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환 한글철학연구소장] 한겨레신문 지난 6월 22일 치에는 한겨레말글연구소 김진해 연구위원(경희대 교수)의 “한글의 역설”이란 글이 실렸다. 우리말에 영어가 많이 섞여 있게 된 것이 사대주의 때문이 아니고 한글 탓이라는 주장이다. 한글은 소리만 본뜰 뿐 뜻을 담지 않아 몸놀림이 가벼워 들리는 대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망설임 없이 적는데 한자는 뜻이 소리와 함께 있어서 매번 소리로 적을지, 뜻으로 적을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으로 진단하였다. ‘电视’(텔레비전=전기+보다), ‘电脑(’(컴퓨터=전기+뇌), ‘电影’(영화=전기+그림자), ‘手机(’(핸드폰=손+기계)을 보기로 들었다. 한글만으로는 문제가 많고 한자를 써야 영어를 막을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조선의 선비들은 빼어난 글자인 한글을 ‘언문’, ‘암클’이라 얕보고 중국 글자를 떠받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15세기부터 한글이 여러 분야에서 널리 쓰였을 것이다. 19세기 말까지 한글은 소설이나 편지 같은 사적 영역의 문서에서나 쓰였다. 한문을 잘하면 과거를 통하여 출셋길이 훤하게 열렸다. 학문이나 교육이 한문 경전을 읽고 풀이하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과거 답안을 한문으로 제출해야만 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목욕탕 순자 씨 - 김 태 영 평생 생선 장사를 했었다는 할머니가 치매에 걸려 며느리와 함께 목욕탕에 와서 얼른 칼 가지고 오라며 큰소리를 칩니다. 이 광경 보며 때를 밀어주던 순자 씨 나도 늙어 정신 줄이라도 놓게 되면 어쩌나요? 치매는 과거만 기억한다는데 걱정이 태산이란다. 엎드리세요. 돌아누우세요. 바로 누우세요. 입에 익은 이 말만 기억하면 정말 나 어쩌지요 사랑한다는 멋진 말도 있을 텐데 말입니다. ----------------------------------------------------------------------------------------------------------------------- 저기 저 목욕탕의 순자 씨, 나 어렸을 적 우리 마을 순자를 닮았을까? 그때 어느 마을이건 순자 한 명은 꼭 있었지. 그때의 순자는 이름처럼 청순하고 예뻤다. 그 순자는 잘 웃었지만, 그렇다고 수다스럽지는 않았다. 순자의 그런 점이 내가 순자에게 쉽게 접근할 수가 없게 했다. 손잡고 뒷동산에 올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싶었건만 연애편지를 썼다 고쳤다 쓰기를 여러 번 용기를 내지 못해 쉽게 건넬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고
[우리문화신문=김영환 교수] 한겨레신문이 연재하는 김진해 님의 글 <말글살이>(6월29일 치, ‘말을 고치려면’)는 나를 놀라게 하였다. ‘언어는 퇴행하지 않고 달라질 뿐, 걱정도 개입도 말라’는 내용이었다. 말에 대한 최종 책임은 ‘사회적 개인’의 몫이며 국가는 개인의 말에 대해 ‘맞고 틀림’을 판정할 권한이 없다고 했다. ‘말의 발산과 수렴’의 장마당(언어시장)이 사라져버렸다고 했다. 민간 자율을 내세워 정부가 경제정책에 개입하는 것을 금기로 아는 하이에크류의 신자유주의를 언어 영역에까지 적용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외국 이론을 들여와 기계적으로 적용하려는 시도는 우리가 한두 번 보는 게 아니다. 동시에 말글이 갖는 역사성과 문화성을 부정한 이론이다. 김진해 님의 주장은 신자유주의처럼 시장(선)-국가(악)이란 이분법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조는, 경제학뿐만 아니라 언어학에서도, 한때 유행하다가 지금은 잊힌 이론이다. “‘쉬운’ 한국어는 단어가 아닌 글쓰기나 말하기 역량의 문제이다.”라고 하였으나 쉬운 말은 우선은 낱말의 문제다. “異民族箝制의痛苦를嘗한지今에十年을過한지라.”보다 “다른 민족에게 억눌리는 고통을 받은 지 십 년이 지났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호박잎 쌈 - 황 경 연 고향서 보내온 호박잎쌈 반가워 강된장 한 숟가락 듬뿍 얹어 볼이 미어지도록 한 쌈을 쌉니다 입안 가득 그리움의 고향 맛이 곰실곰실 맛있게 배어 나오고 그리운 어머니의 정 사무쳐 올 때 까닭 모를 눈물이 눈꼬리를 적십니다. 강된장에 든 고추 핑계를 대며 버무려진 한 쌈 눈물로 삼킵니다. 