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서울도서관(관장 이용훈)은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대사 Paul Menkveld)과 공동으로 1.7(화)부터 1.26(일)까지 네덜란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기획전시를 개최한다.- 서울시 보도자료 2014.1.7 -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14년 1월 16일(목) 오후 2시 한국관광공사 TIC(서울시 중구 청계천로 40)에서 관광호텔 확충을 위한 제도개선방안 공개세미나를 개최한다. -문화체육관광부 보도자료 2014.1.15 - 공공기관에서 알리는 글을 보면 대다수가 행사나 토론회를 개최한다고 한다. 그러나 개최한다라는 말은 우리말로 연다라고 해도 좋은 말이므로 구태여 개최한다라는 말이 필요하진 않다. 토론회를 연다, 세미나를 연다고 하면 어디가 어때서 개최인가! ▲ 과거 신문에는 개최라는 말을 한자로 즐겨 썼고 지금은 한글로 즐겨 쓰고 있다(1940.7.13. 조선일보) 개최(開催)라는 말은 일본말 카이사이(開催)에서 온 말로 조선시대 때만해도 이런 말은 쓰지 않았다. 숙종실록 48권(1710) 7월 14일치에 보면 과장(科場)을 개최(開催)할 때마다 거자(擧子)들이 문득 짓밟혀 죽는 환란이 많으니, 바라건대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겨울 추위가 닥쳐봐야 솔의 푸르름이 빛나듯 / 아직 초록이 무성할 땐 아무도 모른다 / 13년간 탐라도에 내동댕이쳐진 스승 /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멀고먼 땅 청나라에서 구한 책/ 눈물로 마주하며 스승과 주고받던 사랑/ 추사 선생 붓 들어 세한도를 그린 뜻은 / 제자 상적의 마음을 그린 것/ 대정고을의 가득한 푸른 솔향기/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아라. - 추사 유배지에서 이한꽃- 1945년 1월 동경의 한 병실을 두 달째 끈질기게 드나드는 조선인이 있었다. 서예가 손재형 씨다. 병실에 누워 있는 사람은 66살의 후지츠카 치카시 (藤塚隣, 1879-1948) 씨로 일제강점기 때 조선 경성제국대학 교수 출신 추사 연구가이다. 손재형 씨가 병실을 드나든 것은 다름 아닌 김정희의 ‘세한도’를 받아내려는 것이었다. ▲ 경성제대 시절의 아버지와 아들 어째서 세한도는 동경의 한 병실에 누워 있는 후지츠카 손에 들어간 것일까? 국보 180호인 세한도의 운명이 일각에 놓였던 그 순간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양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세한도를 받아 낸 3개월 뒤 후지츠카의 조선 보물창고는 미군의 도쿄대공습으로 거의 불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삿포로라고 하면 우동을 떠 올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삿포로 맥주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다. 춥고 황량한 땅 북해도(홋카이도) 삿포로에 맥주회사가 들어선 것은 지금으로부터 138년 전인 1876년(명치 9년)의 일이다. 당시 북해도 개척사들이 삿포로에 개척사맥주양조소를 설립하여 이듬해부터 냉제삿포로맥주(冷製札幌ビル)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 맥주박물관 전경(예전 삿포로맥주 공장이었다.) 하늘 높이 치솟은 굴뚝과 붉은 벽돌의 삿포로맥주공장은 지금 맥주박물관으로 사용되어 연일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눈이 한길이나 쌓인 1월 초순 맥주 박물관을 찾았다. 입구에서부터 친절한 직원들이 단체 관광객들을 팀 별로 데리고 다니면서 삿포로 맥주의 역사를 설명해주고 마지막 코스에서는 맥주 1컵씩을 기호대로 골라 마시게 하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었다. 1876년 삿포로 맥주는 맥주공장을 가동한 이래 10년 만에 삿포로맥주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제조와 판매를 시작하게 되며 1906년에는 일본맥주양조인 에비스맥주와 오사카맥주인 아사히맥주가 합병하여 대일본맥주주식회사로 거듭나게 된다. 