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는 한문으로 된 7언, 또는 5언으로 된 시에 고저를 넣어 부르는 노래가 곧 시창이라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판소리 춘향가 중 이도령이 어사(御使)가 된 후에, 거지 행세를 하면서 변 사또의 잔치석상에서 부르던 7언 절구의 유명한 시(詩)를 읽었다. 이러한 시 한수는 암기해 두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금준(金樽)미주(美酒)는 천인(千人)혈(血)이오, 옥반(玉盤)가효(佳肴)는 만성(萬姓)고(膏)라. 촉루(燭淚)낙시(落時)에 민루(民淚)락(落)이요, 가성(歌聲)고처(高處)에 원성(怨聲)고(高)라. 7언의 한문시를 노래하던 계층은 아무래도 글공부를 좋아하던 지식인 계층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들은 어려운 한문시를 외우고, 쓰고,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시에 고저를 붙여 읽는 독서성(讀書聲)을 익혔을 것이고, 여기에서 더 음악적으로 발전된 형태가 시창(율창)이라 하겠다. 벽파 이창배의 한국가창대계에는 경포대(鏡浦臺), 만경대(萬景臺), 촉석루(矗石樓), 만류무민(挽柳武愍), 영풍(詠風), 신추(新秋), 관산융마(關山戎
지난 달 9월 하순, 서울 삼성동 소재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는 <송서 율창의 재조명> 이라는 주제하에 전국국악학 학술대회를 가진바 있다. 그런데 때를 맞추어 이 달 하순(10월, 29일-월요일 오후 4시)에는 여류 명창인 박윤정 씨가 송서만을 모아서 발표회를 연다고 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글로 그에게 격려와 함께 축사의 뜻을 전하고 한다. 속풀이 독자들께는 송서와 율창에 관하여 복습하는 차원에서 일독을 권하고자 한다. 박윤정 명창이 또 송서(誦書)를 발표한다고 한다. 송서(誦書)만을 레퍼터리로 하는 다섯 번째의 발표회이다. 어렵다는 이유로, 재미가 없다는 이유로, 또는 인기가 없어 돈벌이가 안 된다는 까닭으로 대부분의 경서도 소리꾼들이 외면하는 송서에 해마다 도전장을 내고 있는 박윤정(본명;박영화)의 무대는 그 어떤 발표회보다도 그의 집념을 알게 하는 값진 땀의 대가라는 점에서 큰 손뼉으로 축하해 주고 싶다. 지날 달 이 자리에서는“송서란 무엇이고, 시창(詩唱)이나 율창(律唱)이란 어떤 형태의 노래인가”, “왜 우리가 이 분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바르게 지켜가지 않으면 안 되는가”하는 점을 중심으로 전국 국악학 학술대회가 열려 학계 및
시창이 시(詩)를 노래하는 것은 일반 다른 노래와 차이가 없으나 시의 형태가 한문으로 된 시, 그것도 대부분 7언으로 짜인 한문시에 고저를 넣어 부르는 노래라는 점에서 한문과 가깝지 않은 사람들은 고개를 옆으로 젓게 마련이다. 초장, 중장, 종장으로 짜인 3장형식의 정형시나 또는 틀을 벗어난 엇시조, 자유시에 등에 음의 고저와 장단을 얹어 부르는 시조나 가곡과는 달리, 7언이나 5언으로 된 한문시를 노랫말로 삼는다는 점에서 접근이 용이치 않은 것이다. 7언, 혹은 5언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우리가 기억하는 동요나 창가류에서도 7언과 5언으로 짝을 이루고 있는 시형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푸른하늘은하수-하얀쪽배에, 계수나무한나무-토끼한마리,” 등의 노래나 “학교종이땡땡땡,- 어서모이자, 선생님이우리를- 기다리신다.”와 같은 노래들이 7,5조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여하튼 시창은 한글의 노랫말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한문시를 노랫말로 하여 고저를 살려가며 부르는 노래이다. 그 대표적인 노래가 높은 청으로 속소리를 내어 가며 실같이 고운 목소리로 뽑아내는 서도
