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1,400년에 가까운 세월을 간직학 포탈라궁의 모습은 정말 장대하였다. 궁궐 아래 성곽문을 들어와 부속건물들을 지나고, 가파른 경사진 벽을 따라 수많은 계단길을 쉬엄쉬엄 올랐는데도 숨이 가쁘다. 고산병 때문에 쉬엄쉬엄 올라가라는 안내를 받고, 천천히 오르다 보니 30여분 거리 산중턱에 쉼터가 있었다. 그 쉼터에는 그늘막과 함께 따스한 물을 제공하고 있었는데 누구나 쉬어갈 것을 권한다. 쉼터에서 10여분 숨을 몰아쉬고 또 다시 올라서 드디어 궁궐의 입구에 도달하였다. 포탈라궁은 티벳족의 왕이 거처하는 곳이기에 궁궐이지만, 또한 수많은 불상과 보살상들이 빼곡히 들어있는 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궁의 주 출입구에는 동서남북을 지키는사천왕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비로서 여기서 부터 궁궐의 내부가 되는 것이다. 사천왕의 모습은 한국의 사천왕과 비슷하였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포탈라궁은 티벳의 상징과도 같은 궁전이다. 포탈라궁은 7세기 초티벳을 통일했던 정복왕 송첸캄포가 당 태종 이세민의 조카딸인 문성공주를 제2왕비로 받아들인 뒤 그녀가 당나라에서 모셔온 관세음보살을 자신의 본존불로 모셨다. 불경에 따르면 관세음보살은 상상의 산인 '포탈락가산'(=보타락가산)에 늘 거처한다고 하며, 그 보타락가산이바로 이곳이라는 의미로 궁전의 이름도 포탈라궁이라고 했다. 포탈라궁은 그 규모가 무척 거대한 건물군으로 궁전은 전체가 하나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건축되면서많은 건물들이 붙여진 것이다. 건물의 재료는 돌과 나무와 흙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내부에는 1,0000칸이 넘는 거대 구조라고 한다. 궁의 내부에는 수 없이 많은 방마다 부처와 보살들로 가득한데,한때 불이 나 일부 화재로 소실되었지만 1645년 '락상가조왕'이 궁전을 재건하였고 하며, 이를 백궁이라부른다. 1653년 관세음보살의 현신으로 믿는 5세달라이라마가 입주한 이래 모든 달라이라마들은 이곳에 거주하였다. 그리고 현재 인도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세운 달라이라마도 바로 이곳에 거주하다가 중국의 침략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포탈라궁을 떠났던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 히말라야 그늘 아래 부처를 우러르고,종교적 믿음으로 환생을 기원하는 이들이 살아가는 곳 티벳.산 아래 사람들은 숨이 멎을 것만 같은 고산병으로 여행하기도 힘들지만 가장 낮은 자세로 하염없이 삼보일배를 행하며 살아가는 티벳. 우리 신문 최우성 사진부장은 지난9월30일부터10월7일까지 티벳 답사를 다녀왔습니다.쉽게 접할 수 없는 티벳의 불교문화를 생생하게 전해줄 귀한 사진들을10여 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입니다.많은 관심 바랍니다.(편집자말)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 히말라야 그늘 아래 부처를 우러르고,종교적 믿음으로 환생을 기원하는 이들이 살아가는 곳 티벳.산 아래 사람들은 숨이 멎을 것만 같은 고산병으로 여행하기도 힘들지만 가장 낮은 자세로 하염없이 삼보일배를 행하며 살아가는 티벳. 우리 신문 최우성 사진부장은 지난9월30일부터10월7일까지 티벳 답사를 다녀왔습니다.쉽게 접할 수 없는 티벳의 불교문화를 생생하게 전해줄 귀한 사진들을10여 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입니다.많은 관심 바랍니다.(편집자말)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 히말라야 그늘 아래 부처를 우러르고, 종교적 믿음으로 환생을 기원하는 이들이 살아가는 곳 티벳. 산 아래 사람들은 숨이 멎을 것만 같은 고산병으로 여행하기도 힘들지만 가장 낮은 자세로 하염없이 삼보일배를 행하며 살아가는 티벳. 