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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사랑과 평화 ‘한동안 뜸 했었지’

[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68] 한국 록 역사 만든 ‘불후의 명곡’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군문을 나선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가을날이었다. 그날도 나는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 코끝이 새까매져서야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주위에선 군대생활 하느라 삼년동안 수고했으니 좀 쉬라고들 했지만 내 마음은 이미 음악실에 가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음악에 목말랐던가? 마이크가 잡고 싶어서 안달은 또 얼마나 났던가? 차창 밖을 내다보며 내일은 어느 쪽을 훑을까 생각에 잠겨있는데 갑자기 귀가 번쩍 뜨였다. 우리나라에선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장르의 음악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게 아닌가?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 다시 시내로 향했다.

그리고 군 입대 전부터 자주 드나들던 레코드점 문을 열어젖히곤 이런 음악이 있느냐고 물었다. 주인아저씨는 마침 그 음반이 오늘 들어왔다며 미소 띤 얼굴로 나에게 건넸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뜸 했었지’를 듣고 또 들으며 회상에 잠겼다.

미군 클럽을 떠돌던 시절, 소울클럽에서 근무할 때 사귀었던 흑인병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은 유난히 펑키리듬을 좋아해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출 때면 흡사 몸과 팔다리가 따로 노는 것처럼 유연했다. 나는 그 음반을 사들고 다음날 한 음악 감상실 오디션에 임했다. 예상대로 손님들의 반응은 아주 좋았고 결과는 당연히 합격이었다.

 

   
▲ 사랑과 평화 ‘한동안 뜸 했었지’ 음반 표지

한동안 뜸 했었지
웬일일까 궁금했었지
혹시 병이 났을까
너무 답답했었지
안절부절 했었지
한동안 못 만났지
서먹서먹 이상 했었지
혹시 맘이 변했을까
너무 답답했었지
안절부절 했었지
밤이면 창을 열고
달님에게 고백했지
애틋한 내 사랑을
달님에게 고백했지
속절없이 화풀이를
달님에게 해 대었지

오늘 감상할 ‘한동안 뜸 했었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펑키뮤직으로, 음반 수록곡 모두가 천재 기타리스트 최이철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불후의 명곡들로 채워졌다. 우리나라 록 역사에서 ‘사랑과 평화’의 비중이 매우 크듯이 ‘사랑과 평화’를 논할 때 최이철은 절대적 위치에 자리 잡는다. 16세에 이미 미8군 무대에 진출하였고 한국인 최초로 AFKN에 출연하며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그의 천부적 음악재능은 선대로부터의 대물림이다. 풍금연주를 아주 잘했던 할아버지는 물론 아버지 최경용은 재즈 트럼펫주자로 활약했고 어머니 이계원은 유명한 탭 댄서였으며 삼촌 최상용 역시 트럼펫으로 일가를 이룬 음악가족이다.

최이철은 10여 년간 여러 밴드를 전전하다가 이장희의 권유로 ‘사랑과 평화’를 탄생시킨다. 1집 앨범은 많은 사연을 담고 있기도 하다. ‘한동안 뜸 했었지’는 이장희 작사·작곡이지만 이경애 작사 김이환 작곡으로 발표되었다. 이장희가 대마초사건에 연루되어 부득이 가명과 차명을 사용했던 것이다. 베이스주자는 Sarbo로 되어있는데 그는 이태리 사람으로 이남이가 대마초사건으로 활동이 중단되자 급히 영입된 인물이다. 실제 음반에서의 연주는 이남이가 맡았다.

‘한동안 뜸 했었지’는 최이철이 편곡자지만 김명곤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훗날 김명곤이 자발적으로 저작권협회를 찾아가 정정해주며 우애를 과시하기도 했다. ‘사랑과 평화’! 그 이름처럼 우리 모두 늘 사랑과 평화 속에 살 수 있다면….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