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일)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67] 김씨스터즈 “김치 깍두기”

원조 한류가수의 고국사랑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요즘은 지방 소도시에서도 배낭을 둘러매고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외국인을 흔히 볼 수 있다.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외국에서도 여행을 많이 오고 우리도 나라 밖으로 많이 떠난다. 이제는 촌로들도 중국이나 동남아 몇 개국 정도는 다녀오는 세상이 되었다. 

해외라고는 강화도밖엔 가본 적이 없다며 농반진반으로 너스레를 떨던 필자도 단 한번 해외여행을 경험하였다. 첫 여행지 치고는 제법 먼 나라인 스페인을 다녀왔는데, 다행히 패키지관광이 아니라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뒷골목 구석구석까지 뒤질 수 있어 좋았다. 

라틴문화와 아라비아문화가 혼재된 독특한 문화를 경험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먹거리가 문제였다. 음식이 얼마나 짠지 도무지 먹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대도시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이 있어 라면이나 김치 맛을 볼 수 있지만 길을 나서면 늘 파스타로 때워야했다. 

스페인 전 지역의 음식이 대부분 짜지만 안달루시아 지방이 유독 짜다. 바다를 끼고 있지만 염전이 없어 소금이 귀하기 때문에 반가운 손님에게는 소금 한 줌을 더 쳐주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 영향으로 음식이 그렇게 짜졌다는 민박집 주인의 설명을 떠올리며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더니 김씨스터즈는 고국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김치 깍두기’라는 노래를 다 불렀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1951년 1월 뼛속까지 파고드는 칼바람을 가르며 미군 군용열차가 부산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객차 안에는 미군장병들이 잔뜩 타고 있었고 강추위도 녹일 만큼 젊음의 열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한국의 어린이 세자매가 나타나 노래를 부르자 그 왁자지껄하던 객차 안은 순식간에 고요해진다. 노래 소리에 빠져들어 눈물을 흘리는 병사도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떠나갈듯 한 환호성과 함께 초콜릿과 사탕이 우박처럼 날아들었다.  

  

   
▲ 김씨스터즈 음반 표지
머나먼 미국 땅에
   십년 넘어 살면서
   고국이 그리워
   아침저녁 식사 때면
   런치에다 비후스텍
   맛 좋다고 자랑 쳐도

   우리나라 배추김치
   깍두기만 못 하더라
   코리아의 자랑스런 김치
   깍두기 깍두기
   자나 깨나 잊지 못할 김치 깍두기
 

   우리나라 된장찌개
   고추장만 못 하더라
   코리아의 자랑스런 김치
   깍두기 깍두기
   자나 깨나 잊지 못할 된장찌개
 

우리나라 최초의 미8군 가수의 탄생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이들이 바로 영자, 숙자, 애자로 구성된 김씨스터즈 이다. 이들의 부모는 우리 가요사의 큰 별들 이기에 잠깐 짚어 보기로 한다.  

부친은 일제강점기 시절 최고의 학구파 음악인으로 평가받는 뮤지컬의 대부 김해송이다. 가수, 작곡가로 명성을 떨치다 6·25 때 납북된 후 목숨을 잃었다. 

어머니는 엘레지의 여왕이라 불린 ‘목포의 눈물’ 주인공 이난영으로 자식 6남매를 모두 음악으로 성공시키고 훗날 가요계의 황제 남인수의 연인이 되었다. 김씨스터즈는 1959년 미국에 진출하여 찰리 브라운이라는 노래를 히트시키며 정상의 인기를 누렸다. 인기 TV프로그램 딘 마틴 쇼, 봅 호프 쇼, 에드 설리번 쇼에 단골 출연하는 영예를 누리며 나라 이름을 떨쳤다. 

1970년 이들이 12년 만에 금의환향했을 때 우리 정부에서는 감사장으로 이들의 공로에 보답했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