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구마모토현(熊本県) 야마가시시(山鹿市)에 있는 코헤이지(康平寺)는 지금 노란 은행잎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마치 흰눈이 지붕 위에도 절 경내에도 소복하게 쌓인 것처럼 노란 은행잎이 절 경내와 지붕에 소복하게 싸여있는 모습이 그야말로 절경이다. 야마가시(山鹿市)는 구마모토현 북부 내륙부에 자리하며 구마모토시에서 북쪽으로 약 30km, 후쿠오카시에서 남남동쪽으로 약 90km 거리에 있다. 아무래도 남쪽 지방이라 은행잎도 단풍도 북쪽보다 늦다. 12월 중순까지 단풍을 즐기니 말이다. 코헤이지(康平寺)는 1058년 창건된 절로 천년고찰이다. 이 절은 현지 주민으로 구성된 ‘관리조합원 34명’이 절 경내를 비롯하여 본당 청소를 맡아 하고 있는데 특별히 단풍철에는 은행나무에서 떨어지는 은행잎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쌓이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은행잎이 소복하게 쌓인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전국에서 사진가들이 이 무렵만 되면 몰려든다. 이곳을 찾은 사카이 신이치로 씨(31)는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이 치유된다.”라며 은행잎이 쌓이는 계절에는 어김없이 이 절을 찾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도 백양사의 단풍이라든지 용문사의 은행나무와 같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미국은 많은 민족이 모여 사는 다민족 사회이어서 각 소수민족의 문화를 존중하고 키워 감으로써 미국문화의 다양성이 미국의 국력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간다는 이야기, 미국악원 정기연주회에는 이동엽 외 13명이 궁중악무와 민속악무를 발표하였는데, 윌셔이벨 극장 1,200석 좌석이 교포와 외국인들로 만석이어서 이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한국인 민속보존단체의 탄생 이야기를 소개한다. 1977년 1월의 일이다. 미주의 국악인들이 어떻게 하면 전공분야를 살려가며 미국에서 생활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해 오던 김동석은 고민 끝에 로스앤젤레스시 커미셔너로 있던 이천용 씨를 통해서 당시 지역사회의 유색인종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있는 CCDS(Community Care Development Service)의 회장을 소개받게 되었다. 그를 통해서 <한국민속보존단체>-(Korean-American Ethnic Heritage Group)라는 단체의 이름으로 미국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직업 보장 프로그램의 하나인 CETA 기금을 신청하기에 이른다. 참고로 이 CCDS는 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시월은 초겨울 되니 입동 소설 절기로다 / 나뭇잎 떨어지고 고니소리 높이 난다 / 듣거라 아이들아 농사일 다했구나 (중간줄임) 방고래 청소하고 바람벽 매흙 바르기 / 창호도 발라 놓고 쥐구멍도 막으리라 / 수숫대로 울타리 치고 외양간에 거적 치고 / 깍짓동 묶어세우고 땔나무 쌓아 두소.” 농가월령가 10월령에 나오는 노래다.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스무째로 첫눈이 내린다고 하는 “소설(小雪)”이다. 소설 무렵 아직 따뜻한 햇볕이 내리쪼이므로 “소춘(小春)”이라고도 부르지만 “초순의 홑바지가 하순의 솜바지로 바뀐다.”,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날씨가 제법 추워진다. 또 소설에 날씨가 추워야 보리농사가 잘 된다고 믿었다. 대개 소설 무렵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고 날씨도 추워지는데 이때 부는 바람을 손돌바람, 추위를 손돌추위라고 하며, 뱃사람들은 소설 무렵에는 배를 잘 띄우지 않는다. 이는 고려시대에 '손돌'이라는 사공이 배를 몰던 중 갑자기 풍랑이 일어 배가 흔들리자, 사공이 고의로 배를 흔든 것이라 하여 배에 타고 있던 임금이 사공의 목을 베었다는 강화(江華) 지역의 전설에서 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따로 결혼해서 출산하든, 미혼으로 출산하든 괜찮다는 생각이지만, 부모가 자기만족을 위해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마치 애완동물 감각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도 한 인간이고 아이가 컸을 때 자신의 뿌리가 궁금해도 익명의 제공자이니 찾을 길이 없다는 것을 아이가 안다면? 