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世愛牡丹紅 栽培滿院中 사람들 모란꽃을 좋아해 집 안 가득 심지만
誰知荒草野 亦有好花叢 시골 구석구석에는 아름다운 패랭이꽃 무더기 핀다네
色透村塘月 香傳隴樹風 꽃은 연못에 잠긴 달에 비치고, 향기는 바람결에 실려 오누나
地偏公子少 嬌態屬田翁 외진 시골 꽃 찾는 귀인들 적어, 그 자태는 늙은 농부 몫일세
위는 고려 의종 때 문신 정습명(鄭襲明, 미상 ~ 1151년)의 한시 “석죽화(石竹花, 패랭이꽃)”입니다. 모란은 한자 이름으로 목단(牧丹)이라고도 하는데 예부터 한중일 세 나라에서는 부귀와 공명을 뜻하는 꽃이라 하여 “꽃 중의 꽃” 곧 “화중왕(花中王)”으로 불렀습니다. 삼국시대 당태종이 신라 선덕여왕에게 모란이 그려진 병풍과 모란씨 석되를 보냈는데 그림에 모란은 꽃은 화려한데 벌과 나비가 없어 향기가 없다며 짝이 없는 선덕여왕을 희롱한 것이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모란은 많은 이의 사랑을 받지만 시골 들판 구석구석 무더기로 피는 패랭이꽃을 귀인들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이 꽃을 사랑합니다. 패랭이꽃은 석죽화(石竹花)ㆍ대란(大蘭)ㆍ산구맥(山瞿麥)ㆍ구맥(瞿麥)이라고도 불리는 토종 들꽃으로 낮은 지대의 건조한 곳이나 냇가 모래땅 등 척박한 땅에서 잘 자랍니다. 꽃을 뒤집으면 옛날에 역졸, 부보상들이 쓰던 패랭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패랭이 꽃이라 했다고 하지요. 《인조실록》에 보면 압록강 상류 쪽 삼수진 백성이 구황식물(흉년에 곡식 대신 먹을 수 있는 식물)로 심었다고 기록이 있습니다.