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황명하 호주광복회장] 얼마 전편집국에 호주 광복회장 황명하 씨로부터 편지 한통이 배달되었다. 편지 내용의 일부를 보면 제 선친이 1944년 1월 20일, 학병으로 일본군에 강제 징집된 후, 몇 달 만에 탈출하여 중국군 상위(대위)가 되어 한중 연합군의 정보장교 시절에 쓴(44년 7월경) 일본인에게 고함이라는 격문이 있습니다. 일본군 진영에 살포하면서 일본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일본군 내 한국 국적 사병들을 불러모으는데 쓰였던 것으로 원문은 일본어입니다.로 시작되는 편지였다. 편지는 이어졌다. 무엇보다 일본이 항복하고 광복을 맞이한 지도 68년을 맞이하지만 일본인들은 아직까지도 과거의 조선에 대한 엄청난 죄과 -강제 징용, 징병, 위안부, 억압, 학살 등등 - 에 대해 엎드려 사죄하지 않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과는 커녕 말도 안 되는 독도 영유권 주장 등 한국인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습니다. 선친의 글은 이제 지나간 역사로 간과될 하나의 성토문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 내용으로 보아 일본의 진심어린 사죄가 없는 이 시대에 아직도 유효하다는 생각입니다. 이에 황갑수 애국지사의 나라사랑 정신이 깃든 일본인에게 고함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주-
[그린경제 = 최미현 기자] 해마다 광주에서는 8월 29일 국치일을 맞아 그 어느 곳에서도 생각 못한 친일음악회를 열어 왔다. 올해도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주최로 오는 국치일 하루 전날인 28일 오후 8시 진월지구 노대마을 물빛호수공원에서 국치 103년 기억 음악회가 열리는데 이번에는 친일과 항일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음악회로 마련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지부장 김순흥, 광주대 교수)는 국권 침탈 103년이 되는 29일에 앞서 수치스런 날을 되돌아보고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해서 해마다 이 행사를 열고 있다고 밝혔다. 친일 음악회에는 광주에서 클래식음악을 대중에게 보급하기 위해 힘써 온 '광장음악회' 소속 성악가들이 출연하여 아름답고 순수했던 1920년대의 동요 및 일제 강점기 친일 노래 등을 선보인다. <친일,항일 음악회 프로그램> 사회 / 김순흥 해설 / 정찬경 1920년대 동요...........................................................................꿈꾸는예술 반달 / 따오기 / 오빠생각 / 퐁당퐁당 / 고기잡이 / 고향의 봄 일제 강점기 치욕스러운 친일노래........
[그린경제 = 이나미기자] 100년 편지에 대하여..... 100년 편지는 대한민국임시정부 100년(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입니다. 내가 안중근의사에게 편지를 쓰거나 내가 김구가 되어 편지를 쓸 수 있습니다. 100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역사와 상상이 조우하고 회동하는 100년 편지는 편지이자 편지로 쓰는 칼럼입니다. 100년 편지는 2010년 4월 13일에 시작해서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됩니다. 독자 여러분도 100년 편지에 동참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매주 화요일 100년 편지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문의: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02-3210-0411 일송(一松) 김동삼 선생님 ! 작년 약전 집필을 위해 선생님의 일생 행적을 더듬으며 다시 선생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 민족운동사, 특히 만주지역 무장투쟁사를 빛낸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한 분이십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듣고 자랐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만주 3부(참의부정의부신민부) 통합운동에서 뜻을 함께 했던 희산 김승학이 바로 저의 증조부가 되시는 때문이지요.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턱을 괴고 골똘히 들었던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나는 학살 현장인 사할린의 설원에 서게 되면 일본인이 저지른 뿌리 깊은 원죄를 뼈저리게 느낀다. 