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남은 일제 찌꺼기 ‘한자 섞어 쓰기’ 일본인이 퍼뜨린 식민지배의 수단 - 이제 끝내야 할 때 이대로 참말로 논설위원 1948년 대한민국을 세운 뒤 지금까지 50여 년 동안 한글만 쓸 것인가, 한자를 섞어 쓸 것인가 싸움을 치열하게 했다. 한글 전용이 우리의 국어 정책이었는데 일본식 한자혼용에 길든 일제 지식인들이 끈질기게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 싸움을 끝내고 미국말 침투를 막아야 할 때이기에 한자 혼용 말글살이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뿌리내리게 되었으며 왜 버려야 할 말글살이인지 내 생각을 정리해 여러 사람에게 밝히련다. 1443년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뒤부터 1886년 고종 때까지 우리말글살이는 한문만 쓰던가 한글만 쓰는 말글살이였다. 고려시대처럼 공문서와 학술서적은 한문만 쓰고, 아녀자와 일반인 편지나 소설에서 한글만 썼다. 일반인도 한자만 쓰던가 한글만 쓰는 말글살이였다. 한자 혼용 말글살이는 1886년 일본인 이노우에가 한성주보란 신문에 처음 쓰기 시작해 퍼트린 일본식 말글살이다. 최근에 경기도에서 발견된 파평 윤씨 무덤에서 나온 편지나, 경상도에서 발견된 이태용 부인의 무덤에서 나온 한글 편지를 보면 1500년대에 모두 한글만 쓴 것을 확
토박이 한국인보다 더 한국말을 사랑하는 귀화 한국인독일 태생 이참, 2005년 두 번째 “우리말 지킴이”로 이대로 논설위원 2005년 7월 13일 서울 우이동 동양화재중앙연수원 강당에서 나라밖 30여 개 나라에서 한국말을 가르치고 있는 한글학교 교사 50여명이 모인 가운데서 우리말 우리글 바로 쓰기 운동 2005년 두 번째 우리말글 지킴이 위촉식이 열렸다. 이날 두 번째 ‘우리말글 지킴이’로 독일에서 태어나 1986년 한국에 귀화해 세계 문화교류와 한국경제 관련부처와 기관 단체의 경영지도와 자문위원,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이참(독일 이름: Berhard Quandt)님이 뽑혀 위촉장을 받았다. 김계곤 한글학회 이사장에게 지킴이 위촉장을 받는 이참 님이날 위촉식에서 한글학회 김계곤 이사장은 “ 우리말을 우습게 여기고 남의 말만 우러러보는 토박이 한국인들은 외국에서 귀화한 한국인인 이참 선생이 우리말과 한글을 남달리 사랑하고 바르게 쓰려 애쓰는 모습을 보고 배우고 본받았으면 좋겠다. 여기 계신, 세계 30여 개 나라에서 오신 여러 선생님들도 이참 선생님과 함께 온 세계인에게 한국말을 잘 가르치고 알리는 홍보대사가 되어주면 고맙겠다 ”고 인사말을 했다.이참 님은 위
'한글날 국경일 승격' 이번엔 될 것인가? 13일, 한글 세계화 추진 의원모임과 한글단체간 간담회 열려 ▲ 한글 세계화 추진 의원모임과 한글단체간의 간담회 모습 한국과 우리 겨레를 대표하는 것을 꼽으라면 한복, 풍물굿, 판소리, 소나무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오겠지만 가장 먼저 이야기될 것이 한글임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한글은 우리나라를 우리 겨레를 상징하는 가장 확실한 보증수표라 하겠다.이 한글날은 1949년 법정 공휴일로 지정됐으나 1990년 한가위 연휴가 하루 늘면서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법정 공휴일에서 빠졌다. 그렇게 소외된 지 벌써 15년이 되었다. 2000년 2월 5일에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운동에 나서게 된 것을 필두로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의 원상회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고, 특히 국회 차원에서도 큰 노력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지난해 7월 15일에도 신기남 전 열린우리당 대표 등 여야 의원 67명이 한글날을 국경일로 하자는 내용의 '국경일에 관한 법률 중 개정법률안'을 공동 발의했지만 한나라당과 행정자치부의 반대 속에 무산된 적이 있다. 그런 한글날 국경일 승격 운동이 한글날
