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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따스한 햇빛이 고개를 내민다

[맛있는 서평] 정진국 시인의 시집 《가을엽서》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50]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김화 정진국 시인의 시집 《가을엽서》가 어느 날 저에게 배달되었습니다. 제가 시집 선물을 많이 받아봤지만, 정진국 시인은 그동안 저에게 시집을 선물한 시인과는 또 다른 분입니다. 정 시인은 예비역 준장입니다. 육군3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군문에 있었지요. ‘장군과 시인’이라는 조합이 어딘가 어색한 느낌을 준다는 사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무인이 시를 쓴다고 하니 언뜻 호탕하고 나라를 생각하는 우국충정의 시가 연상되기도 할 테고요. 그러나 정 시인의 시는 그런 시와는 좀 거리가 있습니다. 정 시인의 시를 감상하면서 저에게 떠오르는 단어는 ‘풍경시인’입니다. 정 시인은 주위에서 만나는 풍경을, 특히 숲의 풍경을 시로 많이 남겼습니다. 시인의 말을 들어보지요.

 

어렵고 힘들 때마다 십여 년간 함께 걸어온 숲은 나의 진정한 친구요. 보금자리였음을 인정합니다. 아름다운 숲은 나에게 상큼한 새벽을 열어주기도 하였고, 칠흑 같은 밤길에 등불처럼 노래를 들려주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지나온 결실을 잘 거두어 새로운 씨앗을 자연에 한 톨 한 톨 심어가는 참된 시인이 될 것입니다. 다시 다가올 가을을 위해...

 

 

정 시인은 군문을 떠난 이후 계속 숲을 걸었군요. 이렇게 숲속을 걸었다고 하니, 윌든 호숫가 숲속을 거닐었던 소로우(Henry David Thoreau)가 생각나기도 하고, 청록파 시인도 생각나는군요. 시집에는 시인이 걸었던 숲의 사계절이 1부(생명), 2부(열정), 3부(풍요), 4부(희망)로 나뉘어 실려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5부(사색)에는 시인의 인생 사색이 실려있고요.

 

정 시인의 시를 처음 접했던 것은 제가 들어가 있는 단톡방에서입니다. 어느 날부터 정 시인이 김화(金禾)라는 이름으로 계속 시를 올리더군요. 그래서 저는 처음에는 ‘김화’라는 시인의 시를 올리는 것으로 생각했었지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장군이 시를 쓴다는 것은 생각을 못 했거든요.

 

그런데 계속 김화의 시가 올라오는데, 아무래도 내가 별로 들어보지 못하던 시인이라 혹시 정 장군 본인의 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하여 정 장군에게 확인하니, 본인의 시가 맞다고 하네요. 장군과 시인! 그때부터 정 시인의 시를 눈여겨보았는데, 이번에 드디어 시집이 나왔네요. 그럼 각 계절의 시에서 몇 편 볼까요?

 

꽃이 비가 되어 내린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길고 긴 세월을 기다려

피었던 꽃이련만

 

제대로 가꾸어 관리하지 못한

하늘이 원망스럽다

아직 봄은 남아 있는데

왜 그리 서글퍼 미리

서두르는지 모르겠다

 

​여름 가을 겨울을 거쳐온 시간이건만

따뜻한 온기로 꽃향을

잡아둘 수 없다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우리는 다시 올 꽃향을

이제부터 기다려야 한다

 

1부(생명)에 실린 ‘꽃비’라는 시입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봄날의 그 화려한 꽃이 너무 빨리지는 것에 대해 아쉬움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정 시인은 꽃이 지는 모습을 꽃비로 표현하면서 그 아쉬움에 하늘도 원망하는군요. ‘꽃비’라고 하니까, 예전에 완주 화암사에 갔을 때 본 우화루(雨花樓)가 생각납니다. 절에도 이렇게 시적(詩的)인 전각이 있다는 것에 놀라워하며, 그때부터 ‘꽃비’라는 단어가 제 가슴에 새겨졌는데, 정 시인의 시에서 ‘꽃비’를 만나니 반갑네요. 그럼 2부(열정)에서는 어떤 시를 볼까요?

