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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봉봉 4중창단 ‘꽃집 아가씨’

[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45] 무거웠던 마음에 신바람을…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언제부터인가 근사한 살롱을 하나 가지고 싶었다. 문화예술인들과 어우러져 고준담론으로 밤을 밝히고 싶었다. 그 소망의 시작으로 음악카페를 열었다. 결과는 번번이 실패였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폐업전문가. 지천명을 넘긴 뒤에야 나의 소망이 당랑거철(螳螂拒轍, 제 분수를 모르고 강적에게 반항함)이란 걸 알게 되었다. 

살롱 주인은 첫째 문학과 역사, 철학과 예술에 해박해야 한다. 나에겐 그것이 부족하다. 아주 턱없이. 둘째, 돈이 많아야 한다. 그래서 살롱을 찾는 가난한 문화 예술인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나에겐 그게 없다. 곤궁할 정도로. 그다음이 포용력이다. 그래서 각기 개성이 강한 내방객들을 안아 주어야 한다. 나에겐 그것도 모자란다. 아니 없는 거나 별 차이 없다. 

마이케나스는 살롱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여 메세나 운동을 주도했다. 그 덕택에 로마는 문무의 균형이 잡힌 제정(帝政)을 확립할 수 있었다. 코르넬리아는 자신의 살롱에서 두 아들을 훌륭히 키워냈다. 

그라쿠스 형제로 회자되는 그 아들들은 농지개혁으로 로마역사에 이름을 남기지만 반대파에 의해 살해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하지만 코르넬리아는 전혀 슬픈 내색 없이 묵묵히 교양인들을 길러냈다.  

살롱은 그런 사람들의 것이다. 적어도 그 반 토막의 소양은 갖추어야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내가 탐할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꽃집 주인이 되는 꿈도 꾸어봤다. 아니, 꽃집 하는 여자와 결혼하여 나의 살롱을 꽃향기로 채우고 싶었다. 그러나 꽃집 하는 처녀는 천연기념물만큼이나 희소성이 강한 존재였다. 결국 살롱도 꽃집도 꿈으로 끝난 꿈이 되고 말았다.  

오늘은 봉봉4중창단의 꽃집 아가씨로 그 아쉬움을 달래본다. 

   
▲ 봉봉 4중창단 음반 표지
꽃집에 아가씨는 예뻐요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그녀만 만나면은 그녀만 만나면은
내 가슴 울렁울렁 거려
꽃집에 아가씨는 미워요
그렇게 미울 수가 없어요
너무나 새침해서 너무나 새침해서
설레는 내 마음을 몰라요
예쁘고 예쁜 꽃들이
모두 다 방실 웃는데
꽃보다 예쁜 그녀의
귀여운 그 얼굴만 언제나 새침해
어쩌다 한 번만 웃으면
마음이 약한 나는 미쳐요
새 빨간 장미보다 새 하얀 백합보다
천 배나 만 배나 예뻐요 

미국은 1950년대에 보컬그룹들이 전성기를 보냈다. 남성그룹으로는 엠스 브라더스밀스 브라더스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고 여성들로는 맥과이어 씨스터즈’, ‘딕시 컵스등을 꼽을 수 있다. 요즘에는 노래와 연주를 함께하는 록 그룹을 보컬그룹이라 부르지만, 원래는 노래만 하는 중창단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미국의 영향으로 우리나라도 60년대에 여러 보컬그룹들이 등장하여 많은 사랑을 받았다. ‘봉봉4중창단은 김성진, 이계현, 김유생(작사가 지웅), 현삼열을 라인업으로 63년에 데뷔하였다. 

첫 음반에는 본본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불어의 Bon(좋다)을 영어로 오해하여 생긴 촌극이다. 밝고 코믹한 노래로 10여 년 간 정상의 인기를 누렸던 봉봉4중창단’. 

그들이 좌절과 실의에 빠져있는 국민들을 활기찬 일터로 나가게 했던 것처럼 나라 전체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요즘, 2<봉봉>이 나타나 신바람을 일으켰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