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살 짜리 왕이 있다" 는 일본왕실 스케치 오래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꿈이다. 그래서 장수를 위해 별의별 것을 다 구해 먹는가 하면 제약회사들은 장수를 위한 약을 개발하려고 안간힘이다. 의학이 발달한 오늘날 장수라고 해도 100살을 넘기는 일은 쉽지 않다. 기록상의 장수 인물을 보면 로버트 테일러(1764-1898) 라는 영국사람으로 무려 134살을 살다 갔다고 한다. 그의 장수에 빅토리아 여왕은 "희유(希有)의 장수를 축하하여,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로버트 테일러에게"라는 서명이 담긴 여왕의 초상화를 선물했는데 일설에는 이 선물을 받고 감격한 나머지 세상을 뜨고 말았다니 웃어야 할 일인지 안타까워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금세기도 아니고 지금으로부터 1천여 년 전 이웃나라에 100살을 훨씬 넘긴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니 가히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다. 다름 아닌 일본 왕(천황)들의 수명이다. 1대 왕인 진무왕은 127살, 5대 효소왕은 114살, 6대 효안왕은137살, 7대 효령왕은 128살이고 12대 경행왕은 무려 148살을 기록하고 있다. 또 16대 왕인 인덕왕도 143살까지 살다갔다니 대단한 장수 왕실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찬란한 금빛으로 눈부신 황홀한 교토 금각사는 일본인뿐만 아니라 교토를 찾는 사람들로부터 인기가 높은 절이다. 결코 싸지 않은 400엔의 입장료를 물고 들어가서 보는 것은 작고 아담한 연못 건너편에 우두커니 서 있는 금각사 하나뿐이다. 잔잔한 연못 건너편 금각사를 배경으로 방문객들은 저마다 가지고 온 카메라에 사진 몇 장을 찍고 발길을 돌린다. 금각사 뒤편으로 아담하게 꾸민 정원은 둘러보면 그런대로 운치가 있지만 대부분 이곳은 성큼성큼 걸어 돌아 나오기 일쑤다. 금각사를 다른 이름으로는 녹원사(鹿苑寺)라 부르는데 이 일대에는 과거에 서원사라는 절이 있었고 주변에는 요즘으로 치면 지체 높은 공무원(公卿)의 별장이 자리했던 곳이다. 경치가 썩 좋았던 듯 이 자리는 다시 무로마치시대 장수인 아시카가(足利義滿,1358-1408)의 화려한 정원을 갖춘 별장으로 활용되다가 명치 이후에는 금각사로 개조 되어 마침내 1994년에는 천년고도 교토의 문화재로 세계유산에 등록을 마쳤고 지금은 손꼽히는 교토의 볼만한 유적지로 자리 잡았다. 보기에 화려한 금박은 강렬한 자외선 햇살 탓에 1
가곡의 노래 말은 초장, 중장, 종장으로 짜여진 3장 형식의 시조(時調)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래 말을 가곡에 얹어 부를 때에는 5장으로 분장한다. 남창의 26곡, 여창의 15곡 전체가 동일하게 5장으로 나눈다. 가령, 우조 ‘초수대엽’에 얹어 부르는 “동창이 밝았느냐”로 시작되는 시조시를 가곡으로 나눈다면 제1장은 시조의 초장 안귀의 동창이 밝았느냐이고 제2장은 초장의 바깥귀인 노고지리 우지진다이다. 가곡의 제3장은 시조의 중장인 소치는 아희 놈은 상긔 아니 일었느냐이다. 시조의 중장 전체가 가곡에서는 3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제4장은 종장의 첫 3음절인 재 넘어이고 나머지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는 제5장으로 나뉜다. 다시 정리하면 시조의 초장은 가곡에서 1장과 2장으로 분장이 되고, 시조의 중장 전체는 가곡의 3장이 되며 종장의 첫 3음절만이 가곡의 제4장, 나머지는 제5장으로 나뉜다는 말이다. 이러한 형식이 바로 시조창과 가곡창의 큰 차이점이다. 간혹 시조의 중장이나 종장이 정형에서 벗 어나 길게 확대된 엇시조라고 해도 이를 별도의 장으로 늘리지 않고 모두 5장 내에서 처리하는 것이 가곡의 형식이다. 반주 악기군이 먼저 대여음(大餘
