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순국선열의 날(11월 17일), 어머니(홍매영 지사)의 건국포장을 받아들고 효창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버지(차리석 지사) 묘소에 어머니 건국포장을 놓고 큰절을 올리자니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동안 험난한 풍파에 시달려왔으나 가슴에 응어리진 한이 싹 풀린 기분입니다.” 이 말은 임시정부의 버팀목 동암 차리석 지사의 아드님인 차영조(75살) 선생이 한 말이다. 차영조 선생은 어제(18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어머니 홍매영(洪梅英) 지사의 건국포장을 받아든 소감을 그렇게 말했다. 지난 17일(토) 오전 11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잔디광장에서는 국가보훈처 주최로 제79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이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차영조 선생은 어머니 홍매영 지사의 건국포장을 유족 대표로 추서 받았다. 특히 이번 79회 순국선열의 날에는 홍매영 지사를 비롯하여 도산 안창호 선생의 조카 안맥결 지사, 박열 의사의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 지사, 기전여학교 4명의 여학생 등 여성 32명이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어 주목을 받았다. 이로써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1949년 포상이 시작된 이래 포상을 받은 여성 독립유공자는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 을사늑약 현장에서 소리 내어 책을 읽습니다. 우당 이회영이 뤼순 감옥에서 고문 끝에 순국한 날, 그의 아내가 쓴 <서간도 시종기>를 읽습니다. 순국선열추모일에 찬 서리 걷어내면서 독립운동사를 읽습니다. ‘을씨년 (乙巳年‧을사년)스럽다’는 말이 태어난 날 그 현장인 덕수궁 중명전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함께 읽어 ‘을씨년스러움’을 잊지 않고자 합니다. 3ㆍ1만세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총감독 서울시가 3ㆍ1만세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17일(토) 제3차 ‘서간도 시종기 낭독회’를 연다. ‘서간도 시종기’는 독립운동가이자 무정부주의자인 우당(友堂) 이회영의 아내, 이은숙 애국지사가 일제강점기 등 50여 년 동안 겪은 일들을 놀라운 기억력으로 집필한 회고록이다. 이번 ‘서간도 시종기 낭독회’는 17일(토) 낮 3시 반부터 덕수궁 중명전에서 열 예정이며 지난 6월 이회영 선생의 옛 집터인 서울 YWCA에서 진행된 첫 번째 낭독회와 9월 우당기념관에서 진행 된 두 번째 낭독회에 이어 올해 세 번째다. 낭독회가 열리는 11월 17일은 1905년 일본이 이토 히로부미를 앞세워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은 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아버님은 광복군 출신으로 이름은 황영식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황영석이라는 이름의 가짜 독립운동가가 아버님 대신 대통령표창장을 가로채는 바람에각고의 노력 끝에28년만인 1991년 4월 13일,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아 아버님 영전에 바쳤습니다. 그러나 좀 더 일찍 아버님 살아생전에 훈장을 받았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 지난 10월 28일 일요일 낮 2시,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황영식(본명 황차식, 1913-1969) 지사의 아드님인 황부일(63) 씨는 눈시울을 붉히면서 이렇게 말을 꺼냈다. 아버지 황영식(1991년 애국장 추서)과 어머니 김봉식(1990년 애족장 추서) 지사는 부부 독립운동가로 황부일 씨는 당시 자료를 보여주면서가짜 독립운동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이것이 가짜 황영석이 가로챘던 대통령표창장입니다. (지금은 회수하여 황부일 씨에게 전달된 상태) 여기 보시면 1963년 8월 13일,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이 발행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시기는 아버님(황영식)이 살아 계실 때 였는데 가짜가 표창장을 가로채는 바람에 아버님은 살아생전에 당신의 독립운동 공적을 나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상태로 1969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흔히 사람들이 윤봉길 의사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면,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虹口公園)공원에서 열렸던 일본의 전승축하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진 분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윤 의사는 상해 거사를 하시기 전에도 고향인 덕산에서 월진회(月進會)를 만들어 애국 계몽운동과 민족교육을 실천했던 분입니다. 