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전 도원수 권율(權慄)이 졸하였다. 율은 임진년 변란을 당하여 몸을 던져 싸움터에 달려가 전투 때마다 견고한 성을 함락시켰었다. 그 이치(梨峙)의 승리와 행주(幸州)의 대첩(大捷)은 비록 옛날 명장(名將)이라 하더라도 어찌 그보다 더하겠는가. 국가가 중흥(中興)의 업을 이룬 것은 실로 이에 힘입은 것이니,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위는 《선조수정실록 33권》(1599) 7월 1일 치 기록으로 선조 때 권율 장군 이름은 하루가 멀다 하고 그 이름이 나온다. 그만큼 임진왜란은 조선에 있어 위급한 전쟁이었고 그 한가운데 권율 (1537~1599)이 있었던 것이다. 행주대첩 하면 떠오르는 권율장군은 비교적 늦은 나이에 관직에 나왔다. ▲ 양주시 장흥 석현리에 있는 권율 무덤, 좌우로 부인과 함께 묻힌 권율 권율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년 전인 1582년(선조 15)에 45살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했다. 당시의 평균 수명과 보통 30살 전후에 문과에 급제하는 추세에 견주면 매우 늦은 출발이었다. 그는 승문원 정자(正字, 정9품)로 관직을 시작해 전라도 도사(都事, 정5품)경성판관(종5품) 등의 관직을 거쳤다. 그러나 급제한 나이로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6월 1일 오후 전남 장성의 청산녹수 마당에서 음악, 무용, 공연과 토크 프로그램 등 메밀꽃 밭을 배경으로 한바탕 끼와 흥을 돋구는 순수 시민주도의 큰 잔치가 열린다. 올해로 13년째를 맞이하는 좋은세상 만들기 종합문화공연 난장인 놀부마을 묵고 놀자판은 지난 2001년 대학 사회복지학과 종강파티로 담양군 대덕면 입석리 흑돼지 농장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이 작은 잔치는 10여년이 흐르면서 수백 명이 참가하는 큰 잔치로 발전했으며 해마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 전, 5월말이나 6월초의 토요일에 판을 연다. ▲ 2012년 종합문화공연 난장 모습 이제는 돼지도 몇 마리씩 잡고,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하여 공연도 하고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분들을 초청해 이야기도 듣는 의미 있고 재미있는 신명나는 놀이판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번 축제 주요 참석자는 최영희 18대 국회의원(전 국가청소년위원회 위원장), 야생초 편지 저자 황대권 작가, 인기 국어교사 이렇게 해야 바로쓴다 저자 한효석 선생, 다큐 백년전쟁 김지영 감독, 로봇 박사 박종오 교수, 최윤희 전통무용가, 김경일 성공회신부, 이윤옥 사쿠라 훈민정음 저자,
[그린경제 = 이윤옥 문화전문기자] 독립운동가 3대 지켜 낸 어머니 '김락' 나라의 녹을 먹고도 을미년 변란 때 죽지 못하고 을사년 강제 조약 체결을 막아 내지 못했다며 스무나흘 곡기를 끊고 자결하신 시아버님 아버님 태운 상여 하계마을 당도할 때 마을 아낙 슬피 울며 하루 낮밤 곡기 끊어 가시는 길 위로 했네 사람 천석 글 천석 밥 천석의 삼천 석 댁 친정 큰 오라버니 백하구려 모여든 젊은이들 우국 청년 만들어 빼앗긴 나라 찾아 문전옥답 처분하여 서간도로 떠나던 날 내앞 마을 흐르던 물 멈추어 오열했네 의성 김 씨 김진린의 귀한 딸 시집와서 남편 이중업과 두 아들 동흠 중흠 사위마저 왜놈 칼 맞고 비명에 보낸 세월 쉰일곱 늘그막에 기미년 안동 예안 만세운동 나간 것이 무슨 그리 큰 죄런가 갖은 고문으로 두 눈 찔려 봉사 된 몸 두 번이나 끊으려 한 모진 목숨 11년 세월 그 누가 있어 한 맺힌 양가(兩家)의 한을 풀까 향산 고택 툇마루에 걸터앉아 흘러가는 흰 구름에 말 걸어본다 머무는 하늘가 그 어디에 김락 여사 보거들랑 봉화 재산 바드실 어르신과 기쁜 해후 하시라고 해거름 바삐 가는 구름에게 말 걸어본다. 김락(金洛,1863.1.21~1929. 2.12