일본이 양심이 있다면 강제연행한 조선인을 맨 먼저 귀국시켜야 했다. 그런데 일본인만 후송하고 조선인은 내버려둔 것이다. 이렇게 비인간적인 행위가 용서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일본인 하야시에이다이 씨의 격앙된 ‘일본사죄론’이다. 이 말은 비단 사할린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며 2013년 현재 남아있는 60만 재일조선인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말이다. 지난 2010년 8월 15일은 광복 65주년이었고 같은 해 8월 29일은 경술국치 100년을 맞았었다. 그래서 우리는 “경술국치 100년, 한일평화를 여는 역사기행” 답사단을 꾸려 조선인들의 강제노동 현장인 기타큐슈의 치쿠호 탄광을 시작으로 시모노세키, 오사카, 교토에 이어 도쿄의 야스쿠니 반대 행사가 있던 히비야공원까지 장장 1,200킬로 거리를 12일에 걸쳐 돌아보았다. 이 글은 그때의 기록이지만 현재의 상황이기도 하다. 곧 다가올 68주년 광복을 앞두고 조선인강제연행 궤적을 쫓아갔던 기록을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설명- ▲ 지하에 여전히 조선인 유골이 그대로 방치되어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나는 학살 현장인 사할린의 설원에 서게 되면 일본인이 저지른 뿌리 깊은 원죄를 뼈저리게 느낀다. 일본이 양심이 있다면 강제연행한 조선인을 맨 먼저 귀국시켜야 했다. 그런데 일본인만 후송하고 조선인은 내버려둔 것이다. 이렇게 비인간적인 행위가 용서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일본인 하야시에이다이 씨의 격앙된 ‘일본사죄론’이다. 이 말은 비단 사할린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며 2013년 현재 남아있는 60만 재일조선인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말이다. 지난 2010년 8월 15일은 광복 65주년이었고 같은 해 8월 29일은 경술국치 100년을 맞았었다. 그래서 우리는 “경술국치 100년, 한일평화를 여는 역사기행” 답사단을 꾸려 조선인들의 강제노동 현장인 기타큐슈의 치쿠호 탄광을 시작으로 시모노세키, 오사카, 교토에 이어 도쿄의 야스쿠니 반대 행사가 있던 히비야공원까지 장장 1,200킬로 거리를 12일에 걸쳐 돌아보았다. 이 글은 그때의 기록이지만 현재의 상황이기도 하다. 곧 다가올 68주년 광복을 앞두고 조선인강제연행 궤적을 쫓아갔던 기록을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설명- 답사단이 교토시 우쿄구(右京区) 케이호쿠시모나카쵸
[그린경제=이규봉 기자] 길은 어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는 평지다. 길 주변은 모두 밭이고 거의 논을 볼 수 없다. 장준하 일행이 몸을 숨기는 데 좋았던 옥수수가 무척 많이 심어져 있다. 도로 양쪽으로는 플라타너스 나무가 빼곡히 서있다. 나무 사이사이로 가는 곳마다 군데군데 화학비료를 선전하는 화비(化肥)라는 입간판이 밭에 서 있다. 이 넓은 들판에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것이다. 다른 선진국들은 유기농으로 전환하고 있는데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화학비료를 장려하고 있다. 그 넓고 넓은 땅에 모두 화학비료를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장 생산은 늘어나겠지만 훗날 토질이 나빠지고 주변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은 생각 못하는지. 나로서 걱정되는 것은 그 많은 화학성분이 결국은 황해로 배출되어 중국의 연안 어업은 몰락이 가속화되고 이웃한 우리나라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선진 나라의 사례를 이미 모두 파악 했을 텐데 중국 정부는 화학비료를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에는 이와 같은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 갑자기 자전거 두 대가 이어서 펑크를 낸다. 정비를 맡은 임 선생이 바퀴
