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지 포크는 1884년 11월 1일부터 44일 동안 한강 이남의 조선 남부를 탐사했다. 대학노트 약 350쪽을 여행기로 가득 채웠다. 삽화도 다수 그려 넣었다. 수많은 주막에 들렀다. 외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조선사람도 당시 그처럼 많은 주막을 들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여행기에 가장 자주 나오는 단어도 ‘주막’인 것 같다. 그가 숙박한 주막을 중심으로 그의 자취를 더듬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먼저. 그가 여행기 첫 쪽에 적어 놓은 여행단 내역을 보겠다. (뒤침) 우리 여행단은 다음과 같다: 조지 C. 포크 미국 해군 소위 전양묵, 양반 정수일, 조지 포크의 수행원 가마꾼 12명 말몰이 소년 2명(11월 5일 공주에서 한 명이 추가되어 3명이 된다) 하인 1명 총계: 18명의 인원에 2필의 말, 3대의 가마 5 상자의 트렁크, 3개의 손가방, 사진기, 삼각대, 총기 상자, 돈 바구니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이 지도는 1872년에 만들어진 경기도 광주 지도 일부다. 방향은 왼쪽이 남쪽이고 위쪽이 서쪽이다. 이 지도에서 오른쪽 맨 위에 남한산성의 동대문이 보인다. 보다시피 산수화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지리 정보를 잘 갖추고 있다. 유심히 보면 주막(酒幕) 정보가 많이 보인다. 위에서만도 4개의 주막을 찾아볼 수 있다. 조지 포크는 1884년 12월 13일 이천의 주막을 떠나 서울로 가는 중이었다. 그는 여행기에 세밀화와 같은 기록을 남겼다. 나는 그 여정이 지도상에서 어디일까 무척 궁금했다. 그런데 여기 1872년도 지도를 보니 감이 어느 정도 잡힌다. 사경을 헤매던 그가 기적처럼 임금이 보낸 관리(선전관-宣傳官)를 만났던 길, 그리고 그들의 안내로 묵었던 주막을 이 지도에서 가늠해 보았다. 어명을 들고 나타난 관리를 만나는 이적이 일어난 곳은 보라색 네모 친 구간의 길이었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또한 그들이 만난 뒤 남한산성으로 가는 도중에 묵었던 주막은 보라색 물방울 모양을 친 곳이 아니었을까 추정해 본다. 그 까닭에 대해서는 다음에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