허기졌던 마음이 순식간에 흐뭇해집니다. ---------------------------------------------------------------------------------------------------------------- 어릴 적 시골에서 살아본 사람은 호박에 대한 한 토막의 추억이라도 있지 않나? ‘호박꽃도 꽃이냐고’ 비웃는 사람도 있지만, 늙은 호박으로 죽을 쑤어 먹거나 호박떡을 해 먹으면 일품인 걸 어쩌랴? 그런데 여기 호박잎도 있다. 어릴 때 비가 오면 호박은 자신의 넓은 잎을 내주어 아이들이 우산 대신 쓰도록 했다. 어디 그뿐이랴? 우리의 어머니는 호박잎을 쪄 강된장과 함께 싸 먹도록 해주었는데 그 환상적인 맛이란 지금도 재래시장에서 호박잎을 파는 할머니들을 보면 어머니가 그리워져 왈칵 눈물이 솟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어느 날 걸망을 메고 - 이 승 룡 가끔은 일상의 껍데기 벗어놓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볼 일이다 흙 내음 들꽃 향기 물소리 들으며 마냥 짙푸른 숲길 걸어볼 일이다 부질없는 세상사 눈물 쏟아질 때면 그저 고요한 산사 한번 찾아볼 일이다 담쟁이 어우러진 물푸레나무 아래서 향 짙은 솔잎차 한잔 마셔도 좋고 잠시라도 바람과 얘기 나눠도 좋다 새소리 물소리 풀벌레 소리 서로 어우러져 하나인 이들에게 그리 살아가는 법을 배워볼 일이다 ------------------------------------------------------------------------------------------------------- 이승룡 시인은 “가끔은 일상의 껍데기 벗어놓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볼 일이다.”라고 말한다. 그것도 걸망을 메고 말이다. 한국일보 2010년 11월 9일 치에는 서산 부석사 주지 주경 스님의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걸망을 멘 스님은 길을 떠난 스님들의 상징적인 모습이다. 누구든 때가 되어 떠나게 되면 걸망 하나로 짐을 정리한다. (가운데 줄임) 나누어줄 만한 것은 나누어 주고 버릴 것은 버린다. 얼마간이건 살다가 떠날 때, 걸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세계는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위기의 주범은 다름 아닌 코로나 팬데믹.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미래를 대비하는 태도 등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전과 양상이 많이 다르다. 이전의 바이러스 사태가 그냥 우리를 스쳐간 것과 달리 이번 위기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인간관계의 문제, 정의와 공평성, 기본소득 논의, 재택근무 보편화 등 어느 정도 예견했던 일들이 더 빨리 실생활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를 실감했고, 그 어느 때보다 급진적일 수 있는 변화에 대비하라고 충고한다. 『포스트 코로나』에서는 국내외 경제, 부동산, 사회, 의료, 교육, 정치 등 7개의 각 분야 전문가들의 해석과 전망을 통해 코로나 사태 이후 세계는 어떻게 재편될지 그리고 개인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살펴보고 있다. <포스츠 코로나> 우리는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임승규, 장두석, 양석재, 조관자, 김재헌, 유필립, 박남기 지음 한빛비즈(202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담장과 담쟁이 - 이 승 룡 죽기 살기로 오르고 올라도 무슨 까닭으로 버티고 서서 담 너머 세상을 못 보게 했을까 줄기 뻗어 몸집을 불려 봐도 고개를 쳐들고 몸부림쳐 봐도 못 본 체 외면하는 줄 알았다 지난밤 휘몰아친 비바람 속에 둘이 함께 서로를 의지하고 견뎌내고 나서야 비로소 고마웠다 허벅지를 '탁' 치는 깨우침! 날 지켜주는 버팀목인 줄 알았다. ----------------------------------------------------------------------------------------------------------------------- 도종환 시인은 <담쟁이>라는 시에서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라고 노래한다. 또 이경임 시인은 “마침내 벽 하나를 몸속에 삼키고 온몸으로 벽을 갉아 먹고 있네 아, 지독한 사랑이네”라고 중얼거린다. 담쟁이에서 어떤 이는 도전, 어떤 이는 지독한 사랑을 본다. 하지만, 여기 이승룡 시인은 “지난밤 휘몰아친 비바람 속에 둘이 함께 서로를 의지하고 견뎌내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대구 영남공업고등학교(교장 김봉준)는 대구시교육청 학생 저자 책 쓰기 프로젝트 100-100-1 프로그램의 하나로 《우리는 학생 기자다(부제: 사람 책으로 만든 사람 책)》를 펴냈다. 