우리 신문 최우성 사진부장은 지난 9월 30일부터 10월 7일까지 티벳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티벳의 불교문화를 생생하게 전해줄 귀한 사진들을 10여 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편집자말) 티벳의 서울인 라싸에는 '달라이라마'가 있었던 포탈라궁과 또 하나의 큰 절인 조캉사원【大昭寺(대소사) 】이 있다. 조캉사원은 티벳을 최초로 통일했던 '송첸캄포'왕이 7세기에 지은 사찰로, 그는 당나라의 '문성공주'를 아내로 맞이하였으며, 그녀가 모셔온 당나라의 불상을 봉안하기 위하여 조캉사원을 지었다고 한다. 문성공주는 본래 당나라 황실가의 여인이지 공주는 아니었다. 그런데 티벳을 통일한 송첸캄포가화친하는 조건으로 당시 당나라 황제인당태종 이세민에게황제의 딸인 공주를 자신의 왕비가 되도록 요청하였다. 그러자 당태종 이세민은 처음에는 티벳왕 송첸캄포를오
[우리문화신문= 티벳 라싸 최우성 기자] 감단사(간댄사원, 甘丹寺)는 중국 티벳 자치구의 라싸시(市)로부터 47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겔룩파(Gelukpa) 3대 사원 중 한 곳이다. 4일 찾은 감단사는 해발 4200미터 고산지대에 자리하고 있어 라싸서부터 시작된 고산병이 완전히 가시기 전이라 내심 걱정스러워 전날 김치와 고추장을 단단히 먹어둔 덕인지 아침에 일어나니 한결 몸이 가벼웠다. 구불구불 끝없이 이어진 감단사 가는 산길은 포장도로가 생겨 편하게 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었지만 도로가 생기기 이전, 이곳을 찾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수행일 듯싶었다. 한국의 어지간한 절은 거의 다 가봤지만 티벳의 절들은 절벽과도 같은 고산지대에 지어놓아서 그런지 한국의 절과는 그 외형부터가 달라도 한참 다르다. 공해로부터 아직 안전한 고산의 청정한 공기와 푸른 하늘, 쏟아져 내리는 강렬한 태양빛에 반사된 짙은 밤색 지붕과 흰색 벽으로 칠해진 사원 모습은 한폭의 그림 같기만 하다. 감단사는 겔룩파의 창시자 총카파(宗喀巴) 스님이 명나라 초기 1409년에 건립한 겔룩파의 첫 사원이다. 겔룩파 3대 사원이라하면 곧 감단사(간덴사원, 甘丹寺), 색랍사(세라사원,
[우리문화신문= 티벳 라싸 최우성 기자] 티벳의 상징으로 꼽히는 라싸 포탈라궁의 웅장한 건축물에 앞에 서니 압도되는 느낌이다. 2일 10시(현지시각) 무렵 도착한 포탈라궁은 불보살을 모신 방이 3천개인 것은 물론전체 높이 117m, 동서 길이 360m, 총면적 10만㎡에 달하며, 거대한 법궁(法宮)으로 해발 고도 3,600미터에 자리하고 있어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고산증을 걱정해 물을 마시면서 쉬엄쉬엄 포탈라궁을 올랐다. 푸른 하늘 아래 웅장한 건축물이 하나의 성을 이룬 포탈라궁은 7세기 초 티벳 왕조 33대 왕 인 송첸캄포가 티벳을 통일하고, 637년 라싸의 홍산(紅山)이라는 언덕위에 포탈라궁을 짓게 된다. '포탈라'라는 이름은 ‘관음보살이 산다’는 뜻의 산스크리트어의 ‘포탈라카(普陀珞珈)’에 유래한다. 1642년, 제5대 달라이라마(1617-1682)를 왕으로 하는 티벳 왕조 간덴 왕국이 성립되는데 달라이라마는 오랫동안 훼손된 포탈라 궁전을 개축하기 시작한다. 이에 1648년에 백궁이 완성되어 티벳정부를 이곳 백궁으로 이전하게 된다. 공사는 그의 사후 1694년까지 계속되었고 1690~94년에 홍궁이 증축된다. 그러나 1959년 티벳 포탈라궁은 중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고창 청량산 문수사는 644년 백제 말기 신라의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창건 연기에 따르면 자장이 당에서 귀국하다가 이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당나라에서 기도수행하던 청량산과 같은 느낌을 받아 이곳 석굴에서 7일간 기도를 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땅 속에서 문수보살이 나오는 꿈을 꾸고, 그곳을 파보니 문수석상이 나와서 이곳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자장은 이곳 청량산을 연상하여 이곳의 산 이름도 청량산이라 하고 절이름은 문수사라 한 것이다. 