 

짙은 초록으로

무대 꾸미고

옅은 안개와 비켜선 햇살이

은은한 조명을 비춘다

 

쫑긋한 귀의 고라니 지휘아래

다람쥐 한 떼의 안무와

산새들의 합창이

조화롭게 이루어진다

 

지나는 바람이

무대에 환호하고

녹색 청중들은

산속의 무대에 열광한다

 

‘산 속 공연장’이라는 시입니다. 어떻습니까? 산 속 공연장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특히 ‘옅은 안개와 비켜선 햇살이 은은한 조명을 비춘다’라는 시구가 마음에 드네요. 저도 산을 좋아하는데, 특히 옅은 안개와 비껴선 햇살이 은은히 비추는 숲속을 걸을 때면 뭔가 신비의 숲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러다보면 나도 모르게 제 손은 사진기를 들어 셔터를 누르게 됩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그 숲속의 사진을 큰 화면에 올려서 보아도, 현장에서의 그 느낌을 따라오지 못합니다. 아무리 사진을 잘 찍는다고 하더라도 사진이 살아있는 숲속에 들어가 느끼는 감정을 결코 따라올 수는 없을 테니까요. 차라리 이렇게 시(詩) 속의 풍경을 눈을 지그시 감고 떠올리는 것이 더 낫지요. 그래도 제가 이런 숲속에서 찍은 사진 하나 여기에 올려보겠습니다.

 

 

가시로 치장하고

알을 품었구나

 

지나는 바람이

미소 지으면

못 이기는 척

몸을 떨구고

 

계절의 조화로움이

오색 빛으로 물들이면

순박한 시골 소녀처럼

속살을 드러낸다

 

탐스러운 모습으로

세상을 유혹하고 있다

 

3부(풍요)에 나오는 ‘밤송이’라는 시입니다. 가을 숲속을 거닐다 보면 발밑에 떨어진 밤송이를 볼 때가 있습니다. 저는 제 걸어가는 발 앞길에 그 순간 ‘톡’하며 떨어지는 밤송이를 본 적도 있습니다. 밤송이가 익을 대로 익어 가시 외피를 벌리고 탐스러운 속살을 드러내고 세상을 유혹하는 그 모습, 그런 상태를 아람이라고 하지요?

 

저는 고등학교 때 선생님께 ‘아람’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때부터 또 하나의 제 이름을 ‘아람’으로 정했었지요. 그래서 제 누리편지 아이디가 ‘yangaram’입니다. 봄, 여름, 가을이 지났으니 이제 겨울의 시를 봐야지요. 추운 겨울이 오면 모든 만물은 인고(忍苦)의 시간을 보내지만, 그래도 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희망을 가지고 추위를 이겨냅니다. 그래서 정 시인은 시집 4부의 제목을 ‘희망’으로 했습니다.

 

잎을 다 떨구어 낸

나뭇가지에

새 한 마리가 앉았다

 

날갯짓을 하고 떠날 때

나뭇가지는 삭정이로 변해

꺾이고 부러졌다

 

어느새

나뭇가지 사이로

따스한 햇빛이 고개를 내민다

그렇게 겨울이 간다

 

‘삭정이’라는 시입니다. 삭정이는 말라 죽은 가지를 말합니다. 잎을 다 떨구어 낸 앙상한 나뭇가지에 새 한 마리 앉아있는 풍경, 그 자체만으로도 풍경은 쓸쓸합니다. 그런데 그 새가 날아가면서 나뭇가지는 그만 꺾이고 부러지네요. 그 순간 찬바람도 휑하니 지나갈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시인은 나뭇가지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따스한 햇빛에서 희망을 봅니다. 그렇게 겨울은 갑니다.

 

정 시인의 시를 감상하면서 계절은 봄에서 여름으로, 그리고 그 여름을 지나 가을로 왔고, 또 겨울이 왔습니다. 현실의 시간도 이제 겨울로 들어섰네요. 올겨울은 추울 것이라면서요? 특히 코로나로 인해 마음마저도 얼어붙을 것 같은 겨울에 들어섭니다. 그러나 정 시인의 겨울 시를 보면서 희망을 잃지 않겠습니다. 마지막으로 5부(사색)에 나오는 시 ‘둘 둘의 하나된 사랑’처럼 나도 삶의 마지막 길에서 두 손을 꼭 잡아 보기를 다짐하며, 정 시인의 시집 《가을엽서》에 대한 답장을 마치렵니다.

 

하나는 외로워 둘이랍니다

그것도 쌍 둘이지요

 

태어날 땐 혼자였지만

둘 둘이 되어 젊음을 불태웠고

이제 장년의

육십이 되었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의 마지막 길에서

옛 추억을 되살려 보며

두 손을 꼭 잡아 봅니다

 

하나는 외로워 외로워

쌍 둘의 미래에 행복이 함께 하길

둘의 하나된 마음으로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