하는 생각을 하니 복잡한 기분이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사춘기부터 청년기, 정체성 형성기에 고통, 고민,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지는 것을 아십니까? 이건 양부모나, 입양과는 달라요. 완전히 어른 이기심이에요. 사유리 씨가 훌륭하다는 말을 쉽게 안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출산만을 위해서 서둘러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정말 이해된다. 애는 간절히 원하지만, 남편이 집안일도 절반씩 해주고 성격도 취미도 맞고 같이 있어서 힘들지 않고 시댁도 착한 상대를 찾는 일은 귀찮다. 아버지가 불륜으로 집을 나가 편모슬하에서 자랐지만 불편없이 행복하게 자랐다. 부모님이 함께 있어도 고통스러운 사람이 있으므로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무척 아이를 갖고 싶지만 미혼이다. 하지만 어디의 누군지 모르는 사람과의 아이를 내 욕심만으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70년대 초, L.A에 <재미국악원>이 발족하여 3.1절이나, 광복절 등 국가적 행사, 교포사회의 문화 행사, 그리고 <연꽃축제>와 같은 아시아인의 행사 등에 초청되어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나 정작 자체적인 정기연주회는 미루어 오다가 궁중과 민속의 악무 10여 종목을 준비해서 <창립기념연주회>를 갖게 되었는데, 부래들리 L.A 시장의 축하 인사와 정부가 파견하는 문화 사절도 오기 어려운 시기에, <재미국악원>의 역할이나 이에 대한 기대가 높아간다는 총영사의 격려사도 소개하였다. 그렇다. <재미국악원>의 정기 연주회가 있던 1976년 당시의 한국은 지금과 같이 잘 사는 나라가 아니었다. 또한, 70년대는 외국을 여행한다는 그 자체가 어려웠던 시기였다. 국악학교를 졸업한 젊은 국악인들이 미국 L.A에 모여 살게 되면서 한국의 전통음악을 미국 문화의 일부로 키워가려는 시동을 걸게 된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미국은 다양한 민족이 모여 사는 다민족 사회다. 그래서 각 소수민족의 문화를 존중하고 키워 감으로써 미국문화의 다양성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난해 5월 1일, 제126대 일왕 곧 나루히토(徳仁, 1960.2.23. ~)가 즉위하면서 일본의 레이와(令和)시대가 열렸다. 이는 일본 헌정 사상 최초로 아키히토(明仁, 1933.12.23 ~ ) 일왕이 생전에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고 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새 일왕이 즉위하여 1년 반이 지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지난 9일(월) 이세신궁(伊勢神宮)에서는 아주 특별한 의식이 있었다. 아주 특별한 의식이란 황태자를 정해 나라 안팎에 선포하는 ‘입황사의 예(立皇嗣の礼)’로 일본의 종묘사직에 해당하는 이세신궁에서 했다. 보통은 일왕의 아들 또는 손자로 왕위를 정하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현 일왕이 아들이 없기에 일왕의 동생(秋篠宮, 54살)이 왕위 서열 1위가 되었다. 일왕의 아들이라면 ‘입태자의 예(立太子の礼)’라고 하지만 일왕의 동생이라 ‘입황사의 예(立皇嗣の礼)’라는 이름으로 의식이 거행되었다. 일본의 종묘사직에 해당하는 이세신궁에서의 의식은 9일에 있었고 이에 앞서 도쿄 황거(皇居)에서는 황태자 선언식이 8일(일)에 있었다. 일본 일왕가의 역사 속에서 일왕의 동생이 왕위 서열 1위에 오른 예가 없었던 관계로 지난 9일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김동석과 파사디나 시(市)에서 열리는 <장미꽃 축제> 관련 이야기를 하였다. 이 축제는 전 세계에 TV 중계가 될 정도로 유명한 행사였고, 그의 참여가 축제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영향이 컸다는 점도 이야기하였다. 규모가 큰 행사일수록 연습량이 비례하는 법인데, 그 힘든 길거리 행진을 잘하기 위해서 마음고생이 많았다는 점,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그가 미국에 살면서 한국의 전통문화, 한국인의 정신을 지켜가려는 충정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바 있지만, 미국 L.A에 거주하고 있는 젊은 국악인 10여 명은 1973년 5월, <재미국악원>을 발족시켰으며 그해 9월 23일에는 <창립기념연주회>를 갖게 되었다. 