이 책은 사람 사이 만남을 통해 편견을 없애자는 덴마크 출신의 사회운동가 로니 에버겔의 '휴먼 라이브러리 프로젝트'에서 동기를 얻었으며 한국언론진흥재단으로부터 대담 기사 작성법을 공부하고 대담 요령을 익혀 지역 사회의 숨은 보석들을 찾아 대담을 진행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최정애 강사는 "고등학생들이 낯선 사람에게 연락하고 만나고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매체 이해력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성인으로 크게 성장하는 것을 느꼈다"라며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들을 대견해 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승준(2학년 전자과) 학생은 "단순히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기억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한 내용을 실제 상황에 적용해 보니 진짜 공부를 한 것 같다"라며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친구들과 협력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얻은 것이 많다"라고 말했다. 김봉준 교장은 "대구 교육의 자랑인 '학생 저자 책 쓰기'가 프로젝트 수업과 만나 학생들의 미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자 화 상 이 승 룡 지리산 법계사 부처님께 참배하고 보시함 앞에서 지갑을 열어보니 오만 원 한 장에다 천 원짜리 두 장 고민하다가 슬그머니 이천 원을 넣었다. 하산길 해우소에 볼일 보고 일어서다가 아차, 이걸 어쩌나요? 지갑을 똥통에 빠뜨린 속인(俗人) 한 명 저기 터덜터덜 걸어가네요. ------------------------------------------------------------------------------------------------------------------------ 우리나라 문화재 가운데는 여러 사람의 자화상이 있는데 그 가운데 국보 240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은 정말 특별한 자화상이다. 그 까닭은 자화상에 있어야 할 두 귀, 목과 윗몸이 없는 괴기한 모습이어서 그렇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보존과학실 연구팀이 적외선 투시 분석을 한 결과 윤두서의 자화상은 두 귀와 목과 상체의 윤곽이 뚜렷하게 남은 것은 물론 현미경으로 자화상 얼굴을 확대해 본 결과 화가가 생략한 것으로 알려졌던 양쪽 귀 또한 작지만 붉은 선으로 그린 사실도 밝혀졌다. 결국, 윤두서 자화상은 두 귀, 목과 윗몸이 없는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문지문학상과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하며 한국문학의 주목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정지돈의 짧은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그동안 『내가 싸우듯이』『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야간 경비원의 일기』 등을 선보이며 탄탄하게 기대에 부응해온 정지돈은,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통해 짧은 소설에서도 그 재능을 어김없이 드러낸다. 짧은 소설을 두고 “써보지 않은 형식이라 부담스러웠는데 쓰다 보니 즐거워졌다”고 말하는 정지돈은, “친밀한 사이에서 오간 실없지만 웃긴 대화 같은, 그런 글을 생각하고 쓴 건 아닌데 써놓고 보니 그렇게 됐다”고 덧붙인다. 정지돈은 짧은 소설을 통해 독특하고 위트 있는 농담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실존 인물인 폴 오스터와 에드워드 사이드, 장 주네를 엮어 사실과 상상력을 절묘하게 결합하고, 영화감독 장 팽르베를 등장시키며 역시나 ‘어디까지 허구이고, 어디까지 사실일까?’ 생각하게 만든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여행을 하고 책을 읽으며 동시에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기이한 일들을 마주하기도 한다. 소설의 모든 농담과 독특한 낯섦은, 재치 있는 문장에 담겨 독자들의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