필자는 독립운동가 특히 여성독립운동가의 역사가 있는 곳이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달려가 이분들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이번 옛 정명여학교 출신의 7명의 잔다르크 이야기를 필자는 내년 2월 펴낼 예정인 <서간도에 들꽃 피다> 3권에 실을 것이며 이 책으로 60명에 이르는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조명하게 된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 -기자 말 터졌고나 죠션독입셩 십년을 참고참아 이셰 터젓네 삼쳘리의 금수강산 이쳔만 민족 살아고나 살아고나 이 한소리에 피도죠션 뼈도 죠션 이피 이뼈는 살아죠션 죽어죠션 죠션것이라 한사람이 불어도 죠션노래 한곳에셔 나와도 죠션노래 ▲ 독립운동가와 격문 1983년 교실 수리 중 천장에서 발견된 독립가(왼쪽) 격문(원본, 독립기념관 소장) ⓒ 정명여중 위 노래는 목포정명여학교(현 목포정명여자중·고등학교) 학생들의 독립가이다. "이 자료는 1983년 2월 중학교 교실 보수작업 중에 발견된 것입니다. 바로 이 건물 천장에서 발견된 것인데 보관상 어려움이 따라 현재 천안독립기념관에 가 있으며 우리 자료관에는 복사본이 있습니다. 어서 가서 보시죠." 정명여자중
책을 사랑하는 어머니가 훌륭한 아이를 키운다 창원외동초등학교 어머니독서동아리 '우리말바라기' 12.10.24 16:00l최종 업데이트 12.10.24 18:23l 이윤옥(koya26) RT: 0l독자원고료: 0 이 시대에도 '맹모삼천지교'는 여전히 존재한다. 아니 맹자 시절보다 지나칠 정도로 극성이다. 하지만, 그런 극성스러운 맹모삼천지교가 진정 자식 교육에 도움이 될 것인가? 오히려 이웃을 외면하고 자신의 욕심만 차리는 부작용이 더욱 심해질 뿐이다. 그런 세태에 진정한 맹모들이 창원에 있다고 해서 다녀왔다. 경남 창원 외동초등학교(교장 맹종호)의 어머니독서동아리 '우리말바라기' 회원들을 만나보고 나니 이들이 진정한 이 시대의 맹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10월 4일 국화꽃이 반기는 교정을 지나 2층 어머니교실로 오르는 현관은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교실에는 외동초등학교 어머니들의 독서 동아리인 '우리말 바라기' 회원들이 필자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어머니들은 필자가 이른 아침 서울에서 내려 간 터라 속이 출출할 것을 생각하여 다과를 준비해놓고 있었다.차 한 잔을 마시고 나니 어머니들의 따스한 마음이 전해온다. 필자가 외동초등학교 어머니들을 만나러 간 것
0 해동성국이라 일컫던 발해(渤海, 698년 ~ 926년)는 고구려를 계승하여, 229년간 한반도 북부와 만주 동부 및 연해주에 걸친 광범위한 지역을 호령하던 나라로 뛰어난 문화 국가였다. 발해는 당나라와 친선 관계를 맺고 일본과는 200여 년간 교류를 하였으며 신라와 당나라를 견제하여 동북아시아에서 세력 균형을 유지하였으나 끝내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멸망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발해의 유적은 지금 일본 곳곳에 남아 있다. 불가마를 연상하는 뜨거운 7월 중순, 교토의 자그마한 역 단바구치역(丹波口)에서 어렵사리 찾았던 발해유적지 홍로관터를 돌아 보고 와서 발해사를 뒤져보느라 이제야 글을 쓴다. 발해 사신들이 묵었던 교토의 홍로관(코로칸)을 찾아 나선 것은 지난 7월 중순이었다. 교토시내 단바구치역 근처에 있던 홍로관은 지금은 홍로관터였음을 알리는 작은 돌비석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홍로관터 옆에는 제법 근사한 일본의 전통건물이 서있었는데 먼발치에서 이 건물이 홍로관인 줄 알고 반가운 마음에 단숨에 가보니 이곳은 요즈음으로 말하면 요정(角室, 스미야)으로 에도시대인 1641년에 세워져 현재는 교토시의 중요문화재이다. 그 건물
