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서울 낙원동에서 40년 넘게 전통 표구 작업을 해온 이효우(69) 낙원표구사 대표는 옛 사람들이 시나 편지를 쓰는 데 사용한 작은 종이인 시전지(詩箋紙) 수집가다. 전남 강진의 병풍을 제작하는 집안에서 자란 그는 10대 때 상경해 인사동 표구사에 들어가 일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국내 몇 안 되는 장황(裝潢:비단이나 두꺼운 종이를 발라서 책이나 화첩, 족자 등을 꾸미는 일) 장인이자 고서화 수리복원 전문가인 그가 시전지 수집을 시작한 것은 20년 전, 조선 후기 문인 이복현의 편지지를 보고 반하면서부터다 (후략) - 2010.11.15. 국민일보- 위 글에 보면 표구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예전에 집 주변에 널려있던 표구집이 하나 둘 사라져 요즈음엔 인사동이나 가야 구경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림하면 따라 다니는 표구라는 말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 일본 표구사들의 제57회 표구전시회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표구(表具) : 그림의 뒷면이나 테두리에 종이 또는 천을 발라서 꾸미는 일이라고 나와 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말은 일본말로 우리는 예부터 장황(粧䌙)이란 말을 써 왔다. 조선왕조실록을 보자. 중종실록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오늘 대림역12번 출구 중국동포들 많이 사는 동네에서 중국 샤브샤브 훠궈를 먹었다. 직원들이 한국어를 못했다. 주변 손님들 모두 중국어. 음식도 본토 맛 그대로. 오! 신기...담엔 여권 들고 가야겠어 -다음- 팔팔 끊는 물에 푸성귀나 얇게 저민 고기를 살짝 담가 건져 먹는 샤브샤브는 한국인들도 좋아 하는 일본요리다. 샤브샤브(しゃぶしゃぶ)라는 말은 1952년 일본 오사카에서 스테이크 요리점인 스에히로에서 팔기 시작한 요리이다. 이 요리는 1955년에 고기샤브샤브 (肉のしゃぶしゃぶ)라는 이름으로 상표등록을 마쳤다. 그러나 일설에는 몽골의 쿠빌라이 주치의 였던 홀사혜(忽思慧)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말도 있고, 한편으로는 북경의 화과(火鍋)라는 양고기 요리가 있는데 이를 일본의 민예운동가인 요시다(吉田璋也)씨가 들여와서 지금의 형태로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 일본의 샤브샤브 상차림, 곁들이찬(스키다시)이 없다. 문제는 샤브샤브나 오뎅(어묵), 스시(초밥), 사시미(생선회) 같은 일본 음식을 한국인들도 즐겨먹고 있는데 어떤 말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있고 어떤 말은 없다보니 이 말이 궁금한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오뎅과 사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섬섬옥수 무궁화 수를 놓아 삼천리 금수강산 가르치던 스물셋 처녀 선생님 가갸거겨 글 가르쳐 민족혼 일깨우며 밤낮으로 독립의 끈 놓지 않게 타이르신 이여 어느 해 메마른 겨울 장이 꼬이도록 몸을 살피지 않고 열정을 쏟으시더니 끝내는 스물여섯 꽃다운 나이에 꽃상여 타고 코흘리개 곁을 떠나던 날 넘치던 샘골의 물이 마르고 하늘의 물도 말라 마을 아낙들 마른 울음소리만 가득했네 코흘리개 녀석들 엎어지고 자빠지며 상여 뒤쫓아가는 길 꽃상여 위로 흰 눈송이만 하염없이 내리었다네. -심훈의 상록수 주인공 처녀선생 '최용신'/이윤옥- ▲ 1935년 당시 최용신 관련기사 최용신(崔容信, 1909. 8.12 - 1935. 1.23)은 누구인가? 심훈의 상록수 모델이 된 최용신은 함경남도 덕원(德原) 출신으로 식민지 수탈에 의해 피폐한 농촌사회의 부흥을 위해 농촌계몽운동으로 일생을 바친 독립운동가이다. 그의 나라사랑 이야기는 ‘시로 읽는 여성독립운동가’《서간도에 들꽃 피다》2권에 자세히 그려져있다. ▲ 최용신 기념사업회를 이끈 김명옥 회장과 안산 샘골 최용신 애국지사 무덤에서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저희 집 식구들은 모두 고스톱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래서 세 사람만 모이면 바로 패를 돌리구요, 손님이 왔을 때도 분위기가 좀 어색하다 싶으면 바로 손님 앞에 카키색 군담요를 깝니다. 