윤 의사의 이러한 업적도 꼭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는 (사)매헌윤봉길월진회 인완진 부회장의 말이다. 지난 4일(일) 낮 10시, 청명한 가을 날씨 속에 기자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윤봉길의사기념관’ 취재에 나섰다. 가까이에 천년고찰 수덕사와 덕산 온천이 자리하고 있어 기념관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발길을 하고 있었다. 윤봉길의사기념관은 충남 예산군 덕산면 덕산온천로 183-5(시량리 119-1)에 자리하고 있는데 경내에는 윤 의사의 영정을 모신 충의사와 기념관, 윤 의사 부인 배용순 여사 무덤 등이 있다. 그날따라 유난히도 푸르던 하늘! 사당으로 오르는 계단 걸음, 걸음 내내 스물다섯 청년 윤봉길 의사의 짧은 삶이 가슴에 저려왔다. 자주색 넥타이에 짙푸른 양복 차림의 영정 사진 속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광주학생독립운동은 광주에 한정 된 것이 아닙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미국과 중국 등 세계 40여개 지역에서 지지를 받고 확산된 만큼 세계적인 학생운동과 연계해 연구하고 기념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내년 90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남북한이 함께 공동사업으로 광주학생운동을 다뤄야 할 것입니다.” 이는 그제(1일) 전남대에서 열린 제89주년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 토론회를 마친 뒤 행사를 주관한 전남대 김재기 교수가기자와인터뷰에서 밝힌 말이다. 이어 김재기 교수는 “이번토론회는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100돌을 앞두고 제2의 3.1운동이라 평가받는 광주학생독립운동에 대한 학술적 재조명을 한 것입니다. 이번 토론회에서 국가에 제안한 12개 사업이 추진되길 간절히 바랍니다.”라고 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제안한 국가차원의 선양사업 12가지는 다음과 같다.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일에 “남북학생 및 한인후손들이 참여하는 공동행사”, “북한 지역 130여 참여 학교에 대한 남북한 공동학술조사”, “미국, 멕시코, 쿠바의 광주학생독립운동 유적지 현장체험프로그램 운영”, “세계 5개 국가에서 광주학생독립운동 지지대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머니(장경례 지사)는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자고등학교) 제1회 입학생으로 1928년 11월, 동교생이던 장매성, 박옥련 등 11명과 함께 소녀회(少女會)를 만드셨습니다. 조국독립과 여성해방을 목적으로 조직된 소녀회는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적극 참여하였고 시위 도중 부상을 입은 학생들을 치료하는 등 큰 활약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때 어머니 나이 17살 때이셨습니다.” 이는 장경례 지사(1913.4.6.~1997.12.1.)의 따님인 허찬희(83살), 허은회(81살) 자매의 증언이다. 가을 햇살이 따스하던 지난 10월 22일 월요일 낮 3시, 기자는 미리 약속한 장경례 지사의 따님이 살고 있는 수원 광교의 한 아파트를 찾았다. 인형작가인 장경례 지사의 큰 따님인 허찬희 씨 집에는가까이에 살고 있는 동생 허은희 씨도 미리 와서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파트 거실 창 너머로 보이는 호수공원에 짧은 가을햇살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어머니 장경례 지사의 학창시절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머니는 당시 광주학생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잡혀가는 바람에 박옥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올해는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지 107돌 되는 해다. 이를 맞아 “청소년 독립ㆍ민주ㆍ평화 음악회”가 오는 11월 20일 저녁 5시 용산아트홀 대극장 미르홀에서 용산구ㆍ한겨레신문ㆍ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ㆍ안중근평화연구원 공동 주최로 열린다. “‘대한독립의 만세 소리가 들려오면 나도 천국에서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이 안중근 의사의 유언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대한의 자주독립, 곧 남북의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분단 71년의 비극을 이제는 평화의 역사로 바꾸어야만 한다. 미래의 주역들인 청소년들이 만들어가는 평화음악회에서 선열들의 가르침을 되새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소망한다.”고 주최 측은 말한다. 이날 음악회에는 국립전통예술고증학교 음악연극과 두레소리합창단, 원초적음악집단 이드, 안중근청소년오케스트라가 출연한다. 이날 행사에 대한 자세한 문의는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전화 02-911-1176으로 하면 되고, 입장료는 없다.
