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날 봉축식이 오는 4월 8일(양력), 일본 나가노에 있는 한국절인 금강사에서 봉행된다. 한국에서는 5월 12일(음력 4월 8일)이 부처님오신날이지만 양력을 쓰는 일본에서는 양력으로 이날 봉축법회를 갖는다. 지난해 이 절의 주지로 진산식(취임)을 가진 법현 스님(法顯, 전 태고종 총무원 부원장)의 주도로 열리는 이날 봉축법회에는 부산의 다인(茶人) 성각 스님 등 네 분의 스님과 정정순 신도회장, 문해룡 종교법인 대표역원, 유영애 판소리 명창, 가수 지강훈, 가수 유우카 자매 등도 동참한다. 아울러 대한불교청년회 제주지부회원(지부장 김보성) 외 33명, 남원 동림사 신도 (대표 원행 전법사) 31명을 포함하여 금강사 신도 50여명 등 모두 2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1998년 일본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나가노 지역은 천혜의 풍광이 뛰어난 청정지역이다. 금강사(金剛寺, 곤고지)가 자리한 곳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들이 징병과 징용으로 많이 끌려간 곳으로 억울한 영혼들을 위로하고 그 후손들과 재일동포들의 소원성취를 위해 한국인들의 ‘마음의 고향’으로 삼고자 재일동포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이 오늘의 금강사이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백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가 지난 3월 8일, 도서출판 하우(대표 박영호)에서 일본어판으로 나왔다. 이 책을 일본어로 번역한 사람은 류의석(柳義錫:1933~2014) 선생이다. 류의석 선생 집안은 독립운동가 집안으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시절 3.1만세운동에 앞장서던 이기준 선생이 외할아버지이고 아버지 류규동 선생 역시 독립운동에 참여한 분이다. 특히 아버지 류규동 선생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당할 위기를 간신히 넘긴 뒤 일본 선생님의 추천과 소개로 일본으로 건너가 삶을 일궜는데 나가노 기소후쿠시마가 그곳이다. 그러나 류규동 선생은 그곳에 발을 내디딘 조선인 징용자들과 함께 일을 하다 폭파 작업 중 양쪽 눈을 잃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그러한 인연으로 1933년 일본에서 태어난 류의석 선생은 초등학교 6학년까지 살았던 산골 나가노현 기소후쿠시마를 평생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며 해방 뒤 조국에 건너와서도 일본 문학을 사랑하며 일본어 실력을 키워갔다. 그러던 류의석 선생이 《백범일지》를 일본어판으로 출판하고자 마음먹고 번역하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70살이 넘은 시기였다. 번역에 몰두하길 여러 해, 드디어 국내최초의 《백범일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아파트 단지에는 진달래도 피고 개나리도 활짝 피었다. 이 아름다운 계절, 병실에서 지내는 환자들의 마음은 어떨까? 유달리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산과 들에 지천인 봄꽃들의 향연을 병원에서 상상만 해야 하니 더욱 안타까울 것이다. 꽃을 좋아하여 사계절 집안에 화분을 들여놓고 곱게 기르던 오희옥 애국지사 병실을 어제(31일) 다녀왔다. 지난해 3월 16일 뇌경색으로 쓰러져 입원하신 뒤 꼬박 1년을 넘기고도 보름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상태가 굉장히 안 좋았지만 꾸준한 치료 덕에 지금은 병세가 어느 정도 호전되어 가족들도 안심하고 더욱 열심히 치료에 전념하고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여전히 코에 호스를 꽂아 영양공급을 하고 있는 상태이며 뇌경색 후유증으로 왼쪽 손발을 쓰지 못해 휠체어 신세를 져야 병실 산책이나마 가능하다. 그러나 환자의 정신력과 가족들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조금씩 눈에 띄게 회복되고 있어 기쁘다. 어제 병실을 찾은 시각은 오후 2시 무렵이었는데 오희옥 지사는 간병인과 병원내 교회에서 예배중이라 교회로 가서 뵈었다. 제법 큰 병원 내 부속교회 예배당에는 환자와 가족들로 가득차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맨 뒷자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경기도 화성시, 발안 3.1독립만세항쟁의 선구자인 탄운 이정근 의사 순국 100주기 추모제가 어제(30일) 향남읍에 있는 탄운 이정근 의사 창의탑에서 열렸다. 