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관동 최고(最古)의 절 도쿄 아사쿠사 천초사 (淺草寺, 센소지) 관음당 뒤쪽에 나란히 있는 아사쿠사신사(淺草神社) 경내에는 이곳이 히노구마(檜前) 목장이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히노구마 목장이란 백제계 히노구마 씨의 목장을 말하며 당시 말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부의 상징을 뜻한다. ▲ 백제계 어부형제와 하지스님의 그림이 천초사에 걸려있다 히노구마 어부 형제와 관련이 있는 천초사의 유래를 에도시대 학자 하야시라잔(林羅山)이 쓴《등원성와문집, 藤原惺窩文集》에서 살펴보면, “서기 628년 스미다가와(隅田川)에서 고기를 잡던 히노구마 하마나리, 다케나리 형제는 평소처럼 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날따라 한 마리 고기도 잡지 못했다. 여러 번 그물을 던진 끝에 어망에 걸려나온 것은 사람모습의 인형(금동불)이었다. 형제는 이 이상한 물체를 그대로 바다에 던져 버렸으나 몇 번이고 그물에 걸려 나오는 것을 이상히 여겨 건져서 당시 마을의 원로인 하지(土師中知) 씨에게 가지고 가서 내보였다. 그러자 하지 씨는 이것이 성관세음보살상(聖観世音菩薩の尊像) 이라며 깊은 믿음으로 공양했다. 어부형제도 이 불상이 중생의 모든 소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2014년 3월 8일 토요일 오후 2시. 도쿄 한복판 신오쿠보에 있는 고려박물관 7층 전시실 안은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일본인들이 모여들었다. 특강 강연자인 필자는 하루 전날 고려박물관을 찾아 이날 있을 특강 준비를 하면서 와타나베(渡辺泰子)간사와 차를 마시면서 “몇 명이나 올까요?” 라는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때 와타나베 간사는 “글쎄요. 많이 알렸는데...걱정이네요” 라는 이야기를 주고받고 다음날 특강 장소를 찾고는 깜짝 놀랐다. ▲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는 일본 고려박물관 전단 (표지 그림 김향화 애국지사, 한국화가 이무성 ) 2시 강연인데 숙박 장소인 아사쿠사에서 여러 번 차를 갈아타고 가는 바람에 1시 30분이나 되어 도착해서 보니 강연장인 고려박물관 안은 이미 강연을 듣기 위해 입장한 청중들로 초만원 상태였다. 1천 엔씩 내는 유료 입장인데도 153명이 입장하여 고려박물관이 생긴 이래 (23년째) 최고의 참석자였다는 후문을 듣고 강연자인 필자는 물론이고 주최자인 고려박물관 쪽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또한 장소가 협소하여 발걸음을 돌린 사람들도 많았다는 이야길 듣고 나는 ‘일본의 양심’을 확인 했다.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병약한 몸 이끌고 독립의 노래 부른 신의경 이윤옥 금지옥엽으로 기른 귀한 딸 왜경의 군홧발에 치어 학교 안에서 잡혀가던 날 담담히 수갑 차고 돌아서던 병약한 외동딸 다신 못보고 무더위 속 가슴 앓다 끝내 숨져간 어머니 쇠창살 속에서 오매불망 그리던 어머니 영정으로 만나 어머니 몫까지 독립의지 다지며 묵묵히 걸어온 고난의 길 천국의 어머니도 장하다 웃음 지으시겠지 대한애국부인회와 신의경(辛義敬, 1898. 2.21 ~ 1997.8.11)애국지사 ▲대구감옥소 동지들 1 김영순 2 황애덕 3 이혜경 4 신의경 5 장선희 6 이정숙 7 백신영 8 김마리아 9 유인경 (사진 연동교회 제공) 고어(古語)에 이르기를 나라를 내 집같이 사랑하라 했거니와 가족으로서 제 집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집이 완전 할 수 없고 국민으로서 제 나라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 나라를 보존하기 어려운 것은 아무리 우부우부(愚夫愚婦)라 할지라도 밝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아! 우리 부인도 국민 중의 한 사람이다. 국권과 인권을 회복하려는 목표를 향해 전진하되 후퇴 할 수는 없다. 의식 있는 부인은 용기를 분발해 그 이상(理想)에 상통함으로써 단합을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저 서구열강을 보라. 학술의 발달이 저 같으며 도덕의 진보가 저 같으되 그 나라가 기운차게 일어나 날로 강성해가니 이는 그 문화가 동양 고대처럼 인민을 몰아서 전제하(專制下)에 굴복하게 하던 문화가 아니라 자유를 구가하며 모험을 숭상하는 문화인 까닭이니 한국의 뜻있는 군자여! 