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사쿠라섬(島)은 일본 큐슈남부 가고시마현에 있는 화산섬이다. 원래는 말 그대로 섬이었으나 1914년(대정3년)에 일어난 대규모 분화로 인접한 오오스미반도(大隅半島)와 붙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원래 있던 이름을 바꾸기는 쉽지 않은 듯 여전히 사쿠라섬이라 부른다. 이곳은 현재 활발한 화산활동으로 경계 4 수준의 요주의 지역이다. ▲ 1914년 사쿠라섬 대분화로 높은 신사 도리이가 화산재에 파묻혔다. 일본의 화산 경계 단계는 모두 5단계로 경계 5는 피난, 4는 피난준비, 3은 입산규제, 2는 분화구주변 규제, 1은 활화산이라는 사실에 주의 할 것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처럼 사쿠라섬 말고도 예의 주시하고 있는 활화산은 인구 밀접지역인 관동의 후지산이다. 후지산은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인 1707년에 분화한 이래 잠잠한 상태지만 언제 분화 할지 몰라 일본 기상청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역사적으로 후지산은 3200년 사이에 모두 100번 분화 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데 평균 30년에 1번 분화한 셈이다. 30년에 1번꼴로 분화한 산이 지난 300년 간 큰 분화 없이 잠잠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니 일본인들이 겁이 날만도 하
[한국문화신문=윤지영 기자] 우리 겨레는 오래전부터 식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이용해왔다. 당연히 오랫동안 불러온 우리 고유의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식민지 수탈의 하나로 우리 산과 들의 식물들을 채집하고 이름 붙이면서 잘못된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식물의 호적이라 할 수 있는 학명에는 일본 학자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큰개불알꽃, 며느리밑씻개, 도둑놈의갈고리, 좀개갓냉이 같은 저속한 이름은 일본 이름을 번역한 것이다. 심지어 번역조차 엉터리인 것이 많다. 광복 70년을 맞이하고 있지만 우리 풀꽃 이름은 아직도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관련 기관은 이 문제에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으며 일부 학자들은 “예전부터 써오던 이름은 바꾸면 안 된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광복 100주년이 되어도 우리 풀꽃은 일본 말에 오염된 지저분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 것이다. 이제라도 부끄러운 역사의 흔적을 되짚어보고 우리의 풀꽃에 우리 이름을 붙여줘야 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이윤옥 소장은 이런 내용을 간파하여 질책한 책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을 인물과사상사를 통해 내놓았다.
▲ 박현숙 글・김미진 그림 《욕대장(친구에게 상처 주는 말)》표지 [한국문화신문 = 이나미 기자] 최근 전체적인 학교폭력은 크게 감소했지만 언어폭력과 사이버폭력의 건수는 물리적 폭력을 넘어섰다. 하지만 정작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당사자 학생은 이에 대한 심각성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다. 초등학생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어른들이 쉽게 알아듣기 힘든 은어와 욕설이 절반이지만, 아이들은 욕을 사용하는 것이 익숙해져서 자신들이 욕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한다. 초등학생들에게 욕을 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친구들이 다 하니까.,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상대방보다 강해 보이려고., 친구끼리 친근감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답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욕은 한 번 하기 시작하면 점점 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입에 담기 어려운 욕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게 된다. 또한 그로 인해 다른 친구들이 상처를 입는 것도 깨닫지 못한다. 언어폭력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언어폭력을 하는 아이들의 생각처럼 욕은 정말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 줄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깨우쳐 주는 책이 나와 화제다. 바로 동화작가 박현숙이 글을 쓰고 김미