오늘은 '세종날', 겨레의 위대한 스승을 기리자 한글학회, 세종 임금 탄신 608돌 관련 행사 열어 ▲ 세종임금 동상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2005 김영조 오늘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스승의 날이다. 이날 오늘의 나를 있게 해주신 선생님께 작은 사랑을 바친다. 비록 그 때문에 학부모들은 아이의 선생님에게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하기도 한다.1964년 청소년 적십자단의 각도 대표들이 불우한 퇴직교사 또는 질병에 걸린 교사를 위로하자는 차원에서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정한 뒤로 매년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지내고 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오늘은 스승의 날이기 이전에 세종날, 즉 세종 임금이 탄생한 지 608돌이 되는 날이라는 것이다. 세종 임금은 우리 겨레에게 커다란 선물을 준 조선시대 가장 큰 임금인데 1397년 5월 15일 조선 3대 임금인 태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세종 임금은 1418년 8월 10일(음력) 아버지 태종을 이어 조선 제 4대 임금에 올랐다. 세종은 천성이 어질고 부지런했으며, 학문을 좋아하고, 취미와 재능이 여러 방면에 통하지 않음이 없었다고 한다. 정사를 펼침에 있어 백
교과서 말 문장이 말의 기본 단위임은 앞에서 이미 말하였다. 한 문장 안에 두드러지게 어려운 낱말이 들어 있으면 글을 읽는 사람은 그 낱말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다. 외국어 문장을 읽다보면 자주 겪는 일이다. 한 문장이나 단락에 어려운 낱말이 한꺼번에 여럿 나타나면 자기도 모르게 전체 뜻을 놓아두고 낱말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데 그 바람에 전체의 맥락을 놓치는 것이다.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자연과 사회 교과서가 이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 쪽은 본디 낱말을 새로 배우거나 가르치는 과목이 아니다. 사회나 자연 교과서에서 말은 그야말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차츰 어려워지는 내용을 이해해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내용을 설명하는 문장은 정확하고 쉬워야 한다. 내용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교과서는 흔히 그 내용보다 먼저 말이 더 어려워진다. 간결하다는 이유로 한자말을 많이 사용하는 탓이다. 새로운 내용을 이해해야 하는 과목에서 어려운 한자말이 많이 나타나면 아이들은 눈앞이 캄캄해진다. 우리 모두 학교 다닐 때 이런 것을 경험한 일이 있다. 한자말은 아무리 오래 써도 우리의 말느낌에 직접 와서 닿지 않는다. 한자를 잘 아는
괄호 얘기 글에서 꼭 필요할 때 한자·로마자 따위를 괄호쳐서 적는다. 눈으로 그 뜻을 참고하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를 소리내어 읽거나 말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부터 우리에게 잘못 익은 버릇이 있다. “춘향이 거동 보소. 옥태화용 고운 얼굴 백모래밭에 금자라 걷듯 …” “일락서산에 해 떨어지고 월출동정에 달 떠온다” “춘래 불사춘이라, 봄은 왔으되 느낄 수가 없도다”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 전통적인 동어반복 문자풀이 말투다. 음수율까지 맞출 정도로 고질이던 것이 한때 벗어난 듯하다 되살아난다. 글이 말로 번진 연유가 그 하나요, 다음은 새로운 외국어 풀이 말투 탓인데, 이런 얼치기투를 흔히 방송에서 듣는다. “세계무역기구 더블유티오는 …, 경제협력개발기구 오이시디는 …, 오펙 석유수출국기구는 …, 아이엠에프 국제통화기금은 …, 차기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가 …, 봄이면 베이징에 ‘상팡’하는 지방 사람들이 늘어난다, … ” 풀이나 번역도 없이 처음부터 “아이엠에프는, 오이시디는, 더블유티오는, 지칠은 …”으로 가는때도 적잖다. 말에서는 괄호를 쓰지 않으니 번역한 이름이든 외국어든 앞뒤로 늘어놓기만 하는데, 적어도 “세계무역