당시 남가주에 거주하는 한국인 수는 1만 명 수준이었고, 특히 예술인들은 그리 많지 않았던 때였다. 대표적인 예술인 단체를 꼽는다면 남가주 <음악가 협회>,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안에 <음대 동창회>, 그리고 <미술가 협회> 등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새롭게 <재미국악원>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선생님은 의연히 슬퍼하지 않고 편안하게 돌아가셨다. 영력 264년(1910) 경술 8월 28일이다. 전날 밤에 지진이 일어나고 큰 안개가 가로질러 걸쳐 있었다. 곡기를 끊은 지 23일 만에 임종하셨다. 몸은 수척하고 파리해졌으며 탈구된 상태였으며 입은 건조하고 혀는 메말라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돌아가시기 전에도 오히려 정신은 보존되어 있어 아직도 이불과 옷깃을 손으로 만지고 계셨다. 간혹 집안사람들을 문인으로 착각하셔서 ‘학문의 정진은 절도일 따름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의병으로 활동하다가 일제에 나라를 강탈당하게 되자 단식 23일 만에 순국한 의당 박세화(朴世和, 1834~1910) 선생의 마지막 모습에 대한 기록이다. “9월 선생은 문경에서 왜군들에게 붙잡혀 서울로 송치되어 구속되었다. 왜인들이 갑오년(1894) 이후로 국정을 탈취하고 때로 위압을, 때로 복덕으로 베풀어 전행하다가 이때 와서 주(州)와 군(郡)을 합치고 성인을 모신 문묘를 헐고 합방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선생께서 그 말을 듣고 크게 슬퍼하여 말씀하시길 ‘나라를 합방하고 성인을 모신 문묘를 훼손하는 것은 나라와 도가 함께 망하는 것이다. 우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Don Kim, 김동석 교수가 상쇠로 코리안 퍼레이드를 이끌었던 이야기를 하였다. L.A의 명물 <코리안 퍼레이드>는 1974년부터 현재까지 45년을 이어 오고 있는데, 그 중심에 풍물패가 있고, 김동석이 꽹과리를 치며 지휘를 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또 하나 1975년 말, 헐리웃 은막의 거리에서도 30만 인파의 환호 속에 크리스마스 시즌의 막을 올리는 행사가 텔레비전 생방송으로 중계되었을 때에도 그 주인공은 우리 풍물패였다는 이야기, 아마도 이민 역사상, 미 주류 사회에 소개된 첫 퍼레이드가 아닐까 한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1984년은 미국 LA올림픽이 개최되어 이와 관련된 행사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고, 4년 뒤에는 서울올림픽이 개최될 예정이어서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때마침 미국 내에 김동석이 이끄는 한국의 무용단이나 음악단, 풍물패 등이 알려져서 위상에 걸맞은 문화의 강국답게, 한국을 상징하는 전통음악과 춤이 다양하게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L.A 올림픽이 개최되는 기간 내에 소수민족 예술단체 가운데서는 김동석이 이끄는 단체가 공식적으로 공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지금 단풍의 계절이다. 특히 이맘때면 빛깔 고운 천년고찰의 단풍 구경을 위해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유명세를 타는 일본의 절들은 몸살을 앓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여의치가 않다. 그런 절 가운데 한 곳을 꼽으라면 시가현의 백제사(百濟寺, 햐쿠사이지)를 빼놓을 수 없다. “당산(堂山)은 스이코왕(推古天皇) 14년(606)에 성덕태자의 발원으로 백제인을 위해 지은 절이다. 창건 당시의 본존불은 태자가 손수 만든 관음상이라고 전해지며 본당 (대웅전)은 백제국의 용운사를 본떠서 지었다. 개안법요 때는 고구려 스님 혜자를 비롯하여 백제스님 도흠(道欽)과 관륵스님 등이 참석하였으며 이들은 오랫동안 이 절에 주석하였다.” 이는 백제사 누리집에 올라와 있는 이 절의 유래 가운데 일부다. 백제사는 일본 최대의 호수인 비파호(琵琶湖)를 끼고 있는 시가현(滋賀縣)에 있으며, 교토와 오사카에 면해 있는 유서 깊은 도시다. 이곳은 1건의 세계문화유산을 비롯하여 55건의 국보 그리고 806건의 중요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도시로 국보 보유로 치면 교토부, 도쿄도, 나라현, 오사카부 다음으로 많다. 에도시대에는 강남, 강서, 강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