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곰보ㆍ사팔뜨기의 채제공, 영의정 되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정조실록》 37권, 정조 17년(1793년) 5월 25일 기록에는 “임금이 채제공을 의정부 영의정으로 임명하다”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정조 개혁의 중심에 섰던 인물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은 영조 19년(1743) 문과에 급제한 뒤, 암행어사를 지냈으며 도승지ㆍ병조판서ㆍ평안도 관찰사를 거쳐 우의정ㆍ좌의정ㆍ영의정을 지낸 인물입니다. 10여 년을 재상으로 있는 동안 여러 분야에 걸쳐 임금을 보필하였습니다. 그가 죽자, 정조는 “이 대신은 불세출의 인물이다. 그 선천적으로 타고난 인격이 우뚝하게 기력(氣力)이 있어, 무슨 일을 만나면 주저 없이 바로 담당하여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굽히지 않았다. 그 기상을 시(詩)로 표현하면 시가 비장하고 강개하여, 사람들이 우국지사의 유풍이 있다고 하였다. 그는 젊은 나이에 벼슬을 시작하여 이때부터 영조께 인정을 받아 금전과 곡식을 총괄하고 세법(稅法)을 관장하였으며, 임금이 쓴 글을 다듬고 내의원(內醫院)에 있으면서 선왕의 옥‘체에 정성을 다하였다.”라고 애통해했습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에는 채제공의 무덤이 있는데 이곳에는 경기도의 유형문화유산으로
-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 2025-05-25 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