이 무렵 시즈오카현, 나가노현, 니이가타현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열여섯 여자 광복군 용인의 딸 오희영 이윤옥 화탄계 냇물에 비친 하늘 먹구름 걷히어 맑고 맑구나 물 건너 신한촌 옹기종기 모인 동포들 콩 한쪽도 나누며 나라 사랑으로 살아갔지 이역만리 고향땅 기약 없이 떠나온 의병장 명포수 할아버지 뒤를 이어 아버지 어머니 남편 여동생까지 독립의 끈으로 묶인 나날들 유주 부양 중경으로 터 바꾸며 열여섯 소녀 광복군 되어 굴곡과 고난의 가시밭길 걸어간 자리 해마다 잊지 않고 피어나는 챠우쉔화 꽃향기 속에 살아나던 독립의지 하늘에 닿았으리. *화탄계: 임시정부요인들의 가족이 살았던 중국 중경 근처 토교의 신한촌 앞을 흐르는 냇물 *챠우쉔화(朝鮮花): 조선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중국땅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무덤에 핀 노오란 들국화를 현지인들이 애처로워 부른 이름 ▲ 대한민국임시정부 환국기념(1945. 11. 3), 뒷줄 ◯표한 이가 오희영 애국지사(사진제공 오희옥 여사) 오희영 (吳熙英, 1924.4.23 - 1969.2.17) 오희영 애국지사가 태어난 곳은 중국 길림성 액목현으로 이곳은 서로군정서 본부가 1920년 일제 토벌군을 피해 이동한 이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재호주 광복회가 2014년 1월 1일자로 한국의 광복회 본회(회장 박유철)로부터 광복회 호주지회로 공식 승인을 받았다. 광복회는 박유철 광복회장 명의의 승인서에서 본회 해외지회 관리운영규정에 의거 광복회 호주지회 설립을 승인함이라고 밝혔다.지난 2009년 1월 24일 시드니에서 약 30여명의 독립유공자 직계 후손들로 발족한 이래 6년 만의 일이다. ▲ 광복회 호주지회 승인서와 황명하 지회장 임명장 이로써 재호주 광복회의 산파역을 맡은 황명하 현 회장은 광복회 호주지회장으로 공식 임명장을 받게 되는데 광복회 호주지회 설립 승인서 및 지회장 임명장 전달식은 1월 21일(화) 11시 시드니 총영사관에서 있을 예정이다. 따라서 새해 1월 1일부터 재호주 광복회는 공식명칭이 광복회 호주지회가 되었고 황명하 회장은 광복회 호주지회장이 되었다. 광복회는 외교부에 발송한 공문서에서 본회는 해외 활동 조직 가운데 최초로 재호주 광복회를 광복회 호주지회로 결정했다.는 점을 밝히고 현지 공관의 제반 협조와 지원을 요청했다. 재호주 광복회에 앞서 이미 미주에는 뉴욕 광복회, LA광복회가 활동하고 있는데 그보다 먼저 재호주 광복회가 나라밖 활
[그린경제/얼레빗 = 홋카이도 이윤옥 기자] 홋카이도 치토세 공항에서 10분 거리에는 치토세 아웃렛 몰 '레라'가 있다. 세계 명품을 다 다루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명품과는 무관하게 사는 기자는명품관 보다는 매장 곳곳에 써있는 한글 안내판에 눈이 간다. 단체 손님을 태운 전세 버스가 필수 코스 처럼 들려 어쩔수 없이 들린 '레라' 에는 한국어,중국어,영어,일본어로 된 안내 홍보책자가 수북하게 꽂혀있다. 한글어? 아뿔싸, 한국어면 한국어고 한글이면 한글이지 싶은데뜻밖에한글어를 보니 애교로 봐주기에는 조금 씁쓸하다. 자문을 구해서 제대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치토세 아울렛 몰 '레라'전경 ▲매장 안에는 동대문이라는 한국 음식 코너가 있다. 비빔밥, 순두부 찌개 같은 음식이 있으며 의외로 값은 비싸지 않다.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그렇다면 담징스님은 언제 일본으로 건너갔을까? 《일본서기 권22》에 보면, 스이코 18년(610) 봄 3월 조에 高麗王貢上 僧曇徵 法定 曇徵知五經 且能作彩色及紙墨 并造碾磑 蓋造碾磑 始于是時歟 (고구려왕(영양왕)이 승려 담징(曇徵, 돈쵸)과 법정(法定, 호죠)을 보냈다. 담징은 오경(사서오경)에 능통하고 채색(그림)을 잘 했으며 종이와 먹 만드는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물레방아와 맷돌을 최초로 전했다)는 기록이 있다. 담징스님이 법륭사 금당벽화를 그린 주인공이라고 밝힌 사람은 다카야마(高山樗牛1871-1902) 박사로 그는 《쵸규전집 제1권 일본미술사미정고, 樗牛全集,第一巻, 日本美術史未定稿》에서 분명하게 법륭사 벽화는 담징의 작품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채색의 마법사 담징스님이 법륭사에 그린 벽화는 모두 몇 점일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금당벽화는 금당 외진(外陣) 흙벽에 그려진 12면을 말하지만 실제로 담징스님의 벽화는 내진소벽(内陣小壁)의 비천(飛天) 벽화 20면과 외진소벽(外陣小壁)의 산중나한도(山中羅漢図)등 18면