일기예보에는 오전부터 비가 내린다고 해서 걱정을 했는데 10시 30분부터 열린 추모제 시각에 맞춰 거짓말처럼 비가 개어 무사히 추모제를 마칠 수 있었다. 사단법인 탄운 이정근의사기념사업회(회장 김겸)가 주관한 어제 추모제에는 광복회 경기도지회 안소헌 지회장을 비롯한 지역유지, 탄운장학금 수여자와 학부모 등 200여명이 참석하여 탄운 선생 순국 100주기의 의미를 되새겼다. 탄운 이정근(灘雲, 李正根 1863-1919) 의사(義士)는 1919년 3월 31일, 화성 발안 장날 만세시위에서 제자들과 지역민들을 포함한 1천여 명을 이끌고 만세시위에 앞장서다 일경의 총검에 복부를 난자당하는 만행으로 그 자리에서 순국의 길을 걸었다. 탄운 이정근 의사는 복부에서 흐르는 피를 손에 움켜쥐어 일경의 얼굴에 뿌리며 숨이 끊어질 때까지 ‘조국의 독립’을 외치다 장렬히 순국하신 분이다. 탄운 선생은 33세 때, 대한제국 궁내부 주사직에 임명되었으나 치욕적인 을사늑약을 당해 관직을 버리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보통 전시 막판에는 사람들이 잘 안 오는데요. 이번 전시 같은 경우에는 전시 마감 하루 전인데도 이백 여 명씩 찾아와서 관람하는 것을 보고 저 자신도 놀랐습니다. 부산, 서울, 원주 등은 물론이고 일본의 경우는 홋카이도, 도쿄 등지에서도 일부러 사진전을 보기 위해 찾아온 일본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어제는 나고야에서 재일동포 서너 명이 찾아와서 사진 설명을 요청하는 것을 보고 전과 다르게 사람들이 ‘역사적 사진’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고 있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이는 사진작가 류은규 씨의 말이다. 인천문화재단 인천아트플랫폼 B동 전시장에서 <잊혀진 흔적>전을 열고 있는류은규 사진작가를 어제(30일) 오후 만났다. <잊혀진 흔적>은 일제강점기 항일투쟁과 민족문화를 지키기 위해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과 그들의 후손인 조선족의 삶을 조명하기 위해 기획된 전시회다. ‘3.1절 100주년 기념 전시’의 한 고리로 준비된 이번 전시는 지난 2월 28일 개막하여 오늘(31일)로 아쉽게 막을 내린다. 개막전에 초대를 받고도 올해 유달리 3.1절 관련 여러 행사 들이 많아 전국 취재를 뛰어다니느라 좀처럼 전시관으로 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충청남도의 만세시위는 예산에서 3월 3일, 부여에서 7일, 논산에서 10일 등 3월 초순에 시위가 시작되었다. 중순까지는 산발적인 시위가 진행되다가, 3월 하순부터 4월 초순까지 공주·연기·대전·논산·홍성·청양·서산·예산·아산·천안 등지에서 치열한 시위운동이 전개되었고, 천안군 병천 등 일부 지역에서는 일제의 발포로 인해 많은 인명이 살상되었다. 특히 유성에서는 3월 16일에 이어 4월 1일에는 70명이 헌병분견대를 습격하였다. 3월 29일 가수원, 31일 유성에서 각각 400∼200명의 시위가 있었다. 대전지방보훈청은 유성장터만세운동 재현행사를 어제 29일 유성장터 일원에서 재현했다. 이번 행사는 유성문화원의 주최로 대전지방보훈청과 유성구청이 후원하여 추진되었으며 이남일 대전지방보훈청장, 정용래 유성구청장, 하경옥 유성구 의회의장을 비롯하여 보훈단체장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하여 그날의 독립만세 정신을 되새겼다. 이날 행사는 유성구 장대동 일원에서 거리행진을 시작으로 식전공연, 의식행사, 주제공연 순으로 진행되었다. 한편 유성장터는 전국 최초로 을미의병이 일어난 곳이며, 1919년 3월 16일과 3월 31일에 걸쳐
[우리문화신문= 이윤옥기자] 【백년편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글 형식의 글입니다.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 접수를 받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문의 : 02 -733-5027】 우리 시대의 위대한 금서(禁書)이며 근대문학의 거탑 <임꺽정>의 작가이자 독립운동의 선두에 서고 남북통일을 갈구한 민족사의 큰 어른 벽초(碧初) 홍명희(洪命憙) 선생은 제가 닮고 싶은 선각자입니다. “내 아들아, 너희는 어떻게 하나 조선 사람으로서 의무와 도리를 다하여 잃어진 나라를 기어이 찾아야 한다. 죽을지언정 친일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아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국치를 당한 1910년 8월 29일에 자결한 아버지 홍범식 선생의 고결한 정신을 이어받은 그 절개는 암울한 시대의 횃불이었습니다. 삼년상을 마치고 중국으로 건너간 선생은 단재 신채호, 조소앙, 창강 김택영, 예관 신규식 등과 조선독립을 위해 정진하셨습니다. 