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레빗=이윤옥 기자] 주로 횟집이나 일식집에서 많이 쓰던 ‘쓰키다시’를 요새는 한식집에서도 마구잡이로 쓰고 있다. 쓰키다시란 정확히 발음하면 ‘츠끼다시(つきだし, tsukidasi)’이다. 츠메끼리(쓰메끼리, 손톱깎기), 츠나미(쓰나미, 지진해일), 츠시마(쓰시마, 대마도)의 ‘츠'를 우리는 ‘쓰’라 발음한다. 어차피 털어내야 할 말인데 정확한 발음까지 해줄 필요는 없다. 국립국어원 말다듬기위원회가 '쓰키다시'의 다듬은 말로 '곁들이찬', '지리'는 '맑은탕', ‘후리카케'는 '맛가루' 따위로 새롭게 다듬었다고 지난 4월 30일 밝혔다. ‘쓰키다시’란 우리말로 밑반찬, 딸린반찬, 공짜반찬, 덤반찬, 맛보기요리, 맛배기요리, 곁들이찬 같은 뜻으로 번역 할 수 있는데 이번에 ‘곁들이찬’으로 정했다니 그렇게 앞으로 고쳐 쓰면 좋을 일이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쓰키다시’가 없다. ‘무데뽀(<일>muteppô [無鐵砲]:일의 앞뒤를 잘 헤아려 깊이 생각하는 신중함이 없음을 속되게 이르는 말. 막무가내, 무모로 순화.’는 실려 있는데 말이다. ▲ 횟집에는 저렇게 다양한 “곁들이찬(쓰키다시)”이 나온다(통영 ‘궁전횟집’ 제공) 일본음식 관련 말
[그린경제 = 이윤옥 기자] 비단옷 입고 고기반찬에 포만한 자들이여/ 수양산 고사리 맛 그 어찌 알겠는가/ 날짐승 길짐승이 보금자리 달리하듯/ 나만은 벼슬을 부끄럽게 여기노라 이는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1454~1492) 선생의 강나루 주막에 묵으며라는 시의 일부이다. 평생 술을 좋아하고 거문고를 잘 탔으며 벼슬에 기웃거리지 않고 산수를 즐겨 유랑생활을 했던 그는 한때 술을 너무 밝혀 어머니의 근심거리였는데 그런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술을 끊는 시(止酒賦)를 짓고 10년 동안 술을 입에 대지 않을 만큼 효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남효온 선생은 조선 단종 때 문신으로 김종직의 문인이며, 김굉필, 정여창 등과 함께 수학했다. 영의정 남재의 5대손으로 고양(행주)에 살면서 어지러운 세상을 풍자하는 시문을 많이 지었으며《추강냉화》와《추강집》에 그의 대쪽 같은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특히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을 복위시키기 위해 목숨을 건 6명의 충절을 담아 쓴 사육신(死六臣) 이야기인《육신전 六臣傳》은 남효온이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올곧은 정신의 소유자임을 잘 나타내는 책이다. ▲ 행주나루터에 있는 남효온 시비 사육신이란 성삼문,
[그린경제 = 이윤옥 문화전문기자] 겨레의 큰 스승 백범 김구 길러 낸 억척 어머니 곽낙원 이윤옥 비탈진 언덕길 인천 형무소 터엔 지금 ▲ 사형을 기다리는 아들 백범에게 밥을 얻어 나르던 겨레의 어머니 곽낙원 애국지사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찜질방 들어서 사람들 웃음꽃 피우며 여가 즐기지만 예전 이곳은 백범 어른 잡혀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던 곳 국모 살해범 츠치다를 처단한 사형수 아들 위해 정든 땅 해주 떠나 남의 집 식모살이 밥 얻어 감옥 드나들며 아들 옥바라지 하신 어머니 삼남 지방으로 쫓기는 아들 마곡사서 머리 깎고 중 된다고 소식 끊었을 때 애간장 타셨을 어머니 인과 신 어린 손자 두고 먼 이국땅서 눈 감은 며느리 대신하여 빈 젖 물리며 길러 내신 어머니 상해 뒷골목 배추 시래기 주어 애국청년 배 채우고 광복 위해 뛰는 동포 뒷바라지로 평생 등이 굽은 겨레의 어머니 오늘도 허리띠 질끈 동여매고 오른손에 밥사발 든 어머니 겨레에게 건네는 말 나지막이 들려온다 너희가 통일을 이루었느냐! 너희가 진정 나라를 되찾았느냐! 곽낙원(郭樂園, 1859.2.26~1939.4.26) 곽낙원 여사는 겨레의 큰 스승 백범 김구선생의 어머니이다.평양숭실학교 3학