고스톱의 매력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이예요. 고도리는 새를 말하는 건 알겠는데 화투에 새가 한두 마리가 아니잖아요! 고도리는 무슨 새를 말하는 것인지.. 이게 궁금하네요!! 고도리는 무슨 새에요? -다음- 고도리에 대해 쓰려고 예문을 찾다가 한 누리꾼의 글이 눈에 확 들어온다. 고도리는 무슨 새 인가요? 라는 질문이 귀엽고 애교스럽다. 그보다 더 재미있는 풍경(이를 재미있다고 말해야 할지)은 이 집 식구 셋만 모이면 고도리를 친다는 사실이고 또 하나 고도리의 매력을 말한 부분이다. 이쯤 되면 한국 가정의 문화는 대충 파악된 셈이다. 자! 그럼 한국인들 셋만 모이면 열광하는 일본문화 고도리의 정체를 살펴보자. 어쩐일인지《표준국어대사전》에는 고도리가 나와 있다. 단스(서랍장), 자부동(방석) 같은 말은 없으면서 고도리는 웬일? 고도리 (일gotori[五鳥]):「1」고스톱에서, 매조ㆍ흑싸리ㆍ공산의 열 끗짜리 석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일본어를 전공하다 보니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 있다. 일본은 언제 가는 게 좋은지 둘째 어딜 가야 하는지 셋째 꼭 추천할 만한 곳은 어디냐? 같은 질문이다. 사람마다 좋아 하는 것이 달라 딱 부러지게 대답해줄 수는 없지만 이 세 가지를 그런대로 충족시키는 것이라면 교토에서 해마다 5월 15일 하는 아오이마츠리 구경 겸 관광을 권하고 싶다. 마츠리는 말 그대로 전통축제이므로 반드시 정해진 날에 가야 볼 수 있다. 유명한 명승지나 유적지는 아무 때나 사시사철 편한 시간에 가면 되지만 마츠리와 같은 무형문화를 보려면 꼭 그날이 아니면 구경하기 어렵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천년고도라 유적지도 많은데다가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아오이마츠리도 볼 수 있기에 말이다. ▲ 아오이마츠리는 1000여년전 귀족들의 화려한 의상을 볼 수 있어 인기다 교토의 3대 마츠리라고 하면 5월 15일 아오이마츠리, 7월 17일 기온마츠리, 10월 22일 지다이마츠리를 꼽는다. 일본열도가 마츠리의 나라라고는 하지만 교토는 특히 유명한 3대마츠리와 더불어 청수사, 금각사 등 이름난 절과 유적지가 많고 인근 도시인 오사카와 나라지방까지 아우르면 사시사철 볼거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벽제관 터는 수퍼나 우체국에 갈 때면 으레 들리는 곳이다. 지금은 주춧돌만 덩그마니 남아 있지만 이곳은 일제강점기 총독부 학무국에서 심의한 조선고적(朝鮮古蹟) 명소에 뽑힐 만큼(1931.6) 고색창연한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의 사신들이 조선을 방문 할 때 반드시 들러야하는 오늘날의 인천국제공항과 같은 중요한 관문이었다. ▲ 지금은 터만 남은 벽제관터(한자 지 '址'보다는 우리말 '터'로 고쳐 써야 한다) 벽제관에 관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세종 5년(1423) 9월 5일)을 보면 세종임금이 중국 사신을 배웅할 때 벽제관까지 세자를 보내야할지 말지에 대해 묻고 있다. 예전에 사신 황엄(黃儼)이 돌아갈 때에, 세자(世子)가 벽제관(碧蹄館)까지 나가서 전송하였는데, 지금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또 세자가 작별할 때 읍(揖)을 해야하나? 절(拜)을 해야하나? 라고 하니, 영의정 유정현(柳廷顯) 등이 아뢰기를, 예전에는 세자께서 이미 장성하였으니 벽제관까지 가서 전송하는 것이 옳았지마는 지금은 세자께서 나이 어리니 갈 수 없으며, 교외(郊外)에서 배례(拜禮)하는 것도 또한 옳지 못합니다.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5월이 되면 슬슬 일본의 하늘을 장식할 잉어들이 선보이고, 5월 5일은 그 고이노보리(こいのぼり,잉어날리기) 절정의 날이다. 이때쯤 일본을 찾는 사람들은 시골집 마당이나 유치원 마당 또는 아파트 베란다에 세워둔 커다란 모형 잉어를 보게 될 것이다.그런데 왜 하필이면 하고많은 물고기 가운데 잉어모양일까? 이는 중국 후한서(後漢書)에 그 답이 있다. 중국 황하강으로 흘러드는 지류에 용(龍)이라 불리는 폭포가 있었는데 이 폭포를 향해 수많은 물고기가 뛰어오르려고 하지만 그 가운데서 잉어란 놈만 뛰어오르는 것을 보고 중국인들은 잉어를 입신출세의 상징으로 여겼다. 일본에는 에도시대(江戶時代.1603-1868) 때무사집안에서 시작된 단오풍습으로 음력 5월 5일 무렵 사내아이의 출세를 기원하여 집 마당에 높은 막대기를 세우고 거기에 길게 늘어뜨린 모형잉어 장식을 달아 둔 것이 그 유래이다. 한국의 단오풍습은 아낙들이 창포물에 머리감는 따위의 의식이 남아 있지만 같은 창포(菖蒲)라도 일본에서는 나쁜 악귀의 액땜용으로 쓰이는데 그것은 일본말 쇼우부(尙武, しょうぶ)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창포(菖蒲)는 곧 상무(尙武)라는 말과 같아 창포
