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가 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카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소록도 가는 길, 한하운- 인터넷 상에서 한 누리꾼이 한하운의 시 가운데 지카다비를 물었다. 그러나 답글이 모두 시원찮다. 도대체 지카다비는 무엇일까? 문둥이시인으로 알려진 한하운은 본명이 태영(泰永)이고 함경남도 함주 출생이다. 중국 베이징대학 농학원을 졸업한 뒤 함남도청에 근무했으나 문둥병의 재발로 사직했다. 한하운은 자신의 처지를 담담히 엮어낸 1949년 《한하운 시초(詩抄)》, 《보리피리》등을 통해 천형(天刑)의 병고를 구슬프게 읊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 조선인강제노역의 현장 교토 단바망간탄광입구에서 한일평화답사단과 함께(2010.8.11) 여기서 지카다비, 地下足袋는 일본말인데 신발겸용버선이다. 앞에 치카(地下)를 빼고다비(足袋)만을 말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여기가 교토를 수도로 정한 환무왕(桓武天皇)의 어머니 무덤이런가? 그다지 넓지 않는 돌계단이 쭉 위쪽으로 나 있다. 거의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 듯 무덤의 참배길을 오르려는 나를 근처 주택가를 거닐던 사람이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다보고 있다. 수필가 오카베 이츠코(岡部伊都子) 씨는 말을 이어간다. 환무왕의 어머니 고야신립(高野新笠)은 백제 왕족으로 광인왕(光仁天皇)의 부인이 되었다. 틀림없이 희고 고운 조선의 피부를 가진 꽤 아름다운 미녀였을 것이다. 일본의 50대 왕인 환무왕의 어머니인 백제여인 고야신립의 무덤을 찾은 오카베 이츠코 씨는 대나무 숲이 우거진 돌계단을 오르며 고야신립이 분명 아름다운 모습의 여인이었을 것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다. 그녀가 일본 역사 속에 크게 부각 되었던 여성들의 삶을 추적하면 쓴 것이 《여인의 경, 女人の京》이다. ▲ 《여인의 경, 女人の京》 책 표지(왼쪽), 일본 황후가 된 백제여인 고야신립 무덤(교토) 이 책에서 지은이는 고야신립이 백제왕족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혼자서 교토 오오에(大枝町)에 있는 고야신립의 무덤까지 다녀 온 것이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멸망한 백제의 후손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고무다라이를 사려고 합니다. 판매하는 곳 좀 알려주세요. 사이즈는 많이 컸으면 좋겠어요. 어머니를 목욕시킬 수 있는 큰 것이면 좋겠어요. -다음- 사람을 목욕 시킬 만한 큰 고무다라이를 구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요즘은 벼라별 것을 다 인터넷에서 구하고 있지만 이 물건을원하는사람은 욕조 없는 집에 살거나 아니면 욕조가 있어도 다라이를 편한 곳에 두고 어머니를목욕시켜드리고 싶어서 일게다. 어른이 통째로 들어가는 커다란 고무다라이는 고무와 다라이의 합성어이다. 어렸을 적 시골집 마당가 한켠에 펌프 물받이용으로 고무다라이(우리 어릴 땐 고무다라라고 했음)가 쓰였다. 얼지도 않고 좀처럼 깨지지도 않는 붉은 빛을 띠던 고무다라이는 마당 있던 집을 허물고 아파트를 짓기 시작하면서 하나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아파트 씽크대 꼭지에서 수돗물이 콸콸 나오고 화장실엔 커다란 욕조와 세면대가 붙박이로 설치되어 있어 더 이상 고무다라이는 그 옛날의 명성을 찾기 어렵다. 명성은커녕 꼭 필요한 경우에도 어디서 파는지를 모를 만큼 세상이 바뀌었다. ▲ 고무다라(이)가 들어 오기 전에 우리는 함지박을 썼다. 《표준국어대사전》에 고무다라이는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 기자]국민은 소중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충성을 다하며 묵묵히 임무를 완수하는 대다수 국군 장병을 믿는다. 조국을 위해 젊음을 바쳐 희생하고 있는 그들의 명예가 도매금으로 더럽혀지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장병들도 조국을 지키는 일은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바로 우리 군인들이 표상으로 모시는 충무공의 '멸사봉공(滅私奉公)' 정신이 지향하는 목표요 방향이다. -조선일보 사외 컬럼- 얼마 전 '노크귀순' 사건이 발생한 뒤에 조선일보에 실린 사외칼럼이다. 