[그린경제/얼레빗 = 홋카이도 이윤옥 기자] 북해도 최대규모의 칼데라 호수인 도야호(洞爺湖,とうやこ)는 원주민인 아이누 말로 호수의 언덕을 뜻한다. 도야호는 2000년도에 분화한 유수산(有珠山)의 새로운 분화구에서 지금분화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 날씨가 좋은 날의 도야호수 도야호수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유람선이 뜨고 있다. 기자가 찾아 갔던 날은 눈보라가 쳐서 유람선에서 바라다 보이는 전망이 좋지 않았다. ▲ 도야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사이로전망대 휴게소는 온통눈천지다 ▲ 도야호수가 가장 잘 보이는 사이로 전망대는 눈보라로 호수와 하늘 구분이 없다 ▲ 눈보라 속에도 잔잔한 호수에는 유람선 손님들로 붐볐다 도야호수를 가장 잘 볼 수있는 곳은사이로전망대다. 이곳에 내려도야호수를 내려다보기로 하고 잠시 들린전망대 입구에서 만난한글이 몹시 반가웠다. 다름이 아닌 쓰레기통에 써놓은 한글에 눈이 번쩍 띄었으나 번역자가 빈병을 잘못 번역해주었는지 아주 재미나게 되어 있어 한 장 찍었다.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김구의 한인애국단 핵심 윤봉길 이봉창과 이화림 이 윤 옥 화려한 불빛 속 상하이의 밤서러운 이방인 삼삼오오 모여 이룬 숲서둘러 국권회복의 길 암중모색이었네일본 사쿠라다몽으로 떠나는이봉창 가슴에 안겨 준 폭탄불발로 품은 뜻 이루지 못했어도혼비백산한 히로히토 화들짝 놀라그날 밤 이불에 오줌 지렸을 게다석 달 뒤 상하이홍구 공원물샐틈없는 수비 뚫고단번에 날린 윤봉길의 도시락 폭탄도여장부 이화림이 도운 거사였어라태항산 거친 삼림 속 마다치 않고조선의용대 끌어안고 부르던 노래아리랑 피 끓는 함성 속에절절이 묻어나던 조국해방의 염원돌미나리 민들레 수양버들 잎사귀로배 채우며 쟁취한 광복고국은 그 이름 잊었어도그 이름 천추에 길이길이 남으리. ▲ 이화림 애국지사가 나온 중산대학은 수많은 독립투사가 다녔다. 이화림 (李華林, 1905.1.6 - 미상)한인 애국단의 핵심 멤버 3인으로는 이봉창, 윤봉길, 이화림이며 이화림은 1905년 1월 6일 평양에서 출생하여 31운동 참가 후 평양 일대의 독립운동가를 후원하다가 1930년 상해로 건너가 사격, 무술을 배웠고 일본군 밀사들을 유인 살해하는 등 맹활약을 했다. 이봉창 이 동경에서 던진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한국에도 설음식이 있듯이 일본에도 일본 고유의 설음식이 있다. 양력설을 쇠는 일본은 지난 한주 동안 오세치요리(お節料理)라는 설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어제 1월 7일은 그동안 설음식으로 빵빵해진 배를 편안하게 하는 나나쿠사가유(七草粥)라는 채소죽을 먹음으로써 설날 음식을 통한 새해의식을 다졌다. 설로부터 이레째가 되면 얼추 설치레는 끝나는 셈이다. 일본의 설음식인 오세치요리(お節料理)는 대부분 인연을 짓는 음식(緣起)이라고 해서 장수, 부자, 자손번영 같은 것을 의미하는 재료를 쓴다. 새우는 허리가 굽을 때까지 장수하라고 쓰며, 검은콩은 인생을 성실하게 살고, 밤조림은 황금색이 의미하듯 부자를, 청어알은 자손 번성을 뜻하는 식으로 재료 하나하나에 뜻 깊은 의미를 새기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 화려한 일본 설음식 오세치요리(お節料理) 요즈음은 가정에서 만들어 먹는 집 보다 편리하게 큰 백화점이나 인터넷 등에서 주문해서 먹는 가정이 늘고 있다. 값도 다양하여 3~4인분을 기준으로 싼 것은 20,000엔부터 비싼 것은 198,000엔짜리까지 그 내용물에 따라 천양지차다. 십여 년 전 일본친구 집에서 설날을 맞은 적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