그 당시 창강 선생께서 집필하신 <홍범식전>에는 “외모는 비록 온순하나 내심은 실로 강개막측하였으니 이는 아마 노상에서 굶어 죽을지언정 차마 원수놈의 나라에서 밥을 먹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대전시와 대전지방보훈청은 내달 2일 낮 2시 으능정이 스카이로드 → 대전역 → 만세로 광장으로 이어지는 1.5㎞ 구간에서 3․1만세운동을 재현하는 ‘독립의 횃불, 대전 릴레이’행사를 연다고 27일 밝혔다. ※ ‘독립의 횃불, 전국 릴레이 행사’는 3․1만세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돌을 기리기 위해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행사로, 3월 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출정식을 갖고 전국 17개 시․도의 23개 만세운동지역을 돌아 4월 11일 서울 임시정부수립기념식장으로 입장한다. 이번 행사는 동구의 ‘인동장터 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와 연계해 열리며, 대전지방보훈청, 대전시, 동구, 중구가 역할을 분담해 100년 전 3․1만세운동정신을 공감할 수 있도록 많은 시민들과 함께 하는 행사로 진행된다. 횃불 봉송주자는 정완진 애국지사, 국가유공자, 대표시민, 국가보훈처장, 대전시장, 기관․단체장 등 100명이 참여하며, 2개 그룹으로 나뉘어 횃불을 봉송하게 된다(봉송대형 행렬 : 봉송주자 100명, 참여자 500명 등 모두 600여명). 봉송행사는 으능정이 스카이로드에서 풍물단 공연, 횃불 인수 및 점화식, 축하공연이 진행되며, 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내가 한국어판 《백범일지》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9년 일이다. 당시 대한민국임시정부사적지답사단 단원이 되면서 부터이니 어느새 올해로 10년째다. 그 이전에도 《백범일지》를 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른바 조직적으로, 구체적으로, 낱낱이 《백범일지》를 읽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이다. 그렇게 시작한 《백범일지》공부는 2년 뒤 대한민국임시정부 고난의 27년 노정답사로 이어졌고 답사단은 《김구 따라 잡기》(2012. 옹기장이출판)라는 책으로 ‘백범일지 공부’를 마무리했던 적이 있다. 그것으로 끝난줄 알았던 《백범일지》와의 인연은 또 다른 곳에서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이어지고 있다.얼마전 일본어판 《백범일지(白凡逸志)》(류의석 번역), 2019.3.8. 도서출판 하우)를 받아 든 것이 그것이다. 《백범일지》를 일본어로?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4년 전 《백범일지》의 일본어판 원고를 받아들었을 때 나도 그런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일본어로 《백범일지》를 번역한 사람은 류의석(柳義錫:1933~2014) 선생이다. 나는 류의석 선생을 본 적이 없지만 대학 후배인 그의 딸, 류리수 박사(한국외대 강사)를 통해 우연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조선총독부는 1911년부터 유물유적 조사를 시작하여 1915년까지 한반도 전체에 대한 1차 조사를 했다. 이 시기는 고적이나 유물에 대한 특별한 현지 보존 또는 관리 규칙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적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중요 보물들은 발견자가 사적으로 슬쩍 챙겨도 아무도 지적할 사람이 없었다. 누천년 동안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각종 문화재급 보물들은 일제침략기에 무법천지로 일본인들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런 보물급 유물들을 마구 가져간 일본인 가운데 한 사람이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 1870-1964)다. 오구라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사업에 관련이 큰 인물이다. 그는 골동상, 경매, 도굴 등 닥치는 대로 조선의 문화재를 게걸스럽게 수집했다. 오구라는 일본에서 도쿄제국대학 법학과를 나온 이래 한국으로 건너와 경부철도주식회사에 취직했다. 철도회사 취직을 계기로 그는 현지시찰과 사업구상을 하면서 자본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가 큰돈을 번 것은 전기사업권을 거머쥐면서 부터다. 생각지도 못한 사업이 성공을 거둬 주체할 수 없는 돈이 모이자 그는 한국의 고미술품에 눈을 돌린다. 1920년 무렵부터 그는 닥치는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