▲ 이윤옥 《서간도에 들꽃 피다》 5, 도서출판 얼레빗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이윤옥 시인이 쓴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시로 조명하는 《서간도에 들꽃 피다》 5권이 나왔습니다. 아무도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에 관심을 두지 않을 때에, 우리가 잘 모르는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시와 함께 사람들에게 알려 주리라던 이 시인의 집념이 어느 덧 5권의 시집을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군요. 한 권에 스무 분의 삶을 오롯이 드러냈으니, 이 시인 덕분에 우리 후손들이 늦게나마 100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는 여성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대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관순!하고는, 그 다음부터는 입을 우물우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무지하기에, 그만큼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을 계속 시로 조명하는 이 시인의 작업에 대해서는 아무리 박수를 쳐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이 시인은 단지 책상머리에만 앉아 시만 쓰는 것은 아닙니다. 직접 발품을 팔아서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찾아 나섭니다. 이번에도 북간도로 날아가, 이의순 지사의 흔적을 찾아 러시아와 중국 국경인 수분하 거리까지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이 시인과
▲ 서간도에 들꽃피다 5집 표지 [한국문화신문 =김철관 기자]항일 여성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해 헌시를 통해 조명하고 있는 이윤옥 시인이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 5집을 냈다. 이윤옥(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시인은 중국과 국내를 돌아다니며 항일 여성독립운동가의 흔적을 찾아 소개하고 헌시로 넋을 위로하고 있다. 이미 출판된 서간도에 들꽃 피다 1~4집도 각각 20명의 여성독립운동가를 발굴해 소개했다. 올 3.1운동 95주년과 8.15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최근 펴낸 서간도에 들꽃 피다 5집(2015년 2월 17일, 도서출판 얼레빗)도 새롭게 발굴한 20여명의 항일 여성독립운동가들을 헌시와 함께 그와 관련한 역사적 사실을 올곧게 소개하고 있다. 먼저 항일 여성독립운동가 하면 제일 많이 떠오르는 유관순 열사(1902년 11월 17일~ 1920년 10월 12일)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이 시집은 17살을 꽃다운 나이로 옥중에서 순국했다고 알려진 유관순 열사와 가족에 대해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유관순이 태어난 아우내(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유관순 생가길 18-2면)는 독립운동에 있어 역사적인 곳이다. 이화학당에 유학 중인 유관순이 부모님과 함께 1919년(기미년)
▲ 《서간도에 들꽃 피다》5집 표지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북간도의 겨울은 빨리 찾아오나 봅니다. 9월말 용정의 명동학교를 찾아가는 길은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 두껍지 않게 입고 간 옷자락을 연신 여며야 할 정도로 쌀쌀했습니다. 이의순, 이인순 애국지사는 이번 5집에서 다루는 분으로 이동휘 선생의 두 따님입니다. 용정하면 윤동주의 고향으로 알려졌지만 이곳은 20세기 초 독립운동을 위해 몰려든 조선인들로 중국의 그 어느 지역보다도 학문과 문화 수준이 높던 곳입니다.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 5집(도서출판얼레빗)을 2월 초에 펴낸 이윤옥 시인은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북간도 답사는 여성독립운동가 이의순, 이인순 애국지사의 발자취를 찾아 떠난 길이었으며 그 내용은 이번에 나온 신간 《서간도에 들꽃 피다》 5집에 오롯이 들어 있다. 여성독립운동가들이 활약했던 현장을 직접 발로 뛰고 자료를 찾아 시와 그 일생을 기록하는 이윤옥 시인의 다섯 번째 작품인 《서간도에 들꽃 피다》 5집에는 모두 20분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이 수록되어 있다. 유달산 묏마루에 태극기 높이 꽂은 김귀남 애국지사는 목포 정명