자국 고유의 장점을 보존하며, 외래 문명의 정화(精華)를 채취해서 신국민을 양성할만한 문화를 진흥할 지어다.” 이는 이상재 선생이 ‘대한매일신보’ 1910년 2월 19일치에 쓴 ‘문화와 무력’이란 제목의 논설 일부다. 선생은 여기서 국수주의나 사대주의가 아닌 우리 고유문화의 장점 위에 다른 문명의 우수한 것을 더하여 국민을 이끌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자고 주문하는 것이다.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YMCA 대강당에서는 '월남 이상재 선생 제87주기 추모회'가 열렸다. 이날 추모회에는 월남 이상재 선생의 현손인 이상구 중국위해시립대학 교수, 이기열 서울YMCA 부이사장, 안창원 서울YMCA 회장, 이상복 월남이상재선생기념사업회 대표회장 등이 참석했다. 몇 해 전 그때도 이런 봄날로 기억된다.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종지리에 있는 월남 이상재 선생의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이등박문(伊藤博文,1841-1909)의 고택이 있는 야마구치현 하기시(山口縣 萩市)는 일찍이 죠카마치(城下町)로 번성하던 곳이지만 지금은 인구 5만의 조용한 소도시다. 몇 해 전 들른 이 도시는 조용하다 못해 유령도시처럼 사람 그림자도 찾기 힘들 만큼 고요했다. 조선침략의 원흉 이등박문은 14살 때 이곳으로 옮겨와 살았고 28살에 신정부인 명치정부에 관리로 나갈 때까지 이곳에 머무는 날이 많았으니 제 2고향인 셈이다. 그래서 인지 이곳에는 이등박문이 살았던 집을 복원하여 기념관을 만들고 밀랍인형과 동상까지 세워 놓았다. 신정부의 요인으로 발탁된 이등박문에 대한 일본의 관심은 영화 10편, 텔레비전 드라마가 16편, 이등박문 전집 전 36권을 만들 정도로큰 편이다. 그러나 막상 이등박문 기념관에 써놓은 해적이(연보)에는 그가 하얼빈에서 죽은 것으로만 되어 있을 뿐 누구에 의해 왜 죽었는지를 밝히고 있지 않다. 그의 죄과가 드러날까 숨긴 것일까? ▲ 이등박문(伊藤博文)이 살던 야마구치현 하기시 집을 복원하여 만든 이등박문기념관 1909년 하얼빈 역에서 이등박문을 저격한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 검찰관의예비심문과 재판과정에서 자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인간은 그것이면서 그것이 아니다고 우기면서 사는 사랑 고집이다 -사랑과 인생 가운데 신시성- 《한흙 제54호》에서 신시성 시인은 인간을 그렇게 묘사했다. 그런가 하면 김리박 시인은, 어릴 때 구들방서 먹던 찬국수/ 어머니 손맛 묻은 그 맛은 어디 갔고 / 옛 동무 하나만 남아 둘이서 호르르 라는 시로 고향의 향수를 읊고 있다. ▲ 한흙(大地) 표지 재일한국문인협회 회장인 김리박 시인이 주축이 되어 만드는 문예지 《한흙》은 1992년 창간이래 2013년 12월로 스물한 해를 맞이했다. 그러고 보니 어엿한 처녀로 성장했다. 기자가 《한흙》을 만난 것은 5년 전이다. 그때 기자는 교토 속의 한국문화답사 취재 길이었는데 교토에서 한국인보다 더 철저히 우리 토박이말을 살려 시를 쓰는 시인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교토 후시미에 있는 자택을 방문한 적이 있다. 선생의 서재에는 한국인보다 더 많은 한국 관련 책이 있었고 그 가운데는 한글과 한국어 관련 책이 특히 눈에 많이 띄었는데 이는 선생의 한글사랑을 여실히 뒷받침해주는 것이었다. 그걸 입증하듯 선생의 직함 또한 대한민국 한글학회 간사이지회지회장 (関西支会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백제 출신 하지(土師) 스님이 주석했던 절 천초사(浅草寺, 센소지)는 관동에서 유서 깊은 절이다. 지난 3월 9일 천초사를 찾은 날에도 관동 최고의 절 답게 절을 찾은 인파로 북새통을 이룰 만큼 많은 사람들이 절을 찾았다. “아사쿠사는 옛도시의 분위기를 간직한 유서깊은 절이 있는 도쿄에서 가장 전통적인 거리 입니다. 수세기의 역사를 간직한 아사쿠사간논절(浅草觀音)과 아사쿠사신사(浅草神社)는 물론 주변 지역에까지 아사쿠사의 매력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아사쿠사에서는 에도시대 서민 경제와 오락의 중심이었던 옛 도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고 또한 현재 이 시대 서민들의 활기찬 생활 모습도 즐길 수 있습니다.” ▲ 관동 최고의 절 천초사 입구의 가미나리몽 다이토쿠(台東区) 관광과에서 만든 <아사쿠사 일대와 천초사>에 대한 한국어판 안내문은 일본어를 몰라도 아사쿠사 일대를 편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친절한 한글로 되어 있으며 아사쿠사 역 근처 여행안내소에서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도쿄의 인사동. 