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 열하일기를 따라서, 답사 4일 차 일자 : 2025년 4월 22일(화요일), 이동 거리 214km 숙박 : 북진리펑호텔(北镇丽枫酒店, 锦州北镇店), 0416-666-6666 청나라의 심장, 심양고궁 심양은 동북 3성의 중심 도시답게, 출근 시간대에는 도심 진입이 어려워 일찍 서둘러 심양고궁(沈阳故宫)에 도착하였습니다. 간밤에 내린 비로 아침 공기가 차가운데, 입구 광장은 관광객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사람들이 몰려 시끄럽고 분주했습니다. 2007년 방문했을 때는 이처럼 복잡하지 않았었는데, 현재는 안내 스피커 소리와 기념사진 찍느라 길을 막고 서 있는 사람, 특히 아무 데서나 피워대는 담배 연기에 정신이 없고 불편하였습니다. 가이드인 황일만 사장이 분주하게 다니며 입장권을 사서, 긴 줄을 서지 않고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중국의 유명 관광지에 들어가려면, 문 입구에서 안면 인식기에 서서, 입장권과 여권을 보여주어야만 입장이 가능합니다. 심양고궁은 후금(청)의 태조 누르하치(애신각라-愛新覺羅), 태종 홍타이지가 사용했던 궁궐로, 그 화려함과 엄청난 규모는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나는 연암 박지원이 몰래 황궁 담을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제52차 고(옛)조선유적답사회 답사기 열하일기를 따라서 배우는 길위의 인문학 역사답사 글, 사진 안동립(고조선유적답사회 회장, 동아지도 대표) 날자 : 2025년 4월 19일(토) ~ 4월 28일(월), 9박 10일 단원 : 24명, 대장 안동립, 단원 강경숙, 강계두, 강명자, 궁인창, 김완숙, 김제일, 김희곤, 문부산, 박석룡, 안옥선, 엄수정, 윤광일, 이래현, 이미선, 이우언, 이윤선, 이효웅, 정운채, 조성호, 조평규, 최성미, 하영택, 홍승원 안내 : 황일만, 손광휘, 운전기사 : 장개(张凯) ※ 연암 박지원의 일정에 사용된 날짜는 모두 음력이다. 양력으로 보면 한 달 정도 늦은 일정으로 보면 된다 “아! 참 좋은 울음 터로다. 크게 한번 울어 볼 만한 장소로구나!” 연암 박지원(朴趾源)의 발자취를 따라서... 사신단 40명과 하인 장복, 창대 등 모두 285명에 달하는 대규모 일행이 나팔을 불면서 창덕궁 앞 돈화문을 출발하였다. 1780년 5월 25일 한양을 떠나 6월 6일 평양 대동문을 거쳤고, 6월 24일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 구련성에서 한둔하였다. 이후 7월 10일부터 12일까지 심양(성경)에 머물렀고, 7월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청나라가 들어선 이후 천하의 사대부들을 안정시킬 방법이 필요했다. 지식인들을 장악해야 안정적인 통치와 국정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청나라는 먼저 어떤 학문을 따르는 사람이 많은지 몰래 살폈는데 주자학이었다. 그리하여 청나라는 주자를 공문십철(孔門十哲, 공자의 문하에서 나온 학덕이 뛰어난 열 명의 제자들)의 반열에 올려 제사 지내고 섬기며 주자의 도학을 황실이 대대로 이어온 가학(家學)이라고 선포했다. 주자가 중국을 받들고 오랑캐를 배척한 인물인데도 황제는 천하의 선비와 도서를 모두 모아 《도서집성》과 《사고전서》 같은 방대한 책을 만들어 주자의 말씀이고 뜻이라고 했다. 중국의 대세를 살펴서 주자학을 먼저 차지하고, 천하 사람들의 입에 재갈을 물려서 아무도 감히 자기를 오랑캐라고 부르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황제는 걸핏하면 주자를 내세워 천하 사대부들의 목을 걸터타고 앞에서는 목을 억누르며 뒤에서는 등을 쓰다듬으려 하고 있다. 그런데도 천하 사대부들은 그런 우민화 정책에 동화되고 협박당해, 형식적이고 자잘한 학문에 허우적거리면서도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주자의 학문에 흡족하여 기뻐서 복종하는 자가 있는가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10. 23.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고맙게도 KBS 강석훈 기자가 문상을 와주었습니다. 강기자는 자기가 쓴 책이 곧 나온다더니, 10. 31. 초판이 나오자마자 나에게도 책을 보내주었습니다. 바로 《조선의 大기자 연암》이란 책입니다. 대(大)기자라니? 연암을 좋아하고 열하일기를 애독한 나로서는 순가 ‘대기자’에 혼란스러웠으나, 이내 강 기자가 연암을 ‘대기자’라고 부르는 것을 알 것도 같았습니다. 머리말에서 강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열하일기는 대기자의 면모와 식견, 실력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대장정의 르포르타주다. 르포르타주는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단편적인 보도가 아니라 특정 주제나 지역 사회를 심층 취재한 기자가 취재 내용과 식견을 바탕으로 뉴스와 여러 에피소드, 논평 등을 종합적으로 완성한 기사이다.” ‘그래! 기자의 관점에서는 《열하일기》에서 연암의 대기자의 면목을 읽어낼 수 있겠구나!’ 그런데 강 기자는 연암이 능숙한 대기자의 필치로 《열하일기》를 썼을 뿐 아니라, 연암 스스로 《열하일기》에서 자신을 ‘기자’라고 했답니다. ‘으잉? 이건 무슨 말이야? 당시에는 ‘기자’라는 개념도 없을 때 아닌가?’ 17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