[그린경제 = 이윤옥 문화전문기자] 이 절은 중요함이 여느 절과 다르다. 이미 열성조(列聖朝)의 어필(御筆)을 봉안하였으니, 지금에 미쳐 소생시키고 구제하는 일을 잠시도 늦출 수 없다. 이른바 궁납(宮納)과 잡비(雜費)를 면세(免稅) 받은 전답에서 생산되는 것에 세금이 10배라니 어찌 그런 말을 듣고서 그대로 둘 수 있겠는가. 특별히 아울러 탕감하라. 그리고 당해(當該) 궁(宮)에서 만일 다른 방도로 수탈하는 폐단이 있거든 순영(巡營)은 그 사실을 보고하라. 궁납의 폐단이 없어지더라도 관납(官納)의 폐단이 또 생긴다면 바로잡아 개혁한 뜻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겠는가. 이는 도백(道伯)이 살피고 신칙하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을 뿐이다. ▲ 건봉사 불이문 정조실록에 보면 (26권, 1788) 건봉사에 지운 무거운 세금을 탕감하라는 어명이 눈길을 끈다. 실록에 보이듯 열성조의 어필까지 봉안된 절이니 만큼 왕실과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강원도 고성군의 건봉사(乾鳳寺)를 찾은 날은 5월 마지막 주 월요일이었다. 짙푸른 초록 나무들 사이로 간간이 가랑비가 뿌리고 있었다. ▲ 1920년대 건봉사 모습 민간인출입통제구역에 자리한 건봉사는 만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저는 퇴근길에 가볍게 따끈한 오뎅국물에 정종 중탕 한 잔 해서 먹는 것을 최고로 칩니다. 제가 일본 술을 좋아 하는 까닭은 추울 땐 따뜻하게 데워 먹고 더울 땐 시원하게 해서 마실 수 있기 때문이지요. 특히 추운겨울에 복어 지느러미를 살짝 태워 넣은 히레정종도 약간 비리면서 고소한 맛이 나는데 향이 좋습니다. -다음- 오뎅과 정종 문화는 어느새 깊숙이 우리 사회 속에 뿌리내려 퇴근길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는 친구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듯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종(正宗)을 정의하기를 일본식으로 빚어 만든 맑은술. 일본 상품명이다. ≒청주(淸酒)라고 풀이하고 있는데, 일본 상품명은 맞지만 일본식으로 빚은 술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 국정종(기쿠마사무네) 누리집 한국어판 차라리 한국의 맑은 술 청주와 같다.라고 하는 게 알기 쉽다. 그럼 청주(淸酒)란 무슨 술인가? 말 그대로 맑은 술이란 뜻으로 탁주를 빚어 농익은 술독에서 떠낸 맑은 술을 말한다. 일본술의 과정을 보면 삼국시대에 우리의 기술을 전수받아 우리와 같이 청주를 만들다가, 근래에 청주의 제조법에 근대과학을 접목시켜 일본 고유의 술로 발전시킨 것이 일본 술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봄에는 철쭉, 여름에는 아지사이(수국의 일종)꽃이 만개하여 일본 최고의 꽃동산 절로 알려진 천년고도 교토 이웃도시 우지시(宇治市)의 삼실호사(三室寺, 미무로토지)는 지금 아지사이꽃이 아름답게 꽃동산을 수놓고 있을 것이다. 전국 최고의 꽃절로 유명한 만큼 절 입구에서 비탈진 본당 앞으로 이어진 꽃동산은 이름처럼 전국의 신도와 관광객들로 꽃반 사람반의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삼실호사는 본존인 천수관음상의 효험이 크다고 알려져 있으며 서국33개순례사찰(西三十三箇所) 가운데 10번째 도량으로 많은 일본인이 순례하고 있는 절이다. 삼실호사는 백제계 스님 행표와 관계가 깊다. 행표스님의 아버지 히노구마(檜前, 檜熊)씨는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 815년에 만든 고대씨족 족보)》에 따르면 그 출신이 백제계라고 명백히 나와 있는데 “히노구마 스구리(檜前村主)는 백제계 고조(高祖)”라고 표기된 것이 그것이다. 삼실호사는 사전(寺傳)에 따르면 “교토부 우지시 토도 시가다니(京都府 宇治市 道 滋賀谷)에 있는 본산수험(本山修險)의 본사. 산호(山號)는 명성산(明星山), 본존은 천수관음보살로 서기 770년 무렵 우소변견양(右少弁犬養)이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핑크땡땡이 주문했는데 무지핑크 원피스가 왔어요. 화가 나서 전화하니 땡땡이랑 무지랑 주문번호를 같이 해놓은 자기들의 실수를 인정 안하고 무조건 내가 잘못했다고 하네여... 첨부터 주문번호를 틀리게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사람 헷갈리게 주문번호는 똑같이 해놓구선 낚시질 하는 것도 아니고..기분 엄청 나빴어여.. 다시 돌려버리고 싶었지만 배송비도 내가 물어야 된다고 해서 그냥 입기로 했지만 솔직히 볼 때 마다 화나는 건 어쩔 수가 없네여.. -다음- ~하네여, ~어여 라고 쓰는 것을 요새 많이 본다. 귀엽게 봐주기엔 우리말이 너무 불쌍하다. 여름이라 땡땡이 원피스를 입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흰 바탕에 검정 땡땡이도 괜찮고 검은 바탕에 흰 땡땡이도 괜찮다. 나도 땡땡이를 좋아해서 옷장에 두어 벌 땡땡이 무늬 옷이 있다. 누리집엔 온통 땡땡이 옷들이 넘쳐난다. 잘 팔린다는 증거다. 