[한국문화신문 얼레빗=이윤옥 전문기자] 어렸을 때 우리는 오재미 놀이를 즐겼다. 작은 헝겊 주머니를 만들어 모래나 콩을 넣어 만든 이것으로 상대방과 편을 짜 서로 던지고 노는 놀이다. 특히 초등학교 운동회날 장대를 높이 세우고 커다란 공 주머니를 매달아 놓고는 청군 백군 나뉘어서 오재미를 던지면 커다란 공 주머니는 팍 하고 터지는데 대부분 그 안에는 점심시간 같은 말이 쓰여 있던 기억이 난다. 사단법인 한국청소년진흥재단 세종특별자치시지부(지부장 조주환), 세종종합사회복지관(관장 장백기), 세종청소년자활지원관(센터장 윤성웅)이 공동주관해 23일 세종시문화예술회관 광장에서 정월 대보름 민속놀이 한마당을 개최해 지역 청소년들과 주민들이 다양한 민속놀이를 체험했다. (중략) 특히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펼쳐진 엿치기, 오재미 던지기 경연마당을 기획해, 어르신들의 유년시절 추억을 되살려 지역 어르신들이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돼 더욱더 뜻 깊은 시간이 됐다. 지난 3월 25일 치 충청투데이에 실린 기사에는 오재미놀이를 민속놀이로 여기고 있다. 뿐만아니라 인터넷에도 이 놀이를 전통놀이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오재미 놀이는 어디서 온 말일까?
가을의 오오츠는 곳곳의 단풍으로 길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곳이다. 고구려 스님 혜자의 제자인 성덕태자가 지은 천년고찰 백제사(百濟寺, 滋賀 東近江市)는 일본의 이름난 단풍명소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다. 뿐만 아니라 오오츠 시내에 자리한 삼정사(三井寺)와 신라선신당(新羅善神堂)도 이제 슬슬 단풍으로 곱게 물들을 것이다. 오오츠의 유명한절 삼정사를 부흥시킨 사람은 지증대사 원진(円珍, 814-891)으로 그의 어머니는 신라계 홍법대사 공해(空海,774-835)의 조카딸이다. 오늘 이야기는 삼정사 이야기가 아니라 삼정사가 있는 오오츠에 살다간 고대 한국인들에 대한 유적지인 온돌터 이야기이다. 알다시피 일본의 방은 다다미라고 해서 우리네 돗자리 같이 풀로 엮은 방바닥을 사용하고 있으며 중국은 지역마다 다르긴 해도 일반적인 형태는 침대이다. 한·중·일 세 나라 가운데 한국의 난방형태는 온돌로 바닥을 돌로 데워 장시간 그 온도를 유지하는 형태이며 방안 전체가 따뜻해 세 나라의 난방법을 다 경험한 필자로서는 한국의 난방법이 탁월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과거 일본과 중국의 난방을 말하자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7월 3일 화요일 오전 11시 아그네스 안 씨를 만난 것은 서울 시내 한 커피숍에서였다. 까만 원피스에 초록빛 스카프가 잘 어울리는 아그네스 안 씨는 단발머리에 아담한 체구의 밝은 모습으로 내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서로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우리였지만 그녀는 한복 차림의 나를 먼저 알아보고 손을 내밀었다. 방한 중인 아그네스 안 씨는 보스톤에서 산부인과의사로 일하고 있는데 그가 건넨 명함에는 Dr. Agnes Rhee Ahn 이라고 쓰여 있었다. 한인 교포 3세인 아그네스 안 씨를 알게 된 것은 여성독립운동가 오정화 (1899.1.25~1974. 11.1) 애국지사 때문이었다. 오정화 애국지사는 아그네스 안 씨의 할머니로 3·1운동 때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붙잡혀 유관순 열사와 함께 8개월간 옥고를 치른 뒤 일제의 감시를 견디지 못해 만주로 가서 갖은 고생을 하며 피해 살다가 해방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75살로 삶을 마감한 분이다. 오정화 애국지사는 2001년에 독립운동이 인정되어 대통령표창을 추서 받았다. 부모님의 이민으로 1961년 미국에서 태어난 아그네스 안 씨는 이러한 외할머니의 독립운동사실을 모른 채 동양인으로서 미국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