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손병철 박사/시인] 신라의 왕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왕좌보다 마음의 자리를 택했다. 궁궐의 붉은 기와와 비단 장막을 뒤로하고, 스스로 머리를 깎아 승복을 입었다. 그의 이름은 무상(無相, 684~762). 형상을 버리고, 이름마저 뜻이 이름 속에 이미 담겨 있었다. 당나라로 건너간 그는 마침내 사천(四川)의 깊은 산중에 이르렀다. 안개가 산허리를 감싸고, 계곡물 소리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는 땅. 그곳에서 무상은 "정중사(淨衆寺)"를 열고, 이어 "정중종(淨衆宗)"이라 불리는 선맥(禪脈)을 세웠다. ‘맑을 정(淨)’, ‘무리 중(衆)’, 번잡한 세속 속에서도 맑음을 지키는 수행 공동체였다. 그의 선풍(禪風)은 단호하면서도 소박했다. 그는 일기일성(一氣一聲)의 수행법을 제창, 대중을 이끌었다. 문자를 세우기보다, 이론을 장황히 늘어놓기보다, “지금 이 자리의 마음”을 곧바로 비추는 가르침. 수행자들은 새벽안개 속에서 좌선하고, 낮에는 밭을 일구며, 저녁이면 고요히 숨을 고르는 일상을 살았다. 이 고요한 일상에, 언제부턴가 맑은 차 한 잔이 스며들었다. 사천은 차의 고장이다. 산자락마다 차나무가 자라고, 물은 부드럽고 향은 깊다. 무상선사는 차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성탄절을 이틀 앞둔 12월 23일(금), 서울은 올해 들어 가장 추운 영하 1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하필 경남 사천으로 취재하러 가기로 한 날 아침 일기예보는 전라지역 등 서해안 일대의 폭설까지 예보된 상황이었다. 취재지인 경남 사천시는 폭설과 상관이 없는 곳이지만, 이곳을 가기 위한 고속도로는 무주 등 폭설 지방을 거쳐야 한다. 다른 날로 취재 일정을 바꿀까 하다가 눈 속이라도 뚫고 가서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인물이 있어 약속대로 차를 몰았다. 영하 15도, 폭설을 뚫고 만나야 했던 인물이란 다름 아닌 한일문화연구소 연구교수인 최진갑 박사였다. 최진갑 박사는 경남 사천이 고향으로 자신의 고향땅에 역사 왜곡의 표상으로 서 있는 <耳塚> 위령비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한 뒤 지난 1년여 동안을 뛰어다니며 해당 관청인 사천시와 협의 끝에 본래 이름인 <코무덤>으로 바꾼 인물이다. 여기서 잠깐 경남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에 있는 조명군총(朝明軍塚) 옆에 세워져 있던 <耳塚> 위령비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耳塚>이란 우리말로 ‘귀무덤’으로 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