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스리랑카 담바라 이윤옥 기자] 담바라(Cave Temples of Dambulla)에는 거대한 동굴사원이 있다. 기원전 1세기 남인도 타밀족의 공격을 받을 당시의 왕은 이 거대한 동굴로 몸을 피했다. 그러다가 왕권을 다시 찾은 왕은 부처님의 가피를 잊지 않고 이곳 담바라 동굴에 장엄한 사원을 지은 것이다. 담바라는 수도 콜롬보에서 148km 떨어진 곳이지만 기자 일행은 부처님이 두 번째 방문한 스리랑카 최북단 자푸나로부터 중간 중간의 유적지를 순례하면서 담바라로 이동하는 바람에 콜롬보를 떠난 나흘만에야 어제(4일) 담바라에 도착했다. 담바라 역시 30도를 오르내리는 찜통더위였지만 나무 그늘에 서면 제법 바람이 불어 시원했다. 담바라에는 모두 5개의 크고 작은 동굴사원이 있는 데 가장 큰 동굴은 제2동굴로 길이 50미터, 높이 7미터, 깊이 25미터로 동굴사원에 들어서면 끝이 아득할 정도로 넓다. 이 거대한 동굴사원에는 벽마다 부처님의 일생을 그린 벽화가 빼곡하고 동굴 속에는 무려 56개의 불상들이 누워있거나(와불), 앉아있거나(좌상), 서있는 모습(입상)으로 가득하여 참배객들의 눈을 휘둥그레 만든다. 규모로 보면 중국 감숙성의 둔황 석굴이나
[우리문화신문=스리랑카 자푸나 이윤옥 기자] 섭씨30도를 오르내리는 속에 부처님 두 번째 방문지인 나거디바(NAGADEEPA)로 가기 위해 자푸나(JAFFNA)에서 1박을 하고 아침 8시 나거디바로 향했다. 나거디바는 스리랑카 최북단으로 남쪽 콜롬보로부터 승용차로 6시간은 달려야 다다르는 곳이다. 아직 고속도로가 없어 2차선 국도로 달리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런지 나거디바는 관광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곳이지만 부처님이 부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은 뒤 8년 만에 다시 스리랑카를 찾은 두 번째 성지이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9달 만에 인도 부다가야에서 스리랑카 마히양거나(Mahiyangana)로 온 것이 첫 번째 방문이고 이후 8년이 지나 다시 이곳 나거디바로 오셨다. 당시 이 지역에서는 왕좌(王座)를 놓고 마호다라(형)와 추호다라(동생)가 싸우고 있었는데 이를 해결해주기 위해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이었다. 결국 이들 형제는 부처님의 설법에 감명을 받아 왕좌(王座)를 버리고 부처님께 귀의하게 된다. 왕좌 때문에 다툼이 일어난 것을 반성하는 뜻에서 왕의 의자를 부처님께 보시하는 모습이 나거디바 사원 법당에는 그림으로 남아 있다. 자푸나에서 이곳 나거디바를
[우리문화신문= 스리랑카 아브하야기리 이윤옥 기자] 사리탑의 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 스리랑카는 어디를 가나 피라미드 같은 거대한 사리탑을 만날 수 있다. 고도(古都) 아부하야기리(Abhayagiri)를 찾은 것은 어제 2일(목)이었다. 그제 부처님이 첫발을 내디딘 마히양거나(Mahiyangana)를 출발하여 이곳 아부하야기리에서는 템플스테이를 했다. 계속해서 지방도시를 다니다보니 호텔 시설이 썩 좋지 않은데 견주어 규모가 큰 절들은 호텔보다 나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 지방도시의 호텔이란 우리나라 80년대 모텔 수준 정도이다. 초기 사원이 집중되어 있는 고도라서 인지 곳곳에 사리탑이 즐비하다. 기원전 3세기 무렵의 사리탑의 규모는 보통 현대건축물의 20층 정도로 탑 아래서 올려다보면 탑 상륜부가 보일듯 말듯할 정도로 그 규모에 압도당하고 만다. 강력한 왕권의 보호아래 있었던 불교는 누가 더 높은 탑을 쌓는지를 경쟁이라도 하듯 탑과 절의 규모를 확장해갔다. 기원전 3세기 일이니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파되기 약 700년 전 일이다. 스리랑카에 사리탑이 많은 까닭은 부처님 열반 뒤에 인도에서 흰두교가 성행한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당시 부처님 열반 뒤에 인도 각지