[그린경제 = 황명하 호주광복회장] 호주에서 광복회 회장으로 민족의 자존심과 얼을 심어주고 있는 황명하(黃明夏) 회장께서 68주년 광복절을 맞아 호주에서 부르는 광복군 아리랑 글을 기고해 왔다. 황 회장의 아버님은 그 유명한 일본인에게 고함 (1944년 7월)이라는 격문을 지은 광복군 출신 황갑수(黃甲秀 :1921~2009) 애국지사이다. 아버지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황 회장의 나라사랑 정신은 이역만리 호주 땅에서도 투철한 역사의식으로 다시 피어나고 있다. 힘겨운 이민 사회 속에서도 고국의 역사와 불굴의 정신으로 일제강점기를 살아 낸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알리는 일이라면 팔을 걷어 부치고 앞장서서 솔선수범함으로써 오늘날 호주동포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북돋우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 호주 시드니 한인 동포들은 세계 한인 디아스포라(Diaspora)중에서도 모범적인 한인 동포로 평가받고 있으며 시드니 동포는 약 12만 명, 호주 전체로는 20여만 명으로서 재외동포 다수 거주 국가 순위 6위국이다. -편집자주- 광복군과 나 광복군하면 아련한 기억부터 떠오른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 시골집 벽장에 있던 태극무늬가 붙은 군모와 누런 군복을 보면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나는 학살 현장인 사할린의 설원에 서게 되면 일본인이 저지른 뿌리 깊은 원죄를 뼈저리게 느낀다. 일본이 양심이 있다면 강제연행한 조선인을 맨 먼저 귀국시켜야 했다. 그런데 일본인만 후송하고 조선인은 내버려둔 것이다. 이렇게 비인간적인 행위가 용서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일본인 하야시에이다이 씨의 격앙된 ‘일본사죄론’이다. 이 말은 비단 사할린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며 2013년 현재 남아있는 60만 재일조선인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말이다. 지난 2010년 8월 15일은 광복 65주년이었고 같은 해 8월 29일은 경술국치 100년을 맞았었다. 그래서 우리는 “경술국치 100년, 한일평화를 여는 역사기행” 답사단을 꾸려 조선인들의 강제노동 현장인 기타큐슈의 치쿠호 탄광을 시작으로 시모노세키, 오사카, 교토에 이어 도쿄의 야스쿠니 반대 행사가 있던 히비야공원까지 장장 1,200킬로 거리를 12일에 걸쳐 돌아보았다. 이 글은 그때의 기록이지만 현재의 상황이기도 하다. 곧 다가올 68주년 광복을 앞두고 조선인강제연행 궤적을 쫓아갔던 기록을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설명- “그리운 우리 조국,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에게 진심
[그린경제=현용운 회장] ▲ 중국측 도로 시공사에서 량켠을 약 10cm씩 공사비를 떼먹었다 고한다. ▲ 선봉지역의 살림집들 ▲ 도착한 날 점심 김파씨와 함께 부강 식당에 가서 정말로 맛나는 김치와 두부와 밥을 먹었다 ▲ 중국에서 시공하는 라진만 4호부두 공사가 한창이었다. ▲ 호텔방에서 중국의 위성방송이 그대로 중계되어 인상이 깊었다. 창밖의 도로변 조선식 구호판들과 묘한 대조가 된다 ▲ 라진만에서 고기잡이하는 어부들의 쪽배 ▲ 저 고요한 바다물 밑에는 무엇들이 나들이 할까? ▲ 라진 음료공장 제품들 ▲ 라진음료공장 전경도(공장의 양해를 구하고 찍은 사진들) ▲ 라진음료공장의 술 생산능력과 공정도 ▲ 된장 장독대들 ▲ 호텔문 앞에서 내려다 본 라진시장 출구 쪽, 시장은 매일 오후마다 개장한다고 한다.
[그린경제=이규봉 기자] 쉬저우 공정병학원을 출발해서 한 70여 km 쯤 갔을 때 화이베이 입구에 도달했다. 점심을 먹고 출발하려 하니 식당주인이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다. 그도 우리와 같이 자전거 복장을 한 외국인을, 그것도 한국인을 다시 만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 같다. 원래는 화이베이에서 하루 묵을 계획이었으나 너무 일찍 도착했고 다음 목적지인 궈양(渦陽)이 한 60여 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보고 궈양까지 가기로 했다. 202번 도로를 타고 가다보니 길을 포장하는 공사를 한참 하고 있다. 대형트럭들이 괴성을 울리고 지나가며 먼지를 일으킨다. 곧 나타날 것 같았던 궈양은 5시가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달린 거리는 벌써 110km 임을 알린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비포장도로를 오래 달려 모두들 심신이 지쳐있었다. 이정표는 다시 나타나지 않고 궈양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신도 서지 않았다. 더 가다가는 숙소도 구하지 못하고 화를 자초할 것 같았다. 결국 궈양까지 가지 못하고 우리가 가진 지도에도 없는 작은 마을인 임환(臨涣)에서 묵어야 했다. 이 작은 마을에 제대로 된 숙소가 있을까 하며 찾아 다녔더니 아래층에는 슈퍼가 있고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