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하여튼 철저히 나라일 밖에 모르는 분이셨어요. 한번은 중경에서 큰아들이 결핵에 걸렸는데 마이신이 아주 비쌌을 때였지요. 중경은 1년에 안개가 4~5개월이나 껴서 햇볕이 아주 귀하여 결핵환자에게는 안 좋은 환경이지요. 거기다가 중일전쟁 상황이라 영양상태도 나빠서 더욱 치료가 어려웠을 때인데 큰아들에게 마이신 주사 한 대도 못 맞히고 결국 결핵으로 죽게 됩니다. 그때 백범 선생은 임시정부 살림을 맡아 독립자금을 쥐고 계셨지만 그 돈을 아들의 마이신 주사 한 대도 쓸 수 없다고 하실 만큼 공과 사의 선을 분명하게 긋던 분입니다.”
이 말은 《대한민국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2015, 서울시》에서 ‘김구 주석에 대한 기억을 말해 달라’는 질문에 대한 김자동 회장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의 답이다. 김자동 회장은 어린 시절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함께 자란 산증인으로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 동농 김가진 (1846~1922)이다. 동농 선생은 대한제국 시기에 중추원 의장을 지낸 분으로 1919년 항일 비밀결사인 조선민족대동단을 조직해 활동하다가 10월 상하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친 분이다.
![]() |
||
▲ 윤봉길 의거 후 임시정부 요인과 김구의 피신을 도와준 중국인 저보성 가족과 함께(자싱, 1933)앞줄 왼쪽 첫 번째 어린이가 김자동 회장이고 뒤는 정정화 지사 |
문 : 백범 선생의 서거 때 문상을 가셨죠?
답 : 그때 돈암동에 살 때였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성고 시절 영어선생이 ‘자네 호외를 보았나?’ 하시기에 ‘아니오’라고 했더니, 백범 선생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는데 걱정이 되더라구. ‘남북간의 긴장이 심한 상황에서 견제 할 수 있는 분이 돌아가시면 동족상잔이 불가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걱정이 많이 되었지.
문 : 경교장을 중심으로 활동 했던 임시정부 요인들 가운데 김구 선생의 이념을 잘 이해하던 분은?
답 : 임시정부 국무위원들이 다 요인이지만 국내에 와서 단독정부 수립을 끝까지 반대한 한독당에서 가장 가까운 분이 우천 조완구 선생, 엄항섭 선생, 아버님(김의한)일 겁니다. 조완구 선생은 재정부장 등 여러 직위를 오래 맡으셨고, 엄항섭 선생은 귀국 직전 1년 전에 임시정부 선전부장을 맡으셨지요. 두 분은 국무위원이고 아버님은 주로 당의 일을 보셨지요.
![]() |
||
▲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 김자동 회장 |
문 : 우리국민은 임시정부가 돌아왔을 때 임시정부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 부분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답 : 1945년 11월 23일 들어왔지요. 이승만은 그 보다 한 달 반 정도 먼저 들어 왔지요. 1945년 6월에 유엔이 창설 되었는데 중국 국민정부에서 한국도 유엔 창설멤버로 참석 시켜달라고 했지요. 당시에는 독일 점령 하의 정부들도 참여 했는데 정부가 없거나 자기 나라가 없는 나라들도 창립 멤버였지요. 당시 미국에는 재미한족연합회가 있었는데 미국의 한인 대다수가 가입한 단체로 김용중 이라는 분을 워싱턴에 파견하였는데 이 분을 임시정부 대표로 추천했는데 그만 이승만이 반대를 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가 유엔 창설멤버로 들어갔다면 창설멤버가 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자동적으로 정부 승인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모스크바 삼상회의 신탁통치 얘기도 나올 리가 없지요. 물론 임시정부가 그대로 와서 정권 인수는 못했을 거예요. 소련에서 볼 때 임시정부는 친 서방적이니 연안 대표도 참석 시키고 김일성 등 소련에 망명한 사람도 참여 시키고 또 국내의 항일 세력도 참석시키자는 의견이 나왔을 겁니다. 말하자면 독립운동 계열을 아우르자는 이야기지요.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유엔 창립 멤버가 되려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이승만이가 산통을 깨버린 꼴입니다.
김자동 회장은 이 책에서 임시정부의 당시 상황을 소상하게 밝혔다. 역사에서 가정법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때 임시정부가 유엔창설 멤버가 되어 자동으로 한 국가로 인정을 받았다면, 그래서 광복 후 임시정부의 환국과 더불어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한 여러 단체들을 아우르는 정부를 세웠다면, 분단도 없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인다.
![]() |
||
▲ 광복 70주년 기념 구술자료집 《대한민국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책 표지 |
문 : 어머니 정정화 여사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임시정부에서 중요한 일을 하셨죠?
답 : 어머니는 시아버지(김가진 선생)와 아버님(김의한 선생)이 쥐도 새도 모르게 상하이로 망명한 뒤 국내 신문을 통해 알게 되었지요. 독립운동하던 분들은 그 정도로 철통같이 자신들의 행동을 비밀리에 움직였지요. 그러나 어머니는 시아버지와 남편을 돕겠다는 일념으로 시댁에 도움을 청해 상하이로 합류했지요. 그뒤 금전적으로 어려운 임시정부를 위해 독립자금을 모금하려고 여러 차례 위험을 무릅쓰고 국내로 잠입하여 독립자금 모집에 큰일을 하셨지요.
그렇다. 상당수의 독립운동가 집안을 보면 온 가족이 독립운동에 헌신한 경우를 보게 되는데 김자동 회장 집안 역시 할아버지 동농 김가진 선생을 비롯하여 아버지 김의한, 어머니 정정화 지사까지 한평생을 독립운동으로 생을 마감한 집안이다. 이러한 임시정부의 활동을 고스란히 육성으로 증언해주고 있는 책이 《대한민국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2015, 서울시》이다. 이 책은 대담식으로 되어 있어 딱딱한 전문서적과 달리 생생한 역사를 이웃집 할아버지가 들려 주듯하여 편하게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