일본도 체험박물관이 늘고 있다. 기존의 박물관이 건물 하나 지어놓고 그 안에 기념물이나 사진 등을 전시하는 공간이라면 체험박물관은 다양한 모형을 갖춰놓거나 시설물을 복원하여 방문자가 좀 더 체험으로 역사적 사실에 접근할 수 있게 함으로서 생동감이 있고 활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각광을 받고 있다. 기존의 박물관이 흑백사진이라면 체험 박물관은 컬러풀한 동영상 속에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적합한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체험박물관의 하나가 기후현 후와군 (岐阜縣 不破郡 關ケ原町 關ケ原1701-6)에 있는 ‘세키가하라 워 랜드’이다. 우리에게는 ‘세키가하라(關ヶ原) 전투’로 잘 알려진 ‘세키가하라’는 기후현의 한 마을이름으로 고대부터 이곳은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곳은 나고야를 중심으로 한 주쿄권(中京圈)과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권(關西圈)의 접점 지역으로 일본의 동서를 잇는 JR 도카이도 신칸선(新幹線)과 JR 도카이도 혼센(本線)이 마을을 지나고 있어 어디서나 접근이 쉽다. 이곳에서 벌어진 400여 년 전의 대규모 내전이 세키가하라 전투이다. 일본을 통일한 풍신수길은 (1536-1598) 죽기 전에 후계자인 아들 히데요리를 부하들에게 부탁하며
전통가곡에 관한 속풀이를 하다가 잠시 다른 장르로 옮겨 갔다. 이번 주부터는 다시 가곡의 멋에 관하여 이야기를 진행하고자 한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전통가곡은 남창가곡과 여창가곡으로 대별되고 있다. 남창 가곡은 우조 음계(흔히 서양음악의 장조 음계로 비교 됨)로 된 11곡과 계면조(단조에 비교 됨)로 만들어진 13곡, 그리고 중간에 조가 바뀌는 2곡 등 모두 26곡이 전해지고 있다. 이에 비하면 여창 가곡은 우조가 5곡, 계면조 8곡, 그리고 변조의 2곡 등 모두 15곡이 모두 불리고 있다. 남창의 곡수에 비해 여창의 곡수가 적은 셈이다. 남창이든, 여창이든 간에 이들 가곡은 부르는 순서가 거의 정해져 있다. 느린 빠르기의 긴 호흡으로 부르는 곡으로부터 시작해서 점차 빠르게 진행되는 순서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중간에 몇 곡을 생략하는 경우도 있으나, 절대로 앞뒤 악곡을 뒤바꿔 부르지 않는다. 창자 임의대로 순서를 바꾸지 않는 것을 관습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튼 순서를 정해 놓고 순서대로 부르는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전 시대 가곡의 명인들, 즉 이주환이 엮
호쿠사이란 풍속화가가 있다. 평생 3만 점의 그림을 그린 화가로 72살에 후지산 36경(富嶽三十六景)을 그려 독보적인 화풍의 화가로 자리 잡은 호쿠사이(葛飾 北齋,1760-1849)는 풍속화의 일종인 우키요에(浮世繪) 화가 가운데 단연 으뜸이다. 멀리 눈 덮인 후지산이 보이고 바로 앞에는 일렁이는 파도가 당장이라도 손에 잡힐 듯한 호쿠사이 작품 ‘바다(海)’는 프랑스 작곡가 드비쉬(Claude Achille Debussy, 1862-1918)가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이 그림을 만난 뒤 영감을 얻어 ‘바다’라는 곡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을 만큼 호쿠사이는 서양 예술가들에게도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우키요에(浮世繪)는 에도시대에 성립한 그림으로 연극, 고전문학, 와카(和歌, 일본 전통 시),풍속, 전설, 기담, 초상, 정물, 풍경, 문명개화, 황실, 종교 따위를 소재로 한 그림이다. 우키요(浮世)란 말은 ‘현대’라는 뜻인데 이때의 현대란 주로 에도시대(1603-1868)를 말한다. 우키요에를 판화그림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지만 원래는 손수 그린 그림(肉筆)과 목판화를 모두 일컫는다. 육필화에는 병풍화, 두루마리그림, 족자, 화첩, 부채그림을 모두 포
1972년 12월에 일본에서 나온 역사독본에는 ‘일본 영웅 100명’이 소개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임진왜란의 원흉 도요토미히데요시(풍신수길), 이토히로부미(이등박문), 후쿠자와 유키치(복택유길) 등이 나란히 등장한다. 정말 이들은 영웅이 될 수 있을까? 답은 'NO'다. 지면상 오늘은 일본이 ‘근대화의 아버지’라 추앙하고 있는 후쿠자와의 더러운 아시아 침략 근성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8월 29일은 101년 전 일본 제국주의에게 조선이 주권을 송두리째 빼앗긴 날로 오늘 우리가 이날을 기억하는 한 ‘후쿠자와 유키치’란 인물도 결코 소홀히 다뤄서는 안 될 인물이다. 그가 아시아에서 왜 원흉으로 꼽히는지 3가지만 들겠다. 첫째. 후쿠자와 유키치는 (福澤諭吉, 1835~1901) 아시아를 능멸하고 침략을 선동했다. "조선 침략의 목적은 일본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며 남을 위한 게 아니라 일본을 위한 것이다." "조선국은 사지가 마비되어 스스로 움직이는 능력이 없는 병자와 같다." "대만인은 오합지졸 좀 도둑떼" "청국병사는 돼지꼬랑지 새끼" "조선과 중국 이 두 나라는 진보의 길을 모르고 구습에 연연하며 도덕마저 땅에 떨어진데다가 잔혹, 몰염치는 극에 달하고 거