흔히 쓰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이란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사욕을 버리고 공익을 위하여 씀 이라고 점잖게 풀이하고 있다. 그라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말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인 길들이기에 자주 사용하던 말이다. ▲ 조선인 길들이기에 앞장선 미나미 총독이 말한 멸사봉공(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1939년 4월 19일자 조선총독부관보에서 총독 미나미지로(南次郞)가 국민정신 앙양 을 위해 충남 부여에 일본 신궁창립(神宮), 지원병 강화, 황도정신 선양 등을 내세우면서 사용하기 시작하여 조선에서는 1939년 4월 19일부터 1941년 12월 2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안녕하세요, 여러분들 튀김 좋아하세요? 공장에서 만든 튀김이 아닌 가게에서 직접 만드는 수제 튀김, 저는 공장표보다 수제 튀김을 선호하고 즐겨 찾는데요. 맛있는 집을 소개할게요. -다음- 수제 초콜릿, 수제 스티커, 수제 다이어리, 수제 편지지, 수제 금고, 수제 앨범, 수제 구두, 수제 가방, 수제 간장요리... 인터넷에는 정말 많은 수제품이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수제란 무슨 말일까? 어떤 사람이 궁금하여 국립국어원에 질문했다. ▲ 수제요리를 묻는 질문에 국립국어원은 수제= 수작이라고 답했다. 수제란 손으로 만드는 것을 말하며 수작과 같은 뜻이라는 설명이다. 수제가 손으로 만드는 것이라면 수제품은 만들어진 것이다. 이 두 가지 뜻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자. *수제(手製):「1」손으로 만듦.「2」=수제품. *수제-품(手製品): 손으로 만든 물건. 손치로 순화. ≒수제(手製)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순화 하라는 것은 그 말이 일본말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수제(手製)라는 말은 조선시대에도 쓰였다. 다만 오늘날처럼 무엇을 만든다는 뜻으로는 쓰지 않았다. 문종실록 13권 (1452) 9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평남도청에 폭탄 던진 당찬 임신부 안경신 이 윤 옥 토지수탈 앞잡이 동양척식회사에 폭탄 던진 나석주 조선인 잡아 가두던 종로경찰서에 폭탄 던진 김상옥 상해 홍구공원 대 쾌거 윤봉길 도쿄 황거 앞에서 폭탄 던진 김지섭 이봉창 의사 제국주의 무모한 만행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여자의 몸 뒤질세라 치마폭에 거사 이룰 폭탄 몰래 숨겨 들여와 신의주 철도호텔, 의천경찰서, 평남도청에 던진 그 용기 꽃다운 스물세 살 임신부 폭탄 들어 평남도청 향해 힘껏 던지던 날 하늘도 놀라고 땅도 놀라고 온 천지가 부들부들 떨었다네 갓 낳은 핏덩이 끌어안고 왜경에 잡혀 철창 속에 갇혀서도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게 무슨 죄냐고 쩌렁쩌렁 호령하던 열사 출옥 후 핏덩이와 간 곳 알 수 없지만 어느 이름 모를 곳에서 또 힘차게 대한독립만세 외치며 그 투지 불태웠을 테다 불태웠을 테다. ▲ 여자폭탄범이란 기사로 대서특필한 1921.5.2 동아일보 안경신(安敬信, 1877~미상) 31 만세운동 때도 참여하였지만 그때는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 나는 일제 침략자를 놀라게 해서 그들을 섬나라로 철수시키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곧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직장 상사가 이번 주 주말에 선상 낚시 가자고 해서 갈려고 합니다. 동료와 함께 5명이서 말이죠. 집에서 잠이나 자는 게 좋은데 젠장할 먹고 살기 힘드네요.그래서 릴과 함께 낚싯대도 인터넷으로 골라 봤는데요. 첨이라 그냥 만원 이만 원짜리 사려구 했는데 셋트로 된 게 잇더라구요. 그냥 앗사리 그냥 돈 좀 더주고 좋은 거 사서 두고 두고 쓸 요량입니다. -네이버- 의의로 일상에서 앗사리라는 말이 많이 쓰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앗사리는 일본말이라서 인지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없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같은 일본말인 무데뽀는 일본말이라고 밝히고는 일의 앞뒤를 잘 헤아려 깊이 생각하는 신중함이 없음을 속되게 이르는 말. 막무가내, 무모로 순화하라고 되어있다. 이처럼 일본말이면서 어떤 것은 소개하고 어떤 것은 빼느니 차라리 어원을 밝히고 순화어를 제시하는 게 좋을 듯하다. 왜냐하면 뜻도 모르고 일본말을 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일본국어대사전 大辞泉에는 앗사리를 풀이하길, 人の性質や事物の状態などがしつこくないさま。複雑でないさま。さっぱり。「―(と)した味つけ」「―(と)している人」로 설
