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보물 <채용신 필 최익현 초상>이 있습니다. 오른쪽 위에 “면암최선생 칠십사세상 모관본(勉菴崔先生 七十四歲像 毛冠本)”라고 쓰여 있어 1905년에 채용신이 그린 최익현 선생의 74살 때 모습임을 알 수 있지요. 최익현 선생은 머리에 겨울철 사냥꾼이 주로 사용하는 쓰개인 가죽 감태를 쓰고 심의(深衣)를 입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심의는 백세포(白細布) 곧 흰색의 삼베로 지으며 깃ㆍ소맷부리 등 옷의 가장자리에 검은 비단으로 선(襈)을 두릅니다. 바지저고리 위에 입던 겉옷 포(袍)와는 달리 의(衣, 저고리)와 상(裳, 치마)이 따로 마름질(재단) 되어 연결되며, 12폭의 치마가 몸을 휩싸 심원한 느낌을 주는데 심의라는 말도 이런 뜻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심의는 바탕의 흰색과 가장자리의 검은색, 복건의 검은 색이 조화를 이루어 학자다운 고귀한 기품을 풍깁니다. 최익현 선생은 1876년 제국주의 침략적 성격을 수반한 개항을 반대한 ‘지부상소’로 유명합니다. ‘지부상소(持斧上疏)’는 지닐 ‘지(持)’ 자에 도끼 ‘부(斧)’ 자를 쓰는데 곧 도끼를 옆에 놓고, 상소를 올린다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나라를 위해 끝내 목숨을 바친 조선의 마지막 선비 면암 최익현 선생의 삶과 정신이 무대 위에서 되살아났습니다. 충청남도 청양군은 지난해 11월 창작 뮤지컬 <마지막 선비 – 면암 최익현>을 선보였는데 이 작품은 의병정신의 뿌리를 조명하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최익현 선생에게 돋보이는 것 가운데는 ‘지부상소’가 있습니다. ‘지부상소(持斧上疏)’는 지닐 ‘지(持)’ 자에 도끼 ‘부(斧)’ 자를 쓰는데 곧 도끼를 옆에 놓고, 상소를 올린다는 것입니다. 이는 신하로서 내가 올리는 상소가 부당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면 이 도끼로 나의 목을 치라는 것이어서 폭군이라도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지부상소는 고려시대 충선왕의 실정을 지적하는 우탁 선생의 상소로부터 시작합니다. 그 뒤 조선 중기 수렴청정을 하며 실권을 휘두르던 문정왕후를 궁중의 한낱 과부로 깎아내린 남명 조식의 상소, 조선 말기 병자수호조약에 반대해 올린 면암 최익현 선생의 상소까지 목숨을 건 상소들이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조선시대 임금에게 가장 격렬한 그리고 용기 있는 상소문을 올린 이는 헌종 때 겨우 열다섯 살이었던 기생 초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