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창대군의 눈물이 비로 내리는 ‘살창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의(영창대군)가 강화에 이르자 가시나무로 둘러놓고 지켰는데, 삼엄한 감시가 임해(臨海) 때보다 배나 되었다.” 이는 《광해군일기》[정초본] 69권, 광해 5년(1613년) 8월 2일 기록입니다. 1611년(광해군 3년) 영창대군에 봉해진 이의(李㼁), 그러나 1613년 계축옥사가 일어나 대북 일파는 박응서 등에게 영창대군 추대 음모를 거짓으로 자백하게 했고, 이에 영창대군은 폐서인(廢庶人)되어 강화도에 유배되었습니다. 그 뒤 영창대군은 광해 6년(1614년) 3월 19일에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런데 영창대군이 죽은 까닭에 대한 문헌 자료는 두 가지로 나옵니다. 먼저 《광해군일기》 중초본 75권, 광해 6년 2월 10일 기록에는 "강화부사 정항이 영창대군의 방에 불을 펄펄 때서 죽였는데 방바닥에서 손톱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필사의 몸부림을 치다 죽었다."라고 나오며, 《인조실록》 8권, 인조 3년(1625년) 3월 19일 기록에는 광해군의 밀명을 받은 별장 이정표(李廷彪)가 음식물에 잿물을 넣어 영창대군을 독살하였다고 합니다. 어쨌든 서럽게 죽은 영창대군의 눈물은 비가 되어 음력 2월 9일 앞뒤로 내렸는데 이 비
-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 2025-08-02 1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