▲ 강제윤 시인의 《섬 택리지》 표지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강제윤 시인이 이번에 《섬 택리지》를 냈군요. 그 동안에도 계속 섬을 걸으며 느낀 점과 섬의 이런 모습 저런 모습, 섬에 대한 애정 등을 《섬을 걷다》, 《걷고 싶은 우리 섬》, 《보길도에서 온 편지》, 《걷고 싶은 우리 섬, 통영의 섬들》 등의 책에 풀어냈는데, 이번에는 전라남도 신안군의 섬들을 돌아보면서 이러한 것들을 《섬 택리지》로 풀어냈네요. 저는 예전에 글을 쓰면서 참조하기 위하여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강시인이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연재하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강시인의 글에 빠져들면서 강시인이 프레시안에 연재한 글을 전부 다 검색하여 찾아내 일일이 제 컴퓨터에 복사하여 넣고 틈틈이 보았었지요. 그러다가 제가 프레시안 인문학습원에서 내놓은 여러 학교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강시인도 인문학습원에서 [섬학교]와 [통영학교]를 이끄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저도 섬학교나 통영학교에 참가하고 싶었지만 그 동안 일정이 잘 안 맞아 신청을 못하다가 작년 12월 13-14일에 열린 통영학교에 참가하면서 처음으로 강시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강시인이 《섬
[한국문화신문 =김영조 기자] 에구 돈 찾었어유. 장독대 앞에 접힌 그대로 떨어져 있었다며 다행이라고 한다. 그리고는 차에 있지도 않은 돈을 그래 차에 빠졌다며 또 주었느냐며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한다. 나는 일부러 받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하는 줄 알고 아녀유 진짜 차에 빠진 거유~ 하니 아주머니가 깔깔 웃으며 그 차는 돈이 새끼를 치는 찬가? 진짜 장독대 앞에 떨어진 거 찾았어유. 하시며 또다시 한 번 더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인삼농사 농부 이종옥 씨가 쓴 《농부일기(창조문학사)》, 라는 수필집에 나오는 대목이다.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서 인부를 구해 데리고 오는 아주머니가 일당으로 받은 3만원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러자 이종옥 씨는 아주머니가 하루 종일 일하고 받은 돈을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가슴 아플까 하여 거짓으로 차에서 3만원 봉투를 찾았다고 했는데 아주머니가 자신의 장독대에서 3만원을 찾았다고 해서 벌어진 일을 쓴 것이다. 그야말로 농촌 인심이 그대로 묻어나는 정경이다. 그는 충북 괴산에서 농사꾼으로만 살아왔다. 처음엔 고추농사도 짓고 소도 키웠지만 지금은 인삼농사만 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 그리고 자신의 심경을 솔직히
▲ 임시정부의 품 안에서, 김자동, 푸른역사 [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임시정부 가족 일행은 1939년 4월 4일 버스 다섯 대에 나눠 타고 광시성의 류저우(유주)를 출발해 충칭(중경)으로 향했다. 내 나이 겨우 12살에 중국 창장(장강) 이남의 넓은 지역을 두루 여행한 셈이었다. 7살 이전에 상하이(상해), 자싱(가흥) 등에서의 기억은 거의 나지 않지만 그 후 5년 남짓 동안의 여정은 어린 나에게도 큰 경험이었다.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은 이번에 나온 《임시정부의 품 안에서, 도서출판 푸른역사》 책에서 그렇게 말했다. 12살 때 벌써 드넓은 중국 땅 상해에서 중경까지 무려 5천 킬로미터의 임시정부 피난길을 경험한 김자동 회장이야말로 임시정부에서 태어나 중경에서 광복을 맞고 귀국하여 현재도 임시정부 관련 일을 하고 있으니 임시정부의 산증인이라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12월 12일(금) 저녁 6시 광화문 경희궁 뷔페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주최의 송년회가 조촐히 열렸다. 이 자리에서 기자는 김자동 회장이 쓴 《임시정부의 품 안에서》 한 권을 받아와서 바로 그날 저녁 단숨에 이 한 권을 읽어 내려갔다. 김자동 회장은 2년 전 《
[그린경제/얼레빗=이한영 기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한국과 일본을 넘어 국제 사회의 화두가 된 지 23년이 지났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는 해결은커녕 일본군 위안부를 공격하는 우익적인 사회 현상이 더 심화되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그들은 왜 일본군 위안부를 공격하는가》(원제 : 「慰安婦」バッシングを越えて「河野談話」と日本の責任)는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이 책은 고노 담화를 비롯해 강제연행, 국민기금 등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본질적인 논쟁의 핵심을 차분하게 들려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일반인에게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1년이다. 이해 8월, 지금은 고인이 된 당시 67세의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처음으로 증언하며 역사의 저편에 묻혀 있던 아픔의 기억을 현재의 역사로 불러들였다. 그로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1993년 8월, 당시 고노 요헤이 일본 관방장관은 일본군 위안부의 모집, 이송, 관리에 일본정부가 관여했음을 명백히 밝힌 담화(고노 담화)를 발표했으며, 이로써 일본군 위안부 논의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