[우리문화신문=스리랑카 폴론나루와 이윤옥 기자] “스리랑카에 부처님이 첫 발걸음을 하신 것은 인도의 부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얻고 난 뒤 아홉 달 만의 일입니다. 2500여 년 전 당시 인도와 스리랑카는 지금처럼 바닷길을 건너야하는 육지와 섬이 아니라 하나의 대륙이었지요. 현재도 인도와 스리랑카의 가장 가까운 거리는 22킬로밖에 안됩니다. 당시 부처님은 남인도 타밀족(Tamil族)과의 전쟁을 해결하기 위해 이곳에 오셨지요. 이후 두 번째 방문은 8년 뒤의 일입니다.” 어제(2월 1일) 아침에 찾은 마히양거나(Mahiyangana) 사원의 주지 남므라타나 스님은 기자에게 이 사원의 유래를 그렇게 말했다. 그제(1월 31일) 밤 캔디의 불치사(佛齒寺)를 들려오느라 밤늦게 마히양거나 사원에 도착한 기자 일행은 밤 8시가 다되어 주지스님을 잠깐 뵙고 다시 이튿날인 어제 정식으로 찾아뵌 것이었다. 남므라타나 스님 말대로라면 이 절은 2531년(올해 불기)의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절이다. 부처님이 인도의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뒤 1년이 채 안된 9달 뒤에 스리랑카의 이곳 마히양거나를 찾은 기념으로 생긴 이 절의 역사는 곧 부처님의 역사 그 자체이건만 스리랑카
[우리문화신문=스리랑카 캔디 이윤옥 기자] “스리랑카인들은 부처님의 소중한 치아사리를 인도로부터 목숨을 걸고 이곳 불치사로 가져왔습니다. 스리랑카인에게 치아사리는 곧 부처님을 뜻하는 것으로 스리랑카는 16세기부터 포르투칼, 네덜란드, 영국으로부터 각각 식민통치를 받는 동안 승려 한명 남지 않는 대법난을 겪게 됩니다만 이 치아사리만큼은 목숨처럼 지켜왔습니다. 말하자면 이곳에 모신 치아사리는 스리랑카 불교 그 자체요,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부처님의 법등(法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와치싸라 스님은 유창한 한국말로 스리랑카 불교 역사를 기자에게 설명해주었다. 스님은 콜롬보에서 165킬로미터 떨어진 캔디지역에 자리한 불치사(佛齒寺, Sri Dalada Maligawa)로 이동하는 3시간 여 동안 스리랑카 불교 역사에 대해 소상한 설명을 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이곳 불치사에 도착해서도 스리랑카의 불교 강의(?)는 이어졌다. 와치싸라 스님으로부터 수많은 설명을 들었지만 기자의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식민시대의 불교 말살” 이야기였다. 동병상린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이르는 것이리라. 떠올리기도 싫은 일제의 침략역사를 겪은 우리에게 스리랑카의 외세 침략의 역사를 구태
[우리문화신문=스리랑카 콜롬보 이윤옥 기자] 한국의 날씨와는 정 반대인 섭씨 28도의 무더운 폭염이 내리쬐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내렸다. 잠시 동안이지만 굵은 빗줄기 덕에 더위가 누그러진 느낌이다. 19세기에 지어진 콜롬보 시내의 강가라마야 사원은 거대한 불교 박물관 같아보였다. 콜롬보의 베일라 호숫가에 자리 잡고 있는 강가라마야(Gangaraya Temple) 사원의 "강가라마야"란 "물을 다스리는 임금"이란 뜻으로 1885년 스리랑카 불교 재건운동을 이끈 '히카두웨 스리 나카야' 스님이 세웠는데 당시 꺼져가던 불교를 되살리는 중심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한국의 조계사 같은 곳이라고 보면 됩니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것이 그러하고 또한 신도 아니라도 수많은 관광객들도 찾는 곳이기때문이지요” 와치싸라 스님의 말마따나 강가라마 사원은 콜롬보 시내에 있는 규모가 큰절로 기자가 찾은 어제(30일)에도 찾는 이들이 많았다. 규모가 크다고 해서 공간이 넓은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조계사가 그러하듯이 비좁은 공간이지만 서울 시내에 접근성이 좋은 곳에 자리하여 한국 불교의 상징적인 곳으로 통하는 조계사처럼 보였다. 단지 조계사와 다른 점은 주변에 인사
