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고의 빛나는 역사를 음지에서 가꾸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929)11월 3일 전라남도 광주에서 발발한 중학교생도와 고등보통학교 생도의 투쟁 사건은 일반 조선인들의 커다란 동요를 불러일으켜 당국(일제) 역시 사건의 중대성으로 보고 동 사건의 내용에 관한 신문기사의 게재금지를 하고 이에 대한 파급 방지를 위해 노력하였으나 경성에서는 대표적인 사회운동단체인 학생과학연구회, 조선학생회, 신간회, 중앙청년동맹 등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 운동에 돌입하였으며...11월 7일 이후 경성을 중심으로 조선학생들의 동맹휴교, 만세고창, 시위운동 등이 저지할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었다...이에 양정고보에서는 11월 14일부터, 중앙고보는 20일부터 동요에 들어갔으며 12월 10일부터는 개성 소재 학교들이 16일부터는 인천과 춘천에서도 동요를 보였다.” -경성지방법원검사국 문서 <京城을 中心으로 한 管內 鮮人學生 動搖의 顚末> 1930.1.30. 발신자 경성헌병대, 문서번호 朝京 제250호 - 이는 1929년 11월 3일, 일어난 광주학생독립운동(11·3 광주학생항일운동, 아래 학생운동)에 대한 일본 쪽 기록(기자 번역)으로 이 학생운동은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이후 국내 최대규모의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