어렸을 적엔 땡땡이를 땡땡이가라라고 했다. 일본말을 공부하다 보니 땡땡이도 땡땡이가라도 모두 일본말이다. ▲ 땡땡(点点)이 무늬 옷감 엑? 하고 놀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이다. 그러나 이 말은 일본말이라서 그런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고양시 끝자락인 덕양구 동산동에서 구파발쪽으로 가다보면 고가도로 밑에 목이 잘린 커다라 돌부처가 세워져 있는데 이름하여 고양(高陽) 밥 할머니 석상이다. 이를 두고 고양의 잔다르크 동산동 밥 할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 동산동 창릉모퉁이공원에 있는 밥 할머니 석상. 글쓴이가 찾아갔을 때는 작년 제향 때의 펼침막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밥 할머니 석상에 관한 유래는 임진왜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의 산천을 피로 물들인 지 8개월이 지난 선조 26년 정월의 일이다. 무방비 상태의 조정은 긴급히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하기에 이르렀고 명나라는 이여송을 대장으로 삼아 명군 4만 명을 파견했다. 명과 합세한 조선군은 왜군에게 함락되었던 평양성을 탈환하고 그 여세를 몰아 한양을 향해 남진하였다. 그러나 그해 정월 26일 한양을 눈앞에 둔 고양시 벽제관의 남쪽 숫돌 고개 전투에서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은 왜군에게 참패하여 북한산으로 뿔뿔이 패주, 이여송과 장수들의 일부는 북한산 노적봉 밑에 집결하게 되었다. 왜군이 포위망을 좁혀오자 이여송과 조선의 도원수 김명원은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의 진로를 구상 중에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대리운전에서 나와바리란 어쩌다 한번 가서 콜 잡고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요일별로 몇 시 쯤 어디서 어떤 오더가 나올지 알고 있어야 한다. 정말 착한가격의 오더가 떴을 때를 제외하고는 내 나와바리 내에서 활동하는 게 고정적인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다. -다음- 대리운전을 하는 사람이 나름대로 나와바리를 정한 예문이 확 눈에 띈다. 글을 올린 사람은 대리운전을 하는 모양인데 나름대로 대리운전에서의 나와바리를 정의해 놓고 있다. 그에 따르면 대리운전도 나와바리가 있어야 수입을 보장 받는다는 것이다. 나와바리는 의외로 남자들이 많이 쓰는 일본말이다. 여성들 사이에서는 거의 이 말을 들어 본적이 없는데 남성사회에서는 곧잘 듣게 된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 말이 나와 있지 않다. 일본말이라고 뺀 모양인데 무데뽀(막무가내), 요지(이쑤시개) 같은 말은 실려 있다. 다만 다음 일어사전에서 나와바리(なわばり,縄張り) : 1 줄을 쳐서 경계를 정함. 2 건축 부지에 줄을 쳐서 건물의 위치를 정함. 3 (노름꾼폭력배 등의) 세력 범위. 세력권. 4 남의 침범간섭을 허용하지 않는 영역. 5 (동물의) 텃세권. 세력권. 테리토리
[그린경제 = 이윤옥 문화전문기자] 외출을 할 때는 뱀이 허물을 벗듯 우선 빤쓰부터 벗어야 한다 고무줄이 약간 늘어나 불편하지만, 편안하지만, 그래서 빤쓰지만 땡땡이 물무늬 빤쓰 손현숙 시인의 나 죽어도 빤스 아닌 꽃무늬 팬티로 들키고 싶다의 일부분이다. 영어의 팬티 (Panty)가 일본으로 건너가면 빤스(ぱんつ, pantsu)가 된다. 같은 속옷이지만 빤스의 이미지가 다르고 팬티 이미지가 다른 것은 왜일까? 같은 사물에 대해 다른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말은 팬티와 빤스말고도 얼마든지 있다. 예컨대, 빠마와 펌, 아까징끼와 요드딩크, 뼁끼와 페인트같은 것들도 우리의 뇌리에 와 닿는 이미지는 사뭇 다르다. 일본 작가 다코와카코(田幸和歌子)는 ≪잡학사전≫에서 일본인 최초로 서양식 여성 속옷인 즈로즈를 손에 넣은 사람은 풍신수길(豊臣秀吉)이라고 했다. 포르투갈 사람이 선물용으로 가지고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이 이상한 여성 속옷을 구경만 했을 뿐 입었다는 기록이 없다. ▲ 씨름선수 등이 차는(입는) 훈도시. (구화상회 제공) 그때까지 여자들은 고시마키(腰巻)라 해서 엉덩이에 긴 천을 둘렀는데 오늘날의 팬티와는 사뭇 다른 것으로 옷이라기보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