[우리문화신문= 일본 군마 다카사키 이윤옥 기자] "저는 도쿄에 사는데 다카사키(高崎)에 일을 보러왔다가 유명한 다카사키다루마(高崎だるま, 달마인형)를 하나 사려고 들렸습니다. 해마다 하나 사서 집안에 두었다가 연말에 신사(神社)에 가져갑니다. 올해는 건강을 기원하고 싶어 초록색 다루마를 샀습니다. 다루마는 원래 눈이 없는 상태로 파는데요. 사다가 바로 왼쪽 눈을 칠하고요. 연말에 나머지 눈을 칠한 뒤 신사에 갖다 주고 태우게 합니다." 도쿄에서 왔다는 다나카유지(田中祐二, 60살) 씨는 다루마 상점 안을 기웃거리는 기자에게 초록색 다루마를 손에 쥔 채 친절히 다루마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JR다카사키역 상점가에 진열된 다루마인형은 빨강, 파랑, 노랑 등 다양한 색으로 한껏 새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일본 전국에서 팔리는 다루마 인형의 80%를 이곳 군마현 다카사키에서 만드는데 일본말 다루마(だるま)는 중국 선종(禅宗)의 개조로 알려진 인도 승려 달마대사(達磨大師)에서 나온 말로 한국에서는 달마(達磨)라고 부르지만 일본에서 만들어 파는 인형은 다루마라고 부른다. 달마대사는 9년간 면벽을 하고 좌선(坐禪)을 하느라 팔다리가 썩어 문드러졌기에 일본의 다루마는
[우리문화신문=조판형 기자] 푸른 초원이 끝없이 펼쳐진 징기스칸의 나라 몽골. 드넓은 초원 위에서 신나는 말타기 체험과 양고기, 뜨겁게 달군 돌에 각종 야채를 찜통에 넣고 구워낸 허르헉 요리를 잊을 수 없는 몽골여행은 의미 깊었다. 몽골의 지형은 길쭉한 타원형이다. 동쪽에서 서쪽까지 길이는 2,393㎞에 달하지만, 남북의 길이는 가장 긴 곳이 1,259㎞로 훨씬 짧다. 몽골의 북쪽 국경은 러시아와, 남쪽 국경은 중국과 접하고 있다. 해양에서 멀리 떨어져 동아시아 내륙 안에 깊숙이 위치한 몽골은 길고 추운 겨울과 짧고 무더운 여름을 보이는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이다. 몽골의 놀랍도록 다양한 자연경관은 대개 고지대 초원, 준사막,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울창한 삼림으로 이루어진 북쪽과 서쪽의 높은 산맥 지역에서는 건조하고 점점이 박혀 있는 호수의 분지들이 교대로 나타난다. 몽골은 평균 고도가 해발 1,585m에 이르는 고지대 국가이다. 몽골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들이 있는 산맥은 알타이 산맥이다. 몽골의 서쪽 끝에 위치한 알타이 산맥에 있는 해발 4,374m의 후이텐 봉이 몽골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이다. 몽골은 국토의 80%가 목초지로 이루어져 있어 방대
[우리문화신문= 도쿄 이윤옥 기자]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어제(27일) 오후 5시부터는 도쿄 오오츠카역(大塚驛) 근처에서 아와오도리(阿波踊り、Awa Odori) 잔치가 열렸다. 도쿄는 일주일전 태풍 9호의 영향을 받은지 얼마 안 되는데 또 다시 이틀 뒤에 10호가 상륙한다는 뉴스에 모두 염려하던 차에 아와오도리 잔치가 예정대로 열릴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가랑비가 내려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올해로 제 44회째인 오오츠카 아와오도리 (大塚 阿波踊り)는 도쿄상공회의소와 도시마구(豊島區)등이 주최가 되어 해마다 8월에 여는 마츠리(잔치)다. 한마디로 지역상권을 중심으로한 한바탕 잔치인 셈이다. 원래 아와오도리(阿波踊り)는 도쿠시마현(徳島県)을 발상지로 하는 봉오도리(盆踊り)로 에도초기부터 시작한 400년의 역사를 지닌 일본의 전통 예능의 하나이다. ‘오도리(盆踊り)’가 춤을 말하는 것처럼 일본 전통 옷을 곱게 차려입은 여성들이 춤을 추며 가두행진을 하는 것쯤으로 생각해도 무리는 아니다.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으나, 한국의 경우 아리랑 발상지와는 상관없이 각 지역에서 아리랑잔치를 여는 것과 비슷한 예다. 단지 봉오도리는 노래가 아니라 춤이라는 점이 다르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