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며칠 뒤 K 교수는 체육대학의 ㄱ 여교수와 ㄴ 교수를 초대하여 미녀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ㄱ 교수는 무용학과 교수여서 무용을 전공한 미스 K에 대해서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날 미스 K는 또 서울 갔다고 자리에 없었다.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미스 K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고 혹시 아느냐고 ㄱ 교수에 물어보니, 학교 다닐 때 1년 후배로서 예쁘다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나중에 미스 코리아 진에 뽑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대학 졸업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어서 확실하지는 않다고 했다. 어쨌든 미스 K가 학교 가까이에 왔다니 한번 보고 싶다고 말했다. 식사가 끝나고 주로 무용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ㄱ 교수는 얼마 전에 경기도 안성군의 죽산면에서 열린 국제예술제에 다녀왔다고 했다. 죽산국제예술제는 ‘웃는 돌 무용단‘의 홍신자 씨가 1994년부터 시작한 연극축제였다. 무용가인 홍신자 씨는 대한민국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인도 철학자 라즈니쉬의 제자가 되었다. 그녀는 인도에서 3년 동안 머무는 동안에 봄베이 근처 라즈니쉬가 살고 있는 작은 도시 푸나에서 생활하였다. 홍신자 씨가 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홍신자의 기이한 실험은 <푸나의 추억>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인도는 가정에까지 종교적 금욕이 파고 들어가 있는 나라다. 성에 관한 한 철저히 폐쇄적인 이 나라에서 그 체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은 결혼밖에 없을 것이다. 이해가 갔다. 다음 날 저녁 무렵, 우리는 아슈람(주, 라즈니쉬의 가르침을 따르는 국제명상센터) 밖 시내 한 지점에서 만났다. 릭샤(주, 인력거의 하나)를 타고 얼마를 간 후, 나는 그를 따라 작은 여관 비슷한 곳으로 들어갔다. 거울 하나 걸리지 않은 방 한쪽엔 옹색한 세면실이 딸렸는데 수도꼭지 하나와 찌그러진 양동이 하나만 달랑 놓여 있었다. 그는 준비해 온 향불을 피운 다음 전등을 끄고 대신 촛불을 켰다. 조금씩 나오는 수돗물에 몸을 씻고 나온 그는 긴 천 하나로 몸을 감더니 가부좌를 하고 벽에 등을 기대었다. 그리고는 명상에 들어갔다. 나도 몸을 씻고 나와서 그에게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는 곧 바잔(주, 신을 찬양하고 헌신을 표현하는 힌두교의 노래)을 부르기 시작했다. 종교적이고 성스럽고 평화로운 가락, 나도 그를 따라 흥얼거렸다. 그렇게 바잔 만을 부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