[우리문화신문=우수리스크 이윤옥 기자] 즈문해 이어져온 해동성국의 넋 우수리스크 수이펀의 젖줄로 흐르는 곳 물돌이 굽이굽이 세월의 한도 굽이굽이 멈추는 임 계신 곳 홀연히 바람결에 들려오는 한줄기 만파식적 임께서 불어주는 대한의 찬가 임이여! 오래도록 지켜주소서 찬란한 촛불이 꺼지지 않는 대한의 넋으로 남아주소서. - 이윤옥 ‘우수리스크 이상설 유허비에서- “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조국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모두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린 후 제사도 지내지 말라." 이는 독립운동가 보재(溥齋) 이상설(李相卨, 1870-1917) 선생이 남긴 말이다. 충북 진천 출신인 이상설 선생은 1906년 북간도 용정으로 망명하여 항일민족교육의 요람인 서전서숙(瑞甸書塾)을 세워 후학들을 길러내던 중 1907년 헤이그특사로 활약하였다. 선생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이준ㆍ이위종 선생과 함께 고종의 특사로 파견됐다. 그 뒤 1908년 연해주로 망명하여 13도의군 창설과 성명회 결성, 권업회 활동 등을 앞장서서 이끌었다. 어제(25일) 찾은 이상설 선
[우리문화신문= 블라디보스톡 이윤옥 기자] 혹한의 땅 만주벌서 떠는 동포의 어린 영혼들 보듬으며 겨레 혼 심어주던 임 살 에이는 시베리아 시린 추위 견뎌내라 다독이던 임 어이타 스물일곱 꽃다운 나이에 이국땅서 숨져갔나요 블라디보스톡 한인촌에 혜성처럼 나타나 여장부의 푸른 꿈 내보이다가 활짝 펴지 못하고 떠나던 날 푸르던 하늘도 구슬퍼 핏빛 비를 뿌리었다네 - 이윤옥 ‘블라디보스톡 한인촌 여장부’- 핏빛 비를 뿌리던 하늘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푸르렀다. 가슴 시리도록 푸르른 하늘 아래, 신한촌 집터를 걸으며 나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이인순 지사의 삶의 흔적을 찾아 블라디보스톡 신한촌을 찾은 것은 어제(24일) 저녁 5시 무렵이었다. 아무르바닷물이 회색빛을 띄던 그 시각 신한촌도 서서히 해가 지고 있었다. 신한촌은 1911년 무렵부터 형성된 곳으로 많을 때는 1만명 이상의 한인들이 살던 곳이다. 이곳은 연해주 독립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나 1937년 한인 강제이주가 시작된 이후 폐허로 변했다. 그 뒤 아파트촌이 들어서서 현재는 당시 한인들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게 변모해버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파트촌 한 구석에 '서울스카야 2A'라는 번지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이민 1세대들이 가고 이제 2, 3세대들이 그 뒤를 잇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11월 17일, 제 73주년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로스앤젤레스 대한인국민회 주최로 <독립사적 탐방활동>을 하기로 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의 사적지를 찾아 당시 선열들이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를 피부로 느껴보는 현장학습인 것이지요. 도산 안창호 선생 등 초기 이민자들이 오렌지농장 등에서 피땀 흘려 번 돈을 독립자금으로 흔쾌히 내놓았던 현장을 찾아서 이민선조들의 삶을 체험해 봄으로써 우리민족의 미주 이민역사와 그 뿌리를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 이번 행사의 중요 목표입니다.” 이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 배국희 이사장이 어제(22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들려준 이야기다. 독립운동의 1번지로 불리는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이번 제73주년 순국선열의 날을 앞두고 부모와 함께 하는 체험활동을 기획했다. 이번 행사는 “뿌리를 찾아 떠나는 독립사적지 탐험활동 콘텐츠 크리에이터 공모전”으로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한 사적지 4곳과 과일농장 1곳을 답사하여 그 체험내용을 동영상으로 제출하는 공모전이다. 이번 공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