기라성? 일본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출판사 삼성당(산세이도우)에서 펴낸 일본어 사전 에는 “きらぼし(綺羅星)”를 올림말로 싣고, ‘綺羅, 星の如し’라는 표현에서 실수로 ‘,’를 빼고 ‘綺羅星の如し’로 잘못 쓴 데서 온 말로, 훌륭한 사람들이 잇달아 늘어선 모습을 뜻하는 것이라고 했다. 곧, “기라―綺羅 :①무늬 있는 비단과 얇은 비단 ②아름다운 의복―가 별(星)과 같다”를 “기라보시(기라성)와 같다”고 잘못 표현한 데서 온 말이라는 것이다. 반짝이는 모양을 나타내는 우리의 시늉말 ‘반짝’을 뜻하는 일본말이 기라(きら)여서 그 소리가 ‘綺羅’와 같으니, ‘綺羅星’이라고 써도 일본말로서는 흠이 없다고 하겠지만, 그것을 빌려다가 우리말로는 절대로 쓸 수 없다. 우리가 훌륭한 사람을 말할 때는 쟁쟁한 선비나 학자라 하고, 어느 학문 분야에서 특출한 인물을 비유해 말할 때는 태산이나 북두칠성처럼 높다는 뜻으로, ○○학의 ‘태두’라고 치켜세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 교수들이 강의하는 중에 훌륭한 학자를 들어 말할 때 ‘기라성’ 같은 존재라고 힘주어 말하고, 온갖 연예인들이 무대 위에 줄지어 서서,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늘어섰다’고 지껄이면서 서로 치켜세우는
을사늑약 / 려증동 1905년 11월에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이 서울에 왔다. 17일에 ‘5조약 문서’를 내어놓으면서 찬성하라고 했다. 내용인즉 “한국을 보호하기 위하여 일본 통감이 다스려야 되겠다”는 것이었다. 문서 이름은 ‘박문’이 ‘한-일 협상’으로 지었다. 참정대신(국무총리) 한규설이 고함을 지르면서 ‘아니 된다!’고 외쳤다. 외부대신 박제순 등의 도장이 찍혔다. 박문은 일본군을 불러서 ‘경운궁’을 둘러싸게 하고는 한규설을 끌어내라고 했다. 이때 한규설이 박문의 멱살을 잡아 흔들고 자결했더라면 열사로 되어, 그 이름이 영원히 살게 될 뻔했는데, 밥이 그리워선지 그러지 못했다. 박문이 지시하기를 “참정이 불가라고 하니, 외부대신이 도장을 찍으면 된다”고 했다. 왜병이 외부대신 방에 들어가서 박제순 도장을 가지고 나오도록 해서 도장을 그들이 찍었다고 한다. 박제순 역시 ‘불가’를 외치면서 자결했더라면 그 이름이 영원히 살았을 터이다. 당시 선비들은 “참정대신이 ‘불가’라고 한 문서는 무효다”라며 국제 모임인 만국평화회의 등에 호소하려고 ‘늑약’(勒約)을 외치면서 ‘을사늑약’이라고 했다. ‘억지 늑’자다. 황성신문사 사장 장지연이 ‘시일야 방성대곡’이라는
" 민 초 " 1945년 광복에 이어 정부를 세울 무렵에는 당시 문교부가 솔선하고 교육자들과 언론인들이 호응해서 일본말 찌꺼기를 씻어내는 일에 많은 힘을 쏟아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지식인들이 이 일을 점점 게을리하더니, 최근에는 거의 우리말에 끼어든 적이 없는 일본말을 들여다 쓰면서 첨단지식인 양 우쭐거리는 모습이 자못 심각해져 간다. 우선 많이 배웠다는 이들이 민본주의를 상징하는 말처럼 쓰는 ‘민초’(民草)가 문제다. (한글학회)에는 “백성을 달리 일컫는 말”이라 하고, (민중서림) (국어연구원) 따위에는 “백성, 민중, 인민을 무성하는 풀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했지만, 두루 궤변에 가깝다. 백성을 뜻하는 우리 한자말은 ‘공민, 국민, 농민, 생민, 서민, 시민, 인민, 천민(天民), 천민(賤民), 촌민(村民), 평민 …’ 들처럼 쓰므로 ‘초민’(草民)이라면 그런 대로 백성을 뜻하는 말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거꾸로 써서 ‘민초’라고 하면, 백성을 뜻하기보다는 무슨 풀의 이름 같다. 일본어 사전을 보면 민초(民草)를 ‘다미구사’(たみくさ)라 읽으며, “백성을 풀에 비유한 말”이라고 했으니, 백성을 존중하는 뜻보다는 바람 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