시작했다. 일본재단은 50년이 넘는 자원봉사 단체로 사회 전반적으로 활동분야를 넓혀가고 있다. 고령화문제, 맞벌이시대의 육아문제를 포함하여 지구환경과 자원문제, 식량문제 등으로 고통을 받는 이웃과 사회를 위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 고려박물관의 자원봉사자 가키바타 씨 사사카와 회장은 특히 지난 2011년 동일본대진재 이후 시민들의 자원봉사활동 인식이 한층 높아가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이 단체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일반 시민, 기업, 비영리단체(NPO), 공적기간 등 다양한 층에서 관여하고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100년 편지에 대하여..... 100년 편지는 대한민국임시정부 100년(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입니다. 내가 안중근의사에게 편지를 쓰거나 내가 김구가 되어 편지를 쓸 수 있습니다. 100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역사와 상상이 조우하고 회동하는 100년 편지는 편지이자 편지로 쓰는 칼럼입니다. 100년 편지는 2010년 4월 13일에 시작해서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됩니다. 독자 여러분도 100년 편지에 동참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매주 화요일 100년 편지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문의: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02-3210-0411 선생님을 처음 만난 곳은 대전교도소 15사 상층 37번 방이었답니다. 1986년 겨울, 저는 구미유학생 간첩단 조작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감옥생활 중이었어요. 비전향을 선택하고 절망과 죽음을 마주하던 힘겨운 시절이었어요. 그 때 읽은 ≪김창숙≫(한길사, 심산사상연구회 편, 1981)은 약해지고 폭력에 굴복하려는 제게 용기와 힘을 주었지요. 심산 김창숙 김창숙 선생(1879~1962)은 유림단 사건과 나석주 의사 폭탄 사건의 배후로 1927년 6월 14일, 입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함께 1박 2일로 떠나온 아하메드 군으로부터 배운 말은 쇼코랑이라는 말이다. 아라비아 말로 고맙다는 말이라고 한다. 아랍어를 쓰는 그가 평소에는 무척 먼 나라 사람이라고 느꼈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아주 가까워졌다. 아하메드 뿐만이 아니라 중국, 한국, 미얀마, 인도, 태국에서 온 유학생들과도 교류의 시간을 가지면서 나는 멀리 떨어져 있는 그들의 나라가 바로 내 고향집과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가장 값진 것은 바로 그들과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싱가폴 유학생 람슨메이 씨의 1박 2일 유학생 교류를 다녀와서 - 일본에는 수많은 나라에서 온 젊은이들이 싱가폴 유학생 람슨메이 씨처럼 저마다의 꿈을 갖고 유학 생활을 하고 있다. 낯설고 물선 나라에서 사는 일이 어디 한두 가지 어려움이 있겠는가만 가장 큰 어려움을 든다면 고향이 그리운 향수병일 것이다. 그러한 유학생들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비록 유학생이지만 일본 내에서 당당한 한사람의 인격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다양한 보살핌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쵸후물레모임(調布ムルレの會) 사람들이다. ▲ 쵸후물레모임(調布ムルレの會) 의 한국과 교류 모습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여성이여 비굴치마라 사자후 토한 김조이 이윤옥 창원의 딸 푸른 꿈 안고 경성의 다락방에서 헐벗고 무지한 여자들 불러 모아 환난 중인 조국을 일깨웠네 비바람 역경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꿋꿋이 독립의 그날까지 여성이여 비굴치마라 사자후 토해내며 독립투쟁 앞장선 불굴의 정신 조국의 이름으로 영원히 기억하리 김조이 (金祚伊, 1904. 7. 5 ~ 납북) ▲ 김조이 애국지사의 서대문형무소 수감 사진(1935.1.17.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김조이 애국지사는 1904년 경남 창원군 웅천면 성내리에서 아버지 김종태와 어머니 배기남 사이에서 큰 딸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사립학교인 '계광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로 유학을 떠났는데 할아버지가 '300석지기'로 집안은 부유한 편이었다. 1922년 1월 고향에서 계광학교를 마치고 18살 되던 해 서울로 올라와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 고학을 하던 중 여자고학생상조회(女子苦學生相助會)에 가입해 1926년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1월 21일 서울에서 허정숙주세죽김필순정봉배혁수박정덕 등과 함께 사회주의 여자청년단체인 경성여자청년동맹(京城女子靑年同盟)의 창립 발기인
▲ 소설 ≪애일라≫ 표지, 김수호, 도서출판 얼레빗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내 몸에 손대지 마라! 순순히 걸어가겠다! 포승줄도 하지 마라! 지은 죄도 없고 도망치지도 않을 것인데 그게 무슨 필요가 있느냐! 이애라 애국지사는 단호한 목소리로 자신의 팔을 잡아끄는 조선인 헌병보조원을 향해 외쳤다. 이애라 애국지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던 요시다는 평양에서 방금 웅기에 도착한 이 애국지사를 보자마자 조선인 헌병보조원에게 포박하라는 명령이 내린다. 그러자 이 애국지사의 서슬 퍼런 불호령은 이어졌다. 우리 국모를 능욕해 돌아가시게 하고 우리 황제의 자리를 빼앗는 왜놈들의 개돼지가 되어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너희는 대한제국의 백성이 아니냐? 신라의 개돼지는 될지언정 왜놈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며 참수당한 박제상을 모르느냐!. 일제강점기 항일투쟁을 하다가 27살의 꽃다운 나이로 산화한 이애라 애국지사에 관한 일대기가 소설 형식을 빌려 《애일라》란 이름으로 도서출판 얼레빗에서 나왔다. 왜놈 순사의 앞잡이가 된 조선인 순사보들을 향해 호통 치듯 작가의 이야기는 한 순간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한다. 이애라 애국지사는 누구인가? 1919년 3월 1일 만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일본 그림에 우키요에(浮世繪)라는 것이 있다. 우키요에는 한자말 그대로 덧없는 현세의 그림이란 뜻으로 목판화로 찍어내는 그림을 말한다. 처음에 목판화는 흑백이었으며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색채를 쓰게 된 것은 스즈키 하루노부(1725~70)에 의해서였다. 그는 여러 장의 판목을 사용하여 10가지 이상의 색으로 그림을 표현하였다. 우키요에는 에도시대의 생활 모습이나 여성을 그린 그림이 많은데 특히 기타가와 우타마로(1753~1806)는 유곽(遊廓)의 여성들을 즐겨 그렸다. 기모노를 입고 교태를 부리는 모습의 춘화와 여성의 표정을 섬세하게 나타내는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미인화의 대가로 꼽힌다. 특히 그의 그림은 명치(明治)이후에 서양으로 많이 유출되었는데 춘화의 경우 음부를 크게 부각시켜 그리는 바람에 서양에서는 그의 이름을 따 우타마로(Utamaro)라는 말로 거근(巨根)의 일본인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기도 했다. ▲ 기타가와 우타마로 작품 우타마로와 쌍벽을 이루는 화가로는 가츠시카 호쿠사이(1760~1849)를 들 수 있다. 호쿠사이는 주로 일반서민들의 모습과 풍경을 그렸다. 유명한 그림으로는 후지산 36경으로 수 많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