[얼레빗=이윤옥 기자] 방학숙제로 할건데요. 오뎅, 모찌, 사시미...같은 일본말을 선생님이 조사하라고 했어요. 급해요. 지금이 8월 27일이고 저 개학이 8월 29일이에요. 방학숙제를 아직 안해서...급하니까 빨리 부탁합니다. 날짜가 지났더라도 겨울방학 때 써먹으면 되니까 부탁해요. 되도록 8월 28일 저녁까지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자부동은 일본말이 아니고 경상도 사투리인가요? 이것도 알려주세요. -다음- 어린 학생이 개학을 코앞에 두고 방학숙제 때문에 고민하다가 인터넷에 올린 글인 모양인데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겪었음직한 일이다. 위 학생이 질문한 자부동은 경상도 사투리인가요?라는 말을 곱씹으며 쓴 웃음을 지어본다.《다음 오픈국어사전》에는 자부동: 방석을 가리키는 경상도 사투리로 나와 있다. 어째서 이런 엉터리 정보가 나돌아 다니는 것일까? 자부동을 일본어국어대사전 ≪大辞泉≫에서는 ざぶとん,【座布団/座蒲団】: 座るときに敷く布団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를 번역하면 자부동 : 앉을 때 까는 방석이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이 만든《표준국어대사전》에 자부동은 없다. 사시미 : 생선회, 미싱: 재봉틀 몸
[얼레빗=이윤옥 기자] 이른 아침 잔디에 이슬이 촉촉이 맺혀있는 인원왕후 무덤 명릉(明陵)에 다녀왔다. 고양시 서오릉(西五陵) 안의 명릉에 잠들어 있는 인원왕후 무덤을 찾은 데는 특별한 까닭이 있다. 그의 친정아버지 김주신이 머물던 대자동의 영사정(永思亭)과 관련된 기사를 쓰다가 인원왕후를 알게 되었고 공부를 하다 보니 이 집안사람들의 인품이 사람을 매료하게 하는 점이 있어 인원왕후를 좋아하게 되었다. 인원왕후는 숙종의 두 번째(실제로는 민경왕후 김씨, 인현왕후 민씨에 이어 3번째)왕비이다. 나이 16살에 왕비가 되어 숙종과 19년을 살았지만 소생이 없었다. 그러나 숙종 사후 경종과 영조를 국왕으로 즉위시켰다. 특히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연잉군은 훗날의 영조임금이다. 숙종과 최무수리 사이에서 태어난 영조는 인원왕후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국왕이 된 이래 인원왕후를 친어머니만큼 극진히 모셨으며 인원왕후 사후에는 눈물을 흘리며 친히 대왕대비행록(영조 33년,1757년)을 짓기도 하였다. ▲ 인원왕후 무덤 (아래 언덕 왼쪽에는 숙종과 1계비 인현왕후가 잠들어 있다) 한 번 바람이 불거나 한 번 비가 내리는 것도 한결같이 지나쳐 버리신
남에는 유관순, 북에는 '동풍신' 이윤옥 천안 아우내장터를 피로 물들이던 순사놈들 함경도 화대장터에도 나타나 독립을 외치는 선량한 백성 가슴에 총을 겨눴다 그 총부리 아버지 가슴을 뚫어 관통하던 날 열일곱 꽃다운 청춘 가슴에 불이 붙었다 관순을 죽이고 풍신을 죽인 손 정의의 핏발은 결코 용서치 않아 끓어오르던 핏빛 분노 차디찬 서대문 감옥소 철창을 녹이고 얼어붙은 조선인 가슴을 녹였다 보라 남과 북의 어린 열일곱 두 소녀 목숨 바쳐 지킨 나라 어이타 갈라져 등지고 산단 말인가 남과 북 손을 부여잡고 다시 통일의 노래를 부를 그날까지 님이시여 잠들지 마소서! --------------------------------------------------------------------------------- 동풍신(董豊信, 1904 - 1921) 서대문형무소공원 안 독립관에는 순국선열들의 위패가 모셔져있는데 거기에 동풍신 애국지사의 위패가 있다. 남에는 유관순, 북에는 동풍신이라고 할 정도로 알려졌던 두 열사는 어찌 된 영문인지 한쪽은 만고의 애국지사인데 한쪽은 그 이름 석 자를 아는 사람이 없다. . ▲ 서대문형무소공원 안 독립관에 모셔져 있는 순국선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