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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나랏일엔 왕자라도 예외가 없이 엄격했던 홍흥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44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성종 때 한성부 좌윤 홍흥(洪興, 1434∼1501)은 나랏일을 하는데 엄격하기로 소문이 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미천한 백성에겐 한없이 따뜻했습니다. 그가 초헌을 타고 행차하는데 감히 술 취한 동네 할멈들이 초헌을 가로막으며 “나리! 술이 이렇게 좋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금주령도 좀 풀어주시지요.”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는 금주령을 풀어주며, “하지만 술을 너무 마셔 나라 재물을 너무 축내면 안 되느니라.“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랏일을 하는데 있어서 특히 힘 있는 벼슬아치들에겐 참으로 엄격했습니다. 한번은 왕자가 집을 짓느라 굉장한 역사를 벌이고 있다는 소문을 듣자 집을 짓는 곳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도목수를 불러 “집짓는 데는 간수와 정해진 치수가 정해진 법도가 있으니 아무리 왕자라 해도 법에 정해진 것보다 더 크게 지을 수 없다. 그러니 네가 죽기 싫거든 아예 지나치게 짓지 마라.”라고 명했습니다. 당시는 벼슬 품계에 따라 건축법의 제한이 엄격했었지요.



그러자 홍흥의 호령을 전해들은 왕자는 도목수를 홍흥에게 보내 “긴 것은 끊고 간수가 넘은 것은 모두 헐어 법을 범하지 않겠소.”라며 사과하기에 이릅니다. 한 나라의 왕자에게 까지 죽음을 들먹거리며 엄포를 놓았으니 그가 나랏일을 하는데 얼마나 분명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우리 대한민국은 “국정농단”이라는 처음 있는 사태에 온 국민이 분노합니다. 이때 홍흥 같은 공직자 어디 없는지 그리워지는 것은 어디 저만의 마음뿐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