이런 역사적 유래를 갖고 있지만 현재의 건물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지어진 것들이다. 현재의 건물들로는 대웅전, 문수전, 한산전, 금륜전 만세루 요사채 일주문 등이 있다. 대웅전은 전북유형문화재 제 51호로 보호되고 있으며, 문수전은 전북 유형문화재 제52호이고 문수사의 설화를 간직한 문수석상은 문수전에 안치되어있다. 문수보살은 대승경전의 지혜보살로 경전에 따르면 문수보살은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 인도에서 태어나 지혜의 도리를 깨친 지혜의 상징이기도 하다. 경전에 따르면 문수보살은 깨달음의 경전이라 부르는 《반야경》을 결집 편찬한 보살로 모든 부처님의 스승이요 보모라고도 표현된다. 일설에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서기384년 인도에서 온마라난타 존자가 중국을 거쳐 백제에 처음 불법을 전해주고 절을 세운 곳이 불갑사라고 한다. 영광에는 법성포가 있는데 그 말 자체가 법(진리)의 성인(마라난타)이 들어온 포구 라는 뜻이다.그런 역사적 사연을 담아 절을 짓고, 그이름도 불갑사, 즉부처 불(佛) 첫째 갑(甲) 그래서 불갑사(佛甲寺)라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불갑사의 유래나이름보다는 근래 붉게 피어난 꽃무릇 때문에가을철불갑사를 찾는다. 해마다 9월 중순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꽃무릇의 대향연이 불갑사 일주문부터 불갑사 경내와 주변 그리고불갑산으로오르는 등산로까지 가득 피어나기 때문이다. 9월 초순부터 피기 시작한 꽃무릇은 정렬의 화신인 양 붉게 피어나는데, 그 꽃잎은 가늘게 곡선으로 피어나 10여일 동안 잠시 머물다 시간이 가고나면어김없이 시들고 만다. 불교의 가르침인 영원한 것은 없다는 무상을 느끼게 하면서,그래서 일찍 피어난 꽃무릇은 시들고 늦게 피어난 꽃무릇은 화사하게 피어있고, 그 중 며칠이지만 늦은 늦동이는 이제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그런데 꽃무릇에는 그럴듯한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온다. 옛날 깊은 절에 불도를 배우는 젊은 스님이 있었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충남 태안군 안면읍 정당리에 자리잡은 절로 1998년 새롭게 창건된 절이다. 안면암은 한옥의 형태를 갖춘 현대식 콘크리트건물로 가까이에서 보면 좀 어설픈 듯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경관과 잘 어울려, 이제는안면도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안면암은 태안만의 깊숙한 곳에 자리잡아, 바닷가로는 갯뻘이 펼쳐져 있고, 그 앞으로작은 섬 2개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인 큰바위섬까지는 약 150m에 이르는 곳에 뜨는다리(부교浮橋)를 설치하여 밀물 때에는 물위를 걸어 들어갔다 나올 수 있고, 썰물 때에는 갯뻘에 얹혀진 다리를 걸어서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도록 되어있다. 그 갯뻘에는 게와 조개들이 살고 있어 썰물때 게들이 집을 들락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갯뻘체험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때 기름유출사고로 모든 생명이 사라진 적도 있었다. 안면암에서 뜬 다리를 걸어 들어가면 바다에는 부상탑(물위에 뜨는 탑)도 있는데 이 탑은 2007년 12월 태안 앞바다에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와 삼성중공업의 해상 크레인이 충돌하여 기름유츨로 한국에서는 가장 큰 해양오염사고가 발생하여 고통받는 안면도 주민들과 함께 전국의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바닷가의 바위에 묻은 기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