-시대마츠리의 주인공인 간무왕 어머니는 백제여인 고야신립- 천년고도 교토는 화려하다. 헤이안시대의 화려함이 재현되는 듯 수도 도쿄와는 또 다른 풍경이다. 그 화려함은 세련된 고층빌딩이 많아서도 아니고 유명 브랜드의 패션가가 즐비해서도 아니다. 세련되지 않으면서도 깊이가 있고 말끔하면서도 운치가 있는 것이 교토의 매력이다. 거기다가 역사와 전통이 깊은 절이나 신사가 즐비하고 또한 마츠리까지 볼 수 있으니 교토로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다. “경(京, 교토)”에 대한 자존심을 가질만한 도시 교토에서 10월 22일에는 지다이마츠리(時代祭)가 열린다. 교토의 3대 마츠리로는 5월 15일의 아오이마츠리, 7월 17일의 기온마츠리, 10월 22일의 ‘지다이마츠리’를 꼽는다. 화려한 고대 의상을 입은 출연자들이 교토 시내를 두어 시간 행진하는 이 광경을 보기 위해 일본 전역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 교토다. 마츠리에 등장하는 사람이나 도구, 행렬 시간 등을 따지자면 7월의 기온마츠리(祇園祭)에 견줄 수가 없지만 5월의 아오이마츠리(葵祭)나 10월22일의 지다이마츠리(時代祭)도 꽤 볼만하다. 다만, 교토의 3대 마츠리 가운데 가장 그 역사가 짧은 것은
이 시는 고향 남원 땅에서 코를 베인 채 먼 이국땅에 가서 귀향하고 있지 못하는 원혼을 달래고자 내가 쓴 시 “코무덤”이다. 일본 교토(京都市 東山) 풍국신사(豊國神社) 앞에는 정유재란 당시에 풍신수길이 조선인의 코를 베어다 묻은 코무덤이 있다. 이 코무덤은 궁극적으로 고향 남원으로 돌려주어야만 한다. 현재 남원지방에서는 교토 코무덤의 귀환을 위한 시민들의 모임이 있다. 독자 여러분들도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그날 까지 깊은 관심과 힘을 모아주었으면 한다. 위 시를 본 남원의 한학자 소병호 님께서 ‘코무덤’ 한글 시를 한시로 바꿔 손수 글을 써서 보내왔다. 그 전문을 실어본다.
국악속풀이 77에서는 송서(誦書)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서울 경기지방에 전해오는 삼설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송서란 글방에서 읽는 식과는 달리 멋을 넣어서 읽는 것으로 가령, 고문(古文)이나 옛 소설과 같은 글을 읽을 때에 높낮이를 조화롭게 연결하며 구성지게 낭송하는 것을 말한다. “우 근진소지의단은 의신의 평생 소원이”로 시작되는 송서 삼설기(三說記)는 경기민요의 묵계월(본명; 이경옥)명창이 1930년대 중반, 그의 스승 이문원으로부터 배워서 간직해 오던 유명한 소리조인데, 이것이 그의 제자들인 유창이나 박윤정 등을 통해 지금까지 전창되고 있는 점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묵계월이 전한 삼설기는 경기소리에 나타나는 음의 배열이나 창법 등이 유사하다는 점, 그러나 일정한 장단이 없어서 선율선의 단락, 즉 프레이즈(phrase)가 호흡의 단위가 된다는 점도 특징이라고 하였다. 또한 삼설기의 사설내용은 과욕금물, 욕심이 지나치면 오히려 화를 입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매우 재미있게 묘사한 글이어서 사설의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듣게 된다면 또 하나의 전통적인 음률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소리임을 강조하였다. 이번에는 ≪한국가창대계≫에서
일본 친구로부터 부등교(후토코우, 不登校)에 관한 책을 선물 받은 지도 벌써 10년하고도 4년이 지났다. 그때 나는 도쿄에 있었고 친구는 출판사 편집 일을 하고 있어서 새 책이 나오는 대로 나에게 선물했었다. 뿐만 아니라 왕따(이지메) 따위에 관한 책도 한보따리 선물했는데 나는 오오츠카의 눅진 자취방에서 이런 책들을 읽으며 일본사회의 그늘진 구석을 들여다 본 적이 있다. 일본말 이지메(いじめ)는 우리말로 ‘왕따’에 해당되며 그 역사는 오래다. 그뿐만 아니라 ‘학교폭력’을 일본에서는 ‘교내폭력(校內暴力)이라 부르는데 일본 TBS방송에서 이를 주제로 한 드라마를 1979년부터 제작할 만큼(3年B組金八先生) 왕따와 학교폭력은 오랫동안 일본사회의 큰 관심거리였으며 현재도 진행형이다. 또한 부등교(不登校)라는 말도 흔한 말로 학교가기를 거부하는 아동들이 늘어가고 있는가하면 히키코모리(은둔형외톨이) 문제도 심각하다. 이러한 일들이 이웃나라 일이려니 여기고 있었더니 ‘부등교(不登校)’를 빼놓고는 한국사회도 이제 청소년들의 왕따,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또한 은둔형외톨이나 사회에 불만을 품은 자들이 휘두르는 ‘묻지마살인’도 하루가 멀다 하고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