아사쿠사 천초사를 가리켜 이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절 입구에 나란히 들어선 나카미세(仲見世, 상점가)는 언제나 관광객들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미국에서 독립운동 뒷바라지한 차경신 이윤옥 일제가 조선의 독립투사에게 극악한 일을 했다 해도 장작 피고 그 위에 사람 집어넣긴 임의 엄니가 처음일 거외다 어머니 불구덩이에서 건져 올려 벗겨진 살 틈으로 벌건 피고름 흐르던 날 딸로서 해드릴 것 없던 그 통한의 눈물은 한 평생 임의 독립투지 자양분 되었어라 누렁 호박 익어 가는 고향 평안도 떠나 북풍한설 만주 땅 누비다가 이역만리 미국에서 목 터져라 부른 독립의 노래 고향땅 그 누구 있어 귀담아 들어줄거나 ▲ 중국 망명시절 차경신 애국지사(왼쪽) 언어와 의복 같은 동족이 한마음 한뜻 든든하구나 원수가 비록 산해 같으나 자유의 정신 꺾지 못하네 -국혼가 가운데서- 역사가 오래된 나의 한반도야 내 선조와 유적을 볼 때에 너를 사모함이 더욱 깊어진다. 한반도야 -한반도 가운데서- 차경신(車敬信, 모름 ~ 1978.9.28) 애국지사의 동생 차경수 선생은 경신 언니가 죽고 나서 유품을 정리하던 중 언니 수첩에 고국을 사모하는 노래, 절개의 노래가 여러 종류 적혀 있었다면서 《호박꽃 나라사랑》에 여러 편의 시를 소개했다. 위 시는 그 가운데 일부다. 낯설고 물선 남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4월 16일 “변호사 후세 다츠지 영화 상영”이라는 큼지막한 전단지를 만든 곳은 양심 있는 일본 시민들이 꾸려가는 고려박물관이다. 고려박물관은 1회 90분짜리 영화를 4월 16일부터 4일간 상영 할뿐 아니라 4월 2일부터 6월 1일까지 일본의 양심인 인권변호사 후세 다츠지 (布施辰治 1880 ~ 1953)에 대한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1월 29일부터 3월 30일 까지는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 전시 중. 시 이윤옥, 한국화 이무성) 후세 다츠지 변호사는 한평생을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소외된 이들의 벗이 되어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법률 변호를 맡아준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일본땅에서 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을 부르짖었을 때 이들의 변론을 맡아 주었을 뿐만 아니라 3·1운동 때는 “조선독립운동에 경의를 표한다”는 글을 발표할 정도로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공로를 높이 사서 한국정부에서는 2004년 후세 변호사에게 일본인 최초의 한국건국훈장 애족장(2004)을 추서했다. 후세변호사는 1923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해 의열단원 김시현(金始顯)의 조선총독부 요
[그린경제/ 얼레빗 = 이윤옥 기자] “(앞 줄임)봄까치꽃은 그 크기가 아주 작습니다. 사람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입니다. 푸른빛이 도는 연보라색의 꽃은 가냘파 보이기까지 합니다. 작고 가냘픈 몸으로 어떻게 매서운 겨울을 났을까? 또 땅이 풀리자마자 꽃을 피워 남보다 먼저 새봄을 알려줄 생각을 했을까? 봄까치꽃, 이름이 참 예쁩니다. 그런데 봄까치꽃의 원래 이름은 큰개불알풀이라 합니다. 꽃이 지고 난 후 씨앗이 개불알을 닮았다하여 그렇게 불렸다는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 사람들은 그 이름이 민망하여 예쁜 꽃이름으로 개명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뒤 줄임)” 위 글은 오마이뉴스 3월 14일에 전갑남 기자의 글의 일부다. 그는 봄을 맞아 “보라색 작은 꽃이 관심을 달라고 하네요”라는 글을 실었는데 이곳에 보면 “씨앗이 개불알을 닮았다 하여 그렇게 불렸다는데 잘 모르겠다고 했다. 오늘은 이 꽃 개불알꽃에 대해 말해보자. 먼저 국립국어원의《표준국어대사전》 풀이를 보면 “개불알꽃 :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25~40cm이며, 잎은 어긋나고 긴 타원형이다. 5~6월에 붉은 보라색 꽃이 개의 불알 모양으로 줄기 끝에 한 개씩 핀다. 관상용으로 재배하며 산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