[그린경제 = 이윤옥 문화전문기자] 전남의 한 '미니부락'이 행정착오로 빼앗긴 땅을 1년 만에 되찾았다. 68가구, 200여 주민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전남 나주시 남평읍 신촌부락 주민들이 1915년부터 소유해온 '95년 묵은 땅'의 소유권을 잃은 것은 지난해 2월. 나주시는 일제 강점기인 1915년 '신촌리(里)' 명의로 확정된 뒤 1944년 분할된 마을 땅 473㎡(143평)에 대해 지난해 2월 나주시 소유로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쳤다. -광주 뉴시스 2010,3,28- 작은 마을이라 하면 될 것을 미니부락이라고 쓰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부락민을 모아놓고 한바탕 선동 연설을 하였다(채만식의 소년은 자란다) 처럼 부락은 문학작품 속에서도 널리 쓰고 있다. ▲ 오사카 인권박물관에서 펴낸 책 부락이란 말의 정의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시골에서 여러 민가가 모여 이룬 마을 .또는 그 마을을 이룬 곳. 마을로 순화 하라고 적고 있다. 지금은 이 말이 많이 사라졌지만 경기도 남양주 종합촬영소 앞 길가에 세운 아양부락처럼 아직도 마을 들머리 (입구)안내판에는 부락이란 말을 여전히 쓰고 있다. 부락민(部落民)이란 말로도 많이 쓰는 이 말은 결론부터 말하자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한 여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말임. 가야마스에코(香山末子, 1926-1996)라는 일본이름으로 《행주치마 노래》등 3권의 시집을 남기고 74살의 나이로 일본의 한센병요양소에서 1996년 숨을 거두었다. 김말임의 고향은 경상남도 진양군 진성면 온수리이다. 그 시절 많은 조선인들이 강제연행길에 올라 큐슈 탄광지대의 중노동으로 시달렸거나 또는 조선총독부의 토지수탈로 논과 밭을 잃고 정처없이 떠나야 했던 것처럼 그는 먼저 건너간 남편 뒤를 따라 19살 꿈 많은 새댁으로 일본땅을 밟았다. 그러나 기다리는 것은 지독한 가난과 생활고에 이은 한센병 신세로 일본땅에 도착한지 3년 만에 어린 자식들과 헤어져 한센병요양소에서 지체장해와 실명이라는 불운으로 긴 투병생활에 들어간다. 썩어가는 몸과 눈까지 멀어버린 김말임의 수용소 생활은 필설로 구태여 옮기지 않아도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23살의 나이에 한센병요양소에서 그가 그리던 경상도 온수리 고향 하늘은 언제나 구세주였고 어머니 품이었으리라! 그 한의 세월을 줄줄이 노래로 엮어 49살 되던 해에 《쿠사츠아리랑》1권을 시작으로 74살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도라지 시(노래)》,《푸른 안경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유기농 우리밀 통밀을 이용하여 크림치즈와 카야잼을 넣고 앙꼬빵을 반들어 봤답니다. 작게 만들어 하나씩 먹기에 부담이 없고 우리밀 통밀을 이용하여 몸에도 좋고 속도 편한 빵이랍니다. -다음- 우리밀로 앙꼬빵을 만들었다? 왜 멀쩡한 조선 밀에 일본말을 섞는가? 인터넷에 자랑스러운 듯 우리밀 빵 사진을 올린 사람은 20대 아가씨 같다. 딴엔 우리밀 빵을 자랑하고 싶은 거겠지만 앙꼬가 일본말인줄은 모른다. 이 아가씨뿐이 아니다. 다음 블로그에는 온통 앙꼬빵 찬양 문구가 즐비하다. 밥맛없는 아침대용으로 간단히 먹고 출근길에 나설 수 있는 앙꼬빵은 사람들에게 인기 만점 빵이란다. 대관절 앙꼬란 무엇일까? ▲ 앙꼬빵 위 일본어사전 풀이처럼 앙꼬의 재료는 팥강낭콩 뿐 아니라 속을 채우는 것이면 뭐든지 앙꼬이다. 따라서 녹두, 밤, 검은깨, 땅콩, 호두, 대추, 바나나 등이 모두 앙꼬가 된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팥에만 한정하고 있다. 실제로는 일본처럼 밤이나 고구마 검은깨 등도 속 재료로 쓰면서 말이다. 속재료로 밤을 넣으면 밤빵이요, 팥을 넣으면 팥빵이라 부르면 되는 것을 앙꼬빵하는 것은 옳지 않다. 더구나 서양밀가루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