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 1월 20일 청와대 세종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광화문 훈민정음체 한글 현판 설치 추진 계획을 보고했고, 국가유산청장이 이에 적극 동의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에 한글 단체와 관련 전문가들은 이를 "역사적 결단"이라며 크게 환영하고 했다.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뒷받침할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광화문 현판 토론회>가 어제(3월 31일) 낮 2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6층 회의실에 열렸다. 100여 명의 전문가들과 시민이 참석해 분위기가 뜨거워진 회의실은 먼저 한글문화연대 이건범 대표가 “광화문에 ‘국가 정체성’ 밝히는 한글 현판을 달자”라는 제목의 주제발표를 했다. 이건범 대표는 “수도를 설정하는 것 이외에도 국명을 정하는 것, 우리말을 국어로 하고 우리글을 한글로 하는 것, 영토를 획정하고 국가주권의 소재를 밝히는 것 등이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기본적 헌법사항이 된다고 할 것이다.”라는 2004년 10월 21일에 나온 ‘헌법재판소 판결문’을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한글은 과학적이고 애민 사상의 결과여서 자랑스러운 수준을 넘어서서, 한국을 한국답게 만들고 표현하는 요소이기에 국가의
[우리문화신문=금나래 기자]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최휘영, 이하 문체부)는 광화문 한글 현판 추가 설치 여부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 3월 31일(화) 낮 2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6층 회의실에서 ‘광화문 현판 토론회’를 연다. 지난 1월 20일 국무회의에서 최휘영 장관은 광화문의 역사성을 존중하면서도 현대적 상징성을 함께 반영하기 위해, 기존 한자 현판은 유지하면서 한글 현판을 추가 설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번 토론회는 광화문 현판을 둘러싼 주요 쟁점을 정리하고 논의를 본격화하는 자리로서, 관심 있는 국민은 누구나 토론회에 참석할 수 있다. 토론회에서는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와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이 발제하고, 이어 양현미 상명대학교 문화예술경영전공 교수가 좌장을 맡아 토론을 진행한다. 김권정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관, 김주원 한글학회장, 이강민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홍석주 서일대학교 건축과 교수, 김형우 한반도문화관광연구원장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토론자로 참여한다. 토론회를 시작으로 문체부 누리집 게시판과 설문조사 등을 통해 국민 의견 수렴 문체부는 이번 토론회를 시작으로 광화문 한글 현판 추가 설치에 대한 의견을 폭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정부가 경복궁 광화문에 훈민정음체 한글 현판을 달기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1월 20일 청와대 세종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광화문 훈민정음체 한글 현판 설치 추진 계획을 보고했고, 국가유산청장이 이에 적극 동의했다는 것이다. 한글 단체와 관련 전문가들은 이를 "역사적 결단"이라며 크게 환영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현판 교체를 넘어, 대한민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중대한 사건이다. 이상적인 1안: 한글 현판으로만 한글 단체와 많은 국민이 가장 많이 염원하는 바는 단연코 '1안'이다. 곧, 현재의 한자 현판을 내리고 훈민정음체 한글 현판만 거는 것이다. 광화문은 단순한 고궁의 정문이 아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성지이자, 한국 문화의 발신지로서 세계에 대한민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다. 이곳에 한글이 태어난 조선 정궁(正宮)의 정문으로서 훈민정음체 한글 현판이 걸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자가 대한민국의 얼굴인 광화문에 오롯이 걸릴 때, 비로소 우리의 정체성이 온전히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 난관과 2안의 값어치 그러나 현실
[우리문화신문=홍사내 칼럼니스트] 하나. 들어가는 말, 광화문의 유래 광화문에 대한 처음 기록을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보았다. 실록에서는, 경복궁을 준공하면서 태조가 정도전에게 명하여 모든 궁과 성에 이름을 지어 붙이도록 하였는데 유독 광화문의 이름이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처음 보이는 글은 태조 4년(1395) 9월 29일 기록인데 여기에서는 경복궁을 다 짓고 그 남문을 ‘광화문(光化門)’이라 이름지었다고 하였으나, 바로 이어서 나타나는 그해 10월 7일 기록에서는 정도전이 ‘정문(正門)’이라 이름지어 임금께 글을 올리면서 그 이름 뜻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두 글만 본다면 정도전이 먼저 ‘정문’이라 이름지었는데, 뒤에 《태조실록》을 엮은 실록청 사람들이 실록을 엮을 당시에 바뀌어 쓰던 이름인 ‘광화문’으로 잘못 기록하였다는 짐작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사이에 정문을 광화문으로 바꾼 연유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더 살펴보니 《태조실록》은 두 번에 걸쳐 엮었다. 처음 태종 13년(1413) 3월에 엮었던 것을 세종 30년(1448) 6월에 정인지 등이 증보 편수하였음이 《태조실록》 부록에 기록되어 있다. 또 《세종실록》에는 세종 6년(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