김동석 씨는 미국의 명문대학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UCLA)에서 한국음악을 강의하고 있는 교수이다. 대학에서는 Donald Kim 교수로 알려져 있으며 미 서부지역에서는 한국 전통음악과 춤의 대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얼마 전, 그가 한국인 최초로 Durfee Foundation의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바 있는데, 이 재단은 미국의 소수민족들이 지니고 있는 예술성 높고 학술적 가치가 있는 음악을 보존하려고 2년에 한 번씩 소수민족 음악인에게 거액의 기부금을 제공해서 연구사업을 후원해 주는 기관이다. 그동안의 수상자들로는 일본의 샤미센(三味線) 연주자, 남미의 인디오 뮤직 연주자, 스페인의 전통기타 연주자 들이었다. 그는 연구 사업으로 약 70분이 소요되는 대곡 성금연 류 가야금산조를 한 장의 음반으로 담아 낼 것을 계획하였고 그동안 연주해 오던 가락들을 다듬어 이번에 완성하였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 내에는 여러 소수민족이 공생하고 있다. 한인 동포의 수는 약 200만을 넘는데, 그 중 LA지역에만 약 50만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 중에서 전통음악을 통해 한국을 알리고 있
지난주에 이어 일본이야기는 100회 특집으로 51회부터 99회까지 중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이야기를 소개하기로 한다. <51회> 때는 1945년 8월 24일 오후 5시20분. 강제징용에서 풀려나 부산항으로 가는 4,730톤급 해군특무함대 ‘우키시마호 (浮島丸)’를 타고 꿈에도 그리던 고향땅을 밟기 직전 일본의 잔악한 귀국선 폭파로 수많은 조선인이 불귀의 객이 되고 마는 참혹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승선자 7,000여 명 중 4,000여 명이 교토 마이즈루항 앞바다에 수장 된 지 올해로 65년(2010년)을 맞이한다. 사건 발생 1주일 만에 우키시마호의 도리우미 함장은 사건전모를 발표하고 조선인 3,735명 중 524명과 일본인 25명을 합해 총 54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하였으나 승선장부가 없는 상황에서 일본측의 이런 숫자는 무의미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애초에 부산항으로 향하지 않고 진로변경을 한 이유에 대해서는 ①음료수를 실으려고 ②패전 후 해군의 사기저하로 부산항까지의 운항 거부 등을 들고 있으며, 폭발 원인은 미군의 기뢰를 건드렸기 때문 등으로 발표하였으나 선박 인양이 되고 난 후부터 의도적으로 폭발시켰다는 의혹설이 제기된 가운데 1
100. 일본 이야기 100회를 맞이하면서(1) -다이아몬드 한 상자보다 소중한 것- 이번 주로 일본이야기가 100회째를 맞이합니다. 그간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백일잔치니까 수수팥떡과 흰설기를 쪄서 돌려야겠지만 일본이야기니 만치 일본의 풍습을 따라야겠지요? 일본은 백일잔치가 없습니다. 그 대신 오미야마이리(お宮參り)라고 해서 태어난 지 30일 되는 아기를 강보에 싸서 신사참배를 합니다. 백일잔치는 아무래도 집안잔치라고 볼 수 있고 신사참배는 신과의 연결고리이니까 왁자지껄하고 사람 냄새나는 잔치 느낌은 한국의 백일잔치에서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김영조 소장님의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는 오늘로 2,143회를 맞이하므로 일본이야기와는 속된말로 게임이 안 되지만 돌이켜보니 1주일에 글 한 편 쓰기도 어지간히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느낌입니다. 이른바 원고 청탁의 경우에는 며칠까지 무슨 내용으로 써달라는 주문에 따라 쓰면 되는 것이지만 혼자 글감을 고르고 원고를 완성해야 하는 일은 망망대해를 건너는 심정입니다. 때로는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좋은 점이 있지만 반면 늘 